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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메세지

영생에 이르는 길

by Andrew Y Lee 2022. 7. 10.
영생에 이르는 길




요한복음 17장 1절~3절






성경은 종종 이름이 붙은 장이 있다.


마태복음 24장을 우리가 환난장이다 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직접 7년 대환난에 대해서 말씀하신 그런 장이다.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장도 환란장이다.


고린도전서 15장을 우리는 부활장이라고 한다.
부활에 대해서만 죄를 가지고 말씀하셨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한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우리가 사랑장이라고 한다.


이렇게 특별한 주제를 가진 성경이 있는데
오늘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이 기도하신 내용으로만
이루어진 특별한 장이다.


대제사장적 기도장, 이러한 별칭으로 불리는 장이다.


요한복음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첫 번째는
요한복음 17장의 전체적인 배경을 한번 우리가
좀 생각해 보도록 하자.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내용이다.


종교 시대에 뉴턴교 신학자인 데이빗 차이트러스라고 하는
분이 바로 그런 말을 했다.
이 기도는 대제사장적 기도다.
그래서 대제사장적 기도장이다.
이렇게 뉴턴교 신학자가 이 별명을 붙였다.


이 기도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인류 구속의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면서 드린 기도이다.


또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대제사장이 되므로
대제사장적인 사명의 기도였다.


그리고 제자들과 예수님께 주어진 모든 자들,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께 주신 자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이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을 위한 중보의 기도도 되고
예수님이 속죄 제물과 대제사장적인 사명의 기도고
그 당시 제자들에게도 주신 기도이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사십일 금식을 하시면서
시작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공생의 도중에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기도하고 부르셨다.


모든 일을 하실 때마다 산에서 들에서 온 밤을 세워가며
기도하면서 모든 일을 하셨다.


공생애를 마무리하고 십자가를 앞에 둔 이 마지막 순간에도
주님은 기도하면서 그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계신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 생활을 본받아서 저와 여러분도
모든 일에 기도 생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예수님을 따라가고 본받아야 되니까


그분은 시작도 기도를 했고 마음도 기도를 하시고
가정의 모든 일들을 전부 기도를 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 기도는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에
가장 긴 기도고 고난 바로 전에 한 기도시다.


1 말씀을 보면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앞에 있는 말씀을 하시고 마지막으로 기도하셨다고 했는데
그 말씀이 요한복음 13~16까지 걸친 말씀이다.
13장~16장의 이 4장의 말씀이 마지막 설교하신 내용이다.


마지막 유언으로 주님이 설교하시고 기도하신 건데
13장에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새 계명을 주셨고
너희가 염려하지 말라 내가 천국을 예비해놨다고
주님은 그걸 믿으라고 천국 초소를 준비했다고 약속하셨고
또 14장 16절부터는 보혜사 성령을 대신 보내겠다고
약속하셨고
포도나무에 비유를 하시면서 내 안에 꼭 붙어 있으라고
권면하시고
죽음과 부활이 오지만 이것을 다 승리할 것이라고
그래서 요한복음 16 33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주님이 이렇게 여러 가지 사랑하라고 하는 교훈,


하늘의 처소를 예비해 놓았다고 하는 교훈하는 위로의 말씀,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그러면서 세상에 대해서 승리해야 된다고
그리고 예수님도 죽음과 부활로서 이제 승리할 거라고
이런 여러 말씀을 다 마치고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내용 인 것이다.
이것이 요한복음 17 전체의 배경이다.


두 번째는
이 세상에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다.


2 말씀에 말씀하시고 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하나님이 모든 권세를 주셔서 이 땅에 오셔
모든 권세를 행하고 이제는 십자가에 죽으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온 모든 그 목적이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
여기에 저와 여러분도 속해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들 모두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들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자 가운데 이 자리에 온 저와 여러분도
함께 포함이 돼 있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은 영생을 얻으려고 지금 신앙 생활하는 것이다.


잠시 다녀가는 나그네 같은 삶 속에서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이 불쌍한 인생인데
우리에게는 영생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니까 그 영생을 믿고
영생을 얻으려고 지금 우리가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종교가 그렇다.
인생이 죄 때문에 고난이 오고 불행이 오고 끝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인생 가운데서 어떻게 이걸 벗어날 것이냐?
모든 종교가 전부 그 주제를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고난과 불행을 없앨 것이냐?
어떻게 하면은 이 죽음을 뛰어넘을 것이냐?


그래서 모든 종교들이 나름대로 방법을 정하고 수도 생활하고
계획을 정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영생을 얻으려고 하지만
그 다른 종교에는 영생이 없는 것이다.


왜 그런가?
영생 얻는 방법을 유일하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셔서
그 방법대로 해야만 우리가 영생을 얻는 거지
사람들이 고안하고 사람들이 수도 생활하고 사람들이 정한
방법으로는 우리가 영생 얻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으로 우리는 영생을 얻는 것이다.


세 번째 주제로는
영생을 얻는 길, 영생에 이르는 길 그것이 무엇이냐?


성경에 나타난 영생에 이르는 길을 몇 가지로 우리가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3 16 말씀에 보면
우리가 주일학교에서 많이 들었던 말씀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그래서 영생을 얻는 것은 바로 믿음을 통해서이다.


요한복음 3 36에도 말씀하셨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는 것이다.
믿음이라고 하는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생의 길을 여셨다.


요한복음 1 11~12 말씀에 보니까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스라엘 땅에 오셨지만 정작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지 못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했다.


요한복음 6 38~40까지 말씀도 보면
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고 온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왔는데 그 아버지의 뜻은 무엇인가?




예수님에게 주신 자 예정된 모든 자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마귀의 공격은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을 직접 대접하지 못하니까 예수님에게 맡겨진
구원받을 모든 영혼들을 하나라도 땅에 떨어뜨리려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이제 패하게 되는데
하나님은 패하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영생에 이르게 하고
다 믿음의 길을 가게 하나님은 하신다.


마귀들은 계속해서 영생을 주지 않으려고
하나님이 예수님께 맡긴 예정된 그런 자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하나라도 탈락시키려고 우리 환경 가운데
공격을 해오는 것이다.


그 믿음의 길 그것이 바로 영생으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시고
또 이제 우리를 의로운 자다 이렇게 여겨주시는데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로마서 6 22~23 말씀 보겠다.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15절부터 말씀에 보면 우리가 다 죄의 종이다.


17절에 말씀하셨다.
우리가 죄의 종이었다고 죄의 종인 우리가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 그 교훈을 순종하면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그랬다.
이렇게 된 상태를 우리가 은혜의 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 상태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22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이랬다.
그게 바로 득의, 의로운 자가 됐다는 것이다.
지금 할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할례 받고 의로운 자가 되면 의의 종,
이제는 죄의 종이 아니고 의를 섬기고
하나님의 의의 병기가 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는데
거룩함에 있는 열매를 얻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 마지막은 영생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의로워진 다음에도 계속해서
부활 때까지 영생을 얻을 때까지 계속해서 영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라 하는 것이다.


그다음에 요한복음 6 50~55 말씀이다.
50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52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예수님이 생명의 떡 설교를 하시면서 어려운 말씀을 하셨다.
제자들도 60 말씀에 보니까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예수님의 삶의 피를 먹어야만 영생을 얻는다니까
이게 어렵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살이 무엇인가? 내가 생명의 떡이다 라고 했다.
예수님의 살인 떡을 먹어야 되고 예수님의 피인 음료를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생이 없다. 이렇게 말한다.


53에 분명히 말씀하셨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그럼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무엇인가?
성찬식을 해야만 된다는 것인가?


예수님의 살은 생명의 떡인 만나,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하나하나 지켜나갈 때마다
그 예수님의 살을 먹는 것이다.


원수 사랑하라는 이 모든 말씀까지 다 지켜 행해서
내가 어떤 환경 속에서도 말씀을 다 지켜야
그 살을 전부 먹는 것이다.


여러분 예수님의 살을 얼마나 먹으셨나?
내가 지키지 못하는 말씀이 있으면 아직도 살을 다 먹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말씀을 지킬 때마다 그 살을 먹는 것이다.
그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영생이 없다고
분명히 약속하셨다.


그럼 예수님의 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말씀을
지키는 것인데 피는 뭐겠는가?
그것이 참된 음료인데 그 예수님이 보혈을 흘려놓으신
그 피를 먹는다고 하는 것은 내가 바로 회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또 지나가는 한주를 보면 순간순간
미워했고 순간순간 죄 지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해서 회개를 하면
그 순간에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을 살면서 모든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회개할 것을 다 회개해야 살과 피를 다 먹고 마시는 것이다.


그래야 영생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 2 22
두아디라 교회에 음녀와 함께 음행하는 자들은 큰 환란에
집어넣겠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회개를 하지 못하면 단체적으로 큰 환란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젠가는 이 살과 피를 다 먹고 마셔야 된단 말이다.


마태복음 19 29에 또 영생을 말씀하셨다.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이 말씀은 이제 가진 소유를 다 팔아야 된다 그런 의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이것저것 다 필요한 관계들이고
필요한 것들이지만 그걸 소유로 삼지 않는다.
어떤 환경이 되든지 간에 그 사는 집이 내 소유의 개념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잠깐 주신 것인데 사는 동안에 필요한 것이고
그것이 소유거리가 되고 부모나 자식 전부 다 소유거리가 되면
그것을 부인하고 버려야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 영생을 얻는 길이다.


마태복음 25 45에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의인들은 영생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자들은 영벌에 들어간다
이렇게 분명히 결론을 내렸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실천하면서
작은 자 하나에게 우리를 주님과 같은 섬김으로 섬기고
사랑을 이루어가는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다 영생에 가는 길인데 오늘 본문 가운데는
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17 3 말씀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아야 영생이라고 하는데
에베소 4 13에는 뭐라고 말씀하는가?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요한복음 3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을 믿어야 영생을 얻는데 아는 일에도 하나가 되어야
온전한 사람을 이룬다고 했다.


여기에 안다고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지식으로 안다는 개념이 아닌 것이다.


수박 있는데 이 수박이 무슨 과에 속하고 색깔은 어떻고
망고 수박이 새로 나왔는데 그게 색깔을 어떻고 값이 얼마고
이것을 지식으로 아무리 알아도 수박을 딱 쪼개서 먹어봐야
아 수박 맛이 이거구나
망고 수박이 새로 나왔다더니 맛이 이렇구나
그것을 먹어봐야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그 경험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아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다 라고 했는데 그 사랑을 내가
아무리 설명을 듣고 지식으로 알아도 그 예수님의 사랑이
실제적으로 내 속에 경험되어서 그 사랑을 내가 맛보고
경험하고 실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그 사랑을 아는 것이다.


요한일서 2 14에 말씀하신다.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비들아 그랬는데 그 아비들은 뭐라고 하는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모든 창세전에 계셨던 생명,
영원한 생명으로 유일하게 계신 참 하나님을
이기는 자들, 아비들은 그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 말은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생명을 이 땅에 살아가면서 맛보고
실제적으로 경험이 되어져서 경험적으로 아는
그런 단계에 들어갔다 그 말인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
오늘 예수그리스도를 안다
하나님이 참 생명인데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 달려 죽으시고
마지막 기도하신 그대로 영화롭게 하셔서 다시 살리셨는데
그 부활의 생명을 우릴 위해서 개척해 놓으셨다


창세전의 그 영광을 내게 주신 자들이 함께 보게 해달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그것이 영생이다.
그 길을 주님이 개척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하면서 그 부활의 생명을 가진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현재적으로 경험하여
내가 그것을 맛보고 있단 말이다.
그것이 아는 것이다.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좀 먹으면 맛이 점점 없어진다고 그런다.
맛을 잘 못 느낀다.
그런데 젊어서 음식을 보면 침이 살살 돌고 침이 나온다.


지나가다 추운 겨울에 군구구마를 보면 침이 나오고
먹음직스럽다. 그럼 구미가 당긴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의 부활의 생명을 아는
그것에는 우리가 왜 군침을 안 흘리냐 이 말이다.


우리의 먹고자 하는 그것을 알고 그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그런 의욕이 지금 우리에게는 없다는 말이다.
늙어서 침샘이 마르고 맛을 잃어버린 그런 사람처럼
거기에다가 군침을 안 흘린다 말이다.


잠시 다녀가는 나그네 삶 속에서 영생을 계시해 주셨고
이걸 믿으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을 알아야 되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했는데


그 실제적인 주님의 사랑 그분의 빛과 그분의 영생이라고
하는 그 경지가 뭔지 그걸 아는 그 일에
왜 거절을 안 하고 왜 군침을 안 흘리고 왜 인생의 목표를
거기다 두지 않느냐 그 말이다.
그 맛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영생을 얻으려고 이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다.


영생을 들어가려고 주님이 이 사랑의 길을 가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환경 가운데 원수가 나타나도 말씀을 실천하면서
사랑을 훈련 받는 것이다.


영생을 얻게 하려고 이 썩어질 자기라고 하는 이 옛사람을
부인하게 만드는 환경을 주셔서 자꾸 자기 부인의 길을
가게 하시는 것이다.


이 영생을 주시게 하려고 영생된 그 예수님에게 접붙임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는 의로워 질 수가 없고 우리 스스로는
영생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부활 이후에
영생을 가질 그분에게 우편 딱지처럼 딱 접붙여서
그분 안에서 함께 영생을 누리는데 그분 안에 들어가서
실제로 합일이 되면 그것이 현재적으로 알게 되고
맛보게 되고 경험하게 되어진다.
그것이 영생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힘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란다.
거기에 군침이 돌아야 된다. 거기다 위협을 느껴야 된다.
거기다 삶의 비중을 두어야 된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지식으로도
필요하지만 믿음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내가 실제 경험하고
맛보게 하는 이 경험적인 진리,


이 경험 속에서 그것을 알게 되는 이러한 신앙의 본질을
우리가 깨닫고 도전하면서 여기에 최선을 다해 달려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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