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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메세지

영혼의 온도를 높여라

by Andrew Y Lee 2022. 10. 22.
영혼의 온도를 높여라




요한 계시록 3장 14~22절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지금은 100세 시대가 되다보니 건강에 관심이 많은
시대가 됐고 수많은 건강법이 등장했다.


여러 가지 운동하는 법, 다양한 건강보조식품
또 다이어트에도 여러 가지가 방법이 생겨나고
최근에는 입기만 하면 건강해지는 의복들도 등장했다.


그런데 꾸준하게 사람들에게 관심과 인기가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뭐냐 하면 10년 전에 책으로 나온 것이 있는데
"체온 1도 올리면 면역력이 5배 높아진다"이다.


이 책은 일본 작가가 쓴 것이다.
"이시하라 유미"라는 사람이 10년 전에 이 책을 썼는데 말
그대로 체온 1도 올리면 면역력이 5배 높아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암, 고혈압, 당뇨, 알레르기, 비만, 우울증
이런 병들이 전부 면역력이 떨어져서 생기는데
체온을 1도만 높여도 이런 면역력이 5배 높아진다고 한다.


암은 우리 체온이 35도 이하에서 증식을 하고
체온이 39도 이상이 되면 소멸을 한다.
그래서 몸이 차가우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체온이 떨어지는 이유를 이 책에서는 폭식을 한다거나
차가운 음식을 먹는다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거나
에어컨 아니면 근육 운동이 부족하거나 할 때라고
소개하며 체온을 올리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그래서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체온 1도 올리기
건강법으로 유행하였다.


동네시장을 지나가다 보니까 그곳에 체온 1도 올리기
방이 있었다.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체온을 올려준다는 것이다.


사람의 구조가 영혼과 육체가 되어 있는데
육체의 온도가 올라갈 때 면역력이 증가하는 것처럼
영혼의 온도도 마찬가지이다.


영혼의 온도를 1도만 올려주면 영적 면역력도 5배 증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이 "영혼의 체온을 높이라"
이런 제목으로 정했다.


첫 번째;
현대 교회와 현대 교회에 있는 교인들의 특징이다.


초대교회에 사도 요한을 통해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 일곱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이 다르고 일곱 교회에 나타나서 책망하시는 모습도
다르고 권면도 다르고 약속도 다 다르다.


그 일곱 교회는 이 교회시대의 모든 교회 유형으로
샘플이 된다.


그래서 여기에 있는 책망이 나에게 하는 책망이 될 수도
있고 나에게 하는 권면이 될 수도 있고 약속은 그 교회시대
모든 사람에게 하는 약속이기도 하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며 또한 동시에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모든 시대의 교회 모습을 에베소 교회에서부터
라오디게아 교회까지 시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두 가지 면을 다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인류 속에 나타나는 교회의 모형이어서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씀인 것과 동시에
시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
개인적으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고 오순절의
그 첫사랑을 잃어버린 초대교회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초대교회 에베소는 그 첫사랑을 잃어버렸다고 하였다.


시기는 사도 때부터 약 100년 때까지의 교회를
에베소 교회라고 한다.


그 다음에 서머나 교회는 핍박을 받았다.
로마 시대의 박해는 아주 유명하다.
성경에는 1일을 1년으로 계산하는 예가 많은데
그 열흘간 핍박이 온다는 것이 10년간의 박해이다.
실제 초대교회는 10년 동안 로마의 핍박이 아주 극심했다.
그래서 서머나 교회는 핍박받는 교회였다.


그 다음에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는 카톨릭 교회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어두웠던 그런 시대였고
사데 교회가 종교 개혁이 일어났던 때이다.
개혁은 했지만 영적으로는 죽은 자와 같았다.


그 다음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
선교 운동이 일어나고 경건주의가 일어난 그런 때고
이 빌라델비아 교회 이후에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가
예수님 오실 때까지 지금 마지막 때 교회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대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이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은 본문에 있는 것처럼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에 있었는데
이것이 마지막 때 교회의 특징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시대에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는
미지근한 그런 시대이다.


그래서 주님은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아니한 이런 신앙을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겠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에 차던지 하는 말은 얼음이 어는 빙점 0도를 말하는
것이고 뜨겁던지 하는 이 말은 물이 끓는 100도를 말한다.


그러니까 주님은 우리가 뜨겁게 되기를 원하지만
미지근하면 그냥 토해 내쳐 버리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0도가 돼서 얼어버리든지 100도가 돼서 끓든지
이렇게 분명해야 하는데 미지근한 신앙은 주님이
원치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이것은 마지막 시대는 영적인 것 보다는 육적으로
풍성한 때를 말한다.


그렇지만 주님이 보실 때는 오히려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며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해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이것은 많은 성도들이 연단을 통해 나타난 정금과 같은
신앙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하였다.
이렇게 영적으로 흰 옷 입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시대인 것이다.


누가복음에 보면 주님이 말씀하신다.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휴거되는 흰 옷 입은 사람이 드물고 연단을 받은
그런 사람들이 드물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약을 사서 보게 하라" 그랬는데
안약을 사서 봐야 될 만큼 눈이 어둡고
양심의 눈이 어두워졌다는 말이다.


이것들이 마지막 때 라오디게아 교회의 특징이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하였다.
이 열심을 내라는 것은 뜨거워지라는 것이다.
이 열심은 뜨거움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 불같은 뜨거움이 있으니까 열심을 내게 되고
불의 역사가 있게 되는데 그 불의 역사를 좀
일으키라고 말씀하고 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모든 교회 동안에 주는 메시지이고
교회의 유형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시대적으로도
그대로 이루어지는 그런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마지막 때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미지근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시대,
불로 연단한 금을 찾기가 어려운 시대,
흰 옷을 입은 성도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시대,
양심의 눈이 열어져서 안약을 사서 보게 할
이런 필요가 없는 성도들을 보기가 어려운 시대이다.


그래서 주님이 열심을 내라
그리고 우리의 심령을 두드려서
"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지성소의 문을 열라고 말씀하고 있다.


마음에는 주님이 들어왔지만 그 성소의 신앙생활 말고
지성소의 문을 열라고 주님이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 마지막 때는 대부분 세상적으로 부요한 것을 찾게 되고
노아의 때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정욕에 몰두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것이 인자의 올 때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신앙이 미지근하니까
"뜨거워져라" 주님이 권면한 것처럼
우리는 영혼의 온도를 높여야 할 필요성이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두 번째,
어떻게 뜨거워질 것인가?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
뜨거워진다.


누가복음 24에 보면 엠마오로 가는 그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함께 가다가
예수님이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주고 눈이 밝아지니까
그때 비로소 예수님을 알아봤다.


그러면서 그들이 32에 고백 한다.
누가복음 24 32
"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은 뜨거워지게 된다.
또 이 말씀을 행해 나갈 때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게 된다.


예레미야 23 29
"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의 말씀이 불같은 말씀이고 그 말씀은 불인데
불이 오면 어떻게 되는가?
태워버리는 작용을 하는 게 불이다.
그 불이 오면 빛을 드러낸다.
그 불이 오면 뜨거워진다.


하나님 말씀이 불이니까 불이 임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죄를 소멸해 버리고 그 불이 오면 우리를 빛 되어
나가게 한다.


하나님 말씀은 불이다.
그 말씀의 불을 받아야 우리가 빚 가운데로 나가서
빛 된 행실도 하고 죄가 소멸되고 뜨거워지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이 불같은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들을 때 깨달아지면서 불과 같은 성령으로
역사하면서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의 온도를
높여야 한다.


둘째는,
깊은 기도의 자리로 나갈 때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진다.


오늘 본문 가운데 보면 "열심을 내라"
그러면서 "회개하라"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회개하며 기도할 때 성령이 충만해지는데
이 성령도 불과 같은 성령이다.
말씀도 불이지만 성령도 불과 같은 성령으로 오신다.
우리가 회개하면서 뜨겁게 기도하면
우리 마음이 뜨거워진다.


찬양 할 때도 뜨겁게 찬양하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기도하면
우리 영혼의 온도가 올라가게 돼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영적인 면역력도 높아진다는 말이다.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시기 바란다.
우리는 합심하여 기도해야 된다.


제가 얼마 전에 어느 카페에 내용이 너무 좋아서 들어가
보려고 하니 아무나 못 들어오게 해 놓았다.
그래서 가입을 하려고 하니까 조건이 붙어있었다.
이 카페 주인이 거기에 이렇게 질문을 적어 놓았다.
"하루에 기도는 몇 시간 합니까"
저는 그런 카페는 처음 봤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여기 들어오지도 말라는 것이다.
이 카페의 내용이 정말 좋다고 하여도 거짓말을 해서
가입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최고로 기도 많이 하는 날을 잡아서
2시간 한다고 했다.
우리가 2시간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제가 매일 기적의 방에 가서 1시간 설교하고 기도하고
많으면 보통 2시간 하기 때문에 양심껏 2시간이라고
써놓고 겨우 가입을 했다.
여러분도 그 카페에 들어가셔서 양심껏 해서 가입해
보시기 바란다.


우리는 한 시간 기도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을 살아간다.
어떤 분이 책을 썼다.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
책 제목인데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 못하는 시대에
우리는 서 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지니까 영적인 면역력이
뚝 떨어진 것이다.


여하튼 우리가 어찌하든지 기도를 내 삶에 우선순위에
두고 기도 생활을 해야 여러분의 면역력이 올라가고
영적인 온도가 올라가게 된다.


미지근한 것은 주님이 토하여 내친다고 했는데
정말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정말 뜨겁지 못하면
우리도 주님은 토하여 내 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할 때
우리 영혼의 면역력이 올라가고 영혼의 온도가
올라가게 된다.


세째는
우리가 사랑할 때, 사랑하게 되면
우리 영혼의 온도가 올라가게 돼 있다.


제가 어제 갑자기 책을 빨리 좀 정리해서
영성 칼럼 두 번째 책을 정리해서 보내려고 서두르는데
글이 다음 카페에 저장 되어 있었는데
3시에 갑자기 다음카페가 열리지 않았다.


마음이 뜨겁고 성령님이 빨리 급하게 독촉 하셔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었는데
결국 책 마무리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다행히 화재로 다음카페가 열리지 않았던 것이 다음날
복구되었는데 거기서 정리하다 보니까
예전에 "재도전"이라고 하는 그런 글을 보게 되었는데
설교 준비를 하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에 있는 한국 목사님이 간증 하신 것이다.
예전에 제가 "재도전"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글을 썼었는데
다시 생각 이 났다.


간증하신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에 미국에 가서 생활을
하였는데 살다보니 면허증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전도사님의 사모님이 면허를 따기 위해서
같이 운전 연습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많이 듣는 얘기지만 운전 연습하다가
부부 싸움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도로교통법이나 운전 시험은 당시에 한국하고
달랐고 지금도 약간 다르다.
미국은 그냥 도로 주행을 하면서 주차도 하면서
시험관하고 같이 다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연습을 많이 해야만 한다.


전도사님이 사모님을 연습 시키는데 사모님은 처음 운전을
하다 보니 신호등도 안 지키고 막 가기도 하고 인도를
돌진해버리고 하니까 옆에서 가르치는 전도사님이 얼마나
놀랬는지 그래서 그리로 가면 안 된다고 막 소리를 지르니까
사모님이 그 소리에 더 놀래서 더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두 달 동안 연습하면서 엄청 싸웠다고 한다.
그리고 두 달 만에 시험을 봐서 합격은 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합격은 돼서 면허증은 받았지만
기쁘지가 않더라고 하였다.


마치 전쟁에 나갔던 사람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왔지만
모든 힘을 소진해서 탈진하고 돌아온 것과 같은 상태로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힘을 다 썼기 때문에 탈진한 병사처럼
그렇게 마음이 기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 전도사님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내 속에 이런 죄악성이 있구나!' 속에 혈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고 하였다.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로마서 7장에 탄식을 했는데 그 영혼의 탄식을 하는
성도들이 이 시대에 많지 않다.


율법대로 살아서 그저 육신적으로 죄 안 짓고
감옥 안 가면 의인인 것처럼 착각 하는데
주님은 어떻게 하는가?
내면을 다루신다.


그래서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미 마음으로 미워하면 살인한 것이고 남의 것에
탐심을 가지면 이미 도둑질을 한 것이라고 하였다.


마음의 율법을 받아서 마음을 더 지켜야 되는 그런 과정을
그 전도사님이 그때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전도사님이 두 달 동안 연습을 해서 면허를 따기는
땄는데 사모님과 싸우면서 마음속에 그런 갈등이 생겨
고민을 하게 된 간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전도사님이 그러한 환경을 다시 한 번
만들어서 재도전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재도전"이다.


그 당시에 교회 안에 면허증이 필요한 사람이 없을까
보니까 담임 목사님 사모님이 면허가 없었다고 한다.
담임 목사님은 사모님이 운동 신경이 좋지 않으니까
당신은 면허 따지 말라고 딸도 말리고 주변사람들이
말려 면허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전도사님이 사모님을 면허 따 드리기로 하고
자기를 그 환경 속에서 들어가 다시 한 번 마음속에 죄가
나타나는지 그것을 재도전하게 됐다고 하였다.


결국 그 사모님도 여전히 처음 운전을 하니까 돌발적인
상황이 많이 벌어졌지만 그때 마음속에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그렇게 재도전해서 성공을 했다고 한다.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중요시 생각해야 한다.
마음속에 죄가 나타나는 그 환경 속에서 우리 다시 한 번
회개하고 그 환경 속에서 또 한 번 이겨서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이제는 지지 않겠다는
이러한 재도전의 정신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또 다른 이야기는 그 무렵에 그 전도사님은 유학을
갔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면서 전도사로 시무를 했는데
미국 대도시도 주차하기가 어려웠는데
학교에 가까운 주차장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학교 뒤 골목가 어느 주택 앞에다가 차를 세워놓고
수업을 듣게 됐는데 나중에 나와 보니 차가 펑크가 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어느 날은 나가니까 아예 타이어가 다 찢어져
있었다고 한다.


유학 생활 하면서 돈이 없는 상태였는데 어떻게 겨우 겨우
타이어를 교체해서 갔는데 며칠 후에 또 한 번 찢어져 있었다.
결국 세 번 연속해서 찢어 놨다고 한다.


유학 생활하면서 돈도 없는데 세 번이나 찢어 놔서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범인을 잡아야겠다. 가만두지 않겠다.
하면서 벼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주일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찬양하면서
"평화의 기도"를 노래하게 됐다고 한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십시오
미움이 있는 곳에서 사랑을"
그 찬양을 부르는데 눈물이 나고 회개가 되면서 그 사람의
영혼이 불쌍해지고 자기가 그렇게 악한 마음을 가진 것을
회개하였다고 한다.


그때 은혜를 크게 받아서 "어느 분이 제차에 펑크를 냈는지
모르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현수막을 내걸고 싶은 마음이 될 정도로
다 풀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마음이 뜨겁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순간 성령이 깨닫게 해 주셨는데 펑크 냈던
사람이 그 주차자리가 탐나서 펑크를 내면 오지 않겠지!
타이어를 찢으면 오지 않겠지!
그래서 그 사람이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것을 성령님이
그 순간 가르쳐주셨다고 하였다.
그는 그 싸움에서 승리를 한 것이었다.


찬양을 부르면서 주님이 그 마음을 다루니까
비록 타이어를 세 번이나 갈면서 마음에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이것을 미워했던 마음을 회개하고
악으로 대했던 마음을 회개하면서 다시 한 번
승리하게 된 간증을 썼다.


그러니까 아마 그분은 그 당시에 두 번째 싸움을 싸우면서
내면에 갈등을 겪었던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이렇게 연단을 받으면서 어두운 밤을 지나가는 것 같은
이런 과정을 가더라도 언젠가는 창문을 열면 태양 빛이
들어오게 돼 있지 않느냐 이것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어둠 밤을 지나면서 썼던 글이다.
이게 법칙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실망하지 말고 창문을 열면 태양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내 편에서 할 일을 다 하면 하나님께서는
하실 일을 안 할 수가 없다는 그런 요지로 쓴 글이다.


지금 태양빛이 창문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이 빛이 들어온다.
이것처럼 내면이 깨끗하게 닦아진 영혼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은사가 부어질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빛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편에서 할 일을 다 못하고 나니까
하나님도 할 일을 안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법칙이기 때문에 우리는 실망해서는 안 된다.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진다고 약속하고 있다.
환란 속에서 인내의 말씀을 다 지키고 말씀대로 살아가면
언젠가 이 법칙대로 내 창문에 태양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내 편에서 할 일을 다 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할 일을 하실 수밖에 없다


이 글은 저희 집사람이 미국에서 한참 어려운 가운데
있을 때 제가 편지하면서 쓴 내용이다.
우리가 어두운 환경에서 정말 어두움을 지나가지만
우리 앞에 믿음의 선진들이 이렇게 우리 편에서
할 일을 하고 그 내면을 닦고 깨끗하게 하면 하나님은
태양의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하나님은 역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절망하지 말고 이런 과정 속에서 순수하게 내면을
지키면서 마음으로 미워하지 않는 영혼이 뜨거워지고
새롭게 되는 재도전 한 전도사님처럼 그런 환경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여러분 조금도 낙망하지
마시고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을 지키면서 뜨겁게 찬양하고
뜨겁게 기도하고 또 우리가 사랑으로 열심히 나가면
우리 마음이 뜨거워질 줄로 믿는다.


말씀의 결론은 세 번째로
우리가 여러 환경 속에서 실패하지만
재도전하자 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온도를 높이고 찬양으로 온도를 높이고
기도로 온도를 높이고 사랑 실천으로 온도를 높이면서
우리가 재도전을 하자 순간순간에 쓰러져도
또 도전을 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오뚜기처럼 일어나야 된다.
7전 8기에 그런 정신을 가지고 일어나야 된다.


홍수환 선수가 4전5기로 챔피언이 된 것처럼
우리는 끝까지 일어나야 된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실천하면서 재도전을 해야 된다.


육신의 온도가 중요하고 육신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영혼의 온도는 더 중요하다.


생각을 해보자.
육체의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가?
육체의 온도가 얼마나 중요한가?
1도만 올려도 면역력이 다섯 배인데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1도 올리기가 쉽지 않다.
아침마다 체온을 재 봐도 1도 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올리기만 하면 다섯 배로 올라간다.


내 영혼의 온도와 내 영혼의 건강은 더 중요하다.
왜 그런가?
육체를 통하여 나타난 모든 우리의 표면적인 삶은 다
영혼의 영향력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영혼이 잘 돼야 범사가 잘 되는 것이고
영혼이 잘 돼야 범사가 강건하면서
모든 일이 다 잘 되는 것이기 때문에 영혼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원인은 놔두고 육체만 가지고 아무리 건강하고
아무리 온도를 올려봐야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모든 원인과 결과가 먼저는 영혼 속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할 때 그 영혼이 정말 더 잘될 수 있도록
영혼의 온도를 1도 높이고 영혼의 건강을 좀 더 생각하면서
영적으로 치달으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승리할 수가 있다.
그래서 영혼의 온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된다.


여러분 환경 속에서 어렵지만 낙심 하지 말고
새롭게 도전하시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주님은 자꾸만 우리 영혼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
그 환경 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우리 환경이 왜 이런 환경인가?
하나님이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고 하나님이 줬다.


뺏기도 하고 하나님이 이런 분이신데 왜 이런 환경 속에
나를 보내시는 이유는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도
우연히 없는데 우리를 환경 속에 집어넣는 것은
우리 영혼을 다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서
우리는 넘어져도 재도전해야 한다.


영혼의 온도가 사랑의 온도가 하나님이 정하신 분량을
채우기 전까지는 그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다.


광야를 지나면서 변화 받을 분량이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구름 기둥이 안 떠올랐다.
분량이 차면 구름 기둥이 떠올라 떠났는데
다시 환경이 바뀌게 된다.


광야를 지나가면서 40년 동안에 42번이나 진을 치고
텐트 생활을 42번 옮겨갔는데 왜 그랬는가?
옮길 때마다 처리해야 할 자아가 있고 처리해야 될 환경이
있는데 그것이 지나가야 텐트가 옮겨지고 그것이 지나가야
구름 기둥이 떠오르고 계속해서 광야를 가는 건데
그 영혼의 문제가 해결 안 되니까
매일 육체 환경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된다.


그래서 우리 육체의 온도도 육체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원인과 결과는 내 영혼의 문제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분이 영혼의 온도를 1도를 올리는데 힘쓰고
영혼의 건강을 더 생각하면서 환경에서 넘어지고 쓰러져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재도전해야 한다.


아내와 함께 운전 연습하면서 화를 내고 면허는 땄지만,
전쟁에서 승리한 탈진한 병사지만 다시 한 번 더
이 환경에서 내가 승리해야 되겠구나 하며 그 환경을
또 만들어서 재도전해서 결국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똑같은 환경이 찾아올 때 넘어지지 않고 죄를 짓지 않도록
말씀과 기도와 사랑으로 영혼의 온도를 높여야한다.


우리에게 어떤 환경 속에서 재도전하면서 승리하고
영혼의 온도가 이번 기회를 통해서 1도가 올라가고
영적인 면역력이 5배나 높아지는 그 놀라움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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