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라
시편 121편 1~8절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한국에는 속담이 있고 격언의 말씀도 있고 또 여러 가지 고사 성어를 통해서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이 가운데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라는 말이 있다. 언덕이 있어야 소가 가려운 곳을 비비거나 언덕을 디뎌 볼 수 있다 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어린 소는 뿔이 나기 시작하면 머리가 가렵다고 하는데 언덕이 있어야 그 머리를 비빌 수 있다. 또 사람이 늙으면 여기저기 가려움증이 생긴다. 그것처럼 소도 나이가 먹으면 몸이 가려운데 언덕이 있어야 가려운 곳을 비빌 수 있다. 결국 이 말의 의미는 누구나 의지할 곳이 있어야 무슨 일이든 시작하거나 이룰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소가 언덕이 있어야 비벼서 욕구를 이루는 것처럼 의지할 곳이 있어야 무슨 일을 시작할 수도 있고 의지할 곳이 있어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예전에는 부모가 도와주지 않아도 자수성가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고사성어 가운데 "형설지공" 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 번 말씀을 드렸는데 중국 동진시대의 차윤이라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가난한지 공부하기 위해 등불을 켜야 하는데 기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반딧불을 잡아 병에 넣어서 그 반딧불 빛으로 공부해서 오늘날로 말하면 부총리인 상서랑이라고 하는 벼슬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시대에 손 강이라고 하는 이 사람도 가난해서 기름을 사지 못하니까 한겨울에 눈을 모아서 달빛에 비친 눈빛으로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손 강은 과거에 급제하여 관청의 어사대부의 자리까지 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이 반딧불과 눈빛으로 공부했다하여서 형설의 공이라고 한다. 지금은 시대는 많이 바뀌어서 우리 자녀들이 자수성가할 확률이 5%가 안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소가 언덕이 있어야 비비는 것처럼 자녀들이 부모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들은 부모를 의지하고 부모의 도움을 받아 살고 남녀 간에도 서로 도와주도록 되어 있고 인간 사회는 유기체가 돼서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살 수밖에 없는 그런 인생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고 하나님과 인생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고 우리도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서 그분의 뜻을 이루어드리며 살아간다. 하나님은 영으로 계시니까 우리 인생 가운데 직접적으로 일을 하시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의 배우에서 도와주시고 우리는 그분의 동역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는 서로 도와가며 사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오늘은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라"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첫 번째는, 인생을 도우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종종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공의의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 많은 하나님으로 나타나지만 본문을 보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우리 인생의 도움은 이 모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에게서 온다고 하였다. 성경은 여러 가지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인생에게 정작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고린도후서 1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아시아에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얼마나 환란이 심하고 어려웠는지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하였다. 인생이 어려워져 살 소망이 끊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다. 결국 하나님이 그 환란과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주셨고 또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라고 하였다. 하나님만 인생의 도움인 것을 알았다. 사도 바울은 이제 하나님만 바라보는 인생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무엘상 1장에도 보면 사무엘을 낳은 한나는 자녀를 갖지 못하고 남편이 도와주고 남편이 분깃도 많이 주었지만 그럼에도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는데 오직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사무엘을 낳게 되었다. 그러니까 인생은 하나님만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하나님만이 나의 생명을 주관 하시며 하나님만이 나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이 도와주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시나? 하나님은 정작 인생을 어떻게 도와주시느냐? 시편 107편 20절 말씀에 보면 "20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인생들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는데 시편 107편 18절 "18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 왜 식물을 싫어하였는가? 위장에 탈이 난 것이다. 그래서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니까 하나님이 고통에서 건져주시는데 말씀을 보냈다고 하였다.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인생을 도우시는데 하나님의 도우시는 방법은 말씀을 보내서 도와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주시면 그 말씀이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으로 들어오고 그 말씀이 살아 움직이고 운동력 있는 능력의 말씀되어 이 말씀을 통해 역사를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서 인생을 도와주신다. 열왕기상 17장 17절 말씀에도 보면 "14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엘리야 때에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인생들이 먹을 물이 없고 산업 용수가 없고 물이 없어서 고난을 당할 그때에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다. 3년 반 동안 비를 지면에 내리지 않았을 때 한 과부 집에 가서 그 통에 가루가 다 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을 전한다. 이 과부집 통에는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이 남아 있었는데 아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하려 할 때 엘리야가 나타나 이 말을 전하였다. 열왕기상 17장 13절 "13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통의 가루가 다 하지 않고 병의 기름을 없어지지 않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서 말씀을 보내주셨고 그 과부는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실제 통의 가루가 다 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를 하셨다. 사무엘상 1장 17절을 보면 "17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엘리 제사장이 축복을 했다. 물론 자녀들이 타락하고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 못했지만 하나님이 일단 기름 부으신 그 제사장을 통해서 한나라는 여인의 기도가 상달되고 하나님이 축복하여 구하는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한다고 말씀을 보내셔서 그 말씀을 통해서 역사가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을 통해서 주의 종들에게 또 성도들의 말을 통해 역사하신다. 그래서 목회자나 성도들의 말이 씨앗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축복의 말을 해야 된다. 성도들의 말은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처럼 역사하는 말씀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저주하는 말을 하면 안 되고 축복의 말을 해야 된다. 그래서 말은 항상 조심해야 된다. 에베소서 4장 29절 말씀에 보면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더러운 말은 성도들이 입 밖에도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는 선한 말 덕스러운 말을 하라고 하였다.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며 은혜 받을 수 있는 그런 말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성도들의 말이 씨앗이 되고 이런 말을 하게 될 때 성도들이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더러운 말을 입밖에 내서는 안 되고 덕을 세우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그런 말을 해야 된다. 마가복음 7장 16절 말씀을 보겠다.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무엇인가? 20~23절 말씀에 "20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모든 악에 관계된 생각들 말하는 것들 전부가 사람에게 나오는데 이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 우리는 선한 말, 은혜스러운 말, 덕스러운 말 이런 말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의 말을 통해서 그 말씀을 통해서 역사를 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도들의 말은 이렇게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말을 항상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또 그 말씀을 선포하고 축복하는 말을 하고 그래서 그것이 축복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이 역사를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도와주신다. 우리는 가정에서 세상 음악 틀어놓으면 안 된다. 하나님의 음악을 들어야 된다. 찬송을 들으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집안 가득 은은히 울려 퍼지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그 속에서 빛의 에너지가 역사 하게 된다. 우리가 계속해서 신령한 것들을 사모해야 한다. 나쁜 음악을 틀어놓고 세속 음악을 틀어놓고 그 파장이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게 하니까 그건 절대로 하면 안 된다. 찬송가를 틀어놓고 말씀이 울려 퍼지게 해야 한다. 계속 이렇게 말씀을 접해야 우리의 말이 좋은 말, 선한 말이 나올 수가 있고 하나님 말씀이 나올 수가 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보내신다. 찬양도 곡조 있는 가사고 하나님 말씀으로 되어 진 것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하는 통로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로마서 8장 26~27절 말씀에 보니까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인생을 도와주시는데 어떻게 도와주시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도록 기도하게 하셔서 그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역사해 주시는데 이것이 성령의 도우시는 방법이고 하나님이 도우시는 방법이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반드시 그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신다고 하였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다. 하나님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뜻을 다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뜻대로 간구하게 하신다고 하였다. 뜻대로 기도하면 다 받는다. 못 받는 게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까 뜻대로 간구하도록 성령께서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아시고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위해서 기도하게 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기도를 통해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세 번째 결론은 우리는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인생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을 도와주시는 분이고 그분은 언제라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분은 말씀과 기도의 방법을 통해서 우리를 계속 도와준다면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하나님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고 그걸 바라는 인생이 되어야 하고 또 절대적으로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다. 그 믿음이 없으면 누가 구하겠는가? 그 믿음을 갖고 구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분이라는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야 된다. 마가복음 9장 24절 "24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님이 공생의 도중에 다른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는데 이 산 밑에서 남아 있는 제자들이 서로 변론하며 아들이 귀신 들렸는데 그의 아비가 제자들에게 나왔는데 이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아버지의 고민을 볼 수 있다. 귀신 역사하는 아들의 고민을 볼 수 있는데 이를 고치지 못하는 제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산에서 내려왔을 때 예수님 앞에서 아버지가 고백하고 있는 장면이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좀 도와달라고 할 때 예수님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그러니까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자기가 믿음이 있어야 이 아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내 믿음 없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고 있다. 왜냐하면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니까 아버님은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걸 다 도와줄 수 있는 분이니 그걸 내가 좀 믿도록 믿음 없는 걸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니까 예수님이 그 아버지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아이를 그 자리에서 고쳐주셨다.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되는 것이다. 같은 마가복음 10장 47절 말씀에도 보니까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바디메오 이야기이다. 이 소경 거지 바디메오가 자기 앞으로 나사렛 예수님의 풍문을 어디선가 들었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나타나셨는데 가는 곳마다 병자를 고쳤고 가는 곳마다 치유 역사가 나타났다고 그런데 장님이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자기 앞에 지금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니까 소리를 질러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예수님이 그 소경을 불렀다. 그러면서 51절에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래서 눈이 떠지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믿음이라고 하는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분을 믿고 도움을 그분에게 요청하는 나를 좀 도와달라고,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우리가 이렇게 나가야 된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다.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 이렇게 예수님이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인생을 도와주시는데 그 예수님을 하나님이 왜 보내시는가? 사랑의 자비와 긍휼이 근간이 돼서 그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그분의 사랑과 자비 때문에 우리를 도와주시는 거란 말이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해서 우리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엄마 나 좀 도와줘 그러겠는가?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누가 도와달라고 하는가?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아니까 가서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고 자비의 하나님이고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긴다. 이 세상에서만 아버지가 아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영원한 아버지로 영원히 그 분 앞에서 함께 사는 건데 그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사랑하기 때문에 연단도하고 훈련을 하는데 그 가운데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나가서 우리가 믿음으로 구해야 되는 것이다. 시편 121편 본문 가운데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 되신다고 분명히 선포하면서 그 하나님이 3절 말씀에 보니까 3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이 세상 부모는 나를 도와주려고 해도 육신으로 자야 되고 능력이 안 되지만 천지를 만드신 그 하나님은 영으로 계셔서 주무시지도 않고 졸지도 않으시니까 모든 상황을 지금 살아계셔서 다 보고 계신다는 그런 하나님께 지금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루살렘 성전에 순례하며 가면서 부르는 그런 노래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지금 저 천성 예루살렘을 향하여 우리가 이 영적인 순례를 가는 길인데 이스라엘 땅에 가보면 거기는 사막이고 광야다. 한낮에 태양이 얼마나 뜨거운지 모른다. 한 밤중에는 사막지대니까 기온이 얼마나 내려가는지 모른다. 광야에 가서 숙식을 해보고 광야에 가서 체험을 해보면 우리가 알 수 있다. 한밤중에 이게 얼마나 추운지, 낮에 해가 얼마나 뜨거운지, 그럼 우리가 네 가지 마음 밭에서 싹이 났는데 그다음에는 싹이 나도 해가 심하게 쪼이니까 다 타서 없어진다. 그 해가 뭔가? 환란 핍박이 온다는 말이다. 낮에 해가 나를 이렇게 비친다고 하는 건 환란 핍박이 온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을 향해서 천성을 가면 우리에게 환란 핍박이 오는데 그 낮에 해를 우리가 상치 아니하도록 그분이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그 어두운 밤에 그 춥고 힘든 그 모든 밤의 달도 우리를 도와주시는 그 하나님. 나의 환경 모든 것에 예루살렘을 향하면서 순례하며 갔을 때 나의 모든 삶을 아시고 천지 지으신 그분이 나를 도와주셨는데 언제까지인가?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성경은 자꾸 영원을 이야기한다. 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새 하늘 새 땅이라고 하는 영적인 세계,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완성해서 거기에 도달해가지고 그걸 지켜주시겠다는 것이다. 그 이후 영원은 새 하늘에 따라서 영원히 사는 거니까 계속 함께하시는 것이다. 그 순간 영원에 도달하는 그때까지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겠다는 것이다. 졸며 주무시지도 않고 그런 분이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너를 지켜 환란을 면케 하시고 내 영혼을 지키시로다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혼까지 지키시리로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 앞에 나가야 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장에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는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고 마음에는 이미 사형 선고를 내린 인생인데 하나님이 도우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셨단 말이다. 위로해 주셨단 말이다. 그러니까 다시 살아나서 평생 그만 의지하게 됐다고 했다. 그것만을 의지해야 된다. 잠언 16장 20절에 보면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는 인생이 복이 있는 것이다. 이런 재밌는 예화가 있어서 가지고 왔다. 소와 사자가 결혼을 했다고 한다. 소와 사자하고 결혼할 수 없는데 우화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이다. 소와 사자가 결혼을 했는데 이 소가 그때부터 이 사자를 위해서 매일 싱싱한 풀을 뜯어다가 사자에게 갖다 주는 것이다. 사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사자는 육식 동물이니까 아무리 소가 싱싱한 풀을 주어도 안 먹는다. 또 사자는 소를 위해서 매일 사냥을 다녔다. 사슴도 잡아다 주고 토끼도 잡아다 주고 그런데 소가 거들 떠 보지도 않는다. 소는 초식 동물이니까 안 먹는다. 아무리 열심히 풀을 뜯어다주고 아무리 열심히 사냥을 해서 가져다 줘도 먹질 않으니까 서로 갈등이 생겨서 결국은 이혼하고 말았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왜 이혼을 했겠는가? 내 입장과 내 생각으로만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소는 사랑하니까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풀을 뜯어줬는데 그것은 내 생각이고 내 입장이란 말이다. 사자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사냥해서 소에게 갖다 줬는데 안 먹어 그건 내 입장과 내 생각으로만 사랑한 것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도우시려고 이렇게 다 준비된 하인처럼 언제든지 기도하고 언제든지 말씀을 보내서 순종만 하면 역사하시려고 하는데 우리는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내 생각으로만 하나님이 나를 도울 수 없는 분이야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입장과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그분을 만나야 된다.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고 말씀과 기도로 역사할 수 있는 분이고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고 졸며 쉬지도 않는 그 하나님으로 믿고 그렇게 대접을 하고 그 하나님 입장에서 도와 우리가 나아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이다. 내 생각과 내 입장 그 믿음이 없는 것이다. 그런 입장으로 사랑한다고 하고 좋아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냐 말이다. 마태복음 14장 22~33절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제가 은혜 받았던 이런 말씀인데 여기에 즉시라고 하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온다. 22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그리고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 그랬다. 예수님은 3년 동안만 공생했는데 이 열두 제자를 초대교회에 장성한 겨자나무로 이렇게 양육을 시켜서 그들의 영적 진도가 빨리빨리 나가야 되니까 즉시 재촉해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 영적으로 이건 죄악의 바다를 건너가자 그런 뜻이다. 죄악의 쓰레기통과 같은 이 세상 바다, 거기를 건너서 하늘나라로 가자. 개인적으로 이 제자들이 다 오순절에 장성한 겨자나무로 이기는 자가 다 되어야 되는데 이걸 재촉하셔서 좀 빨리빨리 가자, 진도가 나가자, 이제 다음 과목 가자 그래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끝나고 나서 그다음에는 바다 건너로 가자 즉시 재촉을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셨는데 물결 때문에 바람이 일어나니까 제자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혼자 기도하시다가 그걸 알고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유령이다 하면서 놀랬다. 그리고 27절에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유령인가 하고 무서워하는 이것을 즉시로 안심시키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의 인생이 영적으로 즉시 안심시키기를 원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즉시 빨리빨리 성장하자, 이게 주님의 입장이고 예수님은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하신다. 그런데 이 베드로가 이 수제자답게 천방지축의 베드로지만 이때는 용감하게 예수님인 줄 알고 오니까 어떻게 되는가? 그냥 물 위로 뛰어내린다. 그래서 물 위로 걸어가는데 바람을 보고 무서워서 다시 빠져버렸다. 그러니까 31절에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일으켜 세웠단 말이다. 인생이 이 죄악의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주님은 원치 않으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래서 이 마리아 발도르다 책에서 제가 이 장면을 보고 은혜를 받았는데 거기서는 뭐냐면 마치 주인이 원하면 순종하려고 하는 하인처럼 예수님이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 즉시라는 말이 주인이 명령하면 하인이 바로 가서 주인을 대접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 하인처럼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 앞에 순종하고 이제 우리가 기도하고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도우셔서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걸 받으시고 즉시 하인처럼 역사해서 우리를 안심시키고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걸 건져내시고 영적으로 성장을 이루시고 이러면서 빨리빨리 우리의 모든 걸 도와주시려고 그렇게 준비된 하인처럼 그렇게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생들이 그것을 믿음으로 받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고 성령으로 탄식으로 기도하지 못하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도우시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소와 사자처럼 내 입장, 내 생각으로만 주님을 사랑하지 마시고 인생 가운데 서로 서로 도울 때도 내 입장 내 생각으로만 서로 사랑하지 마시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말씀과 기도로 주님께 나가면 그 하나님 모든 걸 준비하시고 순종하는 하인처럼 역사하려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말씀과 기도로 역사하심을 믿으시고 하나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인 걸 믿고 여러분이 그런 마음에 요청하여 말씀 앞에 순종하고 기도하면서 주님께 요청하는 이런 복된 생애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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