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
신명기 4장 10~14절
"10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
11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화염이 충천하고 유암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12 여호와께서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
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13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1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사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교훈하게 하셨나니 이는 너희로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오늘은 "십자가의 길"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2020년 2년 전 오래된 책 속에서
30여 년 전에 첫 교회의 표어가 적힌 주보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과 같이 잘 만들어진 주보가 아니고 옛날
기름종이에 철필로 쓴 직접 만든 주보였는데
그 당시에 그 주보를 보니까 지금 우리교회 표어인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전하자"
라는 표어 내용이 거기 있었다.
예수 믿은 지 2년차에 교회를 개척했으니까
그 당시 뭘 얼마나 알았겠는가?
바로 알지도 못했고 바로 믿지도 못하고
바로 전하지도 못하는데 그런 거창한 표어를
만들었던 것에 대해서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면서
이것을 받은 그때 그날 밤
주님이 계속해서 그것을 표어로 쓰라는 감동을 주셨다.
그러니까 일생 동안 우리는 바로 알아야 되고 바로 믿고
바로 전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와서
작년과 금년에도 여전히 또 저 표어를 썼고
당분간 몇 년은 아마 저 표어를 계속 써야 할 것 같은
형편이다.
작년부터 저 표어를 쓰면서 십자가의 도만큼은
우리가 바로 알아야 되는 게 아닌가?
이런 마음의 감동이 있어서
"낱낱이 파헤친 십자가의 도"를 그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지금 책으로 나와 있는 "십자가의 도"가 30가지 정도
되는데 앞으로 조금 더 보완할 것인데
10개 정도 추가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최근에 "십자가의 도" 가운데 또 한 가지를 깨달은 것이
있어서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도"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 한다.
굳이 제목을 붙인다고 한다면
"화염검으로 본 십자가의 도" 이다.
첫 번째,
창세기 3장 24절 말씀을 보면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이곳에서 쫓겨났고 하나님이 그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서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였다고 말씀 하셨다.
생명나무를 먹으려면 이 그룹과 화염검을 지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로 생명나무를 지켰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이 그룹의 의미가 무엇인가?
출애굽기 25장 17절 말씀
"17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찌며
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속죄소를 만드시면서 하나님이 그룹들을 세워서
그 속죄소 위를 덮으면서 속죄소와 함께 붙어 있도록
이렇게 만드는 것이 두 그룹인데 이것은 바로 천사다.
그래서 생명나무의 과실인 이 생명을 얻으려면 천사들을
지나가야 되고 천사와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화염검은 또 무엇인가? 하는 건데 화염검은
본문 가운데 신명기 4장 11절에 말씀 하셨다.
"11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화염이 충천하고 유암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하나님이 계명을 주시는 시내산에 나오시는데
강림하는 그 자리에 화염이 충만했다고 하였다.
여기서 이 화염은 불과 연기이다.
하나님이 강림하시는 그 자리에 불과 연기가 충만했다는
뜻이다.
신명기 4장 15절
"여호와께서 호렙산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하나님이 형상으로 나타나신 것이 아니고 불과 연기 속에
나타나셨다.
그래서 화염이 충만했다고 말씀한다.
신명기 11장 24절 말씀
"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고 그 하나님이 불로 나타나셨다.
불이 오면 모든 걸 다 태워 버리는데 소멸시키는 불이
곧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불로 나타나시는데 그 불로 나타나신 하나님은
영으로 있는 불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태우는
그런 불이 아니다.
영으로 계신 그 빛 가운데 불인 것이다.
그리고 연기가 나타났다는 그 연기는 불 때문에 나타나는
연기가 아니고 구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연기는 불에 타지 않는 불이기 때문에 연기는 없다.
그래서 구름으로 나타난 것이 연기라고 종종 표현을 하였다.
출애굽기 24장 15~18절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 칠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으니라"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40일 금식 하려고 시내산에
오르는데 그곳은 하나님의 그 영광이 맹렬한 불같이
보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불속에 연기가 나타난 것이 아니고
이것을 구름으로 표현하였다.
그래서 화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로 나타날 때
그와 동시에 나타나는 타지 않는 불이기 때문에
연기 같은 구름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화염은 하나님의 불이며
불과 구름으로 나타나시는 모습을 화염이라고 한다.
출애굽기 40장 34~38절
"34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37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 지면 동시에 구름이 나타난다.
곧 그 영광이 하나님의 불이다.
이것은 타지 않는 불이기 때문에 연기가 바로 구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지나갈 때 여호와가
구름으로 나타나고 불로 나타나셔서 광야에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행하는 모든 길에서 지켜 주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다.
여러분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이 불기둥으로 지키시고
구름 기둥으로 지키셔서 화염 중에 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불이고 구름이시다.
그래서 불기둥,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상징이고 광야 생활하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화염검은 또 무엇인가?
이 검은 칼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두루 도는 화염검이다"
창세기3장에 말씀하셨는데
다른 번역을 보면
"빙빙 도는 불 칼로 지키셨다"
이렇게 번역을 했다.
두루 도는 것을 빙빙 돈다고 하였다.
그리고 불칼이라고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그냥 칼이 아니고 불칼이라고 하였다.
시내산에서 불과 구름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자신이
말씀이시다.
그분이 십계명을 주시고 율법을 주셨다.
이것은 속죄소 법궤 안에 돌판을 넣어서 이 안에 말씀이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불칼은 불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그룹들인 천사와 불과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이
그 생명나무를 지키고 계신다는 걸 알 수 있다.
창세기 32장 24~30절 말씀을 보면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26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야곱이 제일 먼저 싸웠던 것은 바로 천사들이었다.
천사와 싸워 이겼고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야곱이 천사와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다는 이 말은
그룹들과 화염검으로 둘러싸인 그 생명나무를 먹게 됐다는
것이다.
지키고 있는 그룹인 천사를 이겼다는 것이다.
이것을 지키는 화염검 되신 하나님을 이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곱이 이기는 자가 된 것이고
이기는 자가 되는 순간 생명을 얻게 되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 가서 삯을 열 번이나 변개하면서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며 훈련 받는 가운데
말씀 지키는 훈련을 잘 감당하여서 결국은 구약의
이기는 자가 되었다.
여기서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않겠다" 하며
야곱이 그 바랐던 축복이 무엇인가?
장자권을 얻는 것이다.
장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야곱이 이때 하늘의 장자가 돼서
히브리서 12장 21~23절에 보니까
"21 그 보이는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하늘의 예루살렘" 이 곳이 장자들의 총회라고 하였다.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 이 생명을 먹기 위해 즉,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려면 반드시 화염검과 그룹들을
뚫고나가야 된다는 개념을 창세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화염검 되신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불이시고 말씀인데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나타나셨다.
그래서 말씀 되시고 화염검 되신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고 우리와 같은 흙을 입으시고 오셨다.
그러면 이 흙을 가진 인생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모범으로 보이시면서 그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화염검 되신 그분이 몸소 십자가를 통해서 그 생명을 얻는
길을 보여 주셨고 우리에게 그 길을 따라 오도록
그 생명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오면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시험이다.
말씀이 오면 그 다음에 나타나는 것이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훈련이 오는데 이것이 시험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불시험이라고 말을 한다.
베드로전서 4장 12~13절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동참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의 입장에서 말씀을 지키는 훈련과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고난을 우리도 동참하고 따라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고난이 말씀을 통해서 오는 시련이고 불시험이다.
이것이 화염검이다.
베드로전서 1장 7절 말씀에도 말씀하셨다.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다시 오면 이제 각 사람에 따라서 칭찬도 해주시고
영광도 나타내 주시고 우리가 존귀를 얻게 되는데
예수님 나타날 그때 그 영광과 존귀와 칭찬을 얻으려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도 더 귀한 믿음의 시련을
지나가야 되는데 이것이 말씀을 통해서 오는 불시험이다.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여러 가지 환경을
허락하여서 원수를 나타나게 하여 말씀을 지키고
훈련하게 하시는데 이것을 불시험이라고 말한다.
마가복음 4장 35절 말씀
"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바다 저 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면서
건너 갈 때 큰 광풍이 일어나서 제자들이 시험을 당했다.
왜 믿음이 없느냐고 주님은 책망하시면서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고 멈추게 하셨다.
35절에 "그날 저물 때에" 그날은
34절에 말씀을 보면 7가지 천국비유를 가르쳐 준 날이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마음의 천국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인
천국에 가려고 말씀을 받고 나니까 바로 그날 밤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죄악 세상이라고 하는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은 실습을 하게 된다.
여기서 그날의 광풍은 바로 불시험이다.
말씀을 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런 불시험을 기본적으로
다 통과할 수밖에 없는 훈련을 받아야만 한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도 이론을 배우고
그 다음에 바로 실습을 하게 된다.
모든 직종이 다 그렇다.
이론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에 실습이 있고 실기가 있다.
운전면허도 이론 시험을 합격하면 그 다음에 실습을 해야
되고 연습을 해야 된다.
모든 게 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주의 말씀을
접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 그 말씀에 따르는 훈련이
오는데 이것이 불시험이다.
이것이 다른 말로 화염검이다.
창세기 3장 19절에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타락하고 범죄 한 아담과 그 이후에
"너는 흑인이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고 하였다.
흙으로 만들어진 인생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새 하늘 새 땅이 나타나고 새 예루살렘이 나타나는데
여기는 흙이 아니고 전부 보석으로 가득 차 있다.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가는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인
새 하늘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에서
보석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
흙이 어떻게 보석이 되겠는가?
불시험을 지나가야 되고 불과 압력을 이겨야만
보석이 되어진다.
베드로전서 2장 4~5절 말씀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예수님은 산 돌이시다.
살아있는 돌인 예수님이 기초석이 돼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데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도
산돌이 되어야 한다.
같은 재료여야 그 집을 같이 쌓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돌 외에 다른 것이 아니고 같은 돌이어야 한다.
여기가 번역이 좀 어려운데 다른 번역을 읽어 보겠다.
"4 주님께로 가까이 오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을 받은
귀한 돌입니다.
5 여러분도 신령한 집을 짓는 데 쓰일 산 돌이 되십시오.
그리고 거룩한 사제가 되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신령한 제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리십시오."
그러니까 우리는 돌이 되어야 한다.
그럼 우리가 흙덩어리 같은 인생인데
어떻게 돌이 될 수 있는가?
반드시 불과 압력을 지나가야 돌이 된다.
인천 도자기 공장에 가면 그 흙덩어리를 가지고 모양을
만들어서 불가마 속에 넣는다.
그 불가마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반짝반짝한 도자기가 된다.
이렇게 불을 통과하여야만 흙이 단단한 돌이 된다.
대리석이 어떻게 생기는가?
흙덩어리가 굉장한 불과 압력 가운데서 만들어진 게
대리석이다.
이것을 가공해서 건축자재로 만들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멸망할
인생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대리석과 같은 산돌,
살아있는 돌 예수님과 같은 그 돌로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불시험이고 말씀을 지키는 훈련이다.
또 이것이 화염검을 통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믿는 순간부터 말씀 때문에
많은 훈련을 받게 돼 있다.
하나님이 말씀 지키는 훈련을 계속 환경 가운데
보내주시는 것이 은혜이다.
원수가 나타나야 사랑도 하고 누군가 나에게 범죄 하면
용서도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다 불시험이고 돌이 되어지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돌이 돌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보석으로 바껴야 한다.
돌이 되는 것이 영적으로 죄에서 해방되는 영혼 구원인데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육체까지도 부활을 입어야 된다.
그래서 부활을 입는 것이 바로 보석으로 바뀌는 것이다.
영원한 보석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면 돌이 대리석이 되고 도자기가 되려면 불을 통과해야
되는데 보석은 더 강한 불을 지나가야 한다.
보석은 더 강한 불을 이겨내야 한다.
1,000도의 가마 속에서 도자기가 나온다면 보석은 1,300도
더 높은 불을 통과해야 보석으로 나올 수 있다.
요한계시록 21장 11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이제 새 예루살렘 성이 내려오는데 실제로 새 예루살렘이
하나의 성으로 내려온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여기에 들어가 있는 유기체 된 성도의 모습이
새 예루살렘 성이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하나가 전부 보석으로 돼 있다.
18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째는 청옥이요 열 둘째는 자정이라
21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모든 것이 보석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라고 하였다.
길은 유리가 아니고 정금이다.
그러니까 성곽부터 시작해서 벽과 길과 또 거기에 있는
모든 성도의 모습이 전부 보석으로 표현되어 있다.
흙으로 되어 있는 인생을 하나님이 돌로 만드셔서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영혼 구원을 받게 하시고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부활을 입음으로 그 부활을 통해서
다시는 죽지 않는 영원한 보석과 같은 존재로 변화되었을
때 하나님 나라가 열려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보석이 되어지는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이것이 바로 화염검을 통과하는 것이다.
이것이 불칼을 지나가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결론은 우리가 이 불칼을 지나고 생명나무의 길을지나
생명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예수님이 모범을 보이신 대로
반드시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히브리서 5장 7~9절 말씀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도 말씀과 불 자체인 하나님이시지만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셔서 불시험을 당하면서 죄인의 입장에서 모든
시험 속에서 그 고난을 받았지만 이 모든 것을 순종 했다.
그러니까 모든 구원 얻는 자들에게 온전하게 되어지는 길을
보여줬고 모든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이러한 예수님처럼 저와 여러분은 모든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나타난 환경 속에서 예수님처럼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만 우리가 보석과 같이 돌과 같이
신령하게 세워지고 하나님 나라의 한 지체가
되어 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흙은 흙대로 그냥 돌아가고 썩어지고
멸망당하는 인생이 되고 만다.
반드시 신령한 돌인 예수님과 같은 재료로 바뀌어야 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보석으로 바뀌어야 만 된다.
이것을 위해서 반드시 불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될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인생들을 십자가를 통해 다시 불이
가해진 그 시험을 통과하니까 영원한 생명인 부활로
나타나셔서 우리에게 그 생명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셨고
모범적으로 가르쳐 주셨다.
저와 여러분은 모든 환경 속에서 예수님처럼
"아멘" 하면서 따라가야 된다.
예수님은 "아니요"가 없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죄인의 입장으로 오셨다.
로마의 황제로 오시지 않았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모든 것이 "예" 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멘"이시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나의 삶의 모든 환경을 내 맘대로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 맘대로 뭘 만들어 가고 내 맘대로 이렇게 살아가는 것
같은데 그 배후에서 그 환경을 주도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그 환경 가운데서 우리는 마음을 열고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서 말씀 순종하는 훈련을 통해서
빨리빨리 그 불시험을 통과하고 변화 받아서 돌이 되고
신령한 집이 되고 보석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이 길이 십자가의 길이고 이것이 창세의 화염검과
그룹으로 감춰진 생명나무의 길로 나가는 유일한 길임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체질의 신령한 돌, 살아있는 돌과
같이 변해서 예수님을 기초석으로 하여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시고 여러 가지 환경 속에서 예수님처럼
"아멘"하면서 그 십자가를 따라가는 것이
우리 각자 목에 주어진 십자가이다.
그러니까 주님이 나를 따라오려면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각자 내 몫에 태인 십자가가 있다.
이것이 불칼이고 불시험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속에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어렵지만 이것을 잘 감당하면서 예수님처럼 신령한 집으로
신령한 돌로 세워지고 그 불시험 가운데 보석으로까지
변화되는 이 십자가의 길이 유일한 생명의 길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마지막 달 말씀 지키는 훈련을 잘 감당하여
금년 한 해도 잘 결산하시고 놀라운 변화의 역사를
모두 맛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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