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없어 망하는 백성
호세아 4장 1~6절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 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3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무릇 거기 거하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4 그러나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이 되었음이니라
5 너는 낮에 거치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거치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할렐루야!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지난주부터 집사람과 함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2시간씩 교육을 받으러 갔었다.
어떤 교육을 받았냐 하면
스마트폰 사용법에 대한 교육을 받고 왔다.
두 주간에 걸쳐 하는 교육이다.
이번 한 주는 마쳤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또 2시간씩 받을 예정이다.
그런데 이 교육을 받을수록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사용법이 전화기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핸드폰으로 이메일도 보낼 수 있고
팩스도 다 보낼 수 있는데
얼마나 우리는 무식하게 전화를 사용했는지 모른다.
그 동안에 4~5만원씩 전화비를 내면서
이런 기능을 모르고 그냥 매일 전화와 문자만 했던 것이
얼마나 무식한 것이었고 돈이 아까운 것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가끔 예배를 비롯해서 회의나 모임 활동에
진동으로 해놔야 되는데 그냥 놔두는 경우가 있다.
그때 갑자기 예배 중에 전화가 걸려오면 얼마나 난감한가?
그런데 이때 버튼을 찾아 끄는 것 보다
전화기를 그냥 엎어놓으면 된다.
그러면 저절로 꺼지게 된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편한가?
그리고 또 다른 기능을 설명하면
어저께 누구랑 통화했는데 다시 통화 하려면
일일이 연락처를 찾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밀면 그냥 통화가 연결되고
왼쪽으로 밀면 바로 문자로 들어가게 된다.
젊은 사람들은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얼마나 간단하고 편리한가?
또 전화기를 끄려면 옆에 버튼을 찾지 말고
화면을 그냥 두 번 톡톡 치면 저절로 꺼지고
다시 톡톡 두 번 치면 켜진다.
그리고 핸드폰을 잃어버렸을 때 주운 사람에게
전달 할 수 있는 메시지를 띄울 수가 있는 기능도 있다.
그래서 이 메시지를 보고 바로 연락해주면 찾기 쉬워진다.
이 처럼 핸드폰의 기능을 알고 사용하는 것과
모르고 사용하는 것은 천지차이이고
그야말로 무식과 유식의 차이,
불편함과 편함의 차이였구나 생각하며 한 주를 보냈다.
그러면서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로 핸드폰은 지식이 없어도
그냥 전화 걸고 받고 하면 되지만
그렇다고 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은 지식이 없어서
내 백성이 망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 뭔지,
여기서 말하는 망한다는 것이 뭔지,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식을 얻는 방법이 무엇인지
설교를 해야겠다 라는 감동이 와서
"지식이 없어 망하는 백성"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하려고 한다.
첫 번째,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 뭔가 하는 것이다.
1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라고 하였다.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이 땅은 진실이 없는 세상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인애는 곧 사랑이고 자비이다.
긍휼히 여겨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인데 사랑도 없고 인애도 없는
세상을 사는데 거기에 덧붙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망하게 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아는가?
그분이 먼저 나타나주셔야만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은혜가 필요하고 계시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영으로 계신 분이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영으로 계신 분이기 때문에 계시를 열어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보여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그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있다.
마태복음 16장 16~17절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이 당시 예수님이 나타날 때 사람들은
"엘리야가 왔다", "세례 요한이 왔다" 하며 여러 가지로
예수님에 대해서 말했지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라고 고백했다.
이것은 메시아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메시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이때 예수님이 이것을 알게 된 것이 복이 있는 것이고
이것을 알게 한 것이 혈육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알게 했다고 말씀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계시를 통해서 알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분의 은혜로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11장 25~28절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 당시에 성전에는 제사장도 있고 서기관도 있고
바리새인도 있고 스스로 지혜있다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나타난 것이 아니고
갈릴리 바다의 어부 인 무식한 제자들에게
그것을 알게 하셨다.
이것은 아버지의 뜻이고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았다고 하였다.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는 아는 자가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세상 적으로는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나심을 감사하나이다 라고
말씀하였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심령에게
나타내신다.
어린아이 같은 심령이 돼야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세우시고 너희가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 어린아이는 요즘의 아이들이 아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로 부모만 절대 의지하고
부모 말을 100% 수용하면서 부모만 바라고 사는
그런 아이의 심령을 말한다.
이렇게 순수한 어린아이의 심령이 되면 아버지에 대해서
그분이 알게 하시고 나타내주신다고 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은혜 받는 비결이다.
성경 전체는 하나님을 알게 하는 계시 전달의 책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이분은 거룩한 분이시고 영으로 계신 분이고 사랑이시고
빛이시고 평강의 하나님이시고 영광의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다 체험할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은 성경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
그러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류 전체에 대해서
무슨 계획을 갖고 계신가?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인류 역사를 지금 어떻게 운행해 가시는가?
다 성경 안에 나타나 있는 계시로 전달되어진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시대를 알게 되고
징조를 통해서 알게 되고 성경을 통해서만 유일하게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된다.
그래서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우리가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게 될 때
점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더해가게 된다.
그리고 여기 호세아서에서 말하는 지식은
신령한 지식을 말하고 있다.
신령한 지식은 세상 지식이 아니다.
지금은 인터넷에 들어가면 모든 지식이 다 나온다.
지식을 얻는 이러한 지식이 아니고
하나님을 아는 신령한 지식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어떻게 되는가?
부전자전이다.
우리가 아버지를 따라 아들이 그대로 닮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을 알아야 그분을 닮아가고
그 하나님을 알아야 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뭔지 알게 된다.
그분이 거룩한 분이라면
거룩하지 않으면 그 앞에 설 수 없다.
그분이 완전한 분이라면
완전하지 않으면 설 수 없다.
그분을 깊이 알아갈수록 우리는 천국 가는 자격을 깊이
알게 되고 그분을 점점 닮아가서 이러한 자격 있는 자리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신령한 지식을 깊이 알아야 된다.
본문 가운데 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율법은 당시에 준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지식이고
말씀 안에서 신령한 지식을 다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신령한 지식인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잊어버리면 하나님도 그 자녀들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말씀한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고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인가?
우리는 예수를 믿게 되면 성령을 받게 된다.
성령을 받으면 신비한 현상들이 일어난다.
은사가 임하기도 하고 성령이 진리의 영이니까 깨닫기도
하고 신비한 현상들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오늘날 영성신학이라고 한다.
초대교회부터 이 영성신학을 수덕신비신학이라고 했다.
성령이 임하면 성령을 통해서 덕을 쌓고 덕을 닦으면서
하나님을 닮아가서 완전의 길을 가게 되는
여러 가지 신비한 현상들을 말한다.
이런 것들이 다 신령한 지식이다.
그러니까 말씀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식,
성령을 통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신비한 것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없으면
망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왜 그런가?
대통령을 섬기려면 대통령을 섬기기 위해서 청와대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통령에게 음식을 장만해 주는
조리사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대통령 이발사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경호원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완전히 이해해야 경호도 하고 음식도 만들 수 있다.
우리가 남편이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남편이 좋아하는
요리도 만들고 대접 할 것이 아닌가?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어떻게 그분을 섬기겠는가?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쌓아놓지 않으면 우리는 망 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망한다고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본문 3절 말씀에 보니까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라고 하였다.
호세야 나오는 땅이라고 하는 개념은 무엇인가?
1절에도 땅에서 사는 백성들과 쟁변하시는데
땅 자체에 진실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땅에 진실이 없고 인애도 없다.
그리고 3절에는 이 땅이 슬퍼한다고 하였다.
이 땅 자체가 무슨 사람 같은 인격이 있는가?
왜 땅이 슬퍼하는가?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은 땅이 눈에 보이는 땅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땅도 있다는 것이다.
골로새서에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되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였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땅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의 땅이다.
네 가지 마음 밭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싹이 나면 그 마음 안에서
싹이 점점 나와 그 안에서 천국을 만들어 간다고 하였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땅이다.
마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땅 속에 진실이 없기 때문에
땅도 진실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 마음의 땅 속에 사랑과 인애가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땅 전체가 사랑도 없고 인애가 없다는 것이다.
노아 당시 죄가 관영했다는 것은 사람들 마음속에 시기와
악한 것과 온갖 죄가 관영하니까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이
한꺼번에 멸망당했다.
보이는 땅이 같이 가게 된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고 나니까 땅은 저주를 받아서
가시와 엉겅퀴를 만들어낸 것처럼 사람의 심령에도
죄가 들어오니까 가시와 엉겅퀴처럼 미움이 들어오고
시기가 들어오고 원망이 들어왔다.
그러면 그 가시와 엉겅퀴를 제거하고 땅에서 농사를
지어서 식물을 먹는 인생이 됐는데
내 마음의 땅도 마찬가지이다.
이 가시와 엉겅퀴를 제거하고 하나님 말씀이 들어와서
내 속에서 생명과를 만들어 먹어야 한다.
수고하며 농사를 지어야 한다.
이것이 연단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 안에 가시와 엉겅퀴가 들어왔기
때문에 연단 받아서 가시와 엉겅퀴를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 속에서 싹이 나고 내 속에 생명과를
만들어내는 이것이 창세기 3장에 나타난 땅의 농사이다.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예수님이 공중 강림하기 전에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을 내어 쫓는다.
내어 쫓자마자 어떻게 되는가?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라고 하였다.
땅에는 여러 가지 나팔로 재앙들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눈에 보이는 땅에만 나타나서 환란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도 똑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땅 속에
재앙이 임하니까 환란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땅과 눈에 보이지 않는 땅은 함께
평행선처럼 기차 레일처럼 같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땅이라고 하는 개념을 말씀하실 때는
눈에 보이는 땅도 이렇게 사랑도 없고 진실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고 하였다.
이 말은 호세아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사랑도 없고 진실도 없고 마음속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사람의 마음의 땅도 슬픈 상태고 눈에 보이는 땅도
다 슬프다는 의미이다.
이 두 가지가 같이 간다.
또 3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땅이 슬퍼하며 무릇 거기 거하는 자는 여기서 사람이다.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하였다.
땅이 멸망 받으면 거기에 새도 없어지고 고기도 없어지고
들짐승도 다 망하는데 이것은 동시에 눈에 보이는 들짐승,
눈에 보이는 고기, 눈에 보이는 공중에 나는 새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 가운데 물고기, 새, 들짐승
이것은 전부 영적인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온전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이루어지는 사람이
돼야 하는데 물고기 정도의 형상으로
여기서 물고기는 감각은 먹이를 줄 때만 그저 반짝 와서
주인을 알아보는 정도이다.
지금 영적인 감각이 물고기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적인 감각이 새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고
영적인 감각이 짐승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부정한 짐승이 있고 정한 짐승이 있는데
부정한 짐승은 다 지옥 가는 멸망 받는 인생들이다.
이 땅에 거하는 들짐승, 고기, 새들을
지금 다 멸절시키겠다는 이 이야기는 영적으로 하나님이
보실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영적으로 물고기 같은 인생, 영적으로 새와 같은 인생,
영적으로 들짐승과 같은 부정한 인생들을
싹 쓸어버리겠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문자 그대로만 보면 안 된다.
본문 4절의 말씀 보면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이 되었음이니라" 하였다.
호세아 당시에 이렇게 땅이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당시 제사장들의 책임이 있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가지고 대표로 하나님 앞에 나가
죄사함을 받아야 되고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와야
하는데 제사장들이 사명을 감당 못해 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까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고 있다.
환란 때도 아마 이럴 것이다.
"목사님 우리가 다 휴거 된다고 그러더니
목사님도 휴거가 안 되고 우리도 휴거 안 되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마 목회자와 성도들이 싸움이 붙을 것이다.
환란 때는 이렇게 혼란스러운 일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거치는 반석과 같이 되고 원망 불평이 생기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잃어버리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남아있는
그 지식도 버리게 된다.
이것이 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문 6절말씀처럼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를 잊어버리리라"
하나님이 잊어버린 인생은 망하는 것이다.
7절 말씀에서 계속해서 보면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번성할수록 더 범죄 한다는 것은
번성할수록 두 마음을 가지고 자꾸 제단을 넓혀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우상을 섬겨 나간다는 것이다.
잘 될수록 하나님을 더 섬겨야 되는데 잘 될수록
정욕을 늘려간다.
정욕은 우상이라고 하였다.
육적으로 점점 만족하는 우상을 만들어 가니까 하나님이
그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이것이 망하는 되는 것이다.
또 8절에는
"저희가 그 내 백성의 속죄 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저희의 죄악에 두는도다"
하나님께 나가 속죄 제물을 통해서 용서받아야 되는데
그 속죄 제물을 망령되이 먹어버리고 그 마음에 죄악을
두는 것은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까 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일반이라 내가
그 소행대로 벌하며 그 소위대로 갚으리라"
이것이 전부 마지막 때 되어 질 현상들을
호세아 당시에 말씀하였다.
이래서 이스라엘은 망하였다.
백성이 다, 제사장이 다 일반으로 그 소행대로 벌을 하고
소위대로 갚아주시는 것이 망하는 것이다.
또 10절에 "저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행음하여도
수효가 더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 쫓기를 그쳤음이니라"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
수고하고 애써도 그 대가가 없다.
그리고 여호와 좇기를 그쳐버렸다.
하나님이 버린 것이고 이 모든 것이 다 멸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옥 가는 인생이 되는 것은 영적으로 멸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잊어버리면 망하는 것이고 우리는 죄악 가운데
그냥 있으면 망하는 것이고 욕이 되면 망하는 것이고
행한 대로 소위대로 갚아버리면 망하는 것이고
여호와 좇기를 그쳐버리면 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망한다는 건 무엇인가?
멸절당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사랑이고 영원한 생명인데
그 앞에 나가지 못하니까 사망이고 그것이 지옥인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을 때 신령한 지식이 없을 때
이런 결과를 만들 수밖에 없다.
마지막,
그러면 지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 신령한 지식이 없으면
망하는데 이런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원리는 같다.
우리교회가 조그만 개척교회이지만
제가 얼마나 바쁜지 모른다.
월요일에 강의도 해야 되고 책도 마무리해야 되고
정신없이 바쁜데 그런중에도 핸드폰 기능을 배우기 위해
하루 2시간 오고 가는 시간을 합쳐 4시간을 낸다.
우리는 무언가 필요성을 느끼면 시간을 투자해야 된다.
시간 뿐아니라 지금 왔다갔다 기름 값도 들고
여러 가지 물질도 들어간다.
그러니까 내 시간과 물질과 정성의 이 모든 것을
필요성에 따라 투자를 해야 핸드폰을 바로 사용하는
기능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핸드폰을 사용하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신령한 지식을 얻고
성령의 놀라운 은혜와 지식을 알아가려면 같은
원리라는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깨닫고 이것이 없으면
망한다고 하는 절실함을 가지고 투자해야 된다.
우리가 시간을 투자하고 물질을 투자하고 내 마음과
정성을 들여야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게 되고
신령한 은혜를 받고 신령한 지식을 더해가는 것이다.
호세아 6장 1~3절 말씀을 보겠다.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여기에 정답이 나와 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하나님은 우리가 지식이 없게 되니까 우리를 찢을 때도
있지만 그러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고 우리를 치셨으나
하나님이 싸매어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미워서 때려도 결국 부모 품안으로
뛰어드는 자녀를 더 사랑하고 품게 된다.
부모의 마음은 때리고 나면 얼마나 미안한가?
그러니까 더 품어서 사랑해주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런데 이 구절은 민족적으로 넓은 그림을 봐야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 AD 70년에 멸망을 당하였지만
돌아오는 때는 7년 대환란 때이다.
민족적으로 그때 돌아오면 도로 낫게 하실 것이고
싸매어 주실 것이다.
2절에 이렇게 말씀하였다.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여기서 말하는 이틀, 삼일은 우리가 사는 하루, 이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창세기의 한 주간의 역사가 인류 역사 전체인데
구약시대가 하루 이틀째 예수님이 오셨다.
그리고 삼일은 천년 왕국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신 이틀 후에 교회 시대를 통해서
버리시지만 삼일이라는 천년 왕국이 오면
그때 살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같이 일정하니" 매일 새벽마다 태양이 떠오르고 빛이
오는 것처럼 일곱 의 창조의 그 순간처럼 매 시대마다
하나님은 새벽 비 같이 오고 적당한 때에 비가 오고
늦은 비도 오는 것처럼 때를 따라 임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제 늦은 비가 올 때가 되었다.
마지막 인류의 구원의 역사가 지금 늦은 비의 역사인데
지금 애즈베리에서부터 놀라운 소식들이 오고 있다.
또 한국에도 놀라운 소식이 오고 있다.
지금 마가의 다락방 청년 40명이 집단 방언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지금 한국에도
상륙을 하고 있다.
지금 늦은 비의 역사가 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추수하게 하고 환란이 온다.
요셉의 칠년 풍년처럼 풍년이 오고 영적으로 놀라운
은혜의 때가 지나가면 이제 흉년이 오는 것처럼
이럴 때에 편승해서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고
여호와를 힘써 찾아야 한다.
나의 개인적인 영혼에 밤과 같은 시간을 지나도
이 밤이 지나면 다시 새벽에 오면서 빛이 온다.
그러면 내 개인적으로도 일정하게 새벽에 올 것이고
대한민국에도 밤과 같은 역사가 지나가면
새벽에 올 것이고 이 인류역사 전체가 밤이 지나면
새벽에 올 것이고 일정하게 그 분은 이렇게 밤낮으로
역사하고 계신다.
전도서에 형통함과 곤고함을 병행하신다고 하였다.
창세기의 밤낮이 오는 것처럼
인생이 곤고하지만은 않고 형통이 오고 곤고가 오고
이 두 가지로 계속 바뀌는 것이다.
아가서의 술람미는 뭐라고 표현하나?
따뜻한 남풍이 올 때도 있지만 북풍이 올 때도
있다고 하였다.
차가운 겨울에 매서운 바람처럼 내 환경에 매서운
북풍의 바람이 올 때도 있지만 남풍이 불어올 때도
있고 하나님이 두 가지를 겸하여 주신다.
그래서 우리가 개인적으로 지금 내가 밤을 만났고
내가 어두운 가운데 있고 내가 빛을 못 만났지만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여호와를 힘써 알고
힘써 알아 찾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호세아 10장 1~2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1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아름다울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2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치시며 그 주상을 헐으시리라"
두 마음이 바로 이것이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포도나무로 열매가 많을수록
하나님께 더 나아가야 되는데 우상의 제단을 자꾸
만들어 가고 있다.
이것이 망한 원인이다.
이스라엘의 두 마음이다.
하나님이 그 죄를 받게 하실 것이고 그 우상의 제단을
쳐서 깨뜨리고 주상을 헐으시리라 고 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수록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그분을 아는 것에 더 힘써야 되고 하나님만 섬기면서
우상의 제단을 끊어가는 일을 해야 된다.
야고보서 4장 4~8절
"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이 축복할수록 자꾸
우상의 제단으로 흘러가는 것이 두 마음이다.
야고보 사도는 뭐라고 했는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것이 두 마음이라고 하였다.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을 성결케 하라, 손을 깨끗이 하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 두 마음을 품어서 양다리 걸쳐 있는
여인처럼 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만을 섬겨 나갈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 아는 지식을 얻게 하신다.
마지막으로 디모데전서 6장 6~10절
"6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물론 물질도 필요하고
부귀영화도 다 필요하지만 하나님이 내게 주신
분깃 안에서 지족하고 만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경건의 큰 이익이 되는 것이고 기본적으로 세상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가지고 갈 것도 없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고
하나님을 힘써 찾는 이런 생활이 우리가 은혜 받는
생활인 것이다.
디모데전서 4장 7~8절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우리가 이러한 지식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힘써 찾아야 한다.
우리가 두 마음 품는 것을 버리고 세상 욕심을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여러 가지 신령한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주실 것이다.
한 주간 핸드폰을 사용법을 배우면서 그동안에 4~5만원
핸드폰 요금을 내고 쓴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신령한 지식을
더해갈수록 '아 내가 예수 믿고 그동안 이런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섬겼구나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놀랍게 역사하는 하나님을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하고 살았구나 내가 헛되게 살았구나
가 신앙생활을 잘못했구나 내가 너무 우쭐하며 살았구나' 하며
도전을 받아야 된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들을 버리고 우리가 그동안 이렇게
살아온 세월들을 다시는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저는 이번 핸드폰을 배우면서 영적으로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하였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운 이 때에 예수님의 형상을 본
받으면서 변화의 역사가 있고 힘 써 여호와를 찾으면서
주님을 깊이 체험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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