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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메세지

무화과 나무가 주는 교훈

by Andrew Y Lee 2023. 4. 23.
무화과나무가 주는 교훈


누가복음 21장 29~33절


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무화과 나무가 주는 교훈" 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다.


성경은 한마디로 비유와 상징의 문서라고 말 할 수 있다.


마태복음 13에 예수님이 7가지 비유를 말씀하실 때
제자들이 "왜 비유로만 말씀을 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할 때 예수님은 깨닫는 자만 깨닫게 하시고
감추인 자에게는 감추게 하신다고 말씀 하셨다.


영으로 계신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사물을 가지고
영의 것을 설명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다 비유와 상징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성경은 많은 비유 가운데 나무들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나무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창세기에 보면 에덴동산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었는데 생명나무를 먹어야 했지만
생명나무를 먹지 않았다.


그래서 잃어버린 생명과가 요한계시록 마지막 22장에 보면
그 생명나무가 나타나서 그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고
거기서부터 생명수가 흘러서 가는 곳곳마다
소생의 역사가 있다고 하였다.


성경은 나무들의 이야기고 나무를 통한
비유의 말씀들이 많이 있다.


이렇게 수많은 나무 중에서 오늘은
"무화과를 통해서 주는 교훈" 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첫 번째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무화과라고 칭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나무로 비유하셨는데
어떤 때는 포도나무로 어떤 때는 무화과로 비유 하셨다.


이사야 5 7에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 7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포도원을 세워서
이스라엘과 유다 민족을 거기다 세웠는데
이들이 바로 포도나무였다.


하나님은 극상품 제일 좋은 포도나무를 거기다 심었는데
그들이 쓸개 포도라고 하는 나쁜 포도 열매를 맺어서
그 포도원을 지키지 못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포도나무라고 비유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신약에 와서 포도나무로 오시게 된다.


반면에  하나님은 이 이스라엘을 무화과로 표현을 하셨다.


예레미아 24 말씀 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쳐들어왔는데
그때 예레미아에게 광주리 두 개를 환상으로 보이셨다.


한 광주리에는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다른 광주리에는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가 있다고 하였다.
이 두 개의 광주리를 환상으로 보이셨는데
먹을 수 있는 극히 좋은 무화과는
5 말씀에 이렇게 표현하셨다.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그리고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는 무화과를
8에 이렇게 표현했다.
"8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을 이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 같이 버리되"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에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하셔서 그들을 책망하시고
그들을 고치시려고 바벨론 포로로 삼으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자들은
좋은 무화과이다.


그런데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거나
애굽으로 피난 가서 도망간 자들은 극히 악한 무화과라고
말씀하셨다.


애굽으로 도망가고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는 그들은
하나님이 버리는 먹을 수 없는 무화과지만
오히려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는 그들은
좋은 무화과가 돼서 그들을 고치시고
언젠가는 돌아오게 하여 새롭게 회복시키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스라엘을 무화과로 비유하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신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회복시키려고
징계하기도 하고 채찍을 드시기도 하고 어려운 환경을
주는데 이것을 순복하여 훈련을 잘 받는 사람은
좋은 무화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반항하여 도망하거나 그 징계와 훈련을
받지 않으려고 하면 그것은 악한 무화과가 되고 만다.
이것이 무화과를 통해 우리에게 주님의 교훈이다.


예레미아 8 13 말씀에도 이렇게 표현 하고 있다.
"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을 진멸하는데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고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는 것처럼 다 말려
버리겠다고 하였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진멸당하면 민족이 말라버리는
비유의 말씀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이렇게 무화과로 표현하셨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고 무시하여
결국 멸망 받았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예수님 믿고
새롭게 영적 이스라엘 된 우리가 무화과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갈라디아 3 7에는 뭐라고 말씀셨는가?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아들이다.


갈라디아서 3 9 말씀에는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일경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셔서 아브라함과 같은 그 믿음의 길을
걸어가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모든 유업과
그 모든 복을 함께 받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가 지금 무화과이고 우리가 이스라엘이다.


갈라디아서 3 28절로 29 말씀을 보면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인과 헬라인을 얼마나 구별 했나
이방인은 개와 짐승처럼 그렇게 멸시 천대 받고
선민인 이스라엘만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런 개념이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은 여자는 숫자에 넣지도 않을
만큼 천대받았고 또 종이나 자주, 노예와 주인을
얼마나 구별을 했는가?


그래서 소, 돼지에게 낙인을 찍는 것처럼 노예들에게
낙인을 찍어서 사고 팔았던 시대가
예수님 당시의 시대였다.


갈라디아서 3 28에 사도 바울이
분명히 선언을 하였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예수님 안에서 하나며
누구든지 믿음을 통하여 예수를 믿으면
헬라인이고 유대인이고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다고 하였다.


주인이고 종이고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지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으면 다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유업을 이을 자라고 하였다.
이것은 당시의 놀라운 선언이었다. 


우리도 역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고
무화과임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무화과는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사기 9에 보면 요담의 우화 이야기가 있다.
사사 기드온이 나라와 민족을 구하고 죽었을 때 
그의 아들들이 자그마치 칠십명이었다.


이들 중에 세겜에 사는 아비멜렉이라고 하는 자가 왕이
되려고 그 형제 칠십인을 다 죽였는데 막내아들인
요담만 살아남게 되었다.


그 요담이 그 형제 아비멜렉이 왕이 되는 것을 빙자하여
우화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떤 날 나무들이 왕을 세우려고 하는데
먼저 감람나무에 가서
"네가 우리 나무들 중에서 왕이 되면 좋겠다" 라고 하니까
이 감람나무는 나의 기름은 성전에 받쳐져서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데 어찌 이것을 버리고
내가 왕이 되겠느냐" 하며 사양해버렸고


그 다음에 무화과에게 가서
"네가 우리의 왕이 되면 어떻겠느냐" 하니
무화과는 "나는 나의 단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데 이 사명을 버리고 나는 왕이 되지 않겠다"
고 하였다.


그리고 또  포도나무에 가서
"네가 왕이 되면 어떻겠느냐" 하니까
포도나무도 나의 포도송이로 새 술을 만들어 치료제로
사용되는 이 사명을 버리고 어떻게 내가 왕이 되겠느냐
하였다.


그래서 결국은 누가 왕이 되는가?
가시나무가 왕이 되는데 가시는 사람을 찌르기만 하고
아무 유익을 주지 않는다.


아비멜렉이 형제 칠십인을 죽이고 왕이 된 것을
요담이 우화로 이렇게 가시나무가 왕이 됐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처럼 무화과는 자신의 단 아름다운 열매로 사람들의
배고픔을 면하게 하는 것이 사명인데 그래서 이 무화과는
열매가 맺어야 한다.


마태복음 21 18~19 말씀에 보면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길 가는 시장한 나그네에게 무화과는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이 사명인데 잎사귀가 나면 이미 무화과가 달려야
되는데 무화과가 달리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이 시장기를 면하지 못했지만
그 무화과 열매가 없어 저주 해버리니까
무화과가 바로 말라버렸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무화과가 열매를
맺지 못하니까 하나님이 저주를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AD 70년에 완전히 멸망했고
이스라엘 민족은 구원받지 못했다.


이후로 새롭게 그들이 구원 받으면 이방인과 합쳐서
한 새 사람이 되어서 구원을 받는다.


처음 부름 받은 이스라엘은 영원토록 열매 맺지 못하는
민족으로 망해버리고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화과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이렇게 예수님이
저주하는 것처럼 우리는 열매가 없으면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제 영적으로 이스라엘이 된 우리는 항상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


누가복음 13 6~ 9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8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무화과나무를 포도원에 심었다고 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이다.
포도원이라는 기업 속에 무화과를 심었다.


그런데 3년이 지나면 당연히 열매를 맺어야 되는데
열매 맺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것을 찍어버리라고 하니까 과원지기가
실과 맺을 때까지 두루 파고 거름도 줄 테니
좀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열매를 맺지 못하면 땅만 버린다고 하였다.
여기에 땅은 무엇인가?
우리의 심령을 말하고 있다.


내 심령 속에 하나님의 열매를 맺고 그 심령 속에
열매가 밖으로 드러나서 많은 열매 맺는 생활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열매를
나눠줘야 되는데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처럼
실제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3년 공생애를 통하여
많은 말씀을 전했어도 열매 맺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는 열매가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일반적인 나무는 다 꽃이 피고 그 꽃에서 열매가 달린다.
그런데 무화과는 꽃이 없으니까 무화과이다.
무화과는 그 열매 속에 꽃이 함께 숨어있다.
이것이 무화과의 특징이다.


대부분의 나무는 다 열매가 눈에 보이도록 이렇게
나오는데 이 무화과는 끝에 보면 구멍이 하나 있다.
그리로 무화과 벌이 들어간다.


무화과 속에만 들어가는 벌이 있는데 무화과로
들어가서 그 속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그래서 벌이 왔다 갔다 하면서 꽃술이 묻혀 지면서
꽃이 열매 안에서 피게 된다.


무화과를 쪼개 보면 그 속에 수술 같은 게 있는데
이것이 꽃과 열매가 합쳐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눈에 보이는 열매들도 많이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속으로 숨어있는 열매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두 가지 열매를 다 맺어야 한다.


물론 대부분 마음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드러나지 않도록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그런 열매들도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무화과를 통해
교훈을 받아야 한다.


외부적으로 드러난 행실들, 입술의 열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입술의 열매는 기도도 하고
찬양도 하고 때에 따라 그 입술에서 저주도 나온다.


악이 있는 대로 튀어나오는 것은 악한 열매이고 
또 예수님을 통해서 신앙 고백을 하는 것은
좋은 열매들이다.


우리가 빛의 열매도 있고 말씀을 통한 열매도 있고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으니까 성령의 열매도 있고
사랑의 열매도 맺고 인내의 열매도 맺고
화평의 열매도 맺고 오래 참음의 열매도 맺고
많은 열매들이 있다.


아가서 3 6 말씀에 보면
"6 연기 기둥과도 같고 몰약과 유향과 장사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기롭게도 하고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고"
이 거친 들은 광야이다.


광야 연단을 다 지나서 사랑받는 술람미라고 하는 여인이
연기 기둥이 같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기도의 향기라고 하는
여러 가지 삶의 향기들 엄청나게 많이 모여서 하나의
기둥처럼 연기 기둥처럼 향연의 기둥처럼 그렇게 기둥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아가서 4에 보면 신부에 대해서 칭찬하는 말씀이
많이 있는데 4 12부터 보면
"12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
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1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초와
14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이 모든 향품의 나무를 동산에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주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에
그 많은 향기들 삶의 행실에서 여러 가지로 드러나는
많은 향기.


그리고 기도의 향을 합쳐서 그 향기가 어우러져서
하나의 몰약 기둥, 하나의 연기 기둥처럼
올라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광야 생활 속에서 이런 열매와 이런 향연을
올려드려야 한다.


아가서 4 6에 보면
신부를 칭찬하면서 솔로몬을 빙자해
예수님이 그런 표현을 하셨다.
"6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그 날이 오면
이것이 예수님의 일생을 아가서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 몰약 산은 바로 예수님의 골고다 십자가를 말하고 있다.


몰약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하는 이것이 몰약의 향기가 나오는
몰약 산이다.


그리고 십자가 지기 전에 마지막 겟세마네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간절히 하는 이것이 유향 산이다.


예수님도 이렇게 몰약 산과 유향 산을 통해서 삶의 희생,
십자가의 죽음, 많은 영혼을 위한 기도의 향연을
이렇게 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마리아도 마찬가지이다.


얼마나 향연이 올라가면 이렇게 연기 기둥처럼
보이겠는가?


성도의 삶은 이런 향연이 연기 기둥과 같은 향기 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반면에 무화과가 내부에서 꽃과 열매가 합쳐진
열매가 되는 것처럼 우리가 마음으로 맺는 열매도
있어야 한다.


생각으로 맺는 열매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랜시스라고 하는 성자는 인류 역사 가운데서
감히 누구도 받을 수 없는 보상을 받았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처럼 5군데 상처를 똑같이 받았다.
예수님의 그 사랑을 맛보게 해달라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맛보게 해달라고 평생 기도 제목이었다.


얼마나 그 사랑이 크기에 인류를 위해서 이곳에 와서
십자가에 죽었는지 그 사랑을 맛보게 해 달라고
그 십자가의 고난을 맛보게 해 달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보상을 주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똑같은
흔적을 가지게 됐는데 프랜시스는 평생 옷으로 그것을
감추고 피를 흘리면서도 일생 동안 누구에게도
한 번도 보여주지 않고 감추며 살았는데
이것이 프랜시스의 아름다운 향기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덕행과 마음속에 숨은 열매와 같이
내적인 생활, 영적인 생활 속에서 안으로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맺어지는 열매들도 우리 안에 풍성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드러나는 것만이 열매가 아니다.


베드로전서 3 1~6
"1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우리가 단장도 하고 머리도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으며 외모도 최선을 다해서 있는
범위 내에서 아름답게 꾸미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마음에 숨은 사람,
이것을 우리는 속사람이라고 하는데
내 마음 안에 있는 나의 속사람 마음 안에 있는
속사람이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에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고 하였다.


누가 옆에서 어떠한 환경으로 나를 공격하고
어떤 환경이 와도 안정된 심령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 온유하고 안정된 속사람 이것이 내면으로 맺는 열매이다.


이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구약의 많은 거룩한
부녀들도 다 이렇게 환경 속에서 자기를 단장을 했고
그중에 특별히 사라의 예를 들었다.


여러분 사라의 일상을 한번 생각해 보자.
남편을 따라서 알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아브라함이 가는 길을 따라만 가야 되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가나안 땅이 어느 곳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생 그 남편이 마치 예수님의 인도함을 따라
우리가 따라가는 것처럼 남편을 따라 주를 따라 갔다.


그런데 그 알지 못하는 가나안 땅에 갔는데
거기 가자마자 아내를 빼앗기기도 하고
여러 어려움을 겪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또 아브라함이 무슨 자식을 낳아야 된다고 하여
하갈 종을 통해서 자식을 낳는데 여인으로서
얼마나 수모를 당하고 얼마나 어려웠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삭을 낳았는데
이삭을 어느 날 하나님께 갖다 바쳐야 된다고 해서
모리아산에 가서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일들
일생을 통해서 사라의 속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는가?


그런데 사라는 그 모든 환경 속에서 온유함을 유지하고
그 모든 환경 속에서 숨은 사람이 안정된 사람으로
쫓아가서 아브람이 24년 만에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받을 때 사래가 사라가 되면서
같은 이기는 자의 반열에 들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일생이고 사라의 일생이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환경을 누구 탓으로 하면 안 된다.
여러 가지 환경 속에서 사람마다 자기의 가는 길이 있다.
그 모든 환경에 누구를 탓하는가?
이 속에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아무도 탓할 것이 없다.


그래서 바깥으로 드러나는 열매도 맺지만 무화과처럼
숨겨진 내면의 꽃과 열매가 함께 맺어지는 내면의
열매 맺는 생활도 우리는 해야 된다.
그러니까 영적인 사람들은 화려한 교회건물에 취하면
안 된다.


우리가 은밀하게 하나님께만 드려지는 열매로
주님께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것이 마음에 숨은 사람이고 그 마음에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으로 환경을 따라가는 것이 무화과의
특징이고 무화과와 같은 열매를 우리가 맺어야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예수님이 누가복음 21에 무화과나무 비유를 하셨다.


무화과나무가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안다고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고
하셨다.


다른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는 인자가 문 앞에 있는 줄
알라고 말씀하셨다.


무화과가 이스라엘을 칭하는데  이스라엘은 AD70년에
완전히 나라와 민족이 멸망했고 1948년 독립해서
다시 이스라엘 나라가 나타났다.
이것이 무화과에 싹이 난 것이다.


그런데 여기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과 좀 다르게 29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고 하였다.


다른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는 모든 나무가 없다.
모든 나무를 보라고 한 것은 1948년 2차 대전 이후에
수많은 나라들이 독립 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1948년도에 북한도 중국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또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과 유럽의 많은 나라들
그리고 소련의 붕괴로 22개국이 1948년 이후1990년대에
독립 했다.


모든 나무를 보라고 한 이 말씀이 이렇게 이루어 졌다.
이스라엘처럼 1900년 만에 다시 나라와 민족이 세워진
나라가 어디 있는가?
이렇게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까이 왔고
무화과 열매 맺을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무슨 의미인가?
인자가 문 앞에 이르러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버림받았던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게 된다.


그래서 싹이 나고 꽃과 열매가 한꺼번에 그냥 나오는
것이 무화과의 특징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꽃 필 새가 없이 그대로 열매로 나오게 된다.


인류 역사의 수많은 기간 동안에 1948년 독립해서
멀지 않아 몇십년 안에 그대로 꽃이 피고
그대로 열매가 돼서 무화과 열매 맺게 된다.


이것으로 인자가 문 앞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고 이제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그 때가 됐고
예수님 말씀이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루겠고
천지가 없어지지만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이렇게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우리들은 이렇게 무화과에 싹이 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이때가 마지막 때구나 하는 그런 교훈을
가지고 살아가야 된다.


말씀의 결론은
무화과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예수 믿는 아브람의 후손인
우리 자체가 무화과라는 사실을 알고 살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무화과가 삼년 만에 열매를 맺지 못하면
땅을 버린다고 하는 것처럼 이 말씀은 주님이 우리의
심령의 땅을 책망하시는 것이다.


왜 열매를 오랫동안 맺지 못하느냐?
왜 땅만 버리느냐?


우리는 항상 열매 맺는 생활을 해야 되는데 외적으로
표면적으로 드러난 열매도 있지만 마음으로 숨은 사람,
속사람의 열매도 동시에 맺어야만 한다.


믿지 않는 남편도 이것을 보면서 돌아온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실재적으로 독립을 해서 주님이 오실 때가 되면
주님이 먹을 만한 좋은 무화과냐?
아니면 악하여 먹을 수 없는 무화가냐?


하나님이 연단하시고 훈련하시고 진귀한 그 훈련과 연단을
잘 받으면서 회복되어 가는 사람이냐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와 연단을 멀리하고 피하여 도망가는 악한 무화과가
될 것인가?
이 모든 무화과에 대한 심판의 날이 왔다는 사실이다.


인자가 문 앞에 이르고 주님 오실 때가 매우 임박한
이 마지막 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모든 삶은 전부 주님 앞에 벌거벗은 사람으로
드러나면서 우리는 심판대 앞에 놓일 수밖에 없는 그런
시간을 앞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머지않아 주님이 오시면 이제 다 7년 대환란 속에서
심판하고 우리를 전부 책망하시고 우리를 열매로 거둘
것은 거두시고 상과 벌을 주시는 그런 때를 우리 앞에
놓고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저와 여러분은 무화과라고 하는 사실을 깨달으시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포도원 안에 무화과를 심으신
것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선민으로 택하셔서 부름을 받았다.


성령을 주셨고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의 땅이라고 하는 땅 속에 이제는
많은 열매를 맺어야 되는데 이 마음의 열매들이
밖으로 드러나는 열매도 있지만 마음속에 있는 열매도
있고 그래서 이 열매들이 심판을 받을 때를 우리는
가까이 두고 산다고 하는 이 분명한 사실을 깨달으며
무화과를 통해서 주는 이 모든 교훈들을 마음에 깊이
새겨서 남은 때를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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