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바의 종교개혁
사무엘상 7장 3~14절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오늘은 10월 마지막 주로 종교개혁 기념 주일이다. 505년 전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마틴루터가 종교 개혁을 시작한 날이다. 당시 카톨릭 교회는 면죄부를 팔아서 큰 성당을 짓기에 바쁜 그런 때였다. 자기가 예수 믿지 않아도 가족이나 누군가가 면죄부를 대신 사면 그 사람의 죄가 사해지고 천국가게 된다는 이러한 잘못된 사상에 대해서 반기를 든 것이다. 그래서 95개 조항을 피텐베르그 성당 정문에 붙이면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 믿음과 성경을 주장하면서 종교개혁을 했다. 마틴루터가 한 유명한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이라면 천국이라도 살 수가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라면 비록 그곳이 지옥이라도 살아갈 자신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그것은 천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옥이라 불리는 곳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면 살아갈 수가 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매일 아침 새벽 기도를 하지 못한 날은 마귀에게 패한 날이다" 하였다. 그러니까 종교 개혁을 하면서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고 매일 매일의 기도 생활이 있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하는 그런 신앙 고백이다. 천년 동안 중세 어두운 시대에 이 성경은 사제들만 보고 일반 신도들에게 성경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성경을 더 많이 인쇄해서 자유롭게 전파하고 복음을 확산시켜 믿음과 성경을 강조함으로 개신교회를 태동시켰던 그런 날이다. 종교개혁은 개신교에서 매우 중요한 날이다. 종교개혁을 했던 500여 년 전의 그때뿐 아니라 지금도 교회는 계속해서 개혁이 돼야만 한다. 이 시대 세계의 모든 교회와 한국 교회 모두가 개혁의 대상이다. 구약시대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종교 개혁을 했던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이 시대에는 종교 개혁에 무엇이 필요한가? 사무엘의 종교 개혁을 본 받아서 함께 은혜 받으며 나누려고 한다. 첫 번째, 사무엘의 종교 개혁은 우상을 제거하는 일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이 개혁은 우상숭배에서부터 우상을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 된다. 본문 사무엘상 7장 3, 4절 말씀에 보면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도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 "다른신을 내 앞에 두지 마라", "너를 위해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마라" 이렇게 우상숭배에서 멀리할 것을 제일 먼저 말씀하셨다. 당시 이스라엘은 블레셋이라고 하는 이웃 나라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나라와 민족이 매우 어려웠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은 어느 시대든지 다른 나라를 강하게 해서 그들을 막대기로 채찍으로 사용하셨다. 한 나라뿐 아니라 우리 개인과 가정 속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못하면 블레셋이라고 막대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우리 이웃의 누군가를 들어서 막대기와 채찍같이 우리를 어려움으로 다스린다.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우상을 버리는 것이 급선무라 하며 "우상을 제거하라 그래서 우리가 축복을 받고 구원을 받자" 라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한국교회도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 종교 개혁의 첫 관문이다. 아모스 5장 6절 "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 요엘 1장 14절 "14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찌어다" 어느 시대든지 이 우상을 제거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야만 그 시대가 바뀌는 것이다. 요엘 2장 12절 "12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그래서 진정한 개혁은 우상을 제거하는 일부터 시작 돼야 한다. 우상숭배 제거는 나라와 민족도 함께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서 개인적으로 가정에서 먼저 시작 돼야 한다. 이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형상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형체가 없어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는가? 생각 하면서 빨리 버려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하나님만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골로새서 3장 5~8절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에는 욕심을 따라서 정욕을 따라서 음란과 부정과 사욕을 따라 살아갔는데 이것들이 전부 우상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상은 무엇인가 형상을 만들어놓고 절하면 그것만이 우상이 아니다. 우리 각자 마음속에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것을 더 사랑하게 되면 그 자체가 우상이 된다. 어젯밤 10시 22분에 이태원에서 할로윈 축제들을 한다고 많은 젊은 들이 모였는데 10만 명 이상이 모인 것 같다. 그런데 언덕길에서 서로 밀치다가 압사 사고사 나서 현재 밝혀진 게 150명 정도가 죽고 150명이 다쳤다고 한다. 이것이 우상, 귀신 놀음이다. 이 이상한 문화가 한국에 들어와 많은 젊은이들이 죽게 된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두 번째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오직 그만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 사무엘상 7장 3절 말씀에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하나님만 섬기는 것 이것이 우리가 종교 개혁을 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개혁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만 마음을 향해야 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만 푯대로 삼아서 그 만을 섬겨야 한다. 히브리서 12장 2절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는 매 순간에 예수님을 바라봐야 된다. 하나님처럼 온전해지고 하나님처럼 완전한 자리에 가야 우리가 구원의 자리에 이를 것인데 믿음의 주이시고 믿음의 대상이시며 온전케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온전한 길을 몸소 걸어 보이셨고 모범을 보이셨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따라가야 한다. 어린아이들이 부모님을 쫓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오래전에 제가 강원도 산골에서 이렇게 눈이 쌓이는 그런 지역에서 살았는데 눈이 아이들 키 높이까지 쌓이면 그 길을 아이들은 지나갈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눈을 밟고 지나간 그 발자취를 따라 쫓아가게 된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분이 그 믿음의 길을 걸어갔고 그분이 온전한 자리로 걸어갔고 그 분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예수님 배후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만을 섬기는 이 길로 가야 된다. 그래서 복음서에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을 누구로 삼느냐?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다른 것을 주인으로 섬기면 안 된다. 다른 것을 섬기면 그것이 우상이고 그것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둘 사이에 머뭇거리지 말고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한다. 열왕기상 38장 21절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백성에게 외치는데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우리는 매 순간에 이렇게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바알을 섬길 것인가?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우리는 순간순간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세상 정력과 욕심과 탐욕이 다 우상인데 이것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이 따를 것인가? 어느 것을 따를 것인지 그것이 주인이 된다. 금요일 어느 권사님을 만나서 잠깐 대화를 나누게 됐다. 이분이 예수님 믿은 간증을 하면서 누가 성경을 줘서 예수를 믿기 시작했는데 창세기 1장에 보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을 보는 그 순간에 '그럼 그렇지!' 하나님만이 이 세상을 창조했겠지 하나님을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야 되는구나' 하며 그 순간 주님을 영접하게 됐다고 하였다.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을 보는 그 순간에 성령님이 역사해서 '그래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만드셨고 나를 만든 건 하나님이시야 그러니까 나는 당연히 하나님을 주인으로 해서 하나님만을 섬겨야지' 이런 결단이 생기면서 그때부터 예수님을 믿게 됐다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 사무엘상 7장 2절 말씀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니까 성막과 궤가 따로따로 분리가 돼서 성막은 성막대로 궤는 궤대로 이렇게 방황 하다가 다윗성에서 함께 만나게 되는데 20년 동안 잃어버린 그 궤가 돌아오니까 백성들이 여호와를 사모했다고 하였다. 사모하는 사람에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겨 회개할 때 새롭게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부족하지만 우리도 그 사모하는 마음을 놓치면 안 된다. 계속해서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 때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다. 다시 은혜를 베풀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주신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니까 본문 7장에 이런 놀라운 미스바 회개운동이 일어나는 은총을 베푸셨다. 어떤 환경이든지 그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런 인생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회개하고 돌아가야 한다. 백성들에게 회개하도록 할 때 백성들이 6절 말씀에 보니까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이렇게 회개하며 자복하고 있다. 그래서 개혁운동은 반드시 회개를 통과해야 한다. 세례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외쳤고 예수님도 복음 전파의 제일선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고 하였다. 천국은 회개하는 자에게 임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성령님께서는 죄를 깨닫고 회개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시편 51편 17절 "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우리는 부족하다. 매일 모자르고 연약하다. 매일매일 말씀에 실패하고 매일매일 기도 생활에 실패하고 영적 생활은 매일 실패하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나갈 수밖에 없는 그 상한 마음을 주님은 멸시하지 않고 받아주신다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통회하면서 상한 마음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의 피가 또 필요하고 어쩔 수 없이 주님의 말씀이 필요하고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그 상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은 멸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다. 우리 중에 완벽한 인생이 어디 있는가? 이 광야에서 다 부족한 인생이다. 다니엘도 나라 민족을 위해서 회개하면서 울었고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다윗도 죄를 범한 후에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자신을 죄가 얼마나 중한지 깨닫고 침상이 떠내려갈 정도로 회개했다고 하였다. 눈물을 얼마나 흘렸으면 침상이 떠내려갔겠는가? 그만큼 통회 자복을 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와 같은 회개 운동이 다시 한 번 일어날 때 종교는 개혁되어진다. 니느웨와 같은 회개 운동이 일어나야 된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개혁에 성공할 수가 있다. 니느웨가 어떻게 했는가? 단 한번 요나의 전도를 듣고 왕에서부터 모든 백성에게까지 죄를 무릅쓰고 회개했다고 하였다. 온 나라 백성들 심지어는 기르던 육축까지 짐승까지 금식을 시키면서 함께 회개하며 자복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리시겠다고 하는 진노를 거두시는 축복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이 저주하고 진노하겠다고 했는데 그들의 회개가 돌이키게 만들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요나서 3장 3~10절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4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6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7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찌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를 통해서 40일 후에 니느웨를 멸망하겠다고 하나님은 기한을 정해버렸다. 그런데 니느웨는 적국인 앗수르의 수도였다. 요나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그 앗수르가 멸망하길 원했고 그들이 구원받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 불순종을 하였다. 그런데 요나가 어려움을 당하니까 다시 한 번 말씀대로 니느웨에 가서 외치게 되었다. 여기서 40일이라는 기간을 정한 이런 음성이 우리에겐 안 들리지만 하나님은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는 자꾸 건드린다. 환경을 어지럽힌다. 블레셋이 쳐 들어오는 것처럼 이것이 우리의 환경 되어서 여러 가지 일들이 터진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환경들이다. 이럴 때 우리가 회개하여 그 경고를 받아들일 때 거기서부터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켜서 새롭게 되는 은혜가 있게 된다. 그러니까 이 니느웨가 40일 후에 멸망하겠다고 하니까 모두가 이 소문 듣고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굵은 베를 입고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고 먹지도 말고 심지어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온전한 금식이다. 모든 생물체가 다 여호와께 나가 부르짖고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다고 하였다. 여기 "감찰"이라고 하는 이 말이 미스바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를 감찰하고 계신다. 아시아 일곱 교회에 나타난 예수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보신다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인 것을 믿는가? 그분이 우리의 모든 삶의 구석구석을 계속해서 보고 계신다. 중심을 계속 돌아보시고 감찰한다는 말이 미스바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미스바에서 백성들이 자복하는 모습들을 하나님이 계속해서 감찰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감찰하신다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에겐 블레셋이 따로 없지만 여러 가지 환경들에 의해서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면서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환경을 주셨는지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한다. 우리를 감찰하시는 그분 앞에 뜻을 돌이켜 회개한다면 그 순간에 개혁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게 된다. 본문 가운데 6~7절 말씀을 보면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을 두려워하여" 회개가 시작이 되면 그 순간 바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악령은 더 공격을 해 온다. 우리가 단 한번 회개하고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회개하니까 그걸 듣고 블레셋이 공격을 해오고 있다. 우리가 회개하면 종종 이렇게 악령의 공격을 더 받을 수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거기에 그치지 말고 8절 이하 말씀을 보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회개가 시작되면서 악령들이 공격해서 환경이 더 어지러울 때 그때 필요한 게 무엇인가? 온전한 번제를 드려야 된다. 하나님이 나를 받으실 만한 온전한 행실로 번제를 드려야 한다. 이 행실이 바로 번제이다. 그리고 부르짖는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더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이 원리를 잘 알아야 된다. 10절에 보니까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회개할 때 악령들의 공격이 더 강해지고 그래서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부르짖어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그때서 간섭을 하셔서 블레셋에게 우뢰를 보내서 어지럽히니까 블레셋이 패망하게 되었다. 이런 정도가 아니다. 12~13절에 보면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우리가 어떤 환경 속에서 블레셋과 같은 어려움을 당하면 온전한 회개와 온전한 번제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응답이 되면서 다시는 그 문제를 가지고 어려움 당하지 않게 된다. 다시는 이스라엘에 경내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말씀 하였다. 그리고 14절을 보면 "14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여기서 빼앗겼던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회복되었다고 하고 있다. 그러니까 빼앗겼던 우리에게 주신 여러 지경도 있고 분깃들이 도로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의 열매고 응답의 역사이다. 여러분 모두가 빼앗겼던 분깃들을 되찾게 되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우리는 꼭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 마지막 때 정치도 어렵고 경제도 어렵고 종교도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접하는 정보가 옳은 건지 뉴스가 옳은 건지 선악간에 분별을 할 수 없는 정보 전쟁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지금 얼마나 잘못된 정보들이 많고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가 깨우치기 참 어려운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데 이러한 때 우리 민족과 우리의 교회가 하나님의 진노를 다시 다 되돌려서 축복받는 백성이 되고 축복된 나라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자신부터 회개할 때 가정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이 교회가 앞장서서 나라와 민족이 변화될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시작이 되는 것이다. 소돔 고모라가 왜 멸망을 했는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의인이 없으면 그 공동체와 그 나라는 멸망을 당 할 수밖에 없다. 이 미스바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이 계속 감찰한다는 것인데 하나님이 이 대한민국을 계속해서 감찰하고 계실 것이다. 교회 마다 계속해서 감찰하실 것이다. 여러분 가정마다 우리의 심령을 계속 감찰을 하실 것이다. 어디에 의인 열 명이 있을까? 어디에 의인이 있는지 두루 감찰하시면서 찾고 계신다. 그래서 회개의 역사를 교회가 앞장 서야한다. 이 대한민국에 예수 믿는 사람이 수천만이 된다고 하지만 탐욕과 우상이 사로잡혀 있다. 면죄부로 인해 종교 개혁이 시작된 것처럼 큰 건물들을 지으려고 면죄부가 필요하고 돈이 필요했듯이 오늘날 교회를 대형화시키기 위해 많은 돈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것이 이 시대 우상이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는 면죄부처럼 기복적인 신앙으로만 잘못 흘러가고 가고 있다. 우리는 이런 때에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각 개인의 마음속에 우리의 가정 속에 우리 공동체 속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들을 내 던져 버려야 한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결단을 해야 한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내가 섬기겠다!' 둘 사이에 머뭇거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결단하고 그 안에 지은 모든 죄를 회개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악령들에 의해서 공격당해 어려움을 겪겠지만 그때 온전한 번제로 나의 변화된 행실을 하나님께 보일 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받으실 것이다. 그리고 간절히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그때 간섭 하셔서 잃었던 분깃을 찾게 하시고 다시는 그런 문제로 어려움 당하지 않도록 하신다. 우리가 종교개혁주일을 지나면서 교회의 사명이 어디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마지막 때에 우리가 이곳에 왜 있는지? 또 하나님이 우리를 왜 이 자리까지 인도하셨는지? 각자 생각해 보면서 나부터 종교개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래야 할 것이다. 저희 친할머니 묘지가 여기 가까운 곳에 있다. 14살 때 할머니는 천주교회를 다니셨다. 그 어렸을 때 할머니는 공부한 적이 없어 소유리 문답을 읽을 수가 없어 내가 읽어드린 일이 생각이 났다. 그런데 거기에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가슴을 치며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사무엘이고 다니엘이고 이 나라와 민족의 죄가 나의 죄라고 표현했다. 다니엘이 개인적으로는 이긴자이고 귀한 분인데 무슨 죄가 얼마나 있겠는가? 그런데 나라와 민족의 죄가 내 탓이고 내 죄라고 하였다. 이런 다니엘에게 하나님은 70이레의 예언을 주시고 나라를 구하는 계시를 주셨다. 우리는 각자가 '내 탓이요'하며 나부터 종교개혁을 해야 한다. 나부터 우상을 제거하고 나 부터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하고 나부터 새롭게 되어 회개할 때 나의 환경에 더 어려운 공격이 온다 할지라도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내 가정을 어지럽히고 내 자녀를 어지럽히고 내 환경 전체를 어지럽혔던 이 블레셋 같은 환경이 다시는 나를 공격하지 못하는 새롭게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가슴을 치며 '내 탓이요' 하는 이런 결단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부덕은 내 탓이고 덕은 그대 탓이오'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가정에서 잘못되고 부덕한 건 내 탓이라 하고 덕스럽고 좋은 일은 그대 탓이다라고 할 때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다. 각 가정에서 이렇게 꼭 한번 해보시길 바란다. 이번 주 종교개혁주일을 지나며 각자가 회개하여 새롭게 되고 우리 가족과 공동체들이 새롭게 되어서 작은 역사가 나라역량에 영향을 주고 놀랍게 변화되는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
'말씀의 향연 > 메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하고 담대하라 (2) | 2022.11.18 |
---|---|
마지막 유언이 주는 교훈 (0) | 2022.11.11 |
저주의 언약과 회복의 길 (1) | 2022.10.30 |
영혼의 온도를 높여라 (2) | 2022.10.22 |
반전에 성공하는 인생 (0) | 2022.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