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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메세지

유월절에 대한 영적 의미

by Andrew Y Lee 2023. 4. 21.

출애굽기12:5~12

 

"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6 이 달 십 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 아침까지 남겨 두지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찌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오늘은 "유월절에 대한 영적 의미" 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유월절을 비롯하여 무교절

그다음 초실절, 오순절 그다음 나팔절, 속죄절,

초막절 장막절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7개의 절기는 골로새서에서 분명히

장래일의 그림자라고 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은 선민으로 택함 받아서 모형으로 지나게

됐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어진 절기도 있고

아직 안 이루어진 절기도 있고

또 유월절을 비롯한 이 모든 절기가 우리 개인의 일생에

다 이루어져야 된다.

 

개인적으로 오순절을 지나야 되고 속죄절을 지나야 되고

개인적으로 장막절까지 이르러야 된다.

 

또 이스라엘 민족이 머지않아 다시 돌아오면

그들도 그 절기를 다 다시 한 번 개인적으로

이루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절기에 대한 의미를 깨닫고

우리가 매 절기가 올 때마다 영적 의미를 알고

지나가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오늘은 유월절에 대한 영적 의미를 살피면서

제일 첫 번째로 살필 것은

어린양의 영적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유월절을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그 살을 먹었다는 이것이 유월절에 규례이다.

 

5 말씀에 보면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라고 하였다.

 

유월절에 드리는 어린 양은 흠이 없어야 된다.

흠이 없다고 하는 말은 털이 한 두 개라도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온전한 양이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1년 된 수컷으로 하도록

그렇게 규례가 정해져 있다.

12 2에 보면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유월절을 지나면서 이스라엘의 달력이 시작되고

신년이 시작된다.

 

첫 달 1월 달을 이스라엘 역으로 아빕월이라고 한다.

아빕월 1월 달에 이스라엘 달력의 시작이 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10 말씀에 보면

"아침까지 남겨 두지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어린 양을 가족대로 준비하는데

여기 3,4 말씀이 좀 어렵다.

3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찌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이 말은 가족이 서너 명이면 서너 명이 먹을 수 있는

크기의 양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또 양이 너무 크면 이웃과 합쳐서 그 양 한 마리를 먹을

인원을 정하라는 말이다.

그 양을 다 먹어야 되기 때문에 수를 정하는 것이다.

 

그 양의 크기에 따라서 몇 사람이 양을 먹을 것인지

가족 수대로 아니면 이웃과 합쳐서 그 양한 마리를

몇 명이 먹을 것인가를 미리 정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김없이 다 먹어야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8~10 이하의 말씀을 보면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 아침까지 남겨 두지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그리고 14에는

"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찌니라" 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규례 중에 6~7 말씀을 보면

"6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시작은 아빕월에 시작 하는데 그 양을 10일 날 준비해서

14일까지 간직했다가 해질 때에 그 양을 잡아서

그 피로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양 한 마리를 준비하여 그 피를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정한 식구대로 그 양을 전부 다 먹고

떠나야 된다.

 

이것이 정월 14일 저녁부터 시작해서 15일까지인데

오늘날로 말하면 대개 이스라엘은 3~4월 중에 걸린다.

 

금년에는  4월 달이겠지만 3월에 걸릴 때도 많이 있다.

 

이 유월절에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좌우 인방에

바르고 그 살을 전부 먹고 떠나는 규례인데

이때 이 어린 양의 영적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어린 양은 바로 예수님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선민으로 택한 받아서 모형으로 일을 했지만

실제는 어린 양인 예수님이 오셔서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분이 대신 희생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른 그 어린양의 피 때문에

재앙이 넘어가고 있다.

 

그래서 애굽의 장자들은 다 죽었지만 이스라엘 사람은

그 피를 볼 때 넘어갔다.

 

예수님 어린 양의 피 때문에 그분의 희생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민족이었지만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므로

생명을 구원해줬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유월절 규례의 어린 양은 바로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구약의 수많은 예언들이 어린 양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언한 바가 있다.

 

이사야 하나만 살펴보면

이사야 53 4~7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우리를 위해서 그분이

고난을 당하고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고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채찍을 맞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대신 이렇게 하셨다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서 예언해 놓았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라고 하는 세례 요한도

예수님이 공생애 때 요단강에 오셨을 때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보라 세상 죄를 지고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세례 요한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그렇게 고백하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다.

 

또 예수님 자신도 자신을 어린 양 희생에 비유하면서

유월절을 준비하도록 하셨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사복음이 전부

이것을 말하고 있는데

 

마가복음 14 12~15 말씀에 보면

"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3 예수께서 제자 중에 둘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 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15 그리하면 자리를 베풀고 예비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라 하신대"

 

이 무교절은 원래 일주일이다.

첫날이 유월절이다.

 

그다음 날이 무교절이고 그다음에 초실절이 오고

그리고 무교절로 한 주간 보내게 된다.

이 기간은 이렇게 묶여져 있는 절기이다.

 

그래서 무교절 첫날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선생님 어디서 유월절 잡수시게 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면서 예수님 자신이 유월절을 지키시고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셔서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라가서 그 집 주인에게 유월절을 보낼 객실이

어디 있냐고 물을 때 그가 자리를 베풀고

예비 된 큰 다락을 준비할 것인데 이곳에서 유월절을

준비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제자들이 선생님 말씀대로 물 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서 그 집에서 유월절을 맞이하게 된다.

 

예수님이 유월절 식사를 하면서 18

"18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예수님이 어린 양이 되셨기 때문에 가룟 유다를 통해서

머지않아 그 밤에 팔릴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22 이하에

"22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 잔을 너희가 영원히 기념하라 하시며

성찬식을 제정하도록 말씀하셨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신 그대로 어린 양으로 오셨고

세례 요한이 외쳤던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이 유월절 날

그 규례대로 유월절 어린 양으로 팔려갔다.

 

가룟 유다에게 은 삼십에 팔리는데 은 삼십은

그 예수님 당시 어린 양 한 마리 값이다.

그러니까 어린 양으로 예수님이 팔리신 것이다.

 

그 후 신약에 와서 베드로 사도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표현했다.

 

베드로전서 1 18~19 말씀에 보면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베드로 사도도 이렇게 외쳤다.

 

고린도전서 5 7에 보면 사도 바울도 말씀하였다.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그리고 요한계시록 5 6에 보면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인을 떼는 그 속에 어린 양 한 마리가 그 인을 받아서

그 책을 떼고 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어린 양은

예수님의 영원한 새 이름이다.

 

이기는 자에게 새 이름을 준다고 했는데

예수님도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하였다.

 

죄인처럼 이 땅에 와서 이 세상을 이겼다.

마귀를 이겼다.

환경을 다 이겼다.

 

그래서 예수님이 모범적인 이긴 자가 돼서

예수님이 약속대로 새 이름을 받는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니까 그 이름이

어린 양이라고 하였다.

계속해서 요한계시록은 어린 양이라고 나온다.

 

이스라엘의 생명을 위해서 어린 양을 희생의 모델로

주었지만 실제는 예수님이라고 하는 어린 양이 오셔서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를 대속하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대속의 죽음을 그가 당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 양은 바로 예수님이고 어린 양의 피는

바로 예수님의 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럼 두 번째,

이스라엘은 그럼 누구를 상징하는 것인가?

 

유월절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고 죽음에서 건지는 방법이

어린 양이었다.

 

그러면 그 어린 양의 피를 통해서 구원받는 대상은

누구였는가?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 개념이 예수님의

새 언약 이후, 십자가 사건 이후로 이 이스라엘 민족의

의미를 탈피하여 이방인인 우리도 이제 이스라엘이라는

개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는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부른다.

 

성경을 찾아보자.

로마서 2 28~29 말씀

"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아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이스라엘 민족은 할례를 받았지만 육신의 할례가 아니고

마음에 할례를 받는 것이고 표면적인 유대인이 아니고

이면적인 유대인 바로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예수님의 피를 믿고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곧 어린 양으로 구원받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우리가 이스라엘이라는 말이다.

영적 이스라엘이 된 것이다.

 

로마서 4 16 말씀

"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아브라함이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다.

 

갈라디아서 3 7~9 말씀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아브라함이 그 믿음의 길을 걸어갔고 8 말씀처럼

복음을 받아서 아브라함처럼 그 복음을 따라 믿음으로

걸어가는 사람은 전부 아브라함의 아들이다.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일경을 다 주셨다.

이것이 모형이 돼서 하늘나라의 그 땅을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을 함께 받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 29 말씀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여기서 속했다는 말은 영적 할례 받고

죄에서 해방됐다는 말이다.

 

그럼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우리가 약속대로

그 유업을 받는 자들이 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 때 12사도가 유대인이고 3천 명, 5천 명이

회개하며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이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이고 온 세계에 흩어진

열 지파, 이스라엘에 그 피가 다 들어오고 있다.

 

지금 우리가 다 알지 못하지만 이스라엘의 많은 피들

흩어져 있는 그들이 다 돌아오고 있는데

이들도 전부 영적 유대인이 되어 진다.

 

세 번째는,

유월절 규례와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상징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유월절 규례와 여러 가지 유월절에 지켜지는 그런

상징들을 통하여 우리가 무슨 교훈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본문 가운데 12 42 말씀을 보면

"42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을 인하여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대대로 지키라고 하였다.

 

17 말씀에도 보면

"17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를 삼아 이 날을 대대로 지킬찌니라"

 

 14에도 말씀하였다.

"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찌니라"

 

영적 이스라엘 된 우리도 이 유월절을 규례대로 지켜야 한다.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된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언약한 유월절을 대대로 지켜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은 또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면서

영원히 대대로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의미가 무엇인가?

 

이것은 바로 우리가 대속의 사건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대속을 잊지 말라"

막연한 속죄가 아니고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받는 것은 대속이다.

 

이 대속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잘 이해를 해야

유월절을 바로 이해할 수가 있다.

 

누군가가 돈 천만 원을 빌려서 그걸 갚지 못하니까

대신 누군가가 갚아주는 것이다.

돈 빌린 사람을 깡패들이 천만 원을 빌려주고

볼모로 잡았다.

그러면 누군가가 천만 원을 줘야 풀려날 수 있다.

이 돈을 대속금 이라 한다.

 

누군가가 곤장 10대를 맞기로 되어 있는데

그 곤장을 누가 대신 맞아준다면

그것을 대속금이라고 한다.

 

옛날에 실제 그랬다.

관아에서 사또가 곤장 열대를 치라고 할 때 돈이 있는

사람은 상놈을 불러다가 돈을 주고 대신 맞게 하였다.

지금 자기가 맞을 곤장을 대신 맞는데 그때 돈을 준다.

이것을 대속금이라고 한다.

 

우리는 죄인이고 그냥 놔두면 우리는 다 지옥의 자녀이고

멸망의 자녀들이다.

 

그럼 내가 지옥에서 건짐 받으려면 지옥에서 받게 될

형벌을 누군가가 대신 받아야 우리가 건짐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대속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모세혈관이 다 터졌다는 얘기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돼서 그렇게 고민하며 버리지

말아달라고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 버림받는 이것이

죄인들을 대속하여 우리가 받을 죄형벌을 대신 받으러

내려가시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를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대속이라고 한다.

 

이 대속의 의미를 알아야 유월절 내 대신 피를 흘려준

어린 양의 피에 대해서 우리가 구원의 감격을 가지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

 

유월절을 지킬 때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결단하면서 남은 생애를 살아가는 모든 원동력이

이 대속의 원리를 아는 것에 있다.

'나를 위해서 그분이 대신 지옥 형벌을 받았구나'

누가 이렇게 하겠는가?

 

여러분 이원등 상사가 1966년 2월 4일 공수특전단

고공침투 훈련 때 부하와 함께 낙하산을 타고 내렸는데

부하의 낙하산이 펼쳐지지가 않았다.

이렇게 떨어지면 죽게 된다.

 

자기가 다가가 공중에서 부하 낙하산을 펴주고

자기는 떨어져서 그대로 죽고 말았다.

부하를 위해서 희생하는 이것도 보통 희생은 아니다.

 

같은 형제자매도 아니고 같은 전투원인 그 동료 때문에

대신 죽은 것이다.

 

수류탄이 터졌는데 누군가가 부하들을 위해서 자기가

끌어안고 대신 죽은 일도 작은 희생은 아니다.

누군가가 자동차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는데

대신 밀어내고 자기가 치어서 죽는 그런 일도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속의 대상은 원수들 죄인들이다.

하나님의 원수들이고 아무 가치 없는 벌레 같은 인생인데

나 같은 인생을 위해서 원수 된 우리를 위해서

그분이 대신 내 고통을 받고 지옥 형벌을 받고

나를 건져줬다는 이것이 대속의 의미이다.

 

우리는 유월절에 이 의미를 생각할 때 나의 헌신의

원동력이 여기 있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해야 되는

그 사랑의 원동력이 여기 있고 나의 남은 생의 원동력이

다 여기 있다.

 

예배의 원동력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분이 나를 위해서 대속해 주고 그 죽음 때문에

나는 주님을 위해서 나 자신을 들여 예배하고

나 자신을 희생하고 순교의 원동력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대속의 죽음과 유월절 어린 양의 그 피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우리가 온전하게 주님께 헌신하지

못하고 우리 자신들을 드릴 수가 없다.

 

그래서 이것을 기념하고 계속해서 대대로 지키라고

주님은 계속 강조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사죄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나의 죄 문제는 오직 예수님의 피로만 해결된다.

그 보혈의 능력으로만 우리가 살아가야 된다.

 

그 피가 있기 때문에 지옥과 천국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천국으로 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 피의 대속의 능력이 나를 천국으로 옮겨주는 것이다.

 

이것을 믿고 이 능력을 의지해 살고 유월절을 맞이할

때마다 감사하고 감격하고 그러면서 다시 한 번

결단하면서 남은 생애를 주님 앞에 헌신할 수 있는

이런 자들로 살아가기 축원한다.

 

본문 8~9 말씀에 보면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양 한 마리를 전부 다 먹어야 된다.

 

그런데 쓴 나물과 함께 먹으라 하였다.

이 쓴 나물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고난에 함께 동참을 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광야를 나가는데 광야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젖과 꿀이 흐르는데 광야 40년은

계속해서 악령들과의 싸움이고 환경과의 싸움이고

광야 40년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곳이 광야이다.

 

우리가 이스라엘 광야를 한번 가보면 이해가 된다.

풀 한포기 안 나는 여기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어디서 물을 먹고 어디서 양식을 얻고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기적적으로 만나를 내리고 생수를 내려주고

하나님의 기적의 연속을 맛보는 그런 환경이 광야이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의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다.

이것이 쓴 나물을 함께 먹는 것이다.

 

디모데 후서 1 8

"8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사도 바울이 디모데라고 하는 후계자를 향해서

이 말씀을 하면서 "고난을 받으라" 이렇게 말했다.

 

12 함께 말씀 보겠다.

"12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디모데 후서2 3

"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그리고 2 9~12 말씀

"9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 고난이 오는데

실제 하나님이 고난을 주신 것은 당신이 하시는 일이고

우리가 고난이 오든 안오든 그것을 받을 준비를 항상 하고

가라고 말이다.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 고난의 길을 간다고 하는

이 고난을 각오하고 이 길을 가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고난이 오는 것은 각오한 사람이 받는 것이고

각오하지 않으면 그 고난을 이길 수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언제든지 고난을 각오하고 이 길을 가는

것이 쓴 나물을 함께 먹는 것이다.

 

3 11~12에도 말씀하시고

"11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4 5에도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다시 본문으로 가면

그다음에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이 어린 양의 피는

예수님의 피고 어린 양의 살 이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내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하고

영생을 얻지 못한다고 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의 살을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분 말씀 하나하나를 지켜가는 것이

그분의 살을 먹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린 양의 그 살을 다 먹어야 되는 것은

바로 유월절을 시작하면서 그걸 다 먹는 규례를 보여주신

것이 그 모든 말씀을 다 지켜야 그 살을 다 먹는 것이다.

 

그리고 회개가 다 완성이 돼야 그 피를 다 마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영생이 없다.

 

이것을 불에 구워라 이 말이 무엇인가?

성령을 통하여서 깨닫고 성령을 통하여 회개하고

불같은 성령의 역사로 이것을 감당하라 말이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지키겠는가?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회개할 수 없다.

성령의 감동으로 행할 수 있다.

이것이 불에 구워서 그 살을 다 먹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문 11 말씀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찌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허리에 띠를 띠고 먼 길을 가야 되는 사람의 모습이다.

 

이 밤에 400년 동안 종살이 하던 애굽을 떠날 때 애굽의

장자는 다 죽고 여러분 얼마나 급박한 밤인가를

실제 한번 연상을 해보자

 

400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모세가 나타나 함께 떠나는데

지금까지 10대 재앙이 다 내려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가 없는 곳은 장자가 다 죽었다.

 

이제 떠나야 되는데 허리를 띠를 띠고 졸라매라는 것이다.

그리고 신을 신고 그리고 지팡이를 잡는 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자세이다.

 

그럼 우리가 이것을 영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되겠는가?

허리에 무엇을 띠어야 하나?

진리의 띠를 띠어야 한다.

사랑의 띠를 띠라는 것이다.

 

지금 애굽을 떠나는 죄악 세상을 떠나는 구원받는

이 영적인 길을 가는 사람은 진리의 띠를 반드시

띠어야 되고 사랑의 띠를 띠어야 된다.

 

발에 신을 신으라는 것은 복음의 신을 신으라는 것이다.

 

지팡이는 무어인가?

이것은 능력을 말한다.

예수님의 보혈을 통하여 나오는 사죄의 능력,

성령을 통한 능력, 헌신의 능력 이 지팡이가 있어야

광야에서 뱀이 나오면 이것으로 치고

이 지팡이가 있어야 힘들지 않게 된다.

 

그래서 모세가 지팡이 하나로 40년을 버티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으로 오는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다.

 

여러분 이 지팡이를 지금 가지고 있는가?

여러분 이 복음의 신을 신고 있는가?

여러분이 이 허리에 띠를 띠고 있는가?

 

이 유월절을 지키는 사람은 애굽을 떠나는 일이

급박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고 예수 믿고 천국 가는 일이

나의 생일에 제일 중요한 일이다.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것인가? 여기에 초점을 맞춰서 긴박한 생활을 해야 된다

그 말이다.

 

다른 게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 초점이 있어야 되고 이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이다.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백세를 살아도 영생을 얻지

못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것이 제일 중요하고 긴박한 일이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먼 길 떠난 사람의 자세를

취하고 긴장을 놓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무어라 하셨는가?

계속해서 깨어 있어라 깨어 있어라 말씀하셨다.

 

2023년 유월절을 지나면서 이 유월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깨달으면서 예수님이 어린 양으로

죽으신 이 고난의 이 한 주간 다시 한 번 고난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이 유월절을 다시 한 번 감사하고

새롭게 결단하면서 남은 광야 길에 주님이 함께하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으시길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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