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자를 키우는 부모
디모데 후서 1장 1~8절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찌어다
3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주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가정의 달 둘째 주 오늘은 어버이주일로 보내게 된다.
이 세상 부모는 자녀들을 잘 키우길 소망한다.
인지상정으로 그렇지 않은 부모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녀를 잘 키웠다고 하는 기준은
부모에 따라 다 다르다.
그 부모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각기 기준이 다르다.
세상적인 출세와 성공을 원하는 부모의 가치관이라면
그 자녀가 출세하고 성공해야 잘 키운 것이 되고
돈에 대한 가치관을 가진 부모라면
자녀가 연봉이 높아야 잘 키웠다고 말할 것이다.
개중에 어떤 부모는 자녀를 노후 대책으로만 생각하는
부모도 있다.
단순한 봉양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내게 맡겨주신 자녀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키워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진 부모라면
우리의 자녀가 예수 잘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그 자녀를 잘 키웠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더 나아가 부모의 가치관 중에서
내 자녀는 사명자로 키워야 되겠다는 부모가 있다면
자녀가 사명자가 될 때 자녀를 잘 키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명자는 꼭 목회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은 평신도 사명자도 많이 있고
은사자도 많고 복음 전파자도 많이 있다.
제가 미국에서 살 때 어떤 배관공은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서 1년에 꼭 한두 달은 남미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러니까 이분은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고 휴가를
다 모아서 1년에 한두 달은 꼭 남미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이분은 평신도 사명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자녀가 성공하고 잘 키웠다는 기준은
부모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부모들은 될 수만 있다면 꼭 목회자가 아니라도
우리 자녀들이 평신도 사역자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자로 키우려는 가치관을 갖길 간절히 축원한다.
성경에 나오는 사명자 중 디모데를 생각해 보면서
어떻게 우리가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사명자가 될 것인가?
누구의 역할을 통해서 디모데가 사명자가 되었는지
알아보며 함께 은혜 나누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한다.
첫 번째,
디모데를 사명자로 만든 것은 본문 가운데
5절에 있는 외조모 로이스라고 말씀하고 있다.
5절 말씀에 보면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예수 믿는 모든 자의 기본적인 자세,
사명자의 기본적인 자세는 거짓이 없는 믿음이다.
세상 정욕을 따르는 그런 믿음이 아니고
이권에 밝은 믿음이 아니고 거짓이 없는 믿음이다.
디모데전서 1장 5절에도 비슷한 말씀을 하였다.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청결한 마음 이것이 사명자가 가져야 할
필수적인 요건이다.
그 다음에 선한 양심 그리고 거짓이 없는 믿음인데
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사명자의 덕목인데 외조모 로이스에게 먼저
그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라고 하였다.
외조모 로이스는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대대로 자녀들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서
그리고 디모데에게까지 이 믿음이 전해졌다 뜻이다.
한국에는 이런 일이 별로 없지만 미국에서는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교회 밖에 없다.
사업장과 교회에서 주로 사람들이 만나는데
교회를 하나의 장사 터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 사람을 만나야 자기 사업을 할 수가 있으니까
교회에 오면 삼분의 일 어떤 곳은 심하면
절반 정도가 출애굽을 경험한 사람들이 아니다.
다 자기의 이권과 장사하려고 모인다.
미국에 가면 사업을 잘하고 장사를 잘해야
장로를 준다는 말이 있고, 성공을 해서 집을 사야
집사가 된다는 그런 우스게스런 말이 있다.
이것이 전부 거짓이 없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부 정욕을 따라 세상적인 유익을 따르는 믿음이다.
그래서 외조모 로이스가 먼저 믿음을 가졌는데
사도행전 16장 1~3절까지 말씀을 보면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쌔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줄 다 앎이러라"
이 디모데는 루스드라에 사는 사람인데
모친은 유대 여자였고 부친은 헬라인이였다.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그곳에 믿는 자들이 생겨서 디모데의 할머니와
디모데의 어머니 또 디모데가 그때 예수를 믿고
유대교에서 전향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 14장 1절에 보니까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하는 도중에 이고니온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그다음에 5절, 6절 말씀을 보면
"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6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1차 선교 여정 중에
이고니온을 거쳐서 루스드라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디모데의 집안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디모데는 칭찬 받는 형제였고
예수 잘 믿는 형제여서 그를 데리고 영적인 훈련을
시키려고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이 외조모 로이스는 유대인이었는데
예수를 믿은 사람이었고 루스드라에 복음이 전해질 때
예수 믿고 그 자녀들 디모데의 어머니 또한
예수 믿게 한 그런 사람이였다.
디모데후서 3장 11절 말씀을 보면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루스드라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핍박받고 고난 받은
그 일을 디모데와 그 어머니와 외조모 그 집안 모두가
핍박받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을 잘 감당하고 있었다는
것이 거짓이 없는 믿음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행전 14장 7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루스드라에서 발을 쓰지 못해 걸어보지 못한 앉은뱅이가
있었는데 바울이 이 사람을 걷게 하는 기적을 나타냈는데
유대인들이 이 일 때문에 오히려 더 핍박 하게 되었다.
사도행전 14장 19절 말씀을 보면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치니라"
복음을 전하니까 유대인들이 이고니온에서 와서
돌로 쳤다고 하였다.
사도행전 14장 21절 말씀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그리고 루스드라까지 왔다.
그런데 루스드라에서 사도 바울이 22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돌로 쳐 죽임을 당하는
이런 어려움을 디모데 가정이 그걸 보았는데
그러면서 예수 믿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이렇게 많은 환란을 겪어야만 한다고 선포하면서
믿음을 굳게 하라고 하였다.
이것이 거짓이 없는 믿음이다.
하나님 나라를 목적으로 하여 겪는 환란, 핍박을
사도 바울이 가는 것을 보고도 여전히 믿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을 자녀들에게 계속 전한 이 외조모 로이스의
그 믿음이 바로 거짓이 없는 믿음이다.
그래서 디모데는 그 외조모의 영향을 받아서
이렇게 귀한 사명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본문 가운데 있는 것처럼 그 어머니 유니게이다.
유니게라는 뜻은
"승리를 거둔 유쾌한 정복자" 라는 뜻인데
그의 어머니 로이스와 함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 어머니가 됐다.
이 말은 어머니 로이스에게 순종해서 함께 예수를
믿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녀인 디모데에게까지 이 복음을 전하여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양육을 한 어머니가 됐다.
디모데후서 3장 15~17절까지 말씀을 보면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여기 보면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어머니 유니게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가지고 교육을 했다는 말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고 그 성경이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하였다.
우리는 권면 할 때 성경 안에서 권면을 해야 된다.
책망을 해도 성경 안에서 책망을 해야 된다.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고 성경을 통해서 유니게는
디모데를 어렸을 때부터 양육 했다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 유니게 덕분에 디모데는 그 믿음을
잘 계승하여 에베소의 감독이 되고
사도바울의 후계자가 되어서 사명의 길을
가게 됐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부모의 신앙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과 그리고 그 부모가 자녀를
믿음으로 잘 양육해야 평신도 사명자가 되든
목회자가 되든 말씀을 전파하는 사명자 반열에
자녀가 되어 진다는 것이다.
유명한 감리교를 창설한 웨슬레는
그의 아버지가 목회자였는데 탄광촌에서 목회를 했다.
얼마나 가난한 목회를 했겠는가?
열아홉 살에 결혼해서 자녀를 이십일 년 동안
열아홉 명을 낳았는데 이 중 아홉 명은 죽었다.
살아남은 삼남 칠녀 중에 웨슬레는 15번째 자녀였고
두 번째 아들이었다.
10명의 자녀들을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얼마나 말씀과 기도로 양육을 했는지 모른다.
어머니 수산나는 그 속에서 웨슬레와 찰스웨슬레 등
여러 목회자들로 키워냈다.
수산나의 매일매일 성경을 가지고 성경공부와 기도로
자녀들을 교육함으로 인해 감리교를 창시한 웨슬레를
비롯해서 많은 목회자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자녀 한 명 양육하기도 어려운 현실 속에
열 명의 자녀를 힘든 삶속에서 잘 교육시켰던 것이다.
그 아이들을 매일같이 성경공부와 기도로 양육하며
특별히 자식들을 위해 1시간 동안 시간을 정해놓고
매일 기도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눈물로 기도하는 그 어머니의 자식은
망하는 법이 없다는 그런 말을 한다.
위대한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도 13년 동안이나
이단에 빠졌던 그 아들을 위해서 눈물로 오랫동안
기도를 할 때 결국 돌아와 위대한 신학자로
교회의 기초를 세웠다.
링컨 대통령의 어머니인 낸시도 마찬가지이다.
가난한 살림 살이었지만 항상 성경 안에서
링컨을 가르쳤고 마지막 유산으로 성경 하나를
넘겨준 것밖에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
오직 그 성경을 통해서 링컨은 지혜를 얻었고
유명한 대통령이 되어서 노예 해방까지 한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
19세기의 복음 전도자 무디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어머니 배시가 어린 자녀들을 위해서
매일매일 성경을 가지고 말씀과 기도로 양육해서
위대한 자녀들을 만들었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사명은 생명을 죽이고도 살리는 위대한 일이다.
먼저는 우리 부모에게 이러한 영적인 가치관이
있어야만 한다.
이 세상은 잠시 다녀가는 곳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그 나라의 개국공신과 같이 복음 전파자를
우리 집안에 한 명이라도 만들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분명한 영적 가치관과
그 자녀를 위한 눈물의 기도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여러분 모두의 가치관이 새로워지고 믿음으로 자녀들을
잘 양육하여 하나쯤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정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세 번째는,
디모데를 사역자로 부르고
양육한 사도 바울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영적인 아버지였다.
디모데후서 1장 2절에 말씀을 보면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찌어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실제 아들은 아니었지만 영적인 아들이라는 말이다.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도 말씀하였다.
"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찌어다"
이것이 삼박자이다.
한명의 사명자가 나오고 복음 전파자가 나오려면
영적인 가치관을 가진 부모가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 영적 부모가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 본인이 그 믿음을 계승하여 순종하며
따라오는 본인 자신의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그 집 안에서 복음 전파자,
사명자들이 나오고 축복받는 그런 가정이 되는 것이다.
빌립보서 2장 19~22절 말씀 보겠다.
"19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0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
21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이 많은 자녀들을 영적으로 양육한 것 같지만
디모데 외에는 너희에게 파송할 자가 없다고 하였다.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다고 하였다.
왜인가?
다 자기 일을 구하기 때문에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모데는 자식이 아비에게 함과 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고 연단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지금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 되었다고 하였다.
디모데후서 1장 13~14절 말씀 보겠다.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사도 바울이 참 아들 된 디모데를 말씀으로 양육해서
"내가 내게 말한 그 바른 말, 내게 들은 말
그것을 본받아 지켜라" 라고 하였다.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켜라고 하였다.
디모데 전,후서에서 나오는
"모든 복음 전파하라, 말씀 증거하라"
이런 모든 아름다운 말을 전부 지키라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2장 2절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으리라"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기 때문에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실력자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하였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진리의 말씀을 들었고
그 진리 말씀으로 잘 양육 받아 이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수 있는 실력자가 됐다.
디모데후서 4장 1~4절
"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사도 바울에게 이렇게 바른 진리의 말씀을 주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가서 전파하라고 하고 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파하기를
힘쓰라고 하였다.
이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말씀은 때를 얻어 씨앗에서 싹이 나오고
생명의 역사가 나타난 건 하나님의 일이다.
언제 그 말씀이 역사해서 싹이 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단 씨앗인 말씀을 전해서 심어줘야 된다.
"그것을 힘쓰라" 그러면서 "때가 이르리니" 마지막 때이다.
지금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둔다고 하였다.
귀를 긁어달라고 하고 있다.
사람들은 시원하게 자기 정욕을 만족해 주는
달콤한 말만 듣기 원한다.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책망 받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귀를 긁어주는 사욕을 쫓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쫓아가는 이것이
마지막 때 징조 중에 하나이다.
우리가 이러한 세대 속에서 부모의 가치관과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과
또 누군가의 아버지와 같은 영적인 부모로부터
이런 말씀을 듣고 잘 훈련을 받아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자들이 우리 가정에 한명이라도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4장 6절 말씀에는 또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그러니까 우리가 사명자가 되는 길은 무슨 신학을 해서
목회자가 되는 개념이 아니다.
지금 이 사도 바울로부터 이 복음에 대한 참된 진리의
말씀을 들었으면 그것을 가지고 형제를 깨우치는 것이다.
깨우쳐주는 그것만 해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는 것이다.
그럼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시켜준다는 말이다.
어머니 젖이 잘 불어야 아이들한테 젖을 주는 것처럼
선한 교육으로 계속 양육을 받아야 그 교훈으로
형제를 깨우칠 수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저 형제들을 저 자녀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서 깨우쳐주는 것이 사명이다.
나머지는 각자 믿음을 가지고 각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각자가 하는 것이고
깨우쳐주기 위해서는 말씀을 깨달아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말씀을 접해야만 한다.
말씀을 정리하면
부모는 자녀들을 사명자로 양육하려고 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말씀으로 잘 가르쳐야 되며
영적 부모가 있어야 되고
또 본인이 순종의 마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유산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명자는 천하보다 귀하다.
가서 형제들에게 이 진리를 깨우쳐주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제가 인터넷에 사진을 한 장 뽑아왔는데
이 늙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기도하는 이 손을 보면
평생 농사지어서 모든 손톱에 까만 흙 때가 끼어 있다.
이렇게 망가진 손을 가지고 지금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어머니의 손은 가장 고귀한 손이다.
우리 부모가 어떠한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자녀에 대한 기도가 다르게 된다.
많은 형제자매들을 깨우쳐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평신도 사역자라 할지라도
사명자 하나를 우리가 잘 양육해서
우리 가정에 하나하나씩만 세운다면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고 하나님께 영광이고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가정의 달을 지나면서 어버이주일을 지나면서
자녀를 위해서 정말 뜨겁게 기도하고
신앙의 말씀으로 자녀들을 잘 양육하여
그 자녀들이 사명자로 키워지는
그런 복된 가정들이 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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