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와 연기자
에베소서 1장 6~10절 오늘도 주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예레미야 18장에 보면 하나님을 토기장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진흙 한 덩어리를 가지고 한 개인을 만드시기도 하고 한 민족을 만들기도 하시고 나라를 세우기도 하셔서 하나님이 토기장이와 같이 인류의 모든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그런 분으로 나와 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고 또 하나님은 농부라고도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나는 포도나무고 내 아버지는 농부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때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씀하시고 어떤 때는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빛이시라고 이렇게 하나님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성경 전체의 사상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은 연출가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연출가이다. 영화나 연극 드라마의 전반적인 상황을 총괄하는 사람을 우리가 연출가라고 하는데 ‘하나의 작품을 토대로 하여 배우를 선정하고 연기를 지도하고 무대, 조명, 배경, 장치, 의상, 음악 모든 부분을 유기적으로 종합하여 공연이라고 하는 총체적인 효과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사전에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연출가를 영화에서는 감독이다 이렇게 부르고 연극에서는 연출가라고 부르고 방송에서는 프로그램 디렉터를 줄여 피디라고 한다. 이제 방송에서는 피디라고 하고 연극에서는 연출가 또는 연출자 그리고 영화에서는 이것을 감독이라고 한다. 그래서 에베소서를 중심으로 ‘연출자와 연기자’ 이런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첫 번째는 하나님은 구속 사역의 연출가다 이렇게 말씀할 수 있다. 세상의 연출가는 자기가 작품을 쓰는 건 아니다. 어떤 작품이 선정되면 그 작품을 가지고 연출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연출가이기도 하시지만 스스로 자신의 뜻을 가지고 그 뜻을 이루는 그런 연출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구속 사역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인데 이 구속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이 연출을 하시는 것이다. 본문 가운데 4절 말씀에 보니까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우리를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셨다. 깊으신 뜻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다. 그 뜻을 갖고 계셨다는 것이다. 7절 말씀에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가 다 죄 사함을 받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11절에는 또 그것을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하시는 분인 것이다. 그런데 그건 깊으신 뜻을 따라 우리를 예정하시고 택하셔서 우리에게 죄 사함을 허락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하나님은 그 뜻을 따라 연출가가 되셨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모든 흥망성쇠를 전부 배경으로 만드시는 것이다. 지나가는 인류역사 이미 하나님이 만드신 배경들이고 앞으로 다가 올 인류역사도 하나님의 무대이고 하나님이 만드신 배경이다. 이것을 에베소서 1장 9절에는 경륜이다 이런 말로 표현하셨다. 1장 9절에 보면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이것을 경륜이라고 표현하셨다. 에베소서 3장 2~3절에 보면 또 이렇게 표현하셨다.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은혜의 경륜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속하시고자 하는 그 기쁘신 따라 우리를 택정하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죄사함을 입히셔서 하나님 나라를 만드신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다. 그런데 이 비밀을 사도 바울에게 알게 하셔서 사도 바울이 성경을 통하여 이 비밀을 이 경륜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3장 9절 말씀에 보면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도 비밀에 경륜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자녀들만 깨닫게 하셔서 하나님이 구속을 이어가는 비밀의 경륜이다. 이 일에 예수님을 보내시는데 그 예수님도 하나의 비밀이셨다는 것이다. 골로새서 1장 25절부터 말씀하셨다. 25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예수님이 비밀이었다. 이 경륜을 위하여 예수님을 감추고 계셨는데 그 예수님이 마침내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골로새서 2장 2절에 보면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이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에베소서 5장 26~27절에 말씀하고 있다.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비밀로 감췄다가 예수님을 보낸 것은 영광스러운 교회를 만들려고 하는데 그 영광스러운 교회는 흠과 티가 없이 거룩한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져야 하나님의 경륜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교회를 만드셔서 인류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그런 연출가이시다. 마지막은 추수 때가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31절에 있는 말씀대로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주님이 나팔 소리와 함께 재림하여 오시면 추수꾼들이 천사를 보내셔서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하늘의 자녀들을 불러 모으시는 그것이 하나님의 구속의 결론이 이루어져 가는 그런 놀라운 사건이다. 그래서 성경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은 구속사역의 연출가다 하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이 배역을 맡기신다는 것이다. 연출가가 조금 아까 말씀 들었던 것처럼 작품을 가지고 배우를 선정해야 되고, 무대를 만들어야 되고, 조명도 해야 되고, 음악도 장치도 이것이 모두 연출가가 하는데 하나님은 연출가가 되셔서 구속사에게 연출을 위해서 배역을 맡기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연기자이다. 영화나 연극, 드라마 등에 출연하여 연기를 하는 사람이 연기자인데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은 연기자로 선출하셔서 그것을 맡기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연기자로 세우셔서 그분의 뜻을 따라 이 모든 연출을 이루어 가시는데 그 역을 만드시는데 하나의 기준이 있다. 아주 분명한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그 아버지의 기업을 받을 자의 역할과 기업을 받지 못할 자의 역할을 나눈다는 것이다. 그것이 에베소에 나타나는 연기자 기본의 배역의 기준인 것이다. 1장 5절 말씀에 보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를 예정하셔서 기쁘신 뜻대로 부르셔서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데 그 아들로 만든 것은 아버지의 기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려고 아들을 만드시는 것이다. 11절 말씀에 말씀하고 있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그러니까 하나님은 연기자들에게 배역을 맡기시는데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을 자의 배역이 있고 받지 못할 자의 배역이 있는데 그 기업을 받을 자의 배역이 자기의 아들들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14절에도 또 말씀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시는 분이다. 18절에 또 한 번 말씀하신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우리의 마음눈을 밝히시고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에서 받게 될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가 그걸 좀 보기를 원하시는 그런 기도를 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기업에 그 놀라운 풍성한 기업을 받을 자의 배역으로 연기를 하는 자들인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배역을 나누시는 것이다. 1장 4절에 있는 것처럼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연출자인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이 배역을 우리에게 이렇게 나누셔서 자기 아들들이라는 사람에게는 기업을 맡도록 그렇게 만드셨다. 로마서 9장 10~16절 10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구약의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에게 두 쌍둥이 자녀가 있었다. 에서와 야곱이다. 그런데 이들이 세상에 나와서 무슨 선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그러면서 이 어린 자인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했다. 무슨 선악을 행했어야 거기에 따라서 미워하기도 사랑하기도 하는데 선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정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야곱은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는 자의 택하심이고 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지 못하는 그런 연기를 해야 될 그런 배역으로 뽑힌 사람들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창세로부터 이렇게 나눠버리신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누구나 다 긍휼히 여기시는 것이 아니고 야곱을 사랑하셔서 야곱은 긍휼이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는데 에서는 미워하셔서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했다. 불쌍한 인생이다. 잠시 왔다가 가는 이런 죄 가운데 사는 인생인데 저와 여러분은 불쌍히 여겨서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는 그 배역으로 우리에게 맡겨주셔서 그런 연기를 해야 될 사람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18절에도 다시 한 번 말씀하신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그러니까 에서와 같이 미워하는 그런 자녀들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말고 마음을 강퍅케 해서 하나님 나라 자녀의 기업을 받지 못하게 하는 그런 배역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연기자로 택하셔서 그 배역을 분명하게 나누셨다 하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유다서 4절에 보면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이단이고 적그리스도, 거짓선지자, 가라지, 음녀 같은 사람들은 이런 판결을 받기로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 역은 하나님이 가룟 유다에게 그 배역을 맡기도록 미리 정하는 것이다. 예수를 파는 사람이 있어야 예수님이 팔려가는 거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이런 배역을 우리 연기자들 우리에게 다 맡기셨는데 이 아침에 저와 여러분이 악역을 맞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란다. 우리에게 가룟 유다 역을 맡기고 우리에게 하나님을 부인하는 역을 맡기고 이렇게 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미워함을 받아서 긍휼이 여기지 않는 이러한 역을 맡지 않은 거에 대해서 그런 예정함과 택함을 받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해야 된다. 하나님이 마음의 원대로 역사한다고 하나님이 불리하시는 분인가? 아니다. 자기 깊으신 뜻대로 하시는 분이시다. 그분께 얼마나 감사드리고 얼마나 감격 할인가? 예수 믿으면서 연단도 받고 고난도 받고 어려움의 연속이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이런 악역을 맡지 않는 그 사실에 대해서만 해도 감사하면서 우리는 감격하며 그렇게 살아야 된다. 세상 영화나 세상 연극에서는 선한 사람도 악역을 맡는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하나님의 연출가 앞에 악역으로 배정이 되는 기업이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옥 가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알고 함께 천국에 갈 수많은 영혼들과 함께 이렇게 알면서 그 천국을 갈 수 있는 그 역할을 맡았으니 얼마나 그것이 감사하고 놀랍고 감격한 일인가. 마가복음 9장 43절 말씀에 보면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지옥은 꺼지지 않으면 불타는 곳이다. 차라리 손이 범죄하면 손을 자르고 라도 영생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 그런 식으로 하면 우리 몸에서 자르지 않아야 할 부분이 뭐가 있겠는가? 다 범죄하는 지체인데 마가복음 9장 48절 말씀에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얼마나 힘든 그 지옥인데 이런 역을 맡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로 이렇게 그런 연기 그런 연출자에게 큰 배역을 맡게 되는 거 너무나 감사하다. 영계의 체험자들이 영계 체험한 그런 간증들을 보면 사람이 화를 낼 때 머리에 뿔이 나는 걸로 도깨비가 뿔이 나 있다. 그게 그냥 할 게 아니고 사람이 뿔났다고 그 사람 불났다. 실제 화가 날 때마다 머리에서 뿔이 막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옥 가는 영혼들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러니까 혈기가 많은 사람은 끝이 없도록 뿔이 자라는 것이다. 내면에 영적인 상태가 그대로 다 형상화된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좋아하고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도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데 거짓말하는 놈은 혀가 두 개이다. 뱀이 혀가 두 개다. 옛 뱀 마귀 사탄을 상징하는데 처음부터 거짓말쟁이다.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먹으면 죽지 않겠다고 거짓의 아비가 되어서 계속해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거짓으로 속이는 자인데 그 뱀이 혀가 두 개인 것처럼 이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하고 지옥에 가는 이런 거짓말쟁이들은 혀가 두 개로 계속 거짓말할 때마다 혀가 자란다. 상상을 해보아라. 그 모든 내면에 영혼의 상태가 형상화되면서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게 지옥의 상태이다. 얼마나 두려운가. 최근에 어린애들 장난감을 보면 다 그런 지옥의 괴물과 같은 이런 영적인 것들이 이 환란때에 다 드러나는 그 모습을 자꾸만 보여주면서 아이들을 세뇌하고 각인시키는 그런 시대로 우리가 살아간다. 야곱처럼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과 악을 행하기도 전에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택하셔서 부르시고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들어 가셔서 그 영광을 차지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마치 야곱이 배 속에서는 장자권을 받지 못했지만 에서를 속여서 장자권을 받고 그 실제 장자권을 이룰 때까지 오랜 기간 얼마나 힘들게 연단 받고 훈련받았는가? 나반의 집에 가서 7년 또 7년, 20년 동안 봉사하면서 연단받는 그게 저와 여러분이 우리가 야곱을 사랑하는 그 사랑 그대로 기업을 주려고 하는 그 거룩하고 흠 없는 상태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야곱의 일생과 똑같은 것이다. 야곱처럼 이렇게 하나님이 무슨 선악을 하기도전에 택함을 따라 이런 배역을 맡긴 그 하나님을 에베소서 1장 14절에는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감사하니까 찬미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또 12절에는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찬송을 계속 왜 올리는가? 우리가 감사하고 기쁘니까 올려드리는 것이다. 또 우리에게 이런 악역을 맡기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 기업을 받게 하는 이런 귀한 역을 맡기게 한 그 사실에 대해서 영광을 찬미하고 감사하며 그런 삶을 살아야 된다. 그래서 찬송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5장 4절에도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이 귀한 역을 맡겨서 멀지 않아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는 그런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았다면 어리석은 발, 희롱하는 말, 누추한 말, 은혜가 되지 않는 말 이런 곳에서 돌이켜서 감사하는 말을 하라 감사하는 말을 우리가 해야 된다. 예레미야 1장 5절에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를 부르면서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복중에 짓기 전에 벌써 알고 계셨다. 태에서 나오기도 전에 이미 구경을 해버리셨다. 열방의 선지자로 이미 세워 놓은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고 하나님의 배역이 이런 것이다. 우리는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아들의 배역을 맡고 하나님의 기업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서 이렇게 다 구원의 자녀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무슨 배역의 그릇인가? 나는 남은 생애를 위해서 무슨 용도로 만들어져 있는가? 우리는 그것을 늘 기도하면서 이렇게 살아가야 된다.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 보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그러셨는데 은사와 재능을 따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하나님에 붙은 지체로서 나는 무슨 기능의 사람인가? 우리는 그걸 염두에 두고 그 기능을 따라 자기의 배역을 감당해 나가야 되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연기자들이 호흡을 잘 맞춰서 그 연출가가 이 작품을 잘 만들어 내도록 우리는 하나가 돼서 연기를 감당해내는 것이다. 이 연기자가 자기 배역을 감당하지 못하고 계약서대로 하지 못하고 그 작품을 뻔뻔해서 다른 배역을 누가 찾아야 되고 이렇게 정도 되면 손해배상을 물어야 되고 얼마나 힘들겠는가? 작품도 지연되고 그렇게 되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나에게 맡겨진 이 연기자의 배역을 잘 서로 호흡을 맞추어서 이걸 완벽한 연기로 연출자인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서 그분이 이 모든 연출을 잘 감당하도록 그렇게 도와줘야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사랑해야 되는 것이다.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의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에베소서 4장 16절에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우리 몸은 서로가 사랑하고 아끼고 한 몸을 세워나가면서 이렇게 만들어 가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연기자로 택함을 받아서 각각의 기능을 따라 각각의 은사와 재능을 따라 그 몸에 우리의 사역을 감당하며 서로가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으로 스스로 세워서 한 몸을 이루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에베소에 나오는 우리라고 하는 단어를 우리는 주목을 해야 하는 것이다. 1장 전체에 한번 보자. 2절부터 시작해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다 그랬다. 3절에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랬다. 4절 5절 6절 7절 8절 9절 11절 12절 14절 17절 19절 계속 절마다 모두가 우리라고 하는 말이 계속 나온다. 그 얘기는 무엇인가? 그 우주적인 그런 전체 교회, 이단만 아니면 이단이 두 가지가 있다. 교리적인 이단이 있다. 교리가 잘못되면 이단이다. 교리라고 하는 건 성경에서 나타나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 교리적으로 잘못되면 이단인데 생활적인 이단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교리를 갖고 해도 생활은 이단적으로 살아가면 생활적인 이단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단만 아니라면 전 우주적인 모든 교회에 하나님은 우리라고 하는 하나의 교회를 만들어서 그분의 구속 섭리를 이루어가는 연출을 하시는데 이거 전부 우리 우리 계속해서 2절부터 18절까지 거의 모든 절에 우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 우주적인 교회의 한 몸을 기억하고 우리가 전체 교회를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2장 1절부터 보면 너희라고 하는 말을 썼다. 에베소 교회에게만 해당하는 말 1장 13절, 16절, 18절, 2장 1절 계속해서 또 너희는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전우주적인 교회로 하나님의 자녀의 배역을 맡은 우리라고 하는 전체가 다 사랑으로 몸을 만들고 호흡을 맞춰서 그 연주자의 뜻을 이루어가도록 그렇게 연출을 잘할 수 있도록 연결을 해줘야 된다는 것이다. 그게 우리가 이 선한 역을 맡은 우리 각자의 그런 연기에 따라 이렇게 하나님이 역사를 하신다. 에베소서 2장 21~22절에 또 그렇게 말씀하셨다.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나의 성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건물마다 연결해야 건물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전도 우리 하나하나가 그 건물에 필요한 재료가 되어서 함께 성전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1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이러한 개혁의 부르심을 받고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의 교회로 만들어져 가는 이런 역할을 맡으려면 겸손과 은유와 오래 참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5장 1절~2절에 또 이렇게 표현하셨다. 1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사랑을 입은 자녀 우린 모두 사랑을 입은 자녀인데 그렇게 그러하신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여기에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 이렇게 말씀하신 이 말씀을 딱 보는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연출가라고 하신다면 이 목회하는 것도 연출과 같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목회도 하나의 연출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연출가가 이제 배역을 맡아야 되고 무대도 만들어야 되고 조명도 해야 되고 음악도 이제 전체를 다 총괄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연출가처럼 이 목회가 연출과 하나님을 본받으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연출가라면 이것도 하나의 연출이다. 이 예배 하나가 하나의 연출이다. 그럼 여기서도 이제 배역을 누가 맡겠네. 그건 바로 성경 안에서 설교하되 배역이 다 있는 것이다. 지난주에는 제가 엘리바스의 교훈가지고 설교했는데 그 조연인 엘리바스를 사용했다. 지난주에 제가 마음이 좀 힘들었다. 책을 써도 별로 보는 사람도 없고 강의를 다녀도 설교해도 유튜브 방송해도 별로 찾는 사람이 없다. 설교하나 올려야 20, 30명부터 보고 가는데 마음이 좀 위축되고 좀 힘들었는데 근데 지난주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엘리바스의 교훈이라고 하는 이 설교를 동영상으로 딱 올렸는데 월요일 올렸는데 하루 사이에 600명이 들어왔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위로하시는 것이다. 마음이 힘드니까 ‘봐라 이렇게 너를 이렇게 찾는 사람도 있다’ 하는 그러니까 한 번에 600명을 기록이다. 200명을 넘어간 적이 없었다. 하나님이 위로하시는 것이다. 음악을 누군가가 하고 또 조명도 이렇게 하고 이 모든 것이 다 하나의 예배가 매 주마다 하나의 연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연출하는 것처럼 우리는 연출을 하는 것이다. 음악 감독도 있고 조명 감독도 있는 것처럼 각각의 분야에서 우리가 한 몸을 만들어서 연출을 해 가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최고 연출자인 하나님을 기쁘게 해서 그 배역들을 잘 감당하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연기자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한 자녀로서의 배역을 맡았다면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랑으로 연합해서 하나가 돼서 그 연출자를 기쁘게 하고 그 뜻을 이루어 들여서 좋은 작품이 나오도록 하는 그런 연기자가 될 때 그런 연기자에게 하나님은 최우수상을 주기도 하고 조연상을 주기도 하고 그 시상식에 그런 놀라운 상을 하나님께서 주는 것이다. 인류구속 역사에 하나님이 연출가 이심을 깨달으시고 오늘 저와 여러분 연기자로 부르셨구나. 그래서 연기자 된 우리가 각각 자신의 그릇을 알고 자신의 몫을 알고 서로 연기자끼리 호흡을 맞춰가면서 연출가인 그분이 이 연극을 잘 이루도록 그렇게 뜻을 이루어드리고 이런 좋은 역을 맡게 된 것에 대해서 감사감격하면서 이렇게 나가 하나님께 영광의 찬미를 올려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한다. |
댓글1추천해요0
'말씀의 향연 > 메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맛 포도주의 맛 (0) | 2023.07.12 |
---|---|
삶의 우선순위 (0) | 2023.07.08 |
엘리바스의 교훈 (0) | 2023.06.20 |
서로 사랑하라 (1) | 2023.06.10 |
성령 충만의 역사를 만나려면 (0) | 2023.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