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와 오메가
요한계시록 22장 10~14절
"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오늘은 "알파와 오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다.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이름을 지어 불러 일컬음" 사전에 이렇게 나와 있다.
또 "대화의 상대를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
한국에서는 남편에 대한 호칭이 여러 가지이다.
"여보" 그러기도 하고 "아무게 아빠"
어떤 사람은 "오빠", "자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실 자기라는 말은 영적으로는 좋은 의미는 아니다.
성경에 나타난 자기는 옛 사람을 말하기 때문이다.
자아, 깨어져야 할 육신을 자기라고 말한다.
어쨌든 사람의 존재를 드러내주는 것을 호칭이라고 하는데
한 남자는 집에서는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직장에서는 여러 가지 직분에 따라 직업에 따라
선생님, 사장님 등등 여러 가지 호칭으로 불린다.
저도 호칭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집에 가면 아버지도 되고
남편도 되고 미국에 가면 할아버지도 된다.
교회에서는 목사, 대표 섬김이 평생교육원에 가면 강사
그리고 동네에서 쓰레기 버리러 가면 동네 아저씨이다.
이런 것처럼 성경은 예수님의 호칭을
여러 가지로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 구원자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그분이 메시아, 기름 부은 자 이런 뜻인데
그 외에도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 사람의 아들, 선한 목자,
어린 양, 속제 재물, 영원의 감독자, 포도나무, 떡과 포도주,
새 부대와 새 포도주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호칭 가운데
본문 13절에 오늘 설교 제목처럼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는 말인데
헬라어 알파벳의 처음문자와 마지막문자이다.
요한계시록 1장 17절
"17 내가 볼때에 그 발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밧모섬에 예수님이 요한에게 말씀하시기 전에 이 계시록을
주시면서 그때도 나는 처음이고 나중이라고 말씀하셨다.
첫 번째
예수님이 알파가 되시고 오메가가 되셨다는
그 의미가 무엇인가?
예수님이 내가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은 하나님과 본체시고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는 말이다.
빌립보서 2장 6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본래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시고 본체이신데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알파와 오메가이시고
예수님도 알파와 오메가이시라고 말씀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장 8절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이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신 그분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도
하나님과 동등 되기 때문에 예수님도 알파 오메가이다.
그 "알파와 오메가다" 이것은 하나님 그 분이라는 것인데
하나님은 영으로 계셔서 영원무궁토록 계신다.
그러면 예수님도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하나님과 똑같은
알파와 오메가로 영원무궁하신 분이시다.
영원무궁한 분이고 한결 같이 변화가 없는 분이시다.
예수님이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는 것은
영원무궁하신 분이고 무소부재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알파와 오메가 된 하나님이 전능한 자다라고
한 것처럼 예수님도 전능하신 자이시다.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라 하는 것은
그 분이 모든 근원이 되어 시작하신 것을 완성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시작하시고 끝을 맺으시는 분이시다.
알파와 오메가는 영원무궁한 하나님, 무소부제한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전능하시기 때문에 시작하실 수 있고
마칠 수 있다.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이렇게 영원무궁토록 계신 분인데
요한계시록 1장 4절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하나님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올자 라는 말은
영으로 계신 하나님이 시간의 구애가 없으신 분이라는 말이다.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현재만 갖고 있다.
그분이 현재가 된다.
끝없는 현재인 것이다.
예수님의 시간이 하나님과 똑같은 그 알파 오메가 되셨다는
것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
시공간 안에 들어오셨지만 여전히 예수님의 시간은
알파 오메가로 하나님과 같이 시공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
과거 현재 미래를 영원히 갖고 있는 현재 예수님이시다.
요한계시록 16장 5절
"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영계의 천사가 보기에도 하나님은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분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셔서 계속 계시는 분이시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신 그분이 육신을 입고 시공간 안에
들어왔지만 예수님도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시는 계속해서 시공간을 초월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8장 56~59절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이천년 전에 있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먼저 계셨고
그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였다.
유대인들이 이것으로 황당히 여겨 돌로 예수님을 쳐
죽이려고 하였다.
알파와 오메가 되신 하나님처럼 예수님도 알파 오메가가
되셔서 시간의 구애가 없는 초월하신 이야기이다.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융합하여 성경은
예수님의 시간을 "오늘"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은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육신 안에 오셔서 시공간에 들어왔는데도
여전히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재로 살아가시는 것이
예수님의 시간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오늘"이라고 하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누가복음 2장 11절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성탄 12월 25일은 정확한 날짜도 아니고 잘못된 날짜인데
그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그날을 성경은
오늘이라고 하고 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없는 하나님의 시간대에
그 현재가 계속해서 오늘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태어난 그날을 오늘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말하는 오늘은 하나님의 현재를 말하고 있다.
누가복음 4장 21절
"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하셨는데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그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된
이사야의 글이 오늘 너희에게 임하였다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이 희년을 선포하며 복음을 전하고 사역을 시작하는데
구약의 예언된 그 말씀 전하는 그날이 오늘이 아니고
이사야의 말씀을 그에게 준 것이 과거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시간대로는 오늘이고 지금 말씀을
이루어지는 그것도 오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이라는 것은 그 당시 그 날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현재적인 시간을 말한다.
누가복음 19장 42절
"42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것을 보면서 우시고 계신다.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그 일도 오늘날이라 하였다.
과거에 예언도 되어 있고 다 이루었지만
그것이 실제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의 시간대에서는
현재지만 과거 미래 현재가 없는 하나님의 시간대에서
볼 때는 계속해서 오늘이다.
아주 확실한 증거는
누가복음 23장 43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성경에는 우편이라는 말이 없지만 우편 강도라고 생각하는
그 강도가 오늘 42절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가 언제 임하는가?
인류 역사 종말에 이루어지는데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였다.
그러면 이 말씀을 한 예수님은 우리의 시간대에
어디 계셨는가?
무덤에 장사 되어서 음부로 내려가셨다.
여기서 오늘을 24시간의 오늘로 그대로 해석을 한다면
강도가 그날 어떻게 낙원에 들어 갈 수가 있겠는가?
이 강도도 나름대로 어떤 영계의 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 낙원" 성경에는 이것을 에덴동산이라고 표현했다.
생명과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그런 장소
이곳을 낙원이라 한다.
낙원은 천국이 아니다.
이 강도도 그 영혼의 상태가 계속 변화되어서
어떻게 어떻게 되어서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를 것이다.
구원받을 것이다.
그 과정이 하나님의 시간대 예수님의 시간대로 볼 때
계속해서 오늘 현재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시간대에서는 전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
우리는 시간대 안에 있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데
하나님의 시간대는 과거 현재 미래가 없이 계속해서
현재인 것이다.
우리가 영계의 세계로 들어가 과거 현재 미래가 없는
현재의 하나님 앞에 설 때는 우리의 상태만 변화가 된다.
이 강도가 구원받기까지 여러 가지 상태가 변화돼서
결국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 되게 된다.
하나님에게는 계속 현재이고
사람 편에서는 상태만 변화가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4장 7절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여기서도 오늘날이라고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그 모든 사건은 모형이었다.
히브리서 3장에는 오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히브리서 3장 7,13,15절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구약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상태 변화의
모습을 이스라엘 모형으로 보여주셨는데 그 모형이나
우리가 실제로 들어가서 그 길을 걸어가고 인류가 걸어가는
것이 하나님이 보셨을 때는 다 똑같은 과정이다.
우리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이 모형을 이루는
것이나 우리가 지금 광야를 가는 것이나
하나님의 시간대에서는 다 오늘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처럼 강퍅한 마음을 가지면
그 곳에 못 들어간다는 것이다.
순종하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는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못 들어간다.
이것이 다 우리의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5장 5절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이 오신
그날도 하나님의 시간대에는 오늘이다.
계속해서 오늘날이다.
여러분 이 비밀을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언제든지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오셨지만
하나님의 시간대에 함께 계신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32절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제자들이 다 뿔뿔이 흩어지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아무도
없어도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요한복음 5장 17절
"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예수님이 하나님과 지금 현재 함께 계시고 같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셔서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데
예수님을 통해서 일을 하시고 계신다.
그래서 알파와 오메가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시간대에
연결되어 있고 오늘을 사셨다.
큰 비밀인데 여러분이 깨닫게 되시기 바란다.
땅에서 일하셨지만 하늘의 시간대에 연결돼서 일을 하셨고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셨고
이렇게 하신 것이 알파와 오메가 되신 예수님이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원한 시간대에 계시고 전능하신 분이고
어디든지 계신 분이고 변함이 없는 분이고
그리고 장차 올 자다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오시게 된다.
두 번째,
예수님이 알파와 오메가 되신 것이
우리 신앙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로마서 6장 3~11절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우리의 시간대에서 볼 때 십자가 사건은 2천년전 사건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그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어서
옛 사람이 죽으면서 함께 연합이 되는가?
시간대로는 허락될 수가 없는 일이다.
예수님이 이천년 전에 죽었는데 그냥 믿음으로
연합하는 것이 아니다.
이천년 전 과거나 우리가 그 십자가 안에 들어가는 현재나
또 이후로 미래의 누군가가 십자가 안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연합하는 그 모든 시간대가 예수님 안에는
같은 시간대인 오늘이다.
이것이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 옛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었고 연합했기 때문에
죽은 다음에 예수님이 사는 것처럼 우리도 다시 살게 된다.
부활할 것이다.
이것은 미래인데 이것도 하나님의 시간대에서는
예수님 안에서 똑같은 오늘이다.
우리가 이것을 믿음으로 받을 때 산 자로 여길 수가 있는
것이고 그 소망을 분명히 갖게 된다.
내가 이미 이천년 전에 믿음으로 들어가서 이것이 실제적인
사건이 된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연합이 된 것이다.
이것이 계속 오늘인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부활하고 산자가 되고 앞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그것도 계속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우리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사건이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계속 오늘이기에 함께 이루어져 있다.
또 기도하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영으로 기도해서 바로 하나님께 상달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기도한다는 그 의미 속에는
예수님의 시간대에서 하나님이 현재의 그 오늘 안에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걸 받으시고 어떻게 하시는가?
믿고 구하면 받은 줄로 믿어라 이렇게 말씀한다.
이미 상달이 되었다.
다니엘서 10장에 보면 다니엘이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 네가 금식하며 기도했던 첫날부터 이미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그런데 페르시아 군대 배후에 있는 악한 영들이
이것을 방해해서 21일 후에 도착을 했다고 하였다.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여러 가지 방해하는 세력도 있고
환경에 따라 거둬지고 늦어지는 시간 우리의 시간대는
지체되고 연장되는 시간이 있지만 하나님이 보는 관점에는
즉시로 그 합당한 기도, 정욕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고
욕심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미 상달돼서
바로 결과가 나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간대는 계속해서 오늘인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근거도 그 알파와 오메가에서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있고 예수님의 시간대에 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기도의 응답도 마찬가지 원리이다.
예수님 그의 이름이 "임마누엘"임을 알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함께 계신다.
그러면 과거에도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함께 계셨고 현재 믿음으로 성령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고 장래에도 함께 계실 것을 믿는다.
그런데 과거 현재 미래의 우리는 다르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영원토록 임마누엘 되신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공중으로 끌어올리는데 이때는 부활하여 산자가 되어
우리가 신령한 몸을 입고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해서 휴거된다.
죽은 자들도 부활했고 살아있다면 부활을 맛보지 않아도
신령한 몸으로 변화 돼서 주님을 만나는데 이것이 주님의
시간대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항상 주님과 함께 있는 된다.
주님이 지상 재림하면 함께 재림하고 주님이 천년왕국에
가서 왕 되시면 함께 가고 주님의 시간대에 얽혀서 같이 간다.
그래서 땅에서 과거 현재 위에 있는 시간대를 천년 왕국이
끝날 때까지 살아가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주님과 함께 있는
하나님의 시간에 들어간다.
세 번째,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시간대 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시간대로 들어가는 것 주님의 알파와 오메가로
들어가는 것 이것이 구원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는 시공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아플 수도 있고
병들 수도 있고 늙을 수도 있고 그렇지만 부활하여
하나님의 시간대에 들어가면 예수님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고
영원히 산자로서 영원히 계속해서 그 젊음을 유지하면서
병드는 것도 없고 고통도 눈물도 죽음도 사망도 없다.
성경은 이것을 안식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참된 안식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대로 들어가서 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이 구원이고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영원토록
임마누엘 되시고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이것을
우리는 안식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래서 이러한 한 개인의 구원과 우리의 안식이
다 영적으로 흘러가고 인류 전체도 모두 안식에 들어가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천년 왕국 후에 나타나는
새 하늘 새 땅 하나님의 나라는 한꺼번에 이루어지게 된다.
하나님 나라는 개인적으로 조금씩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고
한꺼번에 나타나게 된다.
예수님이 오셔서 복음을 전할 때 천국이 가까웠다고 했다.
우리 역사에서는 이천년 동안 교회 시대가 있었고
천년왕국이 있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것이 오늘이다.
가까이 왔다는 그 말씀대로 이루어진다.
알파와 오메가가 우리가 깨달아질 때
우리의 구원관, 안식관, 시간개념, 신앙의 근거,
믿음의 근거, 기도의 근거, 임마누엘의 의미
이런 것들이 깨달아질 줄로 믿는다.
하나님의 시간대인 알파 오메가 예수님도 알파 오메가
이 호칭을 여러분이 잘 깨달으셔서 구원의 참된 의미와
안식의 의미를 깨닫고 시간의 개념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