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빚진 자
로마서 1장 13~17절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할렐루야 오늘도 주의 평화와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오늘 말씀은 "복음의 빚진 자"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이렇게 말씀 하였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비결 중에 하나는
누군가를 본받는 것이다.
우리가 빛 되신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본받기는 어렵다.
뜨거운 태양은 눈이 부셔서 바라볼 수
없지만 밤하늘의 달 또는 별은
얼마든지 바라볼 수 있다.
이렇듯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은
달과 같이 태양빛을 반사하는
분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사도 바울을 본받고
많은 성자들을 본받는 신앙은
우리 신앙생활에 매우 유익하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
라고 했는데 성경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본받을 점은 너무나 많다.
자신의 고백처럼
"나는 오직 십자가만 자랑한다" 고 하였다.
십자가만 자랑했던 사도 바울의 마음
일생 결혼도 하지 않고 또 머리를 깎고
누군가가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 또 남은 생애동안
고기도 먹지 않고 이렇게 영혼구원에
초점을 맞춘 삶을 살았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아서
복음을 전하면서 자기도 복음을 전파하고
버림 당할까봐 자기를 쳐서
복종하는 그런 삶을 철저히 살았던
모습들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들이다.
이 중에 꼭 본받아야 할 점이 또 하나가 있는데
사도 바울은 빚을 갚는 심정으로 늘 살았다는 것이다.
빚을 갚는 심정을 우리는 꼭 본받아야 된다.
이 당시 사도 바울이 무슨 카드나 사채 빚을
진 것이 아니다.
로마서 13장 8절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우리는 누구나 부모나 형제자매로부터
누군가에게 사랑의 빚을 지는데 그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말씀하면서
동시에 자신은 복음의 빚을 졌다고 고백하고 있다.
로마서 1장 13절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사도 바울은 여러 번 로마에 가기를 원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로마서 1장 14~15절
"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이 복음을 받았을 때 그 복음에 대해서
빚을 졌기 때문에 당시에 온 세계 중심있었던
로마의 교회 형제자매를 만나기를
소망했고 복음의 빚진 자로서 그 빚을 갚으려고
여러 번 로마에 가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하였다.
저도 부족하지만 일생을 살아가면서
남은 생애 복음의 빚을 갚아 보려고 하는
그런 자세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부족하지만 책을 쓸 때마다 인사를 할 때
이 말을 넣게 된다.
"왜 책을 써야만 되느냐?"
나름대로 복음의 빚을 졌기 때문에 이제는
인생을 정리할 그런 나이가 되어가는데
이 복음의 빚을 어찌하든지 좀 갚아야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이런 바울의 심정을 본받는 자세로
책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유튜브 방송한지도 8개월 정도가 되었다.
동영상이 120개가 올라갔는데
이 작업도 부족하지만 계속해 만들어
나가려고 하고 있다.
왜 그런가?
복음의 빚을 져서 그것을 갚으려고 하는
마음 때문이다.
제가 받은 복음은 한마디로 말하면
"완전의 길" 이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셔서
"너희도 완전하라" 하셨다.
그래서 우리도 완전한 자 앞에 설려면
언젠가 다 완전해져야 된다.
이 세상에서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죽어서도 언젠가 자다가 깨어서 그 완전의 길을
우리는 끝까지 가야 한다.
이 완전의 길이 저에게 주신 복음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받은 복음, 전한 복음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우리 가운데
이 복음을 전해 주었는데
우리도 사도 바울을 본받아서 복음의 빚진 것을
갚으려고 하는 자세가 되었다면
먼저 우리는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어떠한 복음이고 이 복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갈라디아서 1장 7~8절 말씀에 보면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자신이 받은 그 복음에 대해서
얼마나 확신을 가졌으면 이렇게 고백을
하겠는가?
그래서 사도바울이 받은 복음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서
우리도 남은 생애 이 복음을 통하여
각자 빚진 것이 있다면 우리가
빚진 것을 갚는 마음으로 살아 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첫 번째,
사도바울이 받은 복음은
"계시의 복음" 이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복음을
계시의 복음이라고 말씀하였다.
갈라디아서 1장 11~12절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사도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서 율법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다.
복음은 예수님이 올 때까지 감췄던 하나님의 비밀인데
예수님이 오셔서 복음이 나타났다.
사도 바울은 살아생전 예수님을 따르는 적이 없는 사도이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고
그분의 일방적인 계시로 알게 되었다.
이 계시가 무엇인가?
감추었던 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2절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라고 하였다.
로마서 16장 25~26 말씀을 보면
"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전부터
감취었다가
26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세 전부터
모든 만물을 지으시기 전부터
하나님 안에 하나님의 계획이고
섭리인데 그것을 감추었다가 이제
나타났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고 그 복음을 전해 주셨는데
이것이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라고 하였다.
에베소서 3장 2~4절에도 말씀하였다.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4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로마 교회를 향해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도 자신의 전한
이 복음은 계시의 복음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1장 1절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계시록을 시작하면서 제일 첫마디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하였다.
요한계시록이라는 인류 마지막 결론적인 말씀
인류 역사, 섭리의 마지막 되어 질 일을
하나님이 감추고 있다가 예수 그리스를 통하여
드러내셨다.
그래서 천사를 통해서 사도 요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전하여 지도록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 주셨다.
이렇게 복음은 계시의 복음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복음을 제대로
깨달으려면 이 복음을 사도들에게 준 그
계시의 영이 우리에게도 임해서
그것이 깨달아져야 된다.
우리는 늘 이 계시를 사모하고
계시가 와서 이 말씀들이 깨달아지기를
간절히 소망을 해야 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이 복음이
계시의 복음이라고 하면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늘 이렇게 기도를 하였다.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고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그러니까 우리가 사도 바울에게
주셨던 지혜와 계시의 영, 마음의 눈이
밝아져야 우리가 이 복음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이 복음은 어떤 복음인가?
로마서 1장 16절 말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라고 하였다.
모든 민족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복음 자체가 능력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복음을 통하여 믿는 자들에게 이 복음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된다.
마태복음 11장 25~27절 말씀에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어린아이 같은 심정이 되어서
아들과 아버지의 소원대로 계시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모든 복음과 말씀들은 우리가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받아들일 때 아들과 아버지의 소원대로
계시를 주셔야만 우리가 이것을 알 수가 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시는가?
감추일 자는 감추고 깨달을 자에게만 깨닫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별하시기 위해서다.
그래서 예수님도 비유로만 말씀하셨다.
감추일 자에게는 감추기 위해서이다.
깨달을 자만 깨달아 알게 하시려고
계시라는 방법을 쓰셨다.
그래서 감추인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두 번째,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은
"희생의 복음" 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복음은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전해질 수 없는 복음이다.
이 희생들은 곧 천국에 상급으로 연결 되어 있다.
하나님은 될 수만 있다면 모든 영혼들이
천국에서 많은 상을 받게 되기를
원하고 모든 영혼에게 후히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이 세상을 살면서 복음을 위해서
얼마나 수고하고 희생했느냐에 대해서
그 대가로 상을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이 복음은 반드시 희생을 전제로 한다.
고린도후서 11장 23~28절
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25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이렇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늘 위험을 당했다.
교회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염려하고 애쓰는 것은
사도 바울 밖에 모른다.
사도 바울의 희생을 통해서 많은 교회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이 복음은 희생 없이는 전파될 수 없는
복음이다.
부족한 저도 완전의 길이 드러나 책으로 정리가 되는
계시들이 임하기까지 나름대로의 희생을 했다.
가족과도 생이별을 해야 하고
자녀들에게 효도도 받고 싶고
자녀들과 함께 지내고 싶은
것이 부모의 인지상정인데
하나님이 가족과 이별하게 하였다.
1996년 제가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날 때
2020년 2월 코로나가 시작된
이스라엘 선교 마지막 그때까지
96년부터 2021년까지 24년 동안
서류가 필요해서 출입국관리서를
떼어보니까 50번 가까이 출입국을 했었다.
1년에 두 번 정도였다.
한 번 떠날 때마다 저렴하게 가기위해 두세 번
갈아타는 비행기를 탔는데
50번을 왕복으로 계산하면 250번 정도가 된다.
16시간 비행기 타고 애틀란타를 건너가기도 했는데
이것이 얼마나 힘든 고생인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일을 감당하려 했던 것은
복음의 빚진 자이고 이 복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일을 위해서 나름대로
수고하고 헌신하고자 다짐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음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복음은 누군가의 기도를 통해서 영혼이
구원되는 것이고 누군가가 전파하고
선교하고 후원하고 문서를 만들고
금식도 하고 이렇게 하지 않고는 전해질 수가 없다.
저도 부족하지만 장기 금식을 여러 번 했고
단기 금식도 수없이 하며 지금까지 왔다.
인생의 3대 액체라고 하는
피와 땀과 눈물이 없으면 복음은 전해 지지 않는다.
한국의 평양이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해서 얼마나 놀라운 대부흥이 평양에 일어났었나?
토마스 선교사가 이 낯선 땅에 와서
망나니에 의해서 목이 짤려지면서
그는 죽어가면서 기도했다고 한다.
내 피가 대동강물에 들어갈 때
대동강물을 먹는 모든 사람마다
예수 믿게 해달라고 말이다.
우리나라 서울시민 모두는 한강물을 마신다.
평양의 모든 시민들은 대동강물을 마시게 된다.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과 피를 통하여
평양이 변화되고 대부흥이 일어나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그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이다.
복음은 피와 땀과 눈물 없이는 전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부족한 저에게 준 복음은 완전의 길이다.
이것은 사도바울의 사상을 집대성한 것이고
나름대로 성경을 통합하고 이기는 자들의 삶을 수소문해서
찾아다녔고 만져봤고 그들과 대화를 해보고 그들의
모든 삶을 탐정이 수사하고 조사하는 것처럼
그렇게 해서 나타난 사상이고 정리된 말씀이다.
이것 자체가 헌신이고 수고이다.
우리 교회에 더 많은 일군이 올 것을 저는 확신한다.
머지않아 부흥의 역사가 올 것을 확신한다.
지금까지 잘 숙성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가 부푼 만큼
마음대로 사용되어질 것을 믿는다.
예수님께서 가루 서말에 누룩을 넣어서
부풀게 되면 그 여자가 빵을 만들든 무엇을 만들든
부풀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사용하는 그런 때가 우리에게
가까이 왔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복음을 듣고 우리가 깨닫고 이 자리에
불러주시고 이 자리까지 오게 한
복음에 빚진 그 마음이 있다면 우리도
남은 생애의 희생을 통하여 이 복음을 전파하는
삶의 주역들이 다 되실 것이라고 믿는다.
세 번째 마지막으로는
이 복음은 "영광의 복음"이라는 사실이다.
디모데전서 1장 11절 말씀
"11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이 복음은 영광의 복음이라고 하였다.
복음을 통해서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고 구원을
받는 능력의 말씀이 복음인데 이 복음을
따라서 희생하고 헌신하고 수고한 모든
이에게 행한 대로 갚아주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상이라고 말하였다.
이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나라가 세워지면 개국공신들이 있다.
그 나라를 세우기까지 수고한 것에 대해
개국공신들에게 상을 주고 벼슬을 주게 된다.
하나님 나라도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복음을 위해서 수고했느냐에 따라
해와 같은 영광도 있고
달과 같은 영광도 있고 별과 같은 영광이 있다.
영광이 다르다.
태양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달은 그 빛을 반사하고
별은 밤하늘에 얼마나 많은 별들이 있는가
별마다 다 우리 인생들의 빛을
드러내는데 이 땅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해 같은 그 빛을 얼마큼
수용하고 그 사랑을 얼마나 수용하고
그 거룩함을 얼마나 수용하고 그 복음을 위해서
얼마나 헌신하고 수고한 그 빛에 따라 하나님이
그것을 갚아 주시는 게 영광의 복음이다.
여러분의 수고가 하나도 헛되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이 복음을 받으면 구원을 받을
뿐더러 이 복음 안에서 나타난 말씀대로 우리가
날마다 성장하는 삶을 또 살아가야 된다.
디모데전서 4장 11~16절 말씀
"11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사도 바울의 젊은 후계자 디모데는
아마 충분히 이긴자의 삶이 됐을 것이다.
유일하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디모데에게 나이는 어리지만은
연소함 때문에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고 하였다.
우리가 성장하지 않고 어떻게 본이 될 수 있나
나의 언어 행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기독교인으로서 본이 되는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려면 얼마큼 성장해야 되겠는가?
디모데전서 4장 7~8절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경건해진만큼 내생에도 이것이 상급이고
내생에도 이것이 빛이 되고 그래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였다.
15절 말씀을 보면
"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진보는 영적인 진보, 성장하는 것을 말한다.
어린 아이들을 매일매일 볼 때는 모르지만
오래만에 만나면 얼마나 컸는지 가늠할 수 있다.
영적인 진보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람에게 영적인 진보를 나타나고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전심전략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야구 시합에서 9회 말 마지막 투 아웃에 타자가 서 있고
투수의 마지막 공 하나로 오늘 승부가 갈리게 된다.
잘못 맞아서 홈런을 맞으면 역전이 될 거고
그렇지 않으면 게임을 이기게 되는데
그 마지막 투구 하나를 정말 신중하게 전력을 다하는
자세로 우리는 살아가야만 한다.
오늘 하루가 9회 말 투 아웃 마지막 승부의 볼을 던지는
그런 날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것에 전심전력의 최선을
다하여 영적 진보를 나타내고 본이 되도록 살아야
그것이 영광의 복음을 받게 된다.
그 상에 우리의 초점이 있어야 한다.
물론 상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지만
하나님은 행한 대로 주시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기 때문에 영적인 진보가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디모데후서 1장 13절 말씀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사도 바울은 무엇을 전했는가?
바른말을 본받아 지켰다.
이 복음이 바른말이다.
디모데후서 2장 15절
"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이 되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을 해야 된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였다.
디모데후서 2장 20~22절
"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큰 집인 하나님의 교회 안에 금과 은 나무와 질그릇이
있는데 내가 무슨 그릇이 됐든지간에 깨끗하게 준비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서 하나님의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선한 일이 언제 결정적으로 나타나는가?
7년 대환란 때이다.
교회시대 동안에 이 말은 내가 사는 동안에
자신을 깨끗하게 한 그릇들이 귀히 쓰는 날이 오는데
그때 가 7년 대환란이고 천년왕국이다.
그때 깨끗하게 준비된 그릇을 쓰게 된다.
그런데 깨끗하게 준비하기 위해서는
"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라고 하였다.
끼리끼리 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4장 7~8절 말씀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1, 2, 3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많은 교회를 세우고
많은 수고를 한 사도 바울이 이제 피를 쏟아 붓는
제사가 관제인데 6절에 "관제와 같이"
그 동안의 모든 삶을 정리하면서 하나님께
온전히 피를 쏟아 붓는 제사와 같이
부음이 되고 떠날 기약이 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기 때문에
의로우신 재판장이 나를 위해서 준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내게 주신다고 하였다.
또한 나뿐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였다.
남은 생애를 통하여 사도 바울의 복음을 깊이 깨달으면서
이 시대에 내가 복음에 빚진 자가 됐다면
여러분도 희생의 복음으로 이 희생에 동참하시고
영광의 복음에 동참하길 바라며
이 귀한 길로 가기 위해서 날마다 영적으로 성장해
가면서 이 복음의 능력들이 각인의 삶 속에
귀하게 나타날 수 있는 복음의 빚진 자로
빛을 하나라도 갚아나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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