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을 기다리며
사도행전 1장1~5절
속담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기도 하고
많은 교훈을 주기도 한다.
성공에 관한 속담이 많이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방법이 있다는 의미이다.
내가 어떤 일을 꼭 이루겠다는 이런 뜻만 있다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속담들도 많이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공든탑이 무너지랴"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
그리고 처음 들어봤을 수도 있는데
"무쇠도 갈면 바늘이 된다"
"티끌 모아 태산이다"
"누운 나무에 열매 안 연다"
이 속담들은 이 세상에서 노력하고 수고하고 애를 써야
결과를 얻는다는 그런 의미의 속담들이다.
그런데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살이 육적인 것은 다 신앙생활 하나의
그림자고 모형이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에도 성공하려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것처럼 내가 뜻을 가지고 의지를 드려야 된다.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을 들여야만 된다.
그리고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처럼 계속해서
노력해야 되고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야 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애를 써야 거기에 길이 열리고
방법이 나타나게 된다.
오늘은 "오순절을 기다리며"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첫 번째는,
신앙생활의 성공이 내 인생 전체의 성공이라는 사실을
알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을 해도 신앙생활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 인생은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볼 수가 없다.
그런데 때에 따라 세상살이에 여러 가지가 실패된 것
같지만 신앙생활에 성공을 하면 그 인생은 성공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살아가야 한다.
마태복음 16장 26절에 주님이 말씀 하셨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다른 번역에는 이렇게 표현 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여기의 목숨은 세상 육적인 목숨이 아니고
영적인 목숨을 말한다.
온 천하를 다 얻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가
온 천하를 다 얻었어도 영적인 내 목숨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원한 생명을 무엇을 주고 바꿀 수가
있겠느냐?
무슨 대가로 내 목숨을 내놓을 수가 있겠느냐?
영생이라고 하는 영원한 생명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에 성공하면
나머지 인생도 다 성공한 것이다.
한 번밖에 다녀갈 수 없고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인데 내 영생을 내가 성공적으로 얻었다면
신앙생활에 성공하는 것이 최고의 성공이라는 것이다.
야고보서 4장 13절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것이거늘
16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여기에 기독교인의 인생관이 다 들어 있다.
인생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는데
안개가 무슨 가치가 있나?
잠깐 보이다가 빛이 나면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안개다.
우리의 생명이 이렇게 허무하고 안개 같은 인생인데
어디 가서 1년 동안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고 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허탄한 자랑이고
그것은 악한 것이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선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떠나면 다 죄가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예수님이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원대로 되지 않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 많은 인생들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속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성경 전체에 나타난 아버지의 뜻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야 되고 인류 역사 전체에 하나님 나라가
마음에 이루어진 사람들만 모여 사는 하나님 나라를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속의 섭리대로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나눠주시고
여기에 동참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영생으로 부르신 것이다.
이 영생을 얻는 이것이 신앙생활이고
이것이 내 인생 전체의 성공이고
이것이 우리에게 축복인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우리가 이런저런 직업도 가지고
이런저런 일을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본업이 아니다.
우리의 본업은 내 영원히 구속받고 내가 영생을 얻고
생명을 얻는 이것이 나의 본업이고
나머진 다 잠깐 하나님이 필요하니까 악세서리로
준 것이고 임시방편으로 준 것이다.
우리의 본업은 예수 믿고 구원받는 일인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는 신앙에 성공해야 한다.
두 번째,
신앙생활에 성공하려면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예수님 대신 보내신 보혜사 성령은 누구신가?
그분은 예수님의 영이다.
그럼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빛이시고 사랑이시고 생명이시고 진리되시고
말씀이시고 그래서 성령 자체가 예수님처럼 빛이시다.
성령님은 사랑이시다.
성령님은 말씀이고 생명이고 진리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빛이 내 속에 충만하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속에 충만하다,
하나님의 생명이 나에게 풍성한 것이 성령 충만이다.
에베소서 5장 16~18절에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우리는 세월을 아껴야 된다.
우리는 잠시 지나가는 인생이기 때문에 세월을 아끼고
때가 악한 이 마지막 때에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라고 하였다.
주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리석은 자이다.
주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이다.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다.
대표적인 세상 정욕의 최고봉이 바로 포도주고 술이다.
세상 정욕적인 것에 취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것은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만 우리의 신앙생활이
성공적으로 되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결론은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하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한 것처럼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내 의지를 들여서 그 삶을 취해야 되고
내 의지와 뜻을 들이고 노력해야 되고
수고해야 길이 나타나고 방법이 열리고
그 뜻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성령 충만을 받겠다고 할 때 스스로 돕는 자를
하나님이 도우셔서 성령 충만을 주신다.
금년 오순절이 5월 26일이다.
셋째 주 5월 21일 날이 성령강림 주일이고
우리 교회는 창립 6주년 기념 예배가 있는 날이다.
우리는 한 달 남짓 남은 성령 강림 주일에
꼭 성령 충만을 받겠다는 뜻을 세우고 의지를 세워
지금부터 준비하고 기도해야 그것이 실제 나에게
나타나고 그 방법을 하나님이 주시고
그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생에게 의지를 주셨는데
이 의지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를 무시하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순종하도록 하나님이 계속 역사하고 계신다.
환경을 계속 열어 놓으시고 거기에 의지를 들여
순종하도록 만드시지 우리의 의지를
억지로 하도록 하지 않으신다.
의지를 따라 드리니까 그것이 개인적으로 상급도
되는 것이고 그 의지를 받으시고
하나님이 길을 여시는 것이다.
그 의지가 있고 결단이 있고 뜻을 세워야
거기에 하나님이 방법을 주신다.
이번 한 달 남은 성령 강림 주일을 초점으로 해서
이번 금년에는 내가 성령 충만을 꼭 받겠다는 뜻과
의지를 각자 결단하시고 세우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수많은 영성가들이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을
우물에서 물을 길러오는 것으로 표현하며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아왔다.
우리의 심령이 하나의 정원이라고 하면
이 정원 속에 꽃도 있고 꽃이 피면 열매도 맺게 되는데
성령의 전인 내 심령이 형편없는 볼모지라면
사막과 같고 광야와 같다면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종종 하나님의 역사가 없을 때
사막과 광야라고 했었다.
내 속의 심령이라고 하는 그 정원 속에 물이 잘 공급
되어야 꽃도 피고 열매도 맺게 되는데
이상야릇한 잡초들이 있는 형편없는 사막의 볼모지 같은
그런 심령의 정원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개관해서
물을 주어 꽃을 피워야 한다.
그래서 우리 각자의 심령이 정원이고
우리는 물을 공급해 줘야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데
이 물이 성령 충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 속에 이 심령이라고 하는 밭에 물을 주기
위해 물을 길어오는 방법이 네 가지가 있다.
제일 첫 번째는,
우물물을 길어오는 것이다.
두레박을 내려서 물을 퍼다가 물통에 받아서
그 물을 가지고 와서 정원에 물을 주는 방법이다.
힘이 많이 든다.
우물물을 퍼 와서 정원에 물을 줘야 되는데
물이 마를 수도 있고 정말 힘든 일이다.
두 번째는,
우물물에다가 양수기를 설치해서
물을 끌어오는 방법이다.
그러면 두레박질을 안 해도 양수기를 통해서
물이 나오니까 그냥 주기만 하면 된다.
제가 어렸을 때 17살에 광명시 철산동이라고 하는
산동네에서 살게 됐다.
집안이 망해서 산동네에다 집을 지어 이사를 하게 됐는데
산동네니까 물이 없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지게를 지고 몇 백 미터 내려가서
물을 길어왔었다.
연탄도 10장씩 날라야 되었다.
연탄 하나가 4kg데 10장이면 벌써 40kg, 20장을 나르면
80kg 쌀 한가마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산동네에서 부모님들을 부양하면서
이렇게 채워 날리면서 살았었다.
그런데 어느날 업자가 양수기를 가지고 우물을 파서
수도를 공급해 주었다.
그러니까 산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모른다.
물을 틀기만 하면 나오니까 얼마나 편해졌는지
이제 지게 질 필요도 없고 지금도 기억이 난다.
세 번째는,
시냇물이나 강물에 직접 정원까지 수로를 만들어서
끌어오는 것이다.
그러면 양수기를 틀어서 물을 끌어 올 필요도 없고
저절로 그 물이 수로를 타고 정원에 계속해서 공급이 된다.
처음에는 우물물을 길어 나르다가 그 다음에 펌프질도
하기도 하고 또 양수기로 우물물을 푸기도 하고
그러다가 직접 수로를 만들어 물을 끌어오는 방법이
되니까 얼마나 편해졌나
그럼 물이 차고도 넘치게 된다.
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 계속해서 물이 공급될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네 번째는,
하늘로부터 소나기가 내리고 폭포수가 내리는 물로
해결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의 정원을 갖고는
정원사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물을 길어올 필요도 없고 양수기를 댈 필요도 없고
수로 만드는 수고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하늘에서 저절로 비가 내려서 때를 따라 계속해서
물을 공급해 주니까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마음의 정원을 갖고 있고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서 말씀의 열매, 성령의 열매, 빛의 열매들이
많이 맺는 것처럼 신앙의 꽃이 활짝 피어야 되는데
여러분은 지금 각자 마음의 정원 속에
어떤 방법으로 물을 끌어대고 있는지
물 공급이 안 되면 내 심령은 사막화가 되고
광야가 되고 만다.
여기에 물을 끌어다 줘서 꽃을 가꿔야 되는데
어떤 사람은 우물물을 직접 길러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조금 발전하면 양수기로 물을 끌어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리고 수로를 만들어서 물을 공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이것은 다 인간적으로 수고하고 애쓰는 방법이지만
마지막 네 번째는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어서
영적으로 합일이 되면 때를 따라 계속해서 은혜로
공급해주는 방법이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이다.
4개의 단계 중에서 나는 지금 몇 번의 단계로
물을 끌어다가 내 마음의 정원에 물을 공급하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시기 간절히 바란다.
에스겔 47장에 보면
"1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 내가 돌아간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찌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하나님의 성전 동편에서부터 물이 흘러나와서
그 생수가 강물을 이루고 그 물이 가는 곳곳마다 소생의
역사가 일어나고 나무가 나타나고 많은 생물이 사는데
그 물이 처음 흐를 때는 발목 정도만 차게 된다.
그러다가 또 일 천척을 더 척량 하니까
그 물이 더 높아져서 무릎까지 차게 되고
더 물이 공급 되니까 나중에는 물이 허리에 오르고
나중에는 어떻게 되는가?
또 일 천척을 척량하니까 강물이 되어 헤엄할 물이 되었다.
이 네 가지 단계가 우물을 길어오는 단계와 짝을 이룬다.
우물물을 길어 가져오는 사람은 발목까지 은혜가 찬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양수기를 가지고 물을 끌어오는 사람은
무릎까지 찬 사람이다.
그리고 수로를 만들어서 끌어오는 사람은
허리까지 찬 사람들이다.
그런데 은혜의 강물을 이루는 그 사람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영적 합일 단계에 있는
그런 성도의 모습이다.
지금 나는 은혜의 발목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무릎 생활을 하고 있는지
또 허리까지 물이 찼는지
내 온몸이 잠기는 강물 같은 은혜를 받고 있는지
우리 각자가 자신을 점검해야 된다.
여러분이 구하는 성령 충만을 여러분의 단계를 바꿔서
1단계 있다면 2단계로, 2단계에 있다면 3단계로,
3단계에 있다면 4단계로 이렇게 성령 충만을 받도록
우리가 사모하고 뜻을 정하고 의지를 들여서
한번 도전을 해보자 의미이다.
은혜가 발목에 찼다면 교회도 왔다 갔다
기도처에 왔다 갔다 하게 된다.
무릎까지 차야만 무릎을 꿇어서 기도하는 단계가 된다.
그리고 사실 허리까지 차야 그때부터 은사와 은혜를 따라
봉사하는 사람이 된다.
또한 이제 은혜의 강물 속에 들어가야 주님과 하나가
되어서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면서
신령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내가 발목밖에 은혜가 차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내가 무릎까지 차서 정말 무릎을 꿇어
기도하는 단계가 되도록 하고
또 무릎 꿇어서 기도하는 단계를 뛰어넘어서
이번에는 은혜가 허리까지 차서 은사와 은혜를 따라
마음껏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은혜의 단계로
우리가 새로워지도록 각자 단계에 따라서
도전을 하고 새롭게 성령 충만을 받도록 뜻을 드리고
의지를 가지고 결단하고 순종하여 첫 발을 디딜 때
하나님이 길을 여시고 방법을 열어주신다.
이러한 의지가 없다면 하나님도 역사를 안 하신다.
성령 충만 받지 못하면 우리 신앙생활은 무미건조하고
냉랭하게 되고 뜨겁게 되지 못한다.
결국 신앙생활이 성공 할 수 없다.
열왕기하 2장에 보면
부활 승천의 모형을 엘리야를 통해서 보였는데
엘리야가 승천 할 때 엘리사가 끝까지 따라간다.
길갈까지 가서 "너는 여기서 머물라" 할 때
그래도 끝까지 따라간다.
벧엘에 가서 "너는 여기 머물라"
그래도 엘리사는 끝까지 따라간다.
여리고까지 가서도 머물라 해도 끝까지 따라가게 된다.
결국 요단강까지 가서 부활 승천하는 엘리야의 겉옷을
받게 되고 자신이 구했던 갑절의 영감을 받게 되었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결단하고 의지를 들여서
나에게도 갑절의 영감을 주고 엘리사처럼
나에게도 성령 충만을 주고
지금부터 갑절로 성령을 주시라고 할 때
어떤 환경이 와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면서
그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나가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성공하게 되고 이런 사람이 성령 충만도 받고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감나무에서 감이 저절로 떨어지는가?
처음에 했던 속담에 누워있는 사람에게 열매가 안 맺는다.
감을 따는 여러 가지 수고를 해야만 한다.
장대를 가지고 따든 나무를 흔들든 무슨 방법을 해야
하나님이 방법을 주시고 길을 여신다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 오뚝이와 같은 신앙이 돼서 한 달 남짓한
금년 성령 강림 주일에 성령 충만을 사모하면서
그 성령 충만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본문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까지의 일을
누가가 사도행전,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나서
40일 동안 보이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시고
4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저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금년에도 여전히 오순절이 오는데 예수님 부활하신 후 50일
그때가 오순절이다.
그래서 사도들이 열흘 동안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서 오순절성령을 받은 것이다.
지금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 강림을 주시겠다는
그 약속의 장소를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각자가 기도 처소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성령 받을 때 어디 길거리 가다가 받을 수도 있겠지만
약속하신 장소는 기도의 처소이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으로 예루살렘인 지도의 장소를
떠나지 말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야 한다.
성령 충만을 받으라 성령을 주시겠다,
사모하는 자에게 만족함을 주시겠다는 것은
성령의 약속들이다.
우리는 이것을 붙잡고 기도해야 한다.
아버지를 사모하는 자에게 만족감을 주신다고 하셨고
아버지를 구하는 자에게 찾는 자에게 만나주신다고
약속하신 말씀들이 성경에 많이 있다.
이것을 붙잡고 우리가 모여 합심으로 기도하면 이들에게
약속한 그날 성령이 내려서 성령 세례를 받는 것처럼
하나님은 약속대로 성령 충만을 반드시 주실 줄로 믿는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신앙생활에 성공을 해야만
우리는 인생을 성공하는 것이다.
온 천하를 얻고도 영생을 받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인생이 된다.
그래서 내가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서
이 세상살이에는 내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이 세상살이의 성공과 실패는 세상 기준이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에서 신앙생활의 성공은
바로 영생을 얻는 그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
반드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 되고
성령 충만과 이것은 직결돼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이 성령 충만은 가만히 있을 때 주는 것이 아니고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뜻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길과 방법을 여시고
우리의 실제 삶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저도 이번에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 시간이 되는 대로
교회 와서 기도하면서 오순절을 기다리면서
작정 하려고 한다.
여러분 마음속에도 결단하셔서 이번 오순절 성령 강림 그때
성령 충만 받으시고
신앙생활이 획기적으로 변하는 전환점을 맞게 하시고
정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수 있는 그런 놀라운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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