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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향연/메세지

옛적 길 곧 선한 길

by Andrew Y Lee 2023. 5. 10.
옛적 길 곧 선한 길


예레미야 6장 16~21절


"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17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숫군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18 그러므로 너희 열방아 들으라 회중아 그들의 당할
일을 알라
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20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뇨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21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 백성 앞에 거침을 두리니 아비와 아들들이 한가지로
거기 거치며 이웃과 그 친구가 함께 멸망하리라"


4월 마지막째 주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5월 가정의 달에도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또 성령 충만을 사모하면서 5월을 보내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구약시대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선지자들을 통해서
알리셨다.
그래서 선지자는 먼저 깨달은 자로 선견자라고도 한다.
먼저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각자라고도 했고 이들을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입이라고 말씀하였다.


즉 영으로 계신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뜻을 알리는데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그 뜻을 알리셨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입이라고 성경에 나와 있다.


구약에 많은 선지자가 있는데 선지자를 나누면
대선지자가 있고 소선지자가 있다.


대선지자는 에스겔, 오늘 본문 가운데 있는 예레미야,
이사야, 다니엘 등이 대선지자이다.
물론 책의 내용도 많다.
에스겔은 48장까지 있고
예레미야는 52장, 예레미야 애가는 5장이다.
이사야는 66장, 다니엘은 12장으로 좀 작은 분량이지만
이 네 분의 대선지자는 전부 구약의 24장로의 반열에
있는 분들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소선지자다.


오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6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가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첫 번째는,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본문 16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
길에 서서 보며 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공동 번역으로 보면 
"너희는  네거리에 서서 살펴보아라 옛부터 있던 길을
물어보아라 어떤 길이 나은 길인지 물어보고
그 길을 가거라" 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생동안 신앙의 길을 걸어가다가
네거리 길에 서서 살펴보아 옛적 길 곧 선한 길 그 길이
어디인지 다시 찾아 그 길로 가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중간 중간에 우리의 신앙의
여정 가운데 점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집이나 빌딩 같은 곳에 가보면
가끔 계단참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올라가다가 방향이 바꿔진다거나
높은 계단 중간에 계단참이라고 넓은 공간이 있다.


올라가다가 피곤하니까 그 계단 중간에서
잠깐 쉬는 곳이 계단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생활에도 계단참이 필요하다.
동서남북 네거리 길에서 어느 방향이 옳은 길인지,
어느 것이 선한 길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이 뜻하는 길인지,
이것을 점검할 때 계단참에 잠시 서서
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3 5에 보면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


내가 지금 믿음에 있는가?
이것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우리 자신은 중간 중간에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내가 믿음에 있는 사람인지 자신을 확증해야 한다.


세상에서도 대통령도 임기 5년 동안 중간 점검을 한다.
이 사람이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있고
지금까지 모든 일을 잘 해왔는가?
또 한 회사에서도 중간에 결산을 하고 회계를 한다.
학생들도 중간에 중간고사를 보게 된다.
학업을 잘 따라가고 있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지
중간 중간에 여러 가지 점검을 하게 된다.


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너희가 길거리에 서서 다시 한 번 너희 자신들을
돌아보라하며 왜 중간 점검을 요구하고 있는가?


본문 6 1 말씀에 보면
"1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중에서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기호를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지금 하나님의 뜻은 언약을 지키지 않고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북방의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을 통해
예루살렘과 그 백성들을 멸망시키려고 하고 있다.


바벨론 포로를 앞에 두고 있는 그 상황이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이런 권면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 6 8 말씀에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로 황무케 하여 거민이
없는 땅을 만들리라"


지금 훈계하는 이유는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하나님이 왜 싫어하나?
언약을 안 지키고 순종하지 않으니까
"내가 너를 싫어하고 너를 황무케 하여 거민이 없는
땅을 만들리라" 하였다.


예루살렘 땅을 거민이 없는 황무한 땅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한번 너 자신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요구하고 있다.


예레미야 6 13~15
"13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15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언약을 행하지 않고
불순종하는 것은 그 당시에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타락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될 선지자들과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나가야 하는 제사장들이 전부 다 거짓을
행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제는 바벨을 통해서 심판할 수밖에
없는 그런 때인데 사람들에게 오히려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면서 거짓 평안을 예언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일은 무엇이었나?
우상 섬기는 것이었다.


에스겔 8에 보면 여러 가지 우상들이 많이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담무스, 태양신 여러 가지 우상들을
섬기면서도 얼굴이 붉어지지 않았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인지 알지 못하고 떳떳하게
그 우상들을 섬겨가면서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이것이 그 당시에 종교적인 상황이었다.


예레미야 6 8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로 황무케 하여 거민이
없는 땅을 만들리라"
이렇게 제사장과 선지자도 다 타락하고 가증한 일을
행하고 거짓 평안을 예언하여서 하나님이 바벨을
통해서 멸망시키려고 하는데
8 말씀을 공동 번역해 보면 이렇게 표현하였다.
"예루살렘아, 소박맞기 싫거든 내가 타이르는 말을 들어라.
듣지 않는다면 쑥밭으로 만들어놓으리라.
사람 없는 땅으로 만들어놓으리라"
지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남편이 되셨고
이스라엘은 아내의 입장이 되었는데
호세아에 이렇게 표현하셨다.


그런데 "소박맞기 싫거든" 이 이야기는 무엇인가?
남편과의 관계가 깨져버린다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라는 아내를 버릴 수밖에
없어서 이혼장을 써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박맞기 싫거든 이 말을 좀 들으라고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너희가 듣지 않는다면 쑥밭으로 만들어 놓으리라
사람 없는 땅으로 만들어 놓으리라고 하였다.
이 쑥밭이 무엇인가?
여러분 쑥밭, 쑥대밭이 됐다는 말을 많이 쓴다.
쑥이 얼마나 생명력이 강한 풀이다.
약에도 좋지만 그만큼 강하다.


사람이 농사를 짓고 손을 봐서 잡초 뽑아낼 때는
그 쑥들이 자라나지 않는데 사람이 없어져버리면
밭에는 쑥이 올라와서 쑥대 대나무처럼 쑥 올라와서
전부 다 쑥대밭이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황무한 땅이 된다는 것이고
사람이 살지 않아서 망하는 땅이 된다는 것이
쑥대밭이 된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때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져서
오랫동안 그 땅이 황무하여 사람들이 살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땅이었지만 그곳에 쑥만 나와
있었다고 한다.
쑥은 굉장히 강한 식물이어서 약효가 크다.


그런데 이스라엘 땅을 황무케 하여 사람이 없는 땅으로
쑥밭으로 만들겠다고 하였다.


아내 된 이스라엘이 소박맞은 여인처럼 하나님이
그들을 멸망시켜서 쑥대밭으로 만들겠다고
사람이 없는 땅으로 만들겠다고 하며 경고하고 있고
이것 때문에 너의 중간 신앙을 점검해 보라고
권면하고 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예레미야를 통해 받는 교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도 그때와 똑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마귀와 세상 여러 가지 정욕을 가지고
우리를 다 포로 삼으려고 하는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세상이 다 좋으니까 애정과 욕망이라는 정욕을 따라가는데
골로새서 3에 분명히 애정과 욕망은 탐심이고
우상숭배와 정욕이라고 말씀 하고 있다.


애정과 욕망이 만족되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그런 시대에 그 정욕이 오히려 사람들을
포로로 만들고 마귀는 우리를 포로로 삼으려고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다 평안하다 평안하지만
사실은 평안이 없는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을 앞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예레미야의 교훈처럼 중간 중간에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 듣는 여러분 모두가 중간 중간에 여러분 자신의
신앙을 한번쯤 점검 해 보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꼭 점검을 해야 하겠다.


두 번째는,
본문 16에 있는 말씀대로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하였다.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그리로 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옛적 길이 어디인가?


옛적 길은 남부 소사역쪽으로 지나가면
그곳에 경인옛로라고 하는 길이 있다.
2009년도에 도로명으로 주소들이 바뀌었는데
원래는 경인옛길이었다.
옛 길이었는데 대부분 도로가 "로"로 바뀌다 보니까
경인옛로로 바뀌었다.
이 길은 예전 당시에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유일한 길이었는데 그 뒤로 경인고속도로가 생기고
부일로가 생기고 경인로가 생기면서 많은 도로가
생겼는데 옛날에는 이 길밖에 없었다.
인천 가는 길이 이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경인옛길이다.


이 옛적 길은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들이 걸어갔던 그 신앙의 길을 말한다.


말씀 한번 찾아보겠다.
욥기서 8 8~10 말씀
"8 청컨대 너는 옛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울찌어다
9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지식이 망매하니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
10 그들이 네게 가르쳐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마음에서
나는 말을 발하지 아니하겠느냐"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이다.


모든 종교뿐 아니라 여러 가지 세상의 예술 음악에
클래식이라는 것이 있다.


수백 년 수십 년 수천 년 동안 음악을 했던 사람들이
클래식이라고 하는 전통을 남겨 놨다.
새롭게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이 클래식을 모르고
새로운 자기 것을 만들 수가 없다.
클래식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면 몇십년 살아가면서
지식이 망매하고 시간이 없는데 음악적 지식들을
어떻게 습득해서 자기 음악을 세울 수가 있겠는가?


신앙생활도 이와 똑같다.
앞 시대에 걸어갔던 그 믿음의 선지들, 옛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들이 터득한 일
8에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우라고 하였다.


이들이 터득하는 일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무사히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할 것인가?
하나님이 내가 완전하니 너희도 완전하라고 말씀하셨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그 완전의 길을 어떻게 잘 가고
그분 앞에 설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은 그 완전에 이르는 길을 성경을 통해서
계속 보여주고 계신다.


고린도전서 10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함께 애굽을 떠나
가나안 가는 그 여정이 너희에게 거울이다
모형이라고 하였다.


가나안이 하나님의 나라고 이 땅에 나타나는 천년 왕국,
메시아 왕국인데 어떻게 거기에 들어갈 것이냐
이것을 인류 전체에게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선민을
뽑아서 보여주셨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어떻게 하면 하나 앞에 설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 나라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같이 완전에 이를 수가 있을 것인가?


물건 하나를 만들면 생산자와 기획자가 기준을 세워서
불합격 되면 판매처에 내놓지 않지만 합격이 되면
"검" 자를 찍어서 내놓는다.


하나님이 정한 기준은 완전이다.
이것을 성경에는 신의 성품에 참여했다고 말씀하고
하나님의 의에 이르렀다고 말씀하고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이 부어졌다고 하였다.


성경을 통하여 보여준 기준, 그 완전에까지
어떻게 우리의 믿음의 열조들이 이르렀는가?
따라가는 그 길이 선한 길이다.


그래서 그들이 터득한 그 길을
욥기 8 10 말씀에 보면
"그들이 네게 가르쳐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마음에서
나는 말을 발하지 아니하겠느냐"


성경에 보면 우리 믿음의 열조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와 같은 믿음의 선진들이 갔던 길이
성경을 통해서 다 드러나 있다.


그들이 걸어갔던 그 선한 길이 어디인지 찾아서
따라오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신앙의 영성가들, 신비주의자들이
하나님 앞에 서려고 그 완전의 길을 가고
성공적인 신앙의 길을 나름대로 다 남겨 놨다.


많은 책들을 우리에게 남겨놓았는데
알려준 영성지식을 우리가 참고하여 더듬어서 그 위에
각자 나의 길을 세우고 그 길을 찾아 떠나가는 것이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잠시 다녀가는 인생 속에서 이것들을 내가 일일이
다 경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짧은 세월 속에 그것을 다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정통이라는 것 곧 클래식이라고 있는 것이고
그 위에 나의 신앙을 첨가하여 우리의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배우고 그것을 따라가고 그 길을 찾아가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아가서 1 7~8 말씀 보겠다.
"7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너의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고하라 내가 네 동무 양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리운 자 같이 되랴
8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찌니라"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양을 치면서 정오 12시가 되면
그때 쉬는 시간이다.
휴식을 취하게 된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장이 되어서 많은 목자들과
함께 정말로 영혼의 안식을 누리고 쉬는 그곳이 어디인지?
이 아가사의 사랑받는 여인이 그것을 질문할 때
예수님을 빙자한 솔로몬이 대답하는데
"그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와라" 라고 하였다.


양이라고 하는 짐승은 눈이 굉장히 나쁘다.
무리로 걸어갈 때는 앞에 가는 양의 엉덩이만 보고
쫓아간다.
그 발자취만 따라간다.
스스로는 갈 수 없다.
그래서 목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양들을 향해서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오라고
하였다.


앞서간 믿음의 선조들이 어떻게 주님을 섬기면서
어떠한 신앙생활을 했는가?
이것을 본 받고 이것을 연구하고 이것을 기준 삼아
중간 점검하면서 내가 그 길로 가고 있는지,
그 선한 길로 잘 가고 있는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로 가고 있는지,
그것들을 점검하고 따라와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먼저는 우리는 성경 안에서 그들이 터득한 것
우리에게 보여주는 믿음의 선한 길
그 길을 찾아서 따라가야 된다.


특별히 마지막 때가 되어서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운
이런 때에 그들의 고민이 나의 고민이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는데 하나 앞에
내가 어떻게 설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완전한 자리에 들어갈 것인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당하지 않고 그 심판 날에
어떻게 그 자리에 앞에 설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고민한 그 길을 그들이 터득했고
그들이 그 길을 찾아갔기 때문에 그걸 찾으라는 말이다.


세 번째는,
본문 6 17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숫군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기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고
선지자를 통해서 그 길을 보여주시고
예레미야를 통해서 계속 알려주시고 중간에 점검하라
너희가 다시 한 번 선한 길을 찾으라고 하였고
또 하나님은 파수꾼을 세워서 나팔 소리를 듣게 하였다.


창세기부터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모일 때 회집의 나팔을 불었다.
이렇게 선지자가 부는 파수꾼이 부는 나팔소리를
들으라고 하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시대마다 파수꾼을 세우신다.
이사야 3, 에스겔 33에 나와 있다.


파수꾼을 세워서 악인이 그 길로 가면
경고의 나팔을 불어 악인에게 깨우쳐주어
악한 길로 가지 말도록 하였다.


그리고 악인이 스스로 그 길을 가는 건
자기 책임이고 자기 핏 값을 자기가 찾는다고 하였다.


또 의인이 잘못된 길을 가면 그 의인을 깨우쳐줘서
바른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이 파수꾼의 사명이다.
깨우쳐준 다음에는 그것이 자기 사명이 아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너희의 피에 대해서 깨끗하다고
사도행전 20에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하면서
내가 너희를 늘 집에서나 공중 앞에서나 가장 유익하다고
하는 믿음과 회개를 다 전했다고 하였다.
"내가 너희의 핏값에서 깨끗하다"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여 그들에게 다 경고의 나팔을
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너희의 피에 대해서 깨끗하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파수꾼은 나팔을 불어야 되고
그것이 그들을 깨우치게 하는데 지금 이 시대에도
시대마다 하나님이 나팔을 불게 하신다.


부족하지만 저도 목회자로 부름 받아서
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면서 책 열권을 쓰게 되었는데
이것이 사실은 이 시대를 향한 경고의 나팔소리와 같은
그 심정으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경고의 나팔이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서
회개를 선포하고 예수님이라고 하는 이 세상에 빛과
생명으로 오시는데 그 예수님을 잘 영접할 수 있도록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굽은 길을 바르게 하고
골짜기를 메꾸고 채우고 낮은 것을 메꾸고
높은 것은 깎아내리고 도로 공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재림의 때도 똑같다.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면 그분을 맞아 드릴 수 있도록
사상의 굽은 것들을 펴줘야 되고
사상의 깊은 것을 메워줘야 되고
사상의 높은 걸 깎아 내줘야 된다.


다 휴거 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을 바로 잡아주어서
누가 휴가 될 것인가?
그것을 올바로 알려줘야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상의 잘못된 것을 정리해 주는 이것이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인데
부족하지만 저도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고
싶은 것이다.
부족하지만 이 시대에 파수꾼의 나팔 소리가 되고
싶은 것이다.


다시 본문을 가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고 하고 있다.


6 19~21 말씀을 보면
"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20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뇨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21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 백성 앞에 거침을 두리니 아비와 아들들이 한가지로
거기 거치며 이웃과 그 친구가 함께 멸망하리라"


우리는 아무도 멸망치 않기를 원한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야 된다.
회개할 건 회개해야 된다.
버릴 건 버려야 되고
끊을 건 끊어야 된다.
이런 것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하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정말 우리가 다시 한 번
우리 신앙의 위치를 점검하면서 내 위치를 알아야
우리가 방향을 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지진이 일어나는 짐승들이 먼저 알고
자기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사는지
방향감각이 뛰어난 것이 짐승들이다.
이 마지막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신앙의 영적인 방향을 정하고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렇게 하려면
나의 현재 위치를 알아야
그다음에 방향을 정할 수가 있다.


그래서 여러분 각자가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면서
예레미야에게 보내주신 말씀처럼 중간 중간 신앙의
점검을 좀 다시 한 번 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옛 적길 곧 선한 길이 어딘지 찾아 가야 하고
그리고 시대 시대마다 주는 하나님의 경고에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이 훈계를 통해서
그들이 돌이키기를 원하신 것이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내 머리가 온통 다 물이였으면 얼마나 좋을고 하며
탄식을 하였다.


그렇게 경고하고 권면하고 훈계해도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그러면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눈물로서 회개하고 눈물로 통회하고
눈물로 권면하는 했던 것이 예레미야 선지자였다.
그래서 머리가 다 온통 물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이 가정의 달에 우리의 가족들, 자녀들 하나하나
이 세상을 다 얻었지만 구원을 얻지 못하고
영생을 얻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영혼 하나하나를 생각하면서
우리도 예레미야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이 시대의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하면서
옛적 그 선한 길이 어디인지 한번 다시 한 번 찾아갈 수
있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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