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장 31~35절
할렐루야!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서로 사랑하라’ 이런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박지성 선수와 김민지 아나운서 부부의 아이들이
4살, 6살인데 그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가훈을 만들어보자는 걸 가지고 방송을 했었다.
박지성 선수에게 아내가
혹시 전에 가훈을 가진 적이 있었느냐?
그러니까 가훈은 생각이 안 나고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
그 말만 어렸을 때 기억이 난다고
그것이 좌우명이었다고 그렇게 표현을 하였다.
김민지 아나운서는 어린 시절에 좋은 교훈들을
많이 받았는데 ‘어두운 밤길을 가는
나의 가로등과 같았다’ 그런 표현을 하면서
어린 아이들에게 가훈이 필요한 게 아니냐?
그래서 그 부부가 가훈 정하기를
‘바른 생각으로 나를 사랑하며’
그런 가훈을 정했다고 한다.
가훈을 왜 만드는가?
원만한 행복한 가정을 만들자는 것이다.
가정이 모든 생활에 기초가 되니까
그래서 가훈이 있는 집도 있고 없는 집도 있지만
가훈이 마치 등대와 같이 배가 항구라고 하는
목적지에 이르는 것처럼 우리에게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목적지에 이르는
그 등대 역할을 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저도 어렸을 때 보면 집집마다 어떤 집은
‘가화만사성’ 가정의 화평한 게 모든 걸 이룬다.
고진감래, 공명정대,
‘상생낙생’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면 즐거운 날이
찾아온다는 그런 뜻이다.
그런 좋은 말들을 많이 썼던 기억이 나는데
어떤 집은 실제적인 가훈을 정하기를
첫 째 ‘주식은 절대 하지 말자’
둘 째 ‘보증도 절대 서지 말자’
세 째 ‘밥은 먹고 살자’
세 가지를 정하겠다는 그런 재미있게도
웃은 이야기가 있다.
학교에서도 학훈이라는 게 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영등포구 대방동에 있는 성남중학교를
다녔는데 학교를 세운 김서원 장군이 6.25 때
낙동강 전투로 아주 유명한 장군인데
일본 사관학교를 나온 분이다.
그래서 ‘의에 살고 의에 죽자’
그런 거창한 교훈을 세워서 매주 월요일이면
전 학생들이 군대처럼 훈련도 하는 그런 학교를 다니면서
지금도 그게 어린 시절에 그 교훈이
‘의외 살고 의에 죽자’
회사 가면 사훈도 있다.
신학교 가니까 신학교도 학훈이 있더라.
예수를 믿는 우리가 가훈을 갖게 된다면
저는 이 말씀 ‘서로 사랑하자’ 이 말씀이
우리의 가훈이 돼야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자
이것이 가훈 정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신훈이다.
거룩한 훈계에게 성훈이다.
일생의 좌우명이 돼야 되고
일생의 전천후 교훈이 돼야 된다.
신명기 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집에 앉았든지 누웠든지
일어날 때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손목에 매고
이마에 붙이고 문설주에도 기록하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 말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것이 그 어린 시절부터 계속 세뇌를 해주는 말씀
심지어는 비스켓을 하나 주어도
그 스펠링이 다 하나님 사랑하는
그 비스켓을 그렇게 만들어서 죽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게 세뇌가 되고
평생 동안 그 말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 이 말씀 서로 사랑하자
이것이 왜 우리에게 기독교 예수 믿는 우리에게
전천후 교훈이 돼야 되고
이게 왜 우리의 가운이 돼야 되는가?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
첫째는
우리가 사랑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자녀의 모습이
그 사랑을 통해서 만들어져 가기 때문인 것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가 사랑의 사람이 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나라의 합당한 자녀의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유일한 길이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가?
본문 가운데 34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주님이 주신 서로를 사랑하는 이 계명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서
생명을 다 주고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오시고 그렇게 십자가를 지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서로 살아가는 그것이
기독교의 사랑이다.
에베소서 5장 25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물론 아내도 남편을 이렇게 예수님 사랑하듯이
사랑해야 되고, 남편들도 예수님이라고 하는
그 남편께서 교회를 사랑하기 위하여
자신을 다 준 것처럼 그렇게 서로 사랑하라고.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우리가 봉독한 말씀대로
예수님의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 예수님의 사랑은 오직 우리를 위하여 원수 같은
죄인들을 위해서 사랑하신 사랑이다.
그 사랑은 성내는 사랑이 아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과 같이 그 길을 갔지만
그걸 오래 참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는
그런 사랑이다.
성경에는 없지만 사랑하실 때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씀이 있는데 그 어느 전승의 책을 보면
그 사랑하실 때 끝까지 사랑한 것이
가룟 유다를 그렇게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멀지 않아 예수님을 팔아야 될 그 가룟 유다가
마귀의 자식인데 죄로 타락해 가는 걸
사랑의 속성인 예수님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공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바쁜 일정 가운데도
광야에 나가서 일주일간 가룟 유다만을 위해서
금식을 하셨다.
물론 성경에 없는 전승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그 사랑은 자기의 이익을 구하는
사랑이 아니고, 성내는 사랑이 아니고,
어떤 환경이든지 오래 참아서 끝까지
우릴 사랑하셨던 그런 사랑이다.
그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다 내주고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그 사랑으로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사랑이 완성되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는 나라이다.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고 예수님 자신이 사랑인데
그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생활이
사랑이 없으면 그곳에 살 수가 없다.
미운 마음 가지고 어떻게 천국을 가겠는가?
원망, 불평하는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천국을 가겠는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사랑을 연습하고 실천해서
내 심령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이루어져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이 계명이
우리 일생의 좌우명이 돼야 되고
이것이 우리의 가훈이 돼야 되는 것이다.
왜인가?
하나님나라 들어가려면 사랑이 완성돼야 되는데
그걸 연습하고 실천해 봐야 되지 않겠는가?
로마서 6장 15~23절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우리가 어디에 순종하든지 그 순종하는 것에 종이 되는데
죄에 순종하면 죄의 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전에 다 죄의 종이었는데 이제는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
이게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 교훈의 본인
하나님의 말씀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그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계속해서 읽어 보자.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사랑하라는 교훈을 마음으로 순종하며
그걸 지켜다 보니까 죄에서 해방이 되어
이제는 의로운 사람이 돼서 의의 종이 되었다.
그러니까 부정과 불법에 이렇게 이르는 것 같이
이제는 우리가 의의 종으로 되어 거룩함에 이르러 가는
그 길을 가는 것이다.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죄의 종이 되어서 죄만 짓고 이렇게 살던 인생은
열매가 사망밖에 없는 것이다.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우리가 예수 믿어도 죄에게 순종하면
죄의 종이 되는 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은
이 말씀을 지키면서 의의 종이 되고
죄에서 해방이 되어 점점점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데 그 마지막 영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영생은 사랑이 완성되어야
들어가는 나라인 것이다.
로마서 5장 3~5절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예수님이 마태복음 5장 17절에 보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십계명을 비롯한 말씀이다.
너희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을 하지 말라.
그런데 예수님이 이것을 피하는 게 아니고 완성케 하려고
완전케 하려고 왔는데 완전케 한다고 하는 말은
그걸 내면의 법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미 다른 사람을 욕하고 나가라고 욕하고
이렇게 하면 이미 살인 하였느니라 그렇게 말씀하신다.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 했느니라 그러신다.
남의 것을 보고 탐심을 가지면
이미 도둑질 했느니라 그러신다.
마음으로도 그렇게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있으니까
매일 마음으로 죄지어서 매일 살인하고
매일 음란하지만 우리가 죄를 용서받으면서
계속해서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이 오는 것을
로마서 5장 3절에 환란이라고 하는 것이다.
환란이 즐겁다.
왜?
환란이 오면 그 환란이 원수 만났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원수를 만났을 때
그 원수를 사랑하라 라고 하는 인내의 말씀을 지키면
원수 사랑하지 못하는 나의 죄악성인 이 사람이
점점점 뿌리 채 없어져 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연단이 마쳐지면 정금이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진다
그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져야 사랑하는 거지
어떻게 사랑하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질 때까지 우리는 원수 사랑하는
이 말씀을 인내하며 이 말씀을 지키는
말씀 지키는 훈련을 계속 해나가야 된다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죄 짓는 것은
우리가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서 회개하며 용서받아가면서
여러 가지 원수가 만나고 환란이 오면
그때 또 그것을 즐거워하면서 말씀을 지키는 훈련을
하면서 말씀을 지켜나갈 때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나의 정금되기 위한
나의 불순물 같은 거, 천국 가져가지 못할 자아들,
이게 다 죽어가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져서
하나님의 사랑이 오는 것이다.
그것을 고린도전서 12장 31절에는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수많은 은사들이 있다.
병 고치는 은사도 있고 능력을 나타내는 은사도 있고
방언을 말하고 지혜의 말씀도 있고 수많은 은사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작은 은사이다.
사랑만 가장 큰 은사고 가장 좋은 길이라고.
왜 그런가?
연단을 다 받은 후에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부어지니까
어떤 환경에 와서 어떤 원수가 나타나도
사랑만 나가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것이 사랑의 은사가 부어진 것이다.
왜 병을 고쳐주는가?
이 작은 은사가 왜 필요한가?
병 때문에 여러 가지 환란 속에서 원수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어려운 장애물이 나타났으니까
그 장애물을 이기고 연습하라고
병을 고쳐주는 것이다.
왜 능력이 필요한가? 왜 지혜의 말씀이 필요한가?
원수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실천할 때
그걸 잘 감당하도록 지혜의 말씀을 주고
그 모든 작은 은사들이 마치 큰 통나무에
불을 붙이려고 하는 것처럼
작은 가지를 통해서 불이 붙는 거지
통나무가 어떻게 불이 붙겠는가?
크고 작은 은사들을 많이 주어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결국 목적은
사랑이라고 하는 통나무에 불을 붙여서
그 불타는 통나무가 그게 사랑 자체인지 불 자체인지
불이 붙으면 통나무인지 불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가
내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부어지기까지
어떤 환란이 와도 그 환란이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라 이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이걸 가훈으로 삼고
이걸 학교에 가서 교훈으로 삼고
우리 인생 전체의 그런 교훈으로
여기에 세뇌 돼야 되고 이걸 써 붙여야 되고
계속해서 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훈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옛날 재래식 화장실에서 구더기를 본 적이 있는데
하나님이 너 구더기만 못한 인생이라고
지렁이만 못한 야곱이라고 책망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인생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든 인생인데
왜 구더기만 못할까?
구더기 한 마리도 날개를 달고 날아가려고
그곳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것이다.
자기에게 준 생명의 완성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구더기인데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 주신 사랑에
우리의 완성은 내 안에 사랑이 부어져서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획득하는
그래서 주님 오실 때 그렇게 사랑이 완성된 사람들만
휴거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아무나 가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인생이 하나님이 주신 나의 생명이 바로
사랑의 완성에 있는 것이고 말씀을 완성하는 것이 있고
내 안에 이렇게 날개가 달리고 올라가는 것처럼
주님 나라로 옮겨져 가는 그 일이 우리 인생의 완성이
거기 있는데 구더기만 못하는 것은
그 만물도 그걸 자기에게 주는 생명을 위해서
몸부림치며 완성을 위해서 가는데
우리가 그 생명의 완성을 위해서 몸부림치지 못하는
그 모습이 바로 구더기만 못하고 만물만 못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랑은 종속성이 있어 갖고
그 사랑의 대상과 하나가 되어지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23~24절 말씀이다.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사람끼리의 사랑도 그 사랑은 같이 있고 싶다.
함께 있고 싶은 게 사랑의 속성이다.
서로 상대에게 종속되어지는 게 사랑의 속성인 것이다.
그러니까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그렇게 한다.
그래서 사람끼리도 사랑하면 서로가 종속이 되어서
이제 한 몸이 되고 이 세상에도 사랑으로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나라가 아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킨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해야 된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된다.
율법이 어느 것이 크고 계명이 뭐가 중요한가?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는
이게 모든 율법이고 모든 말씀의 강령이라고
구약에도 서로 사랑하는 말씀이
이제 결국은 구약의 말씀도 서로 사랑하라 인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속성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내 말을 지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켜 가면 하나님과 예수님의
그 안으로 들어가면서 거꾸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저에게로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하리라
하나님과 예수님이 거처를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그러니까 아까 로마서 5장 말씀처럼
사랑이 우리 안에 부어진다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거처를 함께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고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도
내 심령 안에 그렇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죽어서 막연히 가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고
거처를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그것이 심령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것이다.
누가복음 7장 말씀하신다.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런데 내 심령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되는데
그 하나님 나라가 내 심령 안에 이루어지면
무엇이든지 사랑할 수 있는 그 마음이
절대 평안을 갖다 주는 것이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는 것이고
그 사랑이 들어오면 이 그것이 내 심령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 적당히 믿어서 막연히 가는 그런
하나님 나라가 아닌 것이다.
내 심령 안에 먼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이 말씀을 지켜가는 거.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우리의 교훈으로 삼고
전천후 교훈이 되고 이것이 우리의 가훈이 돼야 된다.
요한복음 15장 9~10절 말씀에 보면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고
아버지의 개명을 지키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가 있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안에 거할 수가 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요한복음 15장 12~14절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여기에 중요한 비밀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친구를 위해서 죽었는데 그게 가장 큰 사랑인데
친구라고 하는 건 뭔가?
세상에서도 친구끼리는 취미가 같고 재능이 같고
뭔가 같은 속성이 있어야 친구가 되는 것이다.
제자들을 처음 갈릴리 바다에서 불러서
그때부터 친구가 아니다.
공생애를 쭉 지나오면서 말씀 지키는 훈련을 하고
3년 반 후에 이제는 주님이 떠나갈 그때가 되니까
이제 와서 너희가 나의 친구다 그랬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위해서 죽은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제자들처럼 말씀 지키는 훈련을
통하여 이제는 예수님과 같은 그런 하나가 되어지는
경지가 와야 그때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것이고
십자가의 사랑이 그 친구를 위에서 죽는
십자가의 사랑이 그때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2천 년 전 골고다 십자가의 그 사랑은 누구든지
객관적인 은혜지만 그것이 내 심령 속에
실제로 들어와서 내가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
그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은 그 십자가의 사랑이
내게 들어오는 것은 각각 주관적인 은혜로
말씀 지키는 훈련을 마친 사람에게 들어오는 사랑이다
그 말이다.
처음부터 친구가 아니다.
말씀 지키는 훈련을 삼 년 반 동안 잘하고
그 마지막에 오니까 이제 너희가 나의 친구고
내가 친구를 위해서 죽었는데 이보다 큰 사랑이 없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저와 여러분도 이렇게 말씀을 잘 지키면서
주님과 같은 사랑의 속성이 되어져야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거고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이 주관적으로
내 속에 들어와서 그 사랑의 자리를 잡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그 하나님 사랑이 내 속에
들어와야 사실은 그 사랑 가지고 이웃도 사랑한다.
거처를 함께하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인데
이렇게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곳이 요한복음 17장 21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주님이 내가 저희 안에 저희가 내 안에 하나님이
내 안에 있는 것처럼 저희들도 하나가 되게 하는데
그 하나가 되는 거기가 어디냐?
창조 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그 자리,
창세전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그 자리,
거기로 다 불러 모으시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이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사랑하고 예수님 사랑하면서
말씀을 지키는 이 훈련을 통하여
이것이 우리 가훈이 되면서 우리는 하나님에게
종속이 되어지는 것이고 거처를 함께하며
내 심령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면서
그런 자녀들이 모여 있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 소망, 사랑은 이것이 영원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요한일서 2장 15~17절 말씀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여러분 세상은 지나가는 것들이다.
정욕이라고 하는 애정과 욕망도 다 지나가는 것이다.
사랑만 영원한 것인데 심판이라는 건 뭔가?
우리가 한 번 죽는 것은 정하고 심판이 오는데
그 심판이 오면 영원하지 않은 건
불타서 다 없어지는 것이다.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기 때문에 불타지 않는 거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기 때문에
불타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사랑하는 형제자매,
나의 가족이 그 속에 예수님 믿는 영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의 대상만 영원히 불타지 않는 것이다.
나머지는 다 불타 없어지고
그래서 세상도 지나가고 정욕도 지나가고
다 지나가는 것들이다.
영원한 것만 남아 있는 것인데
그 사랑만 영원한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먹고 살고 썩어지고
불타 없어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하나의 과정 속에서 필요한 것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40년 광야에서 만나도 주시고 메추라기도 주시고
반석을 깨서 물도 주시고 옷도 헤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 가나안 땅 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필요한 걸 공급해 주셨다.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되고
하나님 나라에 도착해야 되니까 거기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는 거고 분깃대로 그걸 나눠주는 거지
그 사는 기회를 통해서 영원한 걸 잡으라고
그걸 공급해주는 거지 그 자체가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 말이다.
그건 목적이 아니다.
그건 잠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지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나 신비한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를 중심으로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해가 떠오른다.
해를 중심으로 해가 없으면 어떻게 살겠는가?
못 산다.
하나님 나라에 가면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쳐다봐도
하나님 보좌만 보이게 돼 있는 나라이다.
하나님 보좌를 떠날 수가 없다.
물론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분이 아니고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그 하나님의 빛이 우리에게 영광으로 비치는데
그 예수님의 빛을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빛은 영원한 생명의 빛이고
사랑의 빛이고 그 예수님의 빛을 떠나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각각 그 사랑을 얼마나
이루었느냐에 따라서 그 의에 태양이신
주님 가까이 가면 해의 영광이 되고
그 다음에 달의 영광이 되고
이 보자로부터 멀리 떠나서 그 빛 가운데
멀리 있는 사람은 별의 영광이 되고
이렇게 희미한 영광 속에 각각 이 세상에서
그 사랑을 얼마큼 이루어 갔느냐에 따라
상급의 정도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천국에 가면 요한계시록 22장에 있는 것처럼
12지파가 있다.
12지파가 있고
해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이 있어서
나와 영광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바로 이웃이 되는 것이다.
그 영원한 관계 속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그 속에서 시공간이 없는 그곳에서 영원히
나와 영성이 같은 사람이 바로 이웃이 되고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그런 것이다.
여러분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인가?
세상은 잠시고
우리는 남은 생에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다.
매일매일 하나님이 가르쳐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고 연습하기만도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악습이 있는가?
시간 낭비하는 것이 있는가?
내 인생을 낭비하는가?
하나님이 이거 다 해결하려면 다 들어주신다.
뜻대로 살려면 다 들어주는 것이다.
하나님 제가 이제 남은 생에 사랑으로만 살고
내게 묶여진 가족을 사랑하고 하나님 사랑하고
이 사랑으로만 살기도 시간이 없는데
하나님 제가 악습에 걸려서 여기에 시간 낭비하고
인생을 다 낭비한다면
하나님께 갖고 나가면 하나님이 왜 안 고쳐주겠는가?
바로 역사해서 바로 고쳐준다.
그 하나님께 나의 악습을 부탁하면서
‘하나님 제가 남은 생에 사랑 먼저 해보겠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다 들어주신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다시 수제자에게 찾아와 질문을 하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시는데 다 똑같은 말이 아닌 것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주변에 있는 생업을 위한 배와 그물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으셨다.
네가 수제자인데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다른 사람의 사랑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렇게 물으시는 것이다.
수제자니까 더 많이 사랑해야 된다.
그 사랑의 질문이 똑같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오늘 이 아침에 주님이 여러분에게 나와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다면
우린 뭐라고 대답을 할까?
남은 생애를 통하여 서로 사랑하라는 이 말씀이
여러분의 가훈이 되길 바란다.
내 일생의 좌우명이 되기를 바란다.
사랑만 하다가, 사랑만 하다가 이 말씀대로 살기를
몸부림치다가 언젠가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와서
천국 갈 자격을 얻는 것이고
이 땅에 살아온 사랑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그게 우리의 소망이다.
이 세상에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오늘 본문 가운데 35절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비로소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리라
제자는 스승이 하는 그 길을 따라가는 자들이고
스승이 하는 그걸 그대로 하려고 하는 사람이
제자인 것이다.
예수님이 사랑으로 우릴 위에서 모든 걸 내어줬다면
우리도 그 사랑을 따라 이렇게 닮아갈 때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이고
여러분 안에 그 사랑이 놀랍게 부어질 줄로 믿는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 말씀이 여러분의 가정의
계명이 되시고 여러분의 전천후 교훈이 되시고
이 말씀을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몸부림치면서
사랑이신 주님과 거처를 함께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런 복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이 아침에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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