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정의 기쁨
마태복음 2장 13~23절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이번 주는 어린이집인데
실상은 지난주 5월 5일 어린이날이 다 지나갔고
월요일 내일이면 사실 어버이주일이다.
어버이날이다.
그래서 간격이 안 맞는 그런 5월의 주일들이다.
어쨌든 가정의 달을 통해서
오늘 ‘성가정의 기쁨’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첫 번째는
성가정은 어떤 가정인가?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거룩한 그런 성가정이 얼마나 있겠는가?
성가정은 바로 예수님이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과
함께 계셨던 성경 안에 나타난 그 가정을
우리는 성가정이라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예수라고 하는 이름이 ‘저희를 죄에서 구원할 자다’
이렇게 마태복음 1장에 말씀하셨는데
그 예수님은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이신 것이다.
그런데 또 한 가지는 그 예수님의 삶은
우리의 모든 죄인들, 인생들의 삶의
모범자가 되셨다는 사실인 것이다.
예수님은 구세주이심에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기까지 어떠한 인생을 살아야 되는지
그 모든 삶의 모범자가 되신 그런 삶을 사셨다는 것이다.
죄인도 아니고 의인이신 예수님이 죄인의 입장에서
하나님 나라 가는 그 길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서
우리에게 하나님께 나가는 그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범의 삶을 살았다.
저는 완전의 길이라고 하는 이런 타이틀을 가지고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그것을 ‘완전의 길이다’ 이렇게 표현했다.
하나님이 완전하시고 영원히 살아계신 분인데
그분 앞에 서기까지 어떤 길을 우리가 가야 되느냐
이스라엘 백성으로 말하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리고 새 하늘 새 땅이 나타나는 과정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서도 그 과정을 보이셨고
예수님도 몸소 출애굽을 하여 가난한 가는
그 여정의 삶을 사셨고 부르신 다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 길을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그대로 보여주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라 이런 말을 흔히 하지만
이 세상에서도 인간문화재가 있다면 그 밑에 문화의
모든 제자들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
그 인간 문화재장인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모든
그 인간문화재의 그 기술 그걸 그대로 전수받으려고
거기에 문화 생이 되는 것이다.
그게 제자인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의 그 모든 삶의 모범을 보이신
그 삶을 그대로 전수 받으려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저절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고 예수님도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이 땅에 오셨고
어머니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 가정 안에서
이렇게 자라났던 그런 소년이었다.
예수님의 그 가정 마리아가 없다면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났겠는가?
요셉이 없다면 누가 그들을 보호하면서
하나의 뜻을 이루었겠는가?
그래서 이 세 사람이 이룬 그 가정 그것을
우리는 성가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특별히 예수님이 30세가 되어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이전에
그 모든 생활, 그것이 가정의 성 과정이다.
전승에 의하면 중간에 요셉이 죽어서
몇 살에 죽었다고 하는 성경의 이야기가 없지만
중간에 요셉이 죽었기 때문에 아마 예수님은
홀어머니를 모셔가면서 편모슬하에서 이렇게 목수 생활을
하면서 가정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이 모든 삶 속에서
예수님을 닮아야 되는데
개인적으로도 예수님을 닮을뿐더러
가정적으로도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정적으로도 예수님을 닮아서 그 성가정인
예수님의 가정을 우리가 닮아 가야 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4장 13~15절 말씀 보니까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예수님의 그 장성한 분량까지 우리는 닮아가야 되는데
개인적으로 그분의 삶을 본받아서 닮아가면서
또 우리는 가정적으로도 그 예수님의 가정을 본을 삼아서
그 가정을 닮아가는 그런 믿음의 가정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성가정인 거룩한 가정인 예수님의 그 가정이
오늘 고통과 불행이 없는 그런 삶의 가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인 것이다.
여러분 예수님의 가정은 성가정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형통하고 아무 불행이 없는
그런 가정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나타나자마자 애굽으로 피난을 가서
피난살이를 해야 되고 일생 동안 가난한 삶을 살았고
또 요셉이 죽어서 편모슬하에서 소년 가장이 되어서
이렇게 어려운 인생살이 속에서의 가정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해야 된다.
인간적인 모든 불행과 고통을 다 경험하고 있는
가정인 것이다.
이 성가정에 세 사람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한번 좀 생각해보기 바란다.
요셉의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정혼을 하고 이스라엘의 정혼,
개역개정에는 약혼이라고 나왔는데
이스라엘의 정혼은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동거하지 않고 남편이 집을 장만할 동안에
아내는 신부 단장을 하는 그런 모습인데
정혼을 해서 법적인 부부가 됐는데
동거하기 전에 남편이 집을 장만하면서
아직 동거하기도 전인데 임신한 사실이 드러났다.
요셉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 한 번쯤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런데 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고 했다.
율법에는 이렇게 동거하기 전에 아이가 생기면
그 돌로 쳐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로운 요셉은 어려운 마음을 갖게 됐지만
그 마리아를 덮어주려고 하는 자세를 가지고
이걸 드러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마음속에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다행히 천사의 도움으로 그것이 동정녀를 통해서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깨닫게 되고
그러면서 예수님이 잘 태어나도록 도왔다.
그러나 예수님이 태어나면 그때부터 피난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여러분 외국에 가서 산다는 게 쉬운 일 아니다.
그러나 지금 애굽 땅에 가서 살아가는 것이다.
성경에는 몇 살 때 돌아왔다는 말이 없지만
적어도 한 7년 정도 지내고 돌아와서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한 몇 년 7년이라는 세월을
피난 살게 되었다.
저도 미국에 가서 10여 년을 살고 왔지만
외국에 가서 산다는 게 그 뿌리를 새로 내리는
식물과 똑같은 것이다.
이것을 화분에서 뽑아 다른 데 갖다 심으면
그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기까지
나무들이 몸살을 하는 것이다.
그것처럼 우리가 애굽으로 피난가 살았던 목수로서
아버지로서 얼마나 힘든 생활을 했을까?
물론 전승에 의하면 동방박사 세 사람이 가지고 온
세 가지의 황금과 유황과 모략 그것이 고가의 물건들인데
그것이 물론 예수님이 왕 되고 제사장 되고 선지자가 된
이런 상징적이고 의미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것을 애굽으로 가지고 가서 팔아서
그것을 기초로 해서 집도 하나 얻고 목수 연장도
준비하면서 그 삶의 기초를 그 세 가지 예물로 했다는
전승이 있다.
터를 잡아서 생활을 하는 것이다.
평범한 아버지가 아닌 예수님의 아버지로서
절대 그 예수님을 보호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이다.
그 요셉의 일생은 그렇게 어려운 일생이었던 것이다.
마리아도 마찬가지다.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그런 아픈 엄마의
마음을 가지고 가난한 목수의 아내로서
피난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어려운 인생을 살았겠는가?
예수님도 마찬가지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 성가정과 다름없이 여러 가지 인간적인
모든 불행과 고통들이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지성소가 있고 성소가 있어서
지성소라고 하는 더 깊은 곳으로 우리가 가기 위해서는
이 마음속에서도 더 깊은 고통을 통해서
더 많은 불행을 통해서 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깊은 심연 안에 그것을 지나가지 않으면 우리는
깊은 지성소로 내려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된다.
내 자신이 큰 질병을 알아봐야 병든 사람의 고통을
이해할 수박에 없는 것이다.
내 마음이 상처를 당해 봐야 상처 당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장에 분명히 말씀하셨다.
마음의 상처를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위로를 통해서 오늘 다시 살아났는데
그것은 이후로 많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상처를 받고 위로를 받아본 사람이라
위로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것이 권면이 되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더 많은 깊은 연단과 고통의 과정을
지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인 것이다.
각 사람이 감당할 만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이런저런 여러 가지 연단과 훈련을 통해서
우리를 다루어 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이런 과정을 통하지 않으면
결코 깊은 사랑을 맛볼 수가 없다.
이런 과정이 아니면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아니면 하나님의 그 깊은 겸손과
온유를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 한 사람의 인격이 만들어질 때 이 성가정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왔다고 해서
이 모든 게 면제되는 것이 아니고
그 모든 죄인의 입장에서 이걸 다 감당하며
그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비로소 인류를 위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시는 것이다.
이 성과정은 고통과 불행이 없는 그런 가정이
아니었더라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마지막으로 그러면 예수님의 이 성가정을
정말 거룩한 가정 성가정이라고 부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들이 왜 성가정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오늘 본문 가운데 13절의 말씀을 보면
13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이 헤롯이 당시에 분봉 왕인데 왕이 나타났다고 하니까
헤롯이 2살 이하 아이를 다 죽였다.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요셉에게
꿈을 꾸게 하셨다.
구약의 요셉도 꿈꾸는 자였는데 하나님이 이 신약의
예수님의 양부인 요셉에게도 꿈을 꾸게 하셨다.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면서
그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성가정이 되는 것이다.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요셉은 현몽하여 아이를 찾아 죽이려고 하니까
애굽으로 피난하라 그래서 아기와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서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에 있었다
그랬다.
그것이 성경에 이미 선지자로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예언이 돼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누군가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 말씀대로 이루기 위해서
누군가가 순종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세워나가는
그 순종의 사람이 되어 질 때 그것이
성 과정이 되는 기초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가정을 성가정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이 그 말씀대로 뜻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여러 가지 꿈을 보여주시고 환상을 보여주시고
계시를 보여주시고 내면의 음성으로 말씀하시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그 뜻을 알려주시면
그 뜻을 어렵지만 순종하며 따라가는 그 모습 때문에
그 가정을 성가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주 작게는 한 사람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더 넓게는 더 많은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만 하나님 나라가 심령에
이루어져도 그것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인데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는 것인가?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고
그것을 순종하며 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있으면
거기가 성가정이 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19절 말씀에 보니까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이제는 헤롯이 죽었기 때문에 다시 이스라엘 땅
나사렛으로 이제 돌아가라 그렇게 꿈에
또 나타나신 것이다.
그러니까 요셉이 또 순종하여 아기와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갔다.
이것이 요셉이 순종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 뜻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면
거기에 순종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성가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동정녀 마리아에게도 가브리엘 천사가 와서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이 마리아가 천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수태한다고
하는 이런 소식을 듣고 나서 누가복음 1장 38절에
고백하는 내용이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하나님 뜻이 지금 나타났다.
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났다.
그럼 적어도 이 마리아는 구약에 정통한 여인이고
예수님의 어머니가 된다고 하는 일이
어떠한 일인지를 아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되고
어머니 가슴에 칼로 심장을 찌르는 것 같은
그런 고통을 앞에 두고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말씀대로 이루어지길 원한다.
이것이 순종인 것이다.
이것이 아멘인 것이다.
내 삶의 아멘인 것이다.
그런 마리아와 그런 요셉이 있기 때문에
그 가정을 우리는 성가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다.
고린도후서 1장 18~20절 말씀하고 있다.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사도 바울이 예수님은 일생 동안 예만 했지
아니라 함이 되지 않았다고 그랬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서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고
죄인들을 구원하게 했다고 한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예수님은 얼마든지 그것이 불순종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지만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로마의 왕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저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태어나서 일생 동안
이런 삶을 살면서 모든 죄인들을 위해서 대신 희생하고
대신 고통당할 그 십자가의 길을 예수님은 예 하고
걸어간 그런 예수님이다.
그런 마리아와 그런 요셉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을
지금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가정은 성가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인 것이다.
여러분이 금년 가정의 달을 맞아서
결단하시기를 바란다.
지극히 작은 것 같지만 하나님의 뜻이 내 가정에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워서 우리 가족을 구원하고
조금 반경을 넓혀서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 하나하나 구해 가는
하나님의 그 뜻 가운데서 오늘 그것을 발견하고
순종하는 삶을 우리가 모두 살아갈 수 있다면
여러분 가정도 다 성가정이 되는 것이다.
거창하게 뭐 이런 성과정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그런 성과정인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 뜻을 말씀하신다.
요셉은 꿈을 통해서 그렇게 알려주셨지만
또 우리 각자에겐 때에 따라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들리기도 한다.
내면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양심의 소리로 알려주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말씀을 보내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찬송과 가사로 뜻을 나타내기도 하시고
어떤 때는 환경 속에서도 말씀하시고
여러 가지 은사와 계시와 수단 방법을 찾고
그 뜻을 발견하면 이게 ’하나님의 뜻‘ 이구나
그러면 그 뜻에 대해서 이것이 나에게 어려운 길이고
손해 보는 것 같고 희생을 전제로 해야 되고
물질을 줘야 되고 시간을 줘야 되고
내 몸을 들여야 되고 내 살과 피를 들여야 되고
작정해 기도도 해야 되고 말이다.
이런 수많은 번거로운 일들이 우리에게 놓여 있지만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그걸 이루어보려고 몸부림을 치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성가정이 되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2장 15절에 보면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이것이 목자들이다.
이제 천사들이 나타나서 너희가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났으니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볼 것이다
이것이 너에게 표적이 되리라
그런 천사의 방문을 받고 나니까
이 목자들이 실제 베들레헴에 가서
그 구유에 놓인 아기 예수를 만나보았다.
그것이 순종의 삶이고
그것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삶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찾는 그런 삶인 것이다.
목자들도 각자 나름대로 거룩한 삶을 살았다.
그것이 성가정을 이루는 기초이다.
성경에는 없지만 그 목자가 열두 명이라고 이렇게
마리아 발도 차에서 열두 명으로 나온다.
그중에서 요나라고 하는 목자는
두 살 이하의 아이를 다 죽인 그때 베들레헴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죽었는가?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서 우리가 메시아를 보았다고
선포를 할 때 베들레헴의 사람들이 다 목자들을
쫓아내는 것이다.
너희들이 메시아가 왔다고 하는 그것 때문에
우리 두 살 이하 아이가 다 죽었다는 것이다.
동네에서 쫓겨난 이 목자들이 삼십년 동안 계속해서
메시아가 왔다고 아기 예수를 만난 그걸 간증하고
그걸 선포하면서 일생 동안 메시아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실제 30년 후에 공생애를 시작할 때
그 목자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제 베드로, 요한, 야곱 세 제자만 부르셔서
그 세 제자를 데리고 그 목자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데
그 요나라고 하는 목자는 그때 악덕 농장 주인에게
붙잡혀가고 있었다.
포도송이를 잃어버리면 그 숫자대로 채찍을 맞아가며
살아가는데 그 예수님이 요나를 목장 주인에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품에서 요나가 죽는다.
그때 예수님이 그 얘기를 하셨다.
삼십 년 동안 메시아 신앙을 전파했던 아기 예수를
한 번 만나고 일생 동안 예수님을 증거 했던 그 신앙을
보면서 요셉이 받는 영광을 너는 받을 것이다.
그런 목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성경에
칠십 인의 전도대가 나타나는 것이다.
열두 제자에 70인의 전도대가 나타난다.
이런 목자들이 하나하나 이제 때에 따라 가정을 이루고
때에 따라 가정이 없다할지라도 그들이 일생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그 삶으로 순종하며 가는 그들이 성가정의 기초들이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2장 25~27절에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이 시므온이 얼마나 성령이 충만했겠는가?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다
이 말은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령이 그 시므온에 있었고
내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와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니까
마침 그 아이가 율법의 전례대로 예수님을 할례 시키려고
성전을 들어왔는데 그때 딱 만나는 것이다.
이러한 시므온과 같이 성령 충만을 받고
성령의 지지를 따라 이렇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그런 성가정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이룬 가정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큰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현장에서 내 삶의 가족, 가족 한 분,
한 사람만이라도 그 생명 하나가 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라고 주님 말씀하는데
그 영혼 하나하나를 하나님 나라로 이루어져 가는
그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그들을 이루어가고
그들을 만들어가는 그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그 뜻을 발견하면서 매 순간마다 그 말씀을 이루고
뜻을 이루고 거기에 순종하는 삶이 가정 가정에
이렇게 있다면 그것이 성가정이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2장 52절에는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저는 아이들이 혹시 백일을 당한다거나
또 아니면 그 아이들이 돌이 된다거나
이런 예배를 주관하게 되거나 아이들을 기도할 때
이 말씀을 가지고 저도 기도해 주기를 좋아한다.
이 아이도 예수님을 쫓아서 이제는 지혜가 자라가고
키가 자라가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게 해달라고 저희 교회 주일학교 애들도
다 이렇게 되기를 늘 소망하며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
왜 그런가?
예수님이 지금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30년 동안 그 공생애 시작하기 전에
키가 자라야 된다.
지혜가 자라야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된다.
그 하나님의 뜻이 예수님을 통하여 십자가를 통하여
부활 승천을 통하여 이렇게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이방인인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는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인데 그 예수님이 자라나도록
그렇게 가정을 세워서 마리아와 요셉을 보내서
그 예수님이 키가 자라도록 지혜가 자라도록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런 아이로 자라가도록
이 일을 이룬 것이 성가정의 일이었단 말이다.
똑같은 것이다.
저와 여러분도 우리의 자녀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처럼 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워 가는 이런 아이로
점점 변해가는 그 일에 내가 부모로서
그 사역을 감당하고 그렇게 기도해 주고
그래서 그 아이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자녀로
새움을 받는 그 일을 감당하는 그게
하나님 뜻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이 성가정인 것이다.
우리의 남은 생애 이렇게 성가정에
이런 기초들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정이 되고
크고 작은 이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우리가 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누가복음 1장 6절에 보면
사가랴와 아론의 자손인 엘리사벳
이 두 사람의 부부가 있는데
이들이 나이가 많이 먹었는데도 자녀가 없는데
이 두 사람은 누가복음 1장 6절에 보니까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이들이 의로운 사람들이었다.
자녀가 없었다.
그런데 결국 하나님은 어떻게 하는가?
이 가정에 세례 요한을 보내주는 것이다.
이 가정이 성가정이 되는 것이다.
그럼 왜 성가정이 되는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기를 힘쓰고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는 이런 삶이 있게 되니까
그 가정을 하나님이 택하신 것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을 보내서 주의 길을 예비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복된 가정이 되어준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디모데 후서 2장 20~22절까지 한번 같이 보자.
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이 큰 집이 어디인가?
하나님의 집이다.
큰 집이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이 크고 작은 많은 교회들마다 금은 그릇이 있고
나무나 질그릇도 있고 수많은 그릇인데
이게 모든 교회에 나오는 모든 심령들 하나하나이다.
어떤 사람은 금그릇이고 은그릇이고
나무와 질그릇도 있고
그래서 여러 가지 직분도 다를 수도 있고
믿음의 정도도 다 다를 수 있고
그릇마다 다 다르다.
그런데 귀히 쓰는 그릇은 금 그릇이라고 해서
귀히 쓰는 것이 아니다.
목사님이라고 해서 귀히 쓰는 것이 아니다.
장로님이라고 권사님이라고 귀히 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그릇이 되어 있든지 간에 귀히 쓰는 것은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서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다 그랬다.
우리가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닦여지지 않은 그릇을
누가 사용할 수가 있겠는가?
무슨 그릇이든지 자기를 깨끗하게 닦아놓지 않으면
그 그릇을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를 깨끗하게 준비하는 그 그릇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그랬다.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사가랴와 엘리사벳처럼
의로운 길을 걸어가야 되고 주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고
흠이 없는 삶으로 애쓰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가정이 될 수 있는 그런 가정으로 사용을 당하는 것이다.
이 마지막 때 하나님은 온 세계 하나님의 교회인
이 모든 사회에 어느 가정을 내가 쓸 것이냐
이 대한민국에 수많은 교회들이 있고
오만 교회가 있고 많은 목회자의 가정이 있고
많은 전도사의 가정이 있고 많은 장로 권사에
또 직분을 가진 집사에 많은 가정들이 있는데
내가 어느 가정을 스카우트해서 쓸 것이냐
하나님이 깨끗하게 준비된 가정을 쓰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사용하지만
깨끗하게 준비된 가정을 쓰는 것이다.
남편은 거룩하게 준비가 됐는데
아내가 준비되지 못하고
아내가 거룩하게 준비됐는데
남편이 준비되지 못하고 그럼 그 가정은 쓰기가 어렵다.
또 한 사람을 다시 거룩하게 하여 수준을 맞춰서
함께 거룩하게 하여 성가정으로 쓸려니까
얼마나 더 어려운 환란과 핍박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 마지막 때
우리가 귀히 쓰는 사람들이 돼야 된다.
귀히 쓰는 가정이 돼야 된다.
이 세상 것이 아무리 부요하고
세상 것이 아무리 성공적이고
이 세상 것이 아무리 좋아도
그건 다 지나가고 없어지는 것들이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부요해야 되고
사명 안에서 부요해야 되고
영혼을 살리는 일을 부요해야 되고
하나님의 일을 부요할 때 그게 영원한 상급이고
그게 값어치가 있는 거고 그게 중요한 것이다.
예수 믿었으면 어찌하든지 귀하게 한번
쓰임 받아보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돼야지
다른 욕심은 없어도 그런 욕심은 가져야 된다.
어찌 하면 우리 가정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좀 쓰임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가정의 모든 한 분 한 분이 다 이렇게 자기를
깨끗하게 준비하면 하나님이 안 쓸 수가 없다.
이것이 법칙인 것이다.
창문을 열면 바람이 들어오고
창문을 열면 햇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깨끗하게 준비만 되어져 있으면
하나님은 그 과정 과정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듯을 이루어가시는 것이다.
깨끗하게 되어지는 방법을
22절에 말씀하신 것이다.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이 나이가 먹으면 점점점 애정과 욕망이 식어져 가지만
이 청년 때는 이 정욕이 쇠하지 않으니까
정욕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애정과 욕망만 만족하려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가서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쫓아라
이게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길인 것이다.
그러니까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 사용당하고
이렇게 성가정이 되어지려면
깨끗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자들,
정욕으로 찾는 것이 아니다.
욕심 때문에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다.
내 소원을 이루라고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순수하게 주님만을 사랑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순종하려고 하고
이 썩어서 죽어서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이 인생을
지금 천국으로 옮겨서 영원한 생명을 줬는데
그 은혜를 다 무엇으로 우리가 보답할 수가 있겠는가?
주님 앞에 헌신하고 주님 앞에 내 생명을 드리는
이것밖에는 우리가 헌신하고 봉사할 길이 없는 것이다.
정말 내가 은혜를 받아서 나를 천국으로 옮겼고
내가 지옥에서 건짐을 받았다
이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정말로 갚을 수 없는
이런 큰 은혜를 체험했다면 주님의 쓰심에 합당한
사람으로 자기를 들어서 어떻게든지 성가정이
돼보려고 몸부림 쳐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가 우리 가정 가정마다 임하게 되시고
저와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정이 되시고 크고 작은 영혼들 수많은 영혼들이
주변에 있다.
성 가정은 세상 기쁨보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쁨이 더 충만하여야 한다.
가족의 자녀들 또 이웃들 우리의 친척들 아직도 주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은데 그들 하나하나를 세워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이 놀라운 일에
자신을 깨끗하게 준비하여 성가정의 일원이 되어서
여러분 가정 가정들이 정말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그런 복된 가정들이 되어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말씀의 향연 > 메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의 정의와 비젼 (0) | 2023.06.02 |
---|---|
사명자를 키우는 부모 (1) | 2023.05.19 |
옛적 길 곧 선한 길 (1) | 2023.05.10 |
오순절을 기다리며 (0) | 2023.04.29 |
무화과 나무가 주는 교훈 (0) | 2023.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