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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기도/독백

도시락

by Andrew Y Lee 2021. 3. 27.

며칠 전 몇 가지 일을 처리하려고 부천역 앞을 지나게 되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며 모여 서있는데, 모두 노인들이었고 대략 30명은 되 보였다.

워낙 궁금증이 많은 사람이기에 자세히 살펴보니 점심도시락을 받으려고 모여 온

사람들이었다. 광장 한편에 좌판을 펼쳐 수십 개의 도시락이 쌓여있고 몇 사람들이

그것을 배분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시간을 보니 1155분이다.

아마 이 자리에서 매일(?) 점심 도시락을 나누어 주는 모양이다.

순간 나도 하나 받아 갈까하는 생각이 스친다.

나누어 주는 관계자는 두 줄로 서라고 큰 목소리를 더 높이고 사람들은

서로 빨리 받아 가려고 앞으로 몰려 서로 엉킨다. 왜 저렇게 질서가 없을까?

못 받을까 저러는 것인가?

 

미국에 있을 때, FOOD BANK에서 음식을 실어다가 나누어 주던 생각이 난다.

미국에 있는 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못 받을까 하여 서로 빨리 받으려고 애쓰고 하나라도 더 챙기려고

안달이 난 모습들이 떠오른다.

 

아직도 한 끼 식사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가보다.

나는 맨 끝에 가서 조용히 기다리게 된다.

혹시나 모자라서 차례가 안 오면 그만 포기하려고 생각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이 많이 있을 터니....

 

한 끼 밥은 그 시대의 민심이다.

살기가 좋으면 어디 가서 밥 한 그릇 얻어먹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닐 터....

백성의 살림이 넉넉하면 보시하는 음식도 남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시락 내용이 궁금하다.

 

修道僧拓鉢(탁발)은 한 끼 밥을 해결하려는 단순한 구걸행위가 아니다.

나누어 받는 한 끼 밥 속에 백성들의 생활수준이 담겨있고

그 시대의 고뇌와 아픔이 담겨 있는 법이다.

 

수도승도 아니면서 수도한다고, 탁발한다고 어줍잖게 돌아다니던 때도 있었다.

주머니에는 한 푼 동전도 가지지 않고, 전화기도 없이 목적지를 향하여 간다.

누가 태워주면 차를 타고, 정 힘들면 차를 탁발하기도 하면서....

가다가 배가 고프면 어느 집 문을 두드리고, 가게 앞을 어스렁거려 보기도 하고....

남에게 구걸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면 안 된다.

그래서 탁발은 겸손의 지름길인가보다.

 

성경을 따라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던 탁발수도회가

부자교단이 되어 떵떵거리며 좁은 길을 간다고 으스대던 꼴이 보기 싫어

탁발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려고 호기를 가지고 벌렸던 일이었는데...

다 지나간 일이고 스쳐간 미친 열정이었다.

 

미국에서도 그 호기는 없어지지 않았었다.

목회를 하던 중 생계를 유지하려고 도요다 자동차 판매장에서 청소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쓰레기통에서 적지 않은 버려진 음식들이 나왔다.

매일 도시락을 싸 가는 것도 아니고,

일일이 나가서 식사를 사 먹기도 그랬던 때였다.

에이, 한국에서도 못 다한 탁발인데 미국에서도 한번 해보자

흐흐, 여기는 돌아다닐 것도 없이 쓰레기통만 뒤지면 되니

이 현필 선생은 누가 예수 잘 믿는 법이 무어냐고 물으면

거지 오장치를 짊어지라고 했던가....

흑인이 먹다 버린 것이면 어떻고, 아랍인이 먹다가 버린 것이면 어떤가

어차피 순간 배고픔을 면하면 되는 것이고 다 배설물로 나오는 것인데...

이 또한 지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 끼 도시락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다가 별별 생각이 다 난다.

다행히 뒤에 서있었지만 도시락은 넉넉해 무사히(?) 하나를 받았다.

여기저기 역 광장에 나름 자리를 차지하고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시간이 넉넉했으면 길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도시락을 열었을텐데....

시간이 부족해 도시락을 그대로 가지고 종종 걸음으로 교회로 갔다.

도시락 반찬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전에는 음식을 나누어주는 사람도 해 보았고

음식을 얻어먹는 사람도 되어 보았지만 지금은 이도저도 아니다.

언제쯤 다시 나누어주는 사람이 될 것인가?

 

김치 세 쪽

돼지고기 볶음 한 젓가락

콩나물 두 젓가락

콩나물 국물 약간

밥은 넉넉한 편

 

맛이야 어떠하든 한 끼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리고

예전 일들을 떠 올리게 하셔서 새롭게 이것저것을 생각하고

이 시대의 아픔을 조금은 느껴본다.

 

아버지,

오늘도 아버지 앞에 말씀을 얻어먹으려고 겸손히 엎드립니다.

영혼을 위한 말씀탁발, 은혜탁발

도시락 탁발은 맨 뒤에 서 양보했지만....

말씀탁발은 양보 못합니다.

주세요, 구색이 갖추어진 영혼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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