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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메세지

하나님의 사람

by Andrew Y Lee 2022. 7. 4.

하나님의 사람

 

열왕기하 6장 8절~18절

 

"8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며 그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9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곳으로

나오나이다

10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자기에게 고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방비하기가 한 두번이 아닌지라

11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번뇌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의 내응이 된 것을 내게

고하지 아니하느냐

12 그 신복 중에 하나가 가로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13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보내어 잡으리라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리사가 도단에

있나이다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오늘은 "하나님의 사람" 이라는 말씀의 제목을 주셔서

함께 나누려고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칭호를 여러 가지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이 되었다는 "인자"라는 말을

쓰셨고 하나님의 어린양 또 독생자 수많은 칭호를 쓰셨는데

반면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도 많은 칭호를 사용하셨다.

 

선민 또는 하나님의 자녀, 성도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

이런 칭호를 쓰셨다.

 

오늘은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을 제목으로 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첫 번째는,

성경에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를 들었던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구약의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신명기 33 1

"1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여호수아 14 6

"6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셨는데

그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성경에 이렇게 부르고 있다.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였다.

 

열왕기하 1 9~10,12,13

9 이에 오십부장과 그 오십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저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서 본즉 산 꼭대기에 앉았는지라 저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10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인을 사를찌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오십인을 살랐더라

12 엘리야가 저희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인을

사를찌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서

저와 그 오십인을 살랐더라

13 왕이 세번째 오십부장과 그 오십인을 보낸지라 셋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의 앞에 이르러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컨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인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이렇게 여러 번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는 디모데에게 유일하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를 쓰셨다.

 

디모데전서 6 11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사도 바울이 "너 하나님의 사람아" 유일하게 디모데를 향해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다.

 

오늘 본문 가운데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를

쓰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열왕기하 4 27

"27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열왕기하 5 8, 20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20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 가지고

온 것을 그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저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취하리라 하고"

 

열왕기하 6 9,10,15

9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곳으로

나오나이다

10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자기에게 고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방비하기가 한 두번이 아닌지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열왕기하 13:19

"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성경에는 여러 성도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를 썼다.

 

두 번째,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11 26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안디옥 교회에서 처음으로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방 선교의 전초기지라고 할 수 있는 안디옥 지역에서

바나바와 바울을 초청하여 거기서 1년간 열심히 가르쳤을 때

비로소 사람들이 저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 말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누구에게 속한 사람, 그리스도의 것 이렇게 표현한다.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요한복음 14 20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3년 전에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열두제자로 양육되어지고 이제 예수님의 공생애가

끝나고 오순절이 왔다.

 

여기서 오순절을 "그날"이라고 하고 있다.

 

"그날이 오면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그 안에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이겠는가?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처럼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한 합일을 이룬 그 상태를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 15 7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포도나무의 비유를 하면서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곧 말씀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여러분 지금 원하는 대로 구하는 대로 다 이루고 있는가?

아직 그런 경지가 아니라면 그 말씀이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다.

그런 경지가 아니라면 예수님이 아직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모형으로 말씀드린다면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서 가나안까지 가는데 그 애굽은

죄악 세상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니까 죄악 세상에 놔둘

수 없어서 모세를 보내서 건져내셨다.

출애굽하게 된다.

 

그런데 모세는 곧 하나님의 자녀를 이끌어내는 예수님,

성령님을 상징한다.

 

예수님이 오셔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피로

출애굽하여 떠나지만 아직 가나안에 도착한 것이 아니고

광야 생활을 하게 된다.

 

광야 40년을 지나면서 바로 군대가 쫓아오고 아말렉이

쳐들어오고 미디안 연합군이 쳐들어오고 광야 40년에

세 차례의 영적 싸움을 끝내야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서는 가나안 땅 입구에 있는 할례산을

제일 먼저 만나게 된다.

 

할례산에서 할례를 받으니까 애굽의 수치가 굴러

떨어졌다고 하였다.

 

우리가 아직 광야 가운데 있을 때는 주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예수님을 만나서 출애굽하고 떠났지만

3년 동안 훈련받으면서 이제 오순절 성령을 통해서

그 날이 오면 바로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그 안에

완전한 생명의 합일을 주셨다.

 

이 가나안은 모형적으로 천국을 상징한다.

요단강을 건너야 가나안이다.

건너야 그 안에 있는 것이다.

그래야 영원한 생명으로 합일 된다.

 

성령이 와서 일시적으로 계시지만 언제든지 가라지가

되기도 하고 타락할 수 있다.

 

가나안에 갈 수 있도록 보증하는 성령으로 우리가 실제

연단과 훈련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신앙의 경지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제는 하나님의 것이 됐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유가 됐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 9장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그 후 사도 바울이 아랍에 가서 훈련 받고

고향인 다소에 가서 훈련받고 그리고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에서 목회를 시작할 때는 그 가나안 땅에 들어간

신앙의 사람이 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11년 만에 그런 신령한 경지에 들어갔다.

 

사도 바울의 그 영향력 안에서 1년 동안 안디옥의 성도들이

다 예수를 믿는 신앙생활의 모습을 보니까 예수님의 향기가

났고 예수님의 빛이 드러났고 저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것이고

저들이야말로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그때 듣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세상 가운데 이런 말을 듣는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 왜 나쁜 사람으로 취급 받는가?

 

왜? 예수님의 빛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됐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열왕기상 16 30~31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이스라엘의 전 역사 가운데서 아합의 시대에 이스라엘은

위기를 만났다.

 

이스라엘 모든 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이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이세벨은 바알을 가지고 왔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정말 영적으로 어렵고 악을 행하고

우상이 판을 치는 그런 시대였는데

열왕기상 17 1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가장 어둡고 악을 향하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판을 치는 그 악한 시대에

하나님이 여기에 걸맞게 하나님의 사람을 일으켰는데

바로 이 사람이 엘리야였다.

 

17 1에 엘리야는 출신 배경도 없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런데 그 엘리야를 향해서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 시대에 걸맞게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바알, 아세라  선지자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을 다 처단하면서

나라와 민족을 다시 한 번 어려운 위기에서 건지시기 위해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 시대에 걸맞은

사람으로 세우셨다.

 

우리는 잘 깨달아야 한다.

우리나라도 지금 나라와 민족이 매우 위태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했는데

열왕기하 2 9

"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엘리사가 구한 것은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이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승천시키기 위해서 2장에 보면

벧엘로 가고 또 여리고로 가고 여러 군데를 옮기면서

끝까지 요단강까지 따라간 그 엘리사는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열왕기하 2 14~15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15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고"

 

하나님의 사람이 그 아합의 때에 하나님이 세운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구했는데 하나님이 이것을 허락하셔서

엘리사가 받았다.

 

그래서 엘리야가 떨어뜨린 겉옷을 취하여 요단강물을

치고 갈 때 많은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에게 위에 머물렀다" 하였다.

 

그리고 나서

열왕기하 4 27

"27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처음으로 엘리사를 향하여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어서 계속 본문에 이르기까지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의미를 정의한다면

하나님께 선택을 받고 하나님이 보내셨고 훈련과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

이렇게 우리가 결론지어서 말할 수가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모세도 하나님이 선택하여 그 시대에 하나님이 보내셨다.

백성을 40년 광야로 인도하기 위해서 먼저 미디안 광대에

가서 40년 동안 연단과 훈련을 받았다.

 

하나님의 연단과 훈련을 통해서 가나안땅에 들어간

하나님의 사람, 오순절 제자들처럼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을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른다.

 

세 번째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람의 영적 상태가 어떠했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다.

 

본문 열왕기하 6 12

"12 그 신복 중에 하나가 가로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과 싸울 때에 어디에 진을 치고

어떤 작전을 세우는지 이스라엘 왕은 이것을 다 알고

대처를 하였다.

이렇게 되면 전쟁은 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어떻게 움직이는 걸 다 알고 있었던 것은

아람왕 신복이 말하기를 엘리사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있어서 왕이 침실에서 하는 말이 전부

이스라엘 왕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엘리사가 있는 동안은

우리에게는 전쟁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어떻게 다른 사람의 침실에서 하는 그 말을 알아듣고

이스라엘 왕에게 얘기해서 대처할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신령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영적인 상태이다.

 

열왕기하 5 26

"26 엘리사가 이르되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5에서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이 나았는데 엘리사는

아무 사례도 받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었기 때문에 그도 거져 주었다.

그런데 몸종인 게하시가 엘리사의 이름을 핑계대고

나아만에게 가서 예물을 받았다.

 

열왕기하 5 22~25

"22 저가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생도 중에 두 소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 왔으니 청컨대 당신은 저희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23 나아만이 가로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저를

억제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저희가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24 언덕에 이르러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취하여 집에 감추고 저희를 보내어 가게 한후

25 들어가서 그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

가 어디서 오느냐 대답하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게하시가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받아 감췄다고 하였다.

 

그리고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네가 어디서 오느냐"

그러니까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엘리사가 거짓임을 알고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면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26에 엘리사가 이 말을 했다.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엘리사는 이 자리에 없었지만은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엘리사가 적군 아람왕의 침실에서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고백한 내용이다.

 

여기 있는데 적군 왕의 심령 모든 것이 마음으로 감각이

되어 진다는 말이다.

 

말씀 하나 더 보겠다.

고린도전서 5 3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사도바울이 1, 2, 3차 전도여행을 통하여서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고 이 몸은 고린도 교회를 떠나 있지만 고린도 교회

누군가가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5 1에 나와 있다.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이방인 가운데도 없는 음행을

저질렀는데 이것을 사도 바울은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고린도 교회와 함께 있어서 이것을 누가 행했는지

이미 판단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것이 엘리사의 감각이 움직이는 것 같이 사도 바울의

영적 상태이고 이긴 자, 하나님의 사람의 영적 상태가

이 정도가 돼야 한다는 놀라운 말씀이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도의 성자 썬 다싱이

젊은 시절에 성경 하나를 들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갔다.

 

많은 영혼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그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서 전도하러 갔다.

그런데 한 겨울에 발이 미끄러져서 절벽 밑으로 떨어졌는데

정신을 잃어버렸다.

 

눈을 떠서 보니까 어느 컴컴한 동굴 속에 자기가 들어와 있는데

거기에 이상한 짐승 형상의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 동굴 속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머리털이 길게

자라고 손톱이 자라서 마치 괴물처럼 머리털이 온몸을

다 덮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 하나가 거기에 짐승처럼 앉아있는 걸 목격하였다.

이 분이 마하리쉬이다.

 

오랜 세월을 온 세계의 문제를 가지고 중보 기도하고 있던

마하리쉬 대선사를 만났다.

참으로 신령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그 마하리쉬를 히말리아 동물 속에 감춰놓고

온 세계의 모든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중고 기도하도록

중보기도 사역자로 이 곳에 숨겨놨는데 썬 다싱이

이 선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겠는가?

 

그 마하리쉬에게 썬 다싱이  부탁하기를 고향 인도에

내 친구 선교사가 있는데 지금 길이 열리지 않고 있다고

내 친구를 위해서 기도 좀 해 줄 수 없겠냐고 하니까

즉각적으로 답이 나왔다고 한다.

 

그 친구는 무슨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썬 다싱이 산에서 내려와서 마하리쉬 만난 것을 신문에

다 내고 그 친구를 찾아가서 그 사정을 얘기해 보니까

마하리쉬가 말한 그 내용 그대로 그런 죄를 범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 마하리쉬가 그 썬 다싱의 친구 선교사의 영적인 상태를

바로 알고 썬 다생에게 알려준 성경 구절 두 개가

오늘 제가 읽은 성경 구절이다.

 

고린도전서 5 3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열왕기하 5 26

"26 엘리사가 이르되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제가 오늘 이 2구절을 인용하였다.

 

여러분 깨달아야 된다.

나라와 민족을 누가 지키고 있나?

하나님의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다.

 

열왕기하 2 12절 말씀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야를 보고 지금 뭐라고

고백을 하고 있나?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그랬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향하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라고 하였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데 영으로 계신 하나님이

육체적으로 오셔서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전쟁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건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으로

사용하고 계신다는 말이다.

 

열왕기하 13 14

"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엘리사가 엘리야를 향하여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고백한 것처럼 엘리야의 갑절의 영이 임한 엘리사도

요아스에게 똑같은 말로 고백 받는다.

 

본문 6장 말씀에 적군의 상태를 이스라엘 왕에 전부 알리고

준비한 게 누구인가?

엘리사이다.

 

심지어는 본문 가운데 6 18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이 적군이 더 많고 이스라엘 군사는 적었다.

 

그래서 수종 든 사람이 많은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엘리사가 그의 눈을 열어 보게 되니 수많은 불말과

불병거와 산에 가득 하였다고 하였다.

이 불말과 불병거는 하나님이 보낸 천군 천사이다.

 

이걸 보니까 이수가 더 많고 18절에 보니까

"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엘리사가 적군의 눈을 어둡게 해달라고 기도한 내용대로

하나님이 적군의 눈을 어둡게 하여 전부 사마리아로

데리고 갔다.

 

이렇게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받은 엘리사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서 이스라엘 나라 민족을 지켜내는

마병과 병거가 되었다.

 

여러분 깨달아야 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직업이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직업 안에 생업으로 하는 그런 일도 있을 것이다.

먹고 살아야 되니까 직업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직업 안에 봉사 정신을 섞어서 하는 직업도 있고

소명의식을 받아서 하는 직업도 있다.

 

그리고 더 나가서는 천직도 있다.

하나님이 주신 직업이다. 

이렇게 직업도 여러 가지 의미로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 자체는 저와 여러분의 천직인 것을

여러분이 믿으시기 바란다.

이것이 우리의 천직이다.

 

세상의 생업과 세상의 모든 일보다 이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우리의 나머지는 악세서리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고 내가 이 시대에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적당한 때에 우리를 보내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로서 엘리사처럼 이 시대의

아픔을 같이 하면서 어떤 영향력을 이 시대에 주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우리는 영향력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깨달아야 된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러 가지 연단과 훈련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어렵고

갑절의 영감도 받아야하는 대단히 어려운 일인데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목표를 가지고

기도해야 된다.

 

내 신앙은 하나님이 천직으로 나에게 준 것이고 내 신앙의

목적과 방향이 어디에 있느냐 이 목적과 방향을 처음부터

제대로 설정을 해야 우리가 근처에도 가게 된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고 나라와 민족을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지킨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대중들에게 인기를 받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외롭고 힘든 고독한 길을 걸어갔던

것처럼 다 숨어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면서 그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499장 찬송가 에 있는 가사처럼 하나님의 동산에서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지만 이 세상에 할 일이 많아서

보내시는 것이다.

 

주님과 있는 것이 더 좋은 신령한 경지이지만 하나님이

할 일이 있어서 보내시는 것이다.

 

아가서의 술남미도 완전한 자가 되고 나니까

이제는 "함께 가자" 신랑의 일이 내 일이 되니까

그 일에 동참 하게 된다.

 

예수님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고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있으니까

예수님의 일이 내 일이 되고 그 아픔이 내 아픔이 돼서

이제 세상에 나가서 그 아픔을 나누고

그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신앙의 목표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설정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금 가장 어두운 이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한국 땅에 많이 나타나도록 여러분 그렇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란다.

 

나라와 민족이 평안해야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로 할 것이고

어둠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어야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둠에서 건지시고

대한민국도 편승해서 어둠에서 나와 모두가 함께

빛의 세계로 나갈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여러분이

깨달으셔서 구약의 하나님의 사람처럼 디모데처럼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도록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신앙과 목적의 방향을 이렇게 정하셔서 달려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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