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결과
누가복음 2장 8절~14절 성경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이천 년 전 예수님이 오신 것은 분명하고 본문가운데 8절 말씀에 보면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미루어보면 이스라엘 땅에서 목자들이 밤에 양을 칠 수 있는 절기는 9월 말 내지 10월 중순이면 끝나는 것이다. 더 이상 지나면 날씨가 춥기 때문에 양떼를 밖에서 키울 수가 없다. 12월 25일로 날짜를 정하는 것은 가톨릭교회가 종교 통합을 하면서 태양신을 섬기는 날을 성탄절로 정하면서 당시 모든 종교를 통합하면서 이벤트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에스더라고 하는 이방신을 부활절로 태양신을 성탄절로 이렇게 날짜를 정하면서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이다. 날짜가 중요하면 성경에 기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신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가 오신 의미를 알고 지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줄 안다. 오늘은 성탄의 결과 이런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은혜를 나누겠다. 이 성탄의 결과의 첫 번째는 14절의 말씀처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홀연히 허다한 천군과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제일 먼저는 영광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관계된 것이다. 요한계시록 4장 9절 말씀에 보면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세세토록 사시는 이는 곧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8절에 보니까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함이 이제 나타났다. 보좌에 앉으신 분이 거룩하고 전능하신 분이다. 그래서 네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고 그랬다. 영광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속성이 드러날 때 듣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8절에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 성품을 나타내면서 영광을 돌린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또 10절과 11절 말씀을 보면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기 합당하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면류관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광은 하나님의 속성이 나타나는 곳에만 적용되는 말인 것이다. 출애굽기 33장 18절 말씀에 보면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그 영광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20절에 보면 내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 그래서 22절에 내 영광이 지날 때에 그러니까 이 얼굴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이고 영광만 지났는데 그 영광이 지나는 것을 19절에는 모든 선한 형상으로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하나님이 여러 가지 형상이 있는데 아마 예상하기는 빛으로 지나가셨을 것 같다. 하나님의 어떤 선한 형상으로 이게 지나가는 그 영광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23절에 보면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에 그 형상이 빛으로 또는 어떤 것으로 나타날 때 그 빛만 보고 얼굴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을 알 수가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처럼 그 영광 자체 대신 거룩하시고 전능하시고 빛과 사랑이신 예수님이 지금 육신의 몸을 입고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그 영광이 지금 여기 오셨다는 것이다. 지금 그 거룩하신 하나님이 육신이고 여기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천군 천사들이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영광은 하나님께만 속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속성이 나타나는 곳에만 적용되는 말씀이다 하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 보니까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신데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다. 빌립보서 2장 6절~7절에는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하나님이 아무도 보일 수 없는 그분인데 그분은 영광의 하나님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거룩하신 하나님이고 사랑이고 빛인데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육신을 이 땅에 나타나셨다. 그러니까 거기에 천군 천사가 그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그 영계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지금 땅에 나타났는데 그 높은 곳에서 천군 전사가 그 영계의 모든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높은 영계의 차원 거기서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나타났기 때문에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천군 천사가 수없이 많은 영광을 돌리고 찬성하는 반면에 육신을 입고 오는 것에 반감을 가진 천사들이 있었다. 루시퍼를 비롯하여 이제 자기들이 가장 하나님의 앞에 지혜롭고 찬송을 받고 이런 사실인데 육신을 입고 오는 그 하나님의 아들인 그분에게 자기들이 영광을 돌려야 되는 그 사실 때문에 반감을 가지고 예수님이 나타날 때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반감을 가지고 타락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것이 교만으로 이 땅에 타락의 씨앗을 심은 루시퍼를 비롯한 천국의 천사들이다. 그것을 천사들의 3분의 1이 땅에 떨어졌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 결과로 한쪽에서는 천군 천사들이 영광을 돌리고 한쪽에서는 천군 천사들이 타락하는 이런 일들이 성탄의 결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14절 계속해서 말씀 보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면서 하늘에서는 천군 천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다 라고 하였다.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만 평화인 것이다. 그럼 그 기뻐하심은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인가?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기 예수로 오는 그때에 그 메시아가 오심에 대해서 수없이 예언이 되어 있는데 그것을 믿고 기다리면서 영광을 돌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누구인가? 바로 시므온이다. 그것이 안나 선지자이다. 그것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이다. 예수님의 오심을 믿고 그 영광을 돌리고 그걸 기다리는 사람들이 실제 예수님이 아기 예수로 오니까 그때 그들이 평화를 얻고 평안을 갖는다는 것이다. 천사들이 12명의 목자들에게 나타나니까 9절 말씀에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만 나타나면 무서운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면 더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그 말씀대로 가서 보니까 실제 아기의 예수가 나타났다. 그러니까 그때 평화를 얻고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라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다리고 믿음으로 가진 이 모든 것들이 실제 우리의 삶에 나타나면 그때 우리는 더 많은 평화와 평안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시므온도 마찬가지이다. 26절 말씀을 보니까 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이 나타나서 예수님이 오고 그리스도를 내가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지시고 감동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였다. 그런데 27절 이하에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가 죽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고 하는 성령의 지시와 감동이 있었는데 그걸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예수님이 오시는 걸 믿었지만 실제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그 아이를 안고 보니까 이제는 평안하다 이제는 평화스럽다. 이 평화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그 현실을 보는 그 자리에서 이루는 평화인 것이다. 그 평안이었던 것이다. 여기 천사들을 만난 목자들도 마찬가지다. 20절 말씀에 보니까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리라 그 천사를 통하여 이제 그 예고 받은 그대로 가서 보니까 구유에 놓인 아기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평안이 왔고 평화가 왔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는 이런 일로 결론을 맺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이 평탄한 그 결과로서 사람에게 평화가 나타났는데 그걸 믿고 기다리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 이런 놀라운 역사를 만나는 사람들에게만 평화를 받는 것이다. 재림하여 다시 오실 때도 여러분께서 이런 평화를 맛보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걸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로 나타나면 그때 평안이 오고 그때 나타난 그 평화란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기 이제 공동 번역에 이 14절 말씀을 번역을 해보니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기뻐하시는 사람들이 아니고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하나님에 사랑을 받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또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가? 사랑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다. 요한복음 14장 23~24절 말씀에 보니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지금 말씀하신 이 모든 말씀들이 아버지가 보내신 말씀인데 그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 예수님이 오신 것에 대해서 평화를 느끼고 그때 평안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들이 성탄의 결과를 맛보는 것이다. 새 번역에 또 이렇게 번역을 했다.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평화를 준다는 것이다. 사랑하시는 것과 기뻐하시는 것이 비슷한 말이다. 또 현대인의 성경엔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장 높은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에게 평화!" 은총을 받은 사람들만 그 평화를 누리는 것이다. 그럼 누가 은총을 크게 받는가? 누가 복음 1장에 보면 마리아에게 천사를 통하여 아기 예수가 나타날 때 그때 은총을 받은 마리아가 은총을 받은 여인이라고 고백을 하게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 그럼 마리아도 지금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서 처녀가 동정녀가 아이를 낳게 된다고 하는데 그 사실이 인간적으로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는가? 율법에 따라 처녀가 아이를 가지면 돌멩이로 쳐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정혼한 요셉을 보는 명목도 있는 거고 사람들의 이목도 있는 거고 그 모든 것이 그대로 있는데 그런 은총을 받아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는 일을 감당하는데 어쨌든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겠다고 이렇게 순종했지만 어떻게 되었는가? 여전히 인간적인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데 실제 아기 예수가 나타나니까 평안을 얻고 평화를 얻는 것이다. 말씀대로 이루어진다고 기도하고 순종했지만 그것이 은총을 받아서 진짜로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마리아가 아기가 실제로 나타날 때 다시없는 평화를 얻고 은총을 받은 그 여인이 정말 그 평화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말씀을 종합해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겠다 하는 그 구약의 모든 예언들을 믿음으로 받은 사람들이 은총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걸 받고 그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이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고 그걸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때 아기 예수가 실제로 나타나니까 그들에게 이제는 말씀대로 이루어졌고 은총을 받은 대로 계시 받은 대로 실제 예수님이 나타나니까 평화를 얻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 줄 수 없는 하나님의 평화인 것이다. 주님이 다시 여기는 재림의 때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누가 은총을 받은 사람이 될 것이냐,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될 거냐, 누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냐, 그래서 언젠가 주님이 재림하여 다시 오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때 아기 예수가 올 때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만 평화가 있는 그 평화를 그들이 맛보는 것이다. 그 말씀을 믿고 순종했고 그 말씀대로 줄 걸 소망했고 그 말씀대로 믿음을 따라 순종하면서 그 은총을 받고 말씀대로 실천하면서 이런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평화를 얻고 그 말씀대로 되어지는 것을 만나는 장면일 때 얼마나 놀라운 감격으로 얼마나 놀라운 평화를 얻겠는가? 생각해 보자. 300여 번을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한 그 주님이 실제 다시 온다면 그 약속대로 익은 열매되는 분들이 다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면서 놀라운 휴거가 연출될 때 그게 얼마나 놀라운 평화와 얼마나 놀라운 감격을 맛보게 되는지 그게 은총을 입은 사람들에게만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만 사랑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주님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이루어지는 평화다 그 말이다. 나머지는 다 그 환란에 들어가는데 거기에 무슨 평화가 있겠는가? 초림하여 오실 때 성탄의 이 놀라운 결과가 재림하여 오실 때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깨닫기 바란다. 분명히 재림하여 오시면 수많은 천군 천사에 쌓여서 이제 다시 한 번 그 천군 천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영계에서 놀라운 영광이 나타날 것이다. 초림 할 때의 천군 천사들이 영광을 돌린 것과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그럼 그때도 여전히 하나님께 기뻐하심으로 사람들,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사람들,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들, 하나님이 은총을 주는 사람들, 그 믿음대로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하는 사람들, 그들에게만 그 평화가 임하고 그 놀라운 은총을 만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예수님에 성탄의 결과로 10절 말씀에 보니까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이 기쁨의 좋은 소식은 바로 복음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그 결과로 복음이 나타난다 이 말이다.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이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감옥에서 해방이 되고 병든 자는 병에서 해방이 되고 귀신들에게 붙잡은 자는 귀신이 떠나가고 죄인들은 다 거기서 의인이 되어주고 어둠과 불행에 있던 인생이 빛과 행복으로 나가는 복음이 이 땅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이 성탄의 결과인 것이다. 로마서 1장 2~4절 말씀을 보자.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 복음은 하나님이 구약의 선지자를 통하여서 아들에 관해서 약속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 예수님이 오셨다. 다윗의 혈통으로 그 가문에서 오셨다. 성결의 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인정되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란 말이다.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이 약속하신 육신으로 예수님이 오셨고 이제는 복음이 남았다. 17절 말씀 보겠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의로운 자리에 나가야 하나님의 성품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인데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그게 이 복음 안에서 나타났다.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이 말이다. 그 복음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16절 말씀에 보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유대인은 택하신 선민이고 헬라인은 모든 이방인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방인이 됐든 유대인이 됐든 우리는 이 복음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르러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1장 15절에 사도 바울은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이 로마서를 마치면서 16장 25절 말씀에 보니까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전부터 감취었다가 이 사도 바울이 받은 복음 그럼 예수 그리스도인데 그 예수 그리스도는 영세로부터 감췄다가 이제는 성탄에 나타났다. 사도 바울이 그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음을 받았다.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예수님이 오시고 성탄이 되니까 복음이 나타나셔서 사도 바울에도 이 복음이 전해져서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하는 이 복음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진 것이다. 그 복음이 전해진 결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복음을 만나서 복음대로 살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면 나의 영혼이 점점점점 견고해져야 된다. 하나님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견고함으로 점점점 넉넉하게 하나님 안에 들어갈 자격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그럼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는데 점점점 의로운 사람이 돼야 된다 그 말이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낼 수 있는 그런 의로운 사람이 점점점 되는 것이 견고케 되는 것이다. 더 나가서 이 복음은 로마서 2장 16절 말씀을 보겠다.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되는 길을 여시고 죄인이 죄에서 해방되고 죽음을 뛰어넘고 이런 영생이라고 하나님에게 들어가는 길을 열어놓으셨는데 그 복음 안에는 은밀한 것까지 심판하는 심판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또한 우리는 알아야 한다. 복음에는 심판이 함께 오는 것이다. 2장 6절 말씀 보겠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그 일생을 살아간 그대로 주어진 삶과 주어진 건강과 물질과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받지 아니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다 선한 청지기처럼 모든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이런 사람들인데 그걸 어떻게 사용하느냐 거기에 대해서 보응하시고 심판을 하신다. 그런데 7절 말씀을 해서 보니까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모든 사람을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복음인데 참고 선을 행하여 그러니까 우리가 선을 행할 때는 참지 않으면 선을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참아야만 선이 행하는 것이다. 이 선은 하나님의 착함이고 하나님께만 있는 절대 선이다. 참고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성품인 영광을 구하고 존귀를 구하고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만 영생으로 하시니 나머지는 다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이다. 10절 말씀에도 말씀하신다.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율법을 받은 자는 율법대로 율법을 받지 않는 자는 양심이 증거 되어 심판할 것이다. 15절까지 이렇게 말씀하셨다. 복음에 이르는 바와 같이 이 복음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신 그날 그러니까 초림하여 오신 예수님은 복음을 가지고 가서 모든 인생이 영생에 이르고 의에 이른 하나님의 일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었지만 재림하여 다시 오신 주님은 심판의 주가 되어서 각 사람이 행하는 것을 그대로 갚아주는 심판의 날이 오는 그날이 거기에 있고 우리는 거기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는 기쁨의 소식을 받은 사람들이고 구원을 받고 정말 감사 감격의 삶을 살아가는 그런 인생이 되었지만 그러나 재림하여 주님이 다시 오신다면 그때는 심판하시고 심판주로 오셔서 우리 행하는 것을 그대로 갚아주는 그것도 함께 포함된 복음이 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다. 성탄의 결과로서 천군 천사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을 드렸다. 예수님이 영광의 주로 오셨고 하나님의 성품을 다 가지고 오셨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다시 한 번 오실 때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 중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나타나지 못했던 마지막 하나님의 성품 그것이 영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영생을 취하셨다. 그래서 또 영광을 돌리셨다. 다시 한 번 오실 때는 그 영생을 우리에게 부활로 차례대로 주실 것이다. 정말 그분이 오실 때 그 영생을 입어서 부활의 몸을 예수님 같이 입으면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그 영생을 받을 그때에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은총을 받은 사람들 하나님의 좋아하심을 입은 사람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 그 사람들만이 차례차례 그 평화를 받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 그 현실 속에서 놀라운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다시 오심을 사모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복음의 결론은 심판이고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것이고 마지막 인생들이 얻지 못한 영생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다시 오시는 것이다. 그래서 재림하여 오시는 그 주님이 복음 안에 다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예수님의 오심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우리가 기뻐하고 또 감사하고 감격하지만 다시 한 번 오실 주님을 묵상하시면서 정말 남은 생에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그런 사람들이 되시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 되시고 하나님이 정말 주목하는 사람들 그런 반열에 서서 놀라운 그런 사람들에게 받는 그 평화와 평강을 정말로 한 번 누릴 수 있는 그런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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