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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향연/메세지

마지막 유언이 주는 교훈

by Andrew Y Lee 2022. 11. 11.

마지막 유언이 주는 교훈

 

요한복음 14장 1~16절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11월은 "겸손의 열매를 많이 맺는 달"로 정했다.

우리가 더 겸손해질 때 하나님께서 더 많은 은혜를

부어 주시리라 믿는다.

 

나라와 민족이 참 어려운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는데

더 겸손해서 모두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가 임종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녀들을 불러놓고

가족과 남겨진 사람들에게 유언을 하게 된다.

이 유언은 법적인 효력을 가진다.

그리고 이 유언은 그의 인생관이 다 들어가 있다.

 

일평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인생관, 가치관이 다 들어

있기 때문에 가장 귀한 교훈이 된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33년간의 생을 살면서 유언하신 말씀이

요한복음 14~16 까지 내용이다.

 

순서대로 살펴보면

요한복음 12 1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마지막 유월절 어린 양으로 돌아가시기 때문에 엿새 전에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다니에 이르셨다.

 

그리고 12 말씀에 보면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예수님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걸 듣고

종려 가지를 들고 호산나 찬양하며 예수님을 맞이하였다.

 

요한복음13 1에 보니까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유월절 엿새 전에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점점 십자가를

향해서 나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요한복음14 1~16까지가 유언의 말씀이다.

그리고 17은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내용이다.

 

요한복음 18 1에 보니까

잡혀가시는 그날 밤을 맞이하게 된다.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그래서 잡혀가시던 바로 그날 유언으로 하신 말씀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 말씀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이 주는 교훈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영적인 유익을 얻고자 한다.

 

첫 번째는,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신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다 믿음의 대상이 있다.

회교라고 하는 마호메트교는 알라신을 믿고

유대교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

불교는 석가모니를 믿는다고 하는데

사실은 종교라고 보기가 어렵다.

불교는 부처가 되는 가르침, 모델 그런 정도에 끝나는

것이지 종교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반면에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믿음의 대상을 주님이

본문 1~2에 말씀하고 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기독교의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믿으라"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본문 8 이하의 말씀을 보면

"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빌립이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를 좀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였다.

 

10 말씀

"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고 모든 생애동안

아버지의 말을 하였고 아버지의 일을 하였다.

 

예수님이라고 하는 통로를 통하여 하나님이 그 일을

다 하시고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10 말씀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기적을 나타내고 이제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바다 위를 걸어가시고

이 모든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예수님은 나의 행하는 일을 보고 나를 믿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곧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시는 분이 아니다.

제가 수없이 반복해서 말씀을 드렸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분이 아니다.

영으로 계신 분이다.

 

디모데전서 6 15~16 말씀

"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하나님은 아무나 볼 수 있는 분이 아니다.

본 사람도 없다.

 

가까이 가지 못할 빛 가운데만 계시고

그분은 죽지 아니하는 영생이 있다.

 

그런데 그분이

"기약이 이러면 하나님이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이 기약이 바로 예수님이 재림하여 오실 때이다.

 

그래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오시는데 지상 재림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오시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다.

 

 빌립보서 2 6~7에 보면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그러니까 하나님은 볼 수 없는 그런 분이신데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고 그분이 곧 하나님 자신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또 나를 믿어라" 라고 하신 이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신앙의 대상인 것이다.

 

두 번째는,

예수님은 영원한 중보자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영원히 볼 수 없는 분이고 영으로 계신 분인데

형상을 입고 오셔서 그분이 이 인생들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가 있다.

 

디모데전서 2 4~5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이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시다.

 

특별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함으로

영생하시는 그 하나님 즉,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로

이 인생들을 만드는 중보자가 되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이다.

부활의 생명을 주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공급해 주신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평강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모든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다.

 

그리고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도 기도의 응답도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다.

 

본문 12~14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예수님이 중보자가 돼서 모든 구하는 것을 전부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다.

 

요한일서 5 14~15

"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기만 하면 모든 걸 다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담대하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데 하나님

뜻대로만 구하면 그것을 들으셔서 우리에게 구한 것을 주신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분은 우리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중보자가 되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늘에서 살 수 있는 영원한 생명수 영원한 빛 이 모든

것을 전부 예수님을 통해서 공급을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1 23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하나님은 영원한 새 하늘 새 땅에서도 볼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런데 그의 빛이 어린 양이라고 하는 등을 통해서

우리 비쳐진다고 하였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빛이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모든 생명체는 빛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에서도 하나님의 영원한 빛이

비춰주지 않으면 우리는 살 수가 없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영원한 빛이 예수님이라고 하는

등을 통해서 예수님이라는 중보자가 없으면 우리는

그 빛을 받고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영원한 중보자가 된다.

 

요한계시록 22 1 말씀에도 보면

"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천국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을 받는 방법을

생명수를 마시는 것과 생명과를 먹는 것처럼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하늘나라에 가면 생명수와 생명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공급받는 것을 먹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생명수의 강이 어디로 흐르는가?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흐른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인데 예수님이라는 중보자를

통해서 이 땅에 새 하늘 새 땅을 내보내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생명의 공급도 빛의 공급도

전부 예수님을 통해서 하신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늘나라는 놀라운 평강, 절대 평강의 나라이다.

두려운 것이 없고 우울한 것도 없고 어둠이 전혀 없는

곳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평강만 있는 곳이다.

기쁨만 있다.

사랑만 있다.

이 모든 것이 다 예수님을 통해서 공급받는다.

 

그러니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부터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우리 안에 들어와 점점 커져가고

우리의 심령 안에 그 천국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그 기쁨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이 주시는 하늘의 평안,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현재적으로 내가 얼마나

누리고 있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에 비례한다.

 

절대 평강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다면

절대 기쁨이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절대 생명이신 그분을 믿는다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세상에 줄 수 없는 평안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그 기쁨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자리 잡게 된다.

 

우리는 각자 이 모든 것이 심령을 통하여 얼마만큼

공급을 받고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여러분! 예수님 믿고 평안하십니까?

예수님 믿고 기쁨이 넘치십니까?

예수님 믿고 사랑이 충만합니까?

 

나의 평강과 기쁨과 사랑의 정도가 나의 믿음의 정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나의 믿음만큼만 사랑을 행하게 된다.

그 만큼만  평강을 누린다.

그 만큼만 기쁨을 가진다.

 

우리 각자가 그 믿음에 비례해서 예수님을 통하여

공급받는 것을 현재적으로 받아 누리면서 점점 확장되고

우리 심령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며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인

새 하늘 새 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여러분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믿고

예수님을 믿으면서 그 놀라운 평강과 기쁨과

그 놀라운 사랑이 충만하길 간절히 축원한다.

 

이 세상에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우리는 이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야 한다.

 

세 번째는,

구원의 결론이 무엇인지 예수님은 유언을 통해서

우리에게 지금 알려주고 계신다. 

 

요한복음 14 23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우리 구원의 완성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오셔서 거처를

함께하는 그것이 구원의 완성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우리에게 와서

거처에 함께 하신다.

이것이 우리 구원의 결론이다.

 

요한계시록 21 3~4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의 장막에 함께 계시니까 하나님의 그 모든 속성이

그대로 다 나오고 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하나님은 절대 평강과 기쁨 안에 있는 분이기 때문에

이 죄악 세상을 지나가면서 이 광야를 지나가면서 흘렸던

모든 눈물을 다 씻기시고 다시 눈물 흘릴 일이 없는

그런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고 사망도 없고 애통하는 것도

없고 곡하는 것도 아픈 것도 다시 있지 않고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과 함께하여 처소를 같이 하는 것이

새 하늘 새 땅으로 나타나고 땅으로 내려오게 된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구원의 결과이다.

 

예수님의 유언 속에 이 귀한 교훈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신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과 거처를 함께

하여 이 구원의 완전을 이루어 가는 그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말씀을 지켜야 한다.

 

요한복음 14 21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한복음 14 24에도 말씀하신다.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나온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요한복음 14 15에도 말씀하고 있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그러니까 오직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으로만 이루어진

나라이기 때문에 이 사랑을 지키고 이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나야 그 심령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가 함께 모여 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3 34~35에도 또 말씀하신다.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구약의 계명 속에서도 말씀을 지켜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이 옛 계명을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지 않아

계명과 언약은 다 파괴되고 마치 남녀가 이혼한 것처럼

이혼서를 써 주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버림받은 후

예수님이 오셔서 새 언약과 새 계명을 다시 주셨다.

 

그래서 새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하나님과 거처를 함께 하는 것이다.

 

바로 새 계명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는 받았다.

하늘 보좌를 다 버리시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감당하시고 지옥 고통을 대신 받으시고

우리를 대속해 주신 그 사랑으로 너희도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랑을 행하지 않고서 우리는 아무도 이 놀라운 구원의

완성을 이룰 수가 없다.

 

요한일서 5 2~3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처음에는 무거운 것 같지만

점점 지켜나가며 행할 때마다 이것이 점점 가벼워지게 된다.

 

마치 작은 눈 한 덩어리를 뭉쳐 굴려가면서 점점 커다란

눈사람이 되어지는 것처럼 이렇게 우리가 이 말씀을 지켜

나가다 보면 자꾸만 탄력이 붙게 된다.

 

운동선수가 열심히 연습을 하면 자동반사가 발달한다. 주

먹이 날라 오면 운동하는 사람은 저절로 손이 올라가서

방어하고 공격하게 된다.

 

이 자동반사란 말이 운동으로 열심히 단련하여 나가는

것처럼 모든 것이 자동반사로 되어야 한다.

 

전에 춘천에 있을 때 어느 집사님이 시어머니를 미워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며 기도를 받았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좀 탤런트가 될 수 없겠냐"

텔런트처럼 연습을 하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부족할 때는 억지로도 흉내를 내서라도 해야 한다.

운동선수가 열심히 운동해서 자동 반사가 되는 것처럼

저절로 사랑이 그 환경 속에서 튀어나오게 된다.

억지가 아니게 된다.

연습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이것은 쉽지 않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러 환경에서 열심히 말씀을 지키는

연습을 해야 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운동선수가 어디 있는가?

훈련하고 연단 받으니까 실천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것을 경건의 연습이라고 한다.

수도 생활을 하고 규칙을 정하는 것도 경건의 연습이지만

우리가 삶의 모든 현장에서 그 순간마다 말씀을 지켜내는

것이 경건의 훈련이고 연습이다.

경건의 훈련 후에는 자동반사로 나가게 된다.

 

요한일서 3 16~24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20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까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라고 하였다.

 

지금도 생각이 난다.

파주에 있는 목사님 한 분이 작년인가 소천을 하셨는데

큰 집회는 아니었지만 사랑 성회를 하셨다.

 

가정교회 같이 조그만 교회에서 한 열댓 명이 모여

한 달에 한 번씩 사랑 성회를 수년간 하셨다.

 

그분은 키가 크고 건장한 분이었는데 폐결핵이 와서

수십년 동안 뼈가 다 물러져 나중에는 곱추같이 돼 버렸다.

이런 분이었는데  그럼에도 사랑 성회를 계속 하셨다.

 

또한 아이들에게도 이것을 가르쳤다.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했으니까 예수님 믿는 우리도

이 형제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고

서로 사랑을 해야 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어느 날 목사님이 몸이 불편하니까 한 중학생 아이에게

'뭐 좀 사다 주겠냐?' 하며 심부름을 보냈다.

잔돈이 남아서 남은 돈을 용돈으로 쓰면 좋겠다고 하며

그 돈을 아이에게 주니까 이 아이가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 아이 말이 '목사님한테 우리가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는데 형제를 사랑하고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배웠는데 제가 목사님을

위해 심부름 해드린 것이 뭐 대단하다고 제가 이걸

받겠습니까?' 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아이들에게도 사상이 박혀 있어서 사랑 실천을 한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이 이런 사랑이다.

 

우리 형제자매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 사랑인데 우리도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만큼 사랑해야 된단 말이다.

 

진실함으로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마음의 책망할 일이 없다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다 받는다고 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스스로 양심에 책망이 많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책망할 것이 많겠는가?

 

스스로 양심에 찔림을 받고 사랑하지 못한 우리가

책망할 일이 많은데 하나님이 보실 때 책망 받는데

얼마나 큰일인가?

 

그런데 마음의 책망할 것이 서로 없다면

하나님의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다 받고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의 기뻐하는 것을 행할 수 있다고

말씀한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처소에 하나님이 오셔서 함께 하신다는 말이다.

 

그때부터 거처를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와서 거처를 함께하는 이것이

구원의 결과고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반드시 말씀을 지키고

그 사랑을 완성해야만 한다.

 

본문 요한복음 14 16 말씀에 보니까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하나님과 예수님이 거처를 함께 하는 것이 구원의

완성인데 성령님이 오셔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

 

성령님이 이 구원의 완성을 이루신다.

 

예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갖다 주어서 죄 사함을 받게

하시고 17에 저는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는다고

18에 말씀하시고 그래서 내가 하나님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있는 것처럼 또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이 모든 것을 반드시 성령님을 통해서 해주신다고 말씀한다.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된다.

예수님이 중보자가 되시지만 대신 보내신 성령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주시는 평안과 기쁨과 영생이라는 모든 것을 계속

우리에게 공급해 주신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이런 것들을 받아 놓을 수가 없다.

여러분 성령 충만을 사모하시기 바란다.

 

우리가 믿으면 그 믿음의 결과인 성령이 충만하게 되고

성령이 충만하니까 어떤 환경이 와도 성령 충만한 만큼

평강을 누리게 된다.

 

영적 할례 받고 죄에서 해방이 안 돼도 성령이 충만한 삶을

일생동안 살아간다면 똑같은 효과를 가질 수가 있다.

성령 충만하면 계속 공급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환경이든지 성령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힘을 써야 되고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이 성령님이 진리를 깨닫게 하여 진리라고 하는 말씀의

거울 속에 우리를 비추어서 죄를 회개할 수 있도록

책망하게 하신다.

 

거울을 비춰주는 게 성령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리를 깨닫게 하고 죄를 생각나게 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우리에게 공급해줘서 죄를 씻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함께하여 영원히 거처를

함께하는 이 일을 성령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아야 되고 성령이 충만해야

말씀을 하나라도 지켜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유언적인 교훈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교훈을 알게 되었다.

 

또 예수님이 중보자 되어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다고

하는 이것을 우리가 깨닫고 대신 보내신 성령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를 진리를 믿게 하고 깨닫게 하고 구원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씀과 성령 충만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유언적인 교훈을

통하여 하나님을 잘 믿고 예수 잘 믿고 이 땅에서부터

그 평강과 기쁨과 그 놀라운 영광을 그 놀라운 생명력을

공급받아서 지금부터 천국 생활이 여러분 안에 충만하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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