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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메세지

감사와 찬양

by Andrew Y Lee 2022. 7. 23.

감사와 찬양

 

아사야 12장 1~6절

"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찌어다

6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

 

모든 과일이 색깔과 맛이 다 다르듯이 모든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사명, 자신만의

메시지가 다 있다.

 

시대의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다.

사명이 조금씩 다 다르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그런 사명도 있고

이제 싹이 나면 양육시키는 사명도 있고

또 주님 오시기 전에 추수하는 사명도 있다.

 

그래서 각각 목회자들도 색깔이 다르다.

또한 메시지도 다르고 은사도 전부 다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사야 선지자의 특징은 무엇일까?

이사야 선지자는 구원자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사람이다.

 

범죄 한 이스라엘에 대해서 지적도 하고 그들에 대해서

잘못을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초림하여 오는 메시아, 버림받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재림하여 다시 오시는 메시아

그 메시아를 증거 하는 사명이 이사야 선지자의 사명이다.

 

이 메시아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오시지만

이 구원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똑같은 구원이 임하기 때문에 이사야의 이 메시지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나 우리나 똑같이 구원자 예수님을 위해서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이사야 12 1, 4

"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기에서 그날을 두 번 얘기했는데 이날은 재림하여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을 말한다.

 

예수님이 오시면 버림받은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때 어떻게 하나님 앞에

감사 찬양을 올려야 할 것인가?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 찬양하는 노래가 오늘 본문 말씀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해당하는 말씀이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우리도 그 하나님께

감사 찬양 드려야 할 그런 노래가 되는 것이다.

 

본문 이사야 12 말씀을 통해서 구원받게 될 우리가

어떻게 감사 찬양을 드려야 할 것인가?

구원받은 자의 삶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첫 번째는,

감사의 이유인데 왜 감사할 것인가?

 

그 감사의 이유를 1절에 이렇게 표현을 했다.

"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하나님이 전에는 노하셨지만 그 노가 끝이 났다.

"이제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하였다.

 

민족적으로는 이스라엘이 교회시대 동안에 버림받았다.

구약 시대부터 예수님이 올 때까지 모든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계약이 깨졌다.

 

남편과 아내의 계약도 깨진 것이고

하나님과 그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의 계약이 다 깨졌다.

 

결국 모든 말씀을 안 지켰기 때문에 버림 당 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예수님이 오셔도 그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버림을 받게 되었다.

 

이 말씀을 지키지 못한 대가로 하나님이 노하셨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노하셨는데 이제는 그 노가 쉬었다고 하였다.

 

그 진노가 이제는 그쳤고 오히려 "나를 안위하시오니" 

이제는 하나님이 다시 자식을 책망하고 나서 사랑으로 품는

것처럼 이제는 위로자가 되고 안위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다고 감사의 이유를 말씀하고 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종종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여 징계를 받을 때도 있고 진노를 살 때도 있고

채찍을 맞을 때도 있고 그런 여러 가지 인생의 어려움들이

다가온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평생에 그렇게 노를 발하지 아니하시고

언젠가 그 노를 쉬신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나를 위로하고 안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12 5~8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하나님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지만 징계하고 채찍질 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자를 징계 하신다 이렇게 말씀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노를 발하시는 것이다.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사생자는 참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징계하지 않지만

참 아들이라면 그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육하기 위해서

반드시 아비의 징계가 있다는 것이다.

 

제가 전에 신학교 강의를 했을 때 어느 분이 상담하려고

저를 찾아왔다.

일생 동안 고아로 살았기 때문에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나이 40이 되도록 예수님을 못 믿었다.

부모도 안 계시고 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그런데 나이 40이 되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분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예수님을 만났다.

이분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제일 답답한 게 한글을

모르니까 성경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분이 하나님! 제가 성경을 읽고 싶으니 한글을

깨우쳐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성경을

깨우쳐 주셨다.

 

가끔 이런 일이 있다.

너무너무 반주하고 싶으니까 하나님이 꿈에 반주법을

알려주어 배운 적이 없는데 반주 잘 하셨던 분도 계시는데

이분은 기적적으로 성경을 깨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가 히브리서 12 말씀을 읽고

저를 찾아왔다.

 

아니 여기에 사랑하는 자마다 징계하시고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을 하시고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라는 이 말씀에 마음에 걸려서

저는 하나님의 참 아들이 아닌가 보라고 사생자인가 보라고

징계가 없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분은 고아로 40년을 살면서 너무나 많은 힘든

일생을 살았다.

부모도 없이 한글도 깨우지 못하고 고아로 40년을 살았는데

얼마나 일생이 힘들었겠나?

 

이분은 예수 믿고 연단을 받는 도중인데 그 연단이 연단처럼

느껴지지 않으니까 자기는 징계도 없고 연단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상당한 연단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고아로 40년을

살았기 때문에 그게 피부로 와 닿지가 않으니까

나는 참 아들이 아닌 사생아라는 이런 고민을 가지고

상담하러 오셨던 것이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징계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육신의 자녀를 징계하지 않고

어떻게 양육을 할 수 있겠는가?

야단치지 않고 어떻게 잘못을 책망하지 않고

어떻게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반드시 사랑하는 자마다 징계하게 돼 있고

채찍질을 하게 돼 있다.

 

하나님이 성경 전체를 보면 버림받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나의 장자라고 하였다.

장손이고 장인데 잠시 말씀을 지키지 못해서 버렸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니까 이방인의 충만한 수를

채우고 다시 그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그날에 하나님이

전에는 나에게 노했지만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이제는 우리를

안위하시니 그 이스라엘이 전부 감사 찬양을 드리고 있다.

 

저와 여러분도 감사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 같은 죄인, 나 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구원받을 자격도

인생을 하나님이 부르셔서 나를 양육하시고 성장케 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환경에서 어떤 때는 징계처럼 어떤 때는

노를 바라시는 것처럼 그런 훈련이 나에게 다가오지만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이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셔서 이제는 노을 쉬시고 나의 위로자가 되시고

안위자가 되시니까 나는 하나님께 찬양을

또 감사를 해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시편 30 4~5

"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찌어다

5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하나님은 노여워하시고 징계하지만 그건 잠깐이고

그분의 은총은 평생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저녁에는 인생의 밤이 온다.

 

창세기에 밤이 오고 낮이 오는 것처럼

저녁은 나의 연단의 시간이 오고 어둠의 시간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둠이 계속되는 게 아니고 반드시 다시 해가 뜨고

기쁨의 아침이 오게 된다.

그 아침이 노가 풀어져 다시 한 번 감사하고 찬양할 때가

오게 되고 하나님이 다시 위로하는 그 시간이 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루의 밤낮이 아니다.

나의 연단에 밤낮이 오고 창세기에 밤낮이 오는 것처럼

하나님이 형통과 곤고를 우리에게 겸하여서 가도록 하신다고

전도서에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 노염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라고 하였다.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징계하셔서 나를 버린 것 같고

때에 따라 하나님의 노하심과 환경 가운데 어려움은

평생이 아니다.

잠깐이고 그 은총은 평생 계속된다.

 

어떤 환경이 오든지간에 하나님의 노하심은 사랑의 채찍이

되고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에 징계하는 것임을 알고

우리는 모든 환경에서 감사드려야 할 줄로 믿는다.

 

히브리서 12 8 이하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육신의 아버지도 우리를 징계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공경한다.

그분이 여전히 사랑하고 여전히 부모이니까 여전히 공경한다.

이것처럼 영의 아버지께는 더욱 복종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이 육신의 아버지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육신의 생각과

자기 뜻대로 마음대로 자녀를 징계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를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려고 징계하신다.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징계는 이래서 좋은 것이다.

연단을 받고 징계 받으면 당시 즐거워 보이지 않지만 후에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지만

이제 그날이 오면 하나님이 그 이스라엘을 건지시고

또 그때 되면 하나님의 노가 쉬고 안위하시어

주께 감사할 것이라고 말씀한다.

 

잠시 노하는 것 같지만 아무리 태풍이 오고 비바람이 와도

여전히 며칠 후면 맑은 하늘이 나타나는 것을

우린 다 믿으며 살아간다.

 

분명히 하나님이 잠시 동안 우리를 다루시지만

평생 또한 은총을 받게 되고 하나님이 평생의 위로자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두 번째는,

찬양의 이유인데

본문 2 말씀에 그렇게 고백한다.

 

"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기 때문에 찬양한다.

 

지금 그분이 나의 인생의 힘이기 때문에 또 그분을 의뢰하고

그분 안에 들어가면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찬양을 올려야 한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다" 그랬는데 이 말은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 자체다 그 말이다.

 

마태복음 1 21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하나님이 말씀이신데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이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구원자이다.

예수님 이름 자체가 구원자이다.

 

"하나님이 구원이시다" 이 말은 하나님이 구원자라는 그 말이다.

하나님 자신이 구원자이다.

 

사도행전 4 12

"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예수님이라고 하는 구원자 외에 어느 천하 인간의 누구에게도

인간을 구원할 이름을 주신 게 없고 오직 예수님만

구원자인 것이다.

 

그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가 되고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가

되기 때문에 찬양을 드린다.

 

더 나가서 우리가 우리의 영혼만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환경에서 구원하는 것도 크고 작은 구원인 것이다.

 

여러분!

나를 죄에서 구원하는 것도 구원이지만 그 죄에서 해방이 되고

우리가 영혼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 가는 그 과정 속에서

모든 크고 작은 환경에서 우리를 건져내는 것

그것도 여전히 구원인 것이다.

 

병이 들었을 때 병이 나은 것도 구원이고 구덩이에서

어려움에 빠졌을 때 건짐 받는 것도 구원이다.

 

출애굽기 15 2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본문 이사야 12 2에 그 감사 찬양의 이유가

나의 힘, 노래  구원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출애굽기 말씀은 모세의 노래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홍해를 건널 때 하나님이

그 원수들을 다 홍해에 빠뜨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건져냈을 때

이 어려운 환경을 뛰어넘은 그 때 함께 모여 모세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 모세의 노래 가운데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이 노래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환경 속에서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놓여있는 절체절명의 이 어려운

환경들이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그 홍해를 여시고 기적적으로

우리를 환경에서 건지시는 그 하나님이 나의 힘이고

그분이 나의 노래가 되고 그분이 나의 구원자이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크고 작은 수많은 환경 속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려야 하는 것이다.

 

시편 27 1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이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가면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생명의 능력이 되셨기 때문에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겠느냐?

 

어느 분이 기도를 하시려고 기도원에 올라가셔서

일주일 정도 금식을 작정하셨는데

그날 저녁에 내려와 버렸다.

 

"아니 집사님이 기도하고 일주일 금식하시더니

어떻게 벌써 응답이 됐습니까?

오늘 어떻게 내려오셨습니까? 라고 물으니

기도원에 가자마자 하나님이 시편 27편 1절

이 말씀을 주셨다고 한다.

 

지금 어떤 누구를 두려워하면서 그 문제 때문에

지금 기도하러 올라갔는데 이 말씀을 받으니까

'이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구나'

그 날 다 정리하고 내려왔다고 한다.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이 그 한마디, 한마디 살아 움직여서

역사를 하면 그것이 나에게 그대로 역사하게 된다.

그 믿음이 들어와버리니까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인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고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할 이유가 뭐 있겠냐?

이 환경에서 나를 건지기 보는 바로 하나님이시구나

그분이 나의 구원자이시구나'

이것을 깨달으니까 그냥 응답이 되었다.

 

시편 38 22

"22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방백을 붙잡고

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 누구를 의지하는 게 아니고

"주 나의 구원이시요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님만이 나의 구원자입니다"

 

우리의 모든 크고 작은 환경에서 나를 건지실 분은 오직

하나님 그분 한 분뿐입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기도해야한다.

 

본문 이사야 12 5에 이렇게 말씀을 했다.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찌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일 이것이 극히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호와를 찬송하게 된 이유가 이렇게 아름다운 일을

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온 세계에 알게 할찌어다 라고 하였다.

 

나를 환경에서 어떻게 구원해내셨고 나를 죄 가운데서

어떻게 구원해 가셨는지 이것이 간증이다.

이것이 찬송의 이유인 것이다.

이것을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하였다.

 

이 "아름다운 일"라고 하는 이 말은 원어적으로 "탁월한 일" 이다.

이 세상에 가장 가치 있고 가장 귀한 일을 하셨다는 말씀이다.

 

한 인생은 천하보다 귀하다.

그 한 인생을 죄 가운데 건지고 하나님 나라로 이끌어가는

그 모든 하나님의 그 일이 아름다운 일이고 가장 가치가 있는

일이고 가장 탁월한 일이다.

 

그리고 원어적으로 "영광"과 같다.

영광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분이 빛이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고

그분이 거룩하면 나의 거룩함으로 그분의 속성을 드러내는

건데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모든 하나님의 아름다운 일

속에는 하나님의 속성이 다 총동원돼서 그 일을

하신다는 말이다.

 

조각가가 돌을 깨고 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로

그릇을 만들어 가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고 조각하여 우리를 만들어 가는데

여기는 이 죄인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근본적으로 있어야 된다.

 

사랑이 있으니까 우리를 택하시고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인자하심이 그 속에 다 들어가

있듯이 하나님의 영광이 그 안에 다 들어가 있는 것

이것이 아름다운 일이다.

그것이 탁월한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영혼을 구원해 나가는 그 하나님의 일속에

하나님의 섬세하심, 하나님의 성실하심, 하나님의 전능하심,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의신 이 하나님의 속성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이 탁월하고 이것이 가치가 있고

이것이 영광이다.

 

여러분 하나를 건져내시고 하나님이 아름다운 일을 하셨는데

하나님의 속성이 다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지혜이신 그분이 동원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곱 가지 영에 그 캐릭터가 다 동원이 된단 말이다.

 

하나님의 그 모든 속성이 다 동원돼서 나 하나를 건져가는

그것이 아름다운 일이고 그것이 탁월한 것이고

그것이 영광이기 때문에 우리는 찬양해야 마땅하다.

 

그 이름을 세계에 알게 할찌어다 그러셨다.

그래서 우리가 간증을 자주 해야 된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구원 역사를 베푸시고

하나님이 이렇게 그분의 속성을 들어 내셨습니다.

그것을 자꾸 간증하는 것이다.

 

세 번째 마지막은

구원받는 자의 삶이다.

 

4절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구원을 받고 이렇게 하나님이 그 아름다운 일로 역사하시는

그것을 볼 때 하나님께 감사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르라

그리고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면서 그 이름을 높다하라

 

그분을 높게 하고 그분을 찬양하면서 그 이름을 부르고

선포하고 그 이름을 높다 하는 이것이 구원받는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3에 또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구원의 우물들이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기 17장에 가면 이제 물이 없는

지역을 가다가 무리바 생수가 터져 나온다.

모세가 반석을 치니까 생수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생수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광야를 지나가면서 물이 갈하고

심령이 피곤하고 갈 할 때마다 그분의 생수를 공급받는

이것이 구원의 원물들이다.

 

크고 작은 나의 모든 환경 속에서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주는 것처럼 성령의 역사로 생수를 공급해 주는

그 생수를 공급받는 것이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어오면서 우리가 가는 것이다.

 

그렇게 그 물을 갈한 심령에 먹어가면서

요한복음 7에 생수의 강이 흐른다고 한다.

심령 속에 생수의 강이 받은 성령으로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했다.

 

요한계시록 22에 하나님의 생명수의 강이 흐르면서

거기 생명과가 나타난다.

내세에 받게 될 영원한 생명의 역사가 현재적으로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심을 현재부터 맛보며 위로함을 받고

그 생수를 먹고 마시면서 그 생수의 우물들에서 결국은

영원한 생수를 공급받는 그 우물의 물을 지금부터 맛보면서

자꾸만 거기에서 물을 들어다가 마셔라 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심령 안에 생수의 우물들이 터져야하는 것이다.

목이 마를 때마다 갈급할 때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계속해서 생수의 공급을 받는 이런 일을 하라는 것이다.

 

시편 84 6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이 죄악 세상,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눈물 골짜기를

우리가 지나가는데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그곳에서

그 눈물 골짜기가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한다.

 

나의 이 눈물 골짜기와 같은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 눈물 골짜기 같은 환경이

하나님의 구원의 우물의 샘이 되는 것처럼 맑은 샘이 돼서

거기서 우리는 생수의 공급을 받게 되고

거기서 하나님의 은택을 입고

거기서 더 힘을 얻어 받고 시온의 대로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편 기자는 주의 성전을 사모하면서

주의 성전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원히 여호와의 궁전을 사모했다.

그리고 주의 재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복음자리를 얻었다.

그러면서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집인 이 성전에서 우리가 주님을

만나면서 이 죄악 세상 눈물 골짜기를 지나가는데

여기서 구원의 우물을 걷는 그 우물을 기르는

그 맑은 샘이 흘러나오는 그것을 우리가 주의 성전에

와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의 성전이 그 물이다.

그러니까 더 힘을 얻고 또 얻고 그래서 결국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긷는 것처럼 성전 문지기로

살아가는 삶이 그런 은혜를 베풀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 성전을 사랑하고 주님께 힘을 얻기 위해서

교회 중심의 생활을 우리가 하게 되는 것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가신 그 행사를 자꾸만 선포하고 그 이름 높게 하고

감사 찬양을 부르고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면서

이런 신앙한 생활로 주님께 나아가 될 줄로 믿는다.

 

우리에게 행하신 구원의 일을 우리가 간증하기를 힘쓰고

감사 찬양으로 그분의 이름을 높여드리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일을 하기 위해서 그분이 그분의 모든

속성을 다 동원해서 나 하나를 건져가는 이 일이

가장 인생에 귀하고 값진 일이고 찬양할 일이고 감사할 일이고

이것이 영광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일이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말이 아름다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에

 

오늘 이사야 선지자의 이 말씀처럼 감사 찬양이 끊이지 않고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긷게 되어 하나님의 일을 증거하고

간직해 나가면서 영광 돌려 나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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