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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영성의 신비가/이용도 목사6

예수는 나의 구주 시무언(是無言) _ 이용도 목사 "기도로 살다 기도로 죽어." 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본업이요 그 외의 것은 다 부업입니다. 본업에 실패한 자 부업만을 가지고 살기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나보다 낫게 여기고 겸비하므로 순종하며 말 없이 늘 주님을 묵상하고 땀이 흐르도록 노동할 것 이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1. 고(告)는 나의 선생. 고통이 올 때 그것에서 배우는 것이 평안할 때보다 더 배우는 것이 많으며 또 참된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2. 빈(貧)은 나의 애처. 가난함은 나의 사랑하는 아내 같이 나를 떠나지 않나니 나는 건방진 부보다 착한 가난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3. 비(卑)는 나의 궁전. 나는 높은 데 처해 있을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은 늘 겸비하여 낮은 데.. 2017. 4. 10.
청빈 7. 이용도 목사님의 청빈 이용도 목사님(1901∼1933, 한국)은 이전에 가졌던 가장 행복했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의 어느날 그는 거지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그것은 마치 하늘의 성찬을 나누는 것과 같았다. 거지들이 가끔 문전으로 와서 찬밥 한 덩어리를 받아 가곤 했다. 그러나 그의 양심이 여전히 그를 괴롭혔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을 쳐다보시며 문 밖에 서서 이렇게 말씀하시는거 같았다. "네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연다면 내가 네게로 와서 너와 내가 같이 식사를 할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이제 거지가 찾아오면 안으로 맞아들여 정성껏 대접하여 천사를 대접하는 것처럼 하자고 말한다. 어느날 식사가 조그만 상에 차려진 순간, 그는 한 거지가 살며시 떠밀려 문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 2011. 8. 9.
[스크랩] 용도신학 용 도 신 학 1. 하나님 하나님에게 물어보지 않고는 말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에게 기도하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며 성경을 보지 않고는 편지를 쓰거나 책을 보지 않으리로다. 이렇게 주님은 나에게 끌리시고, 나는 주님에게 끌리어, 하나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일화) 나는 주의 사랑에 삼키운 바 되고 주는 나의 신앙에 삼키운 바 되어 결국 나는 주의 사랑안에 있고 주는 나의 신앙 안에 있게 되는 것이었나이다. 아-오묘하도소이다. 합일의 원리여! 오-나의 눈아 주를 바라보자 일심으로 주만 바라보자 잠시라도 한눈 팔지 말고 오직 주만 바라보세. 나의 시선에 잡힌 바 주님은 나의 속에 안주하시리라. 오-나의 눈아 일심으로 주만 바라보자 주께서 피하시랴 피치 못하시게 다만 그만 바라보자. 생명의 공부 = 영원.. 2011. 7. 7.
[스크랩] 이용도 목사 “밝은빛을 생활화한 이용도 목사님” 현대만큼 종교가 물질적이고도 세속적인 것에 갇혀 무력해진 시대는 일찌기 없었다. 교회가 외적으로 비대해지고 팽창하는 속에는 카타콤에서 가졌던 그 진실하고도 뜨거운 신앙이 없다. 박해와 순교와 수치뿐이던 박해시대는 가짜 신앙인이 없었다. 신앙이 외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하면서 내면적이고 영적인 것은 힘은 힘을 잃어버리고 목소리로는 외쳐도 생활로 가르치는 이가 없으니 도처에서 눈 뽑히고 머리깍인 삼손들이 영적인 힘이 없는 말라빠진 소리를 외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세속화되고 어두워질때면 기둥같은 일꾼들을 세우셔서 밝은빛을 비추어 교회를 새롭게 하셨다. 구원받은 성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앙으로 무장된 분들은 현실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나라와 의를 먼저 구한 분들이고, .. 2011. 7. 7.
[스크랩] 이용도 목사님의 생애 이용도 목사님의 생애 연구 나는 홀로 주님을 따라갑니다. 나의 자랑의 머리도 깍아버리고 치례의 옷도 벗어버리고 그것은 세상의 자랑이요, 호사는 되되 주님께는 거리낌이 되니까요 나는 굴갓을 씁니다. 먹물든 장삼을 입고 새끼띠를 띱니다. 이제 갑니다. 홀로 향하여 가는 곳 남이 아는듯 모르는듯 다만 골고다로만 주의 뒤를 따라갑니다. 1. 출생과 시대적 배경 - 소년시대 20세기 초두의 한국은 정치적으로 사상적으로 최대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외세의 침략세력으로 약해져가는 시절,나라를 사랑하고 민중을 깨우칠 수 있는 사람, 충성된 애국혼과 열렬한 신앙의 사람이 나왔으니 그가 곧 이용도였던 것이다. 이용도는 1901년 4월 6일 황해도 금천군 서천면 시변리에서 이덕흥씨의 세째 아들로 세상에 왔다.어려서 잔병이.. 2011. 7. 7.
[스크랩] 시무언(是無言), 한국 기독교 신비주의자 이용도 목사님에 대한 귀한 자료를 발견했다. 열정의 설교자이자 사랑으로 가득 찬 삶을 사셨던 이용도 목사님! 암울했던 1920-30년 대에 영적인 빛을 밝히 증거하셨던 목사님의 행적을 읽노라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피터스 선교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는 온전히 자신의 삶을 불태웠다.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을 위해 주님의 꼴을 먹이셨다. 핍박을 하면 핍박을 당하셨다. 그렇지만 곧 사랑으로 승리하셨다. 그러나 그 열정은 너무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았다. 사단의 집요한 공격은 곧 승리를 했다. 광명의 천사로 다가온 사단의 공격에 그만 넘어지고 만 것이다. 영분별의 은사가 있었다면 사단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기존의 교단도 이용도 목사님을 극도로 고립시켰던 면도 없지 않다. 그들의 교권주의는 결국 .. 2011.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