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과 소금
마태복음 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살아간다.
얼굴이 틀리고 마음 씀씀이가 틀리고 사람마다 특징이 있다.
또 모든 건축물마다 나름대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의상마다 특징이 있고 나라마다 특징이 있고
교회마다 여러 가지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교회는 복만 사모하는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고
어떤 교회는 치유 사역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런 교회도 있고 영적인 성장과 성화에 대한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교회도 있고
이런 여러 가지 특징 중에 우리교회는
마지막 때를 증거하는 특징이 있다.
또 한 가지는 제가 어제 설교를 준비하면서 생각한 건데
전부 젊게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 교인 모두가 다 젊게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왜 젊게 보일까? 생각하니 모두가 소망 중에 살아가기 때문에
성경 안에 소망을 품고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성도의 삶은 성경에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마태복음 10장 16절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그리고 성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그렇게 표현한 말도 있고 그리스도의 편지 또는
성도를 물고기로 표현한 말도 있다.
그래서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가르쳐 주시면서 본문 가운데
"너희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성도의 삶이 빛과 소금인데 이 말씀을 중심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첫 번째,
세상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곳의 빛과 소금이 아니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하였다.
먼저 세상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아야 된다.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사람이 사는 모든 사회를 통틀어
이끄는 말"을 세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의미를 떠나서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가면
교회와 대비되는 의미로 사용 당하는 것이 세상이다.
상당히 부정적인 언어로 사용된 말이다.
다른 종교인 불교에서는 이것을 "속세"라고 한다.
우리는 종교적으로 세상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럼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말하는 세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요한일서 2장 15~17절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성경에 이 세상은 아버지의 사랑이 없는 곳이고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어서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만 만들어진 세상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육신의 정욕이 무엇인가?
선악과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인생은 먹어야 산다.
먹는 문제 이것이 육신의 정욕이다.
그리고 선악과가 보암직 스러웠던 것은 안목의 정욕이다.
선악과가 지혜스러 울만큼 탐스러웠지만 천국 가서는
아무 필요 없는 오직 세상에서만 자랑거리가 되는
이것이 바로 이생의 자랑이다.
우리는 천국에 외모로 가는 것도 아니고 가문이 좋아야
가는 것도 아니고 학벌이 좋아야 가는 것도 아니고
이런 것들은 세상에서만 일시적으로 필요하고
세상에서 가치를 두지만 하나님 나라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다 이생의 자랑이다.
이 세상에 언젠가 주님이 오시고 심판하게 되면 이 세상도
없어지고 정욕도 지나가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만
영원히 남게 되는데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 이후에 타락하여 정욕만을 목적으로 정욕을
우상으로 죄성으로 이렇게 살아가는 인생들의 사는 곳을
세상이라 말한다.
그래서 이 세상은 구원받아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나라로
가는 도중의 훈련의 장소고 마귀가 지배한 세상이고
결국은 싸움의 대상인 곳이다.
요한일서 5장 4~5절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 세상은 정욕을 누리면서 살 만한 그런 세상이 아니고
천국가기 위해서 싸워야 할 그런 싸움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싸워 이겨서 다 없어지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만 남는 그곳에 도착하려고
훈련받고 싸워가는 장소, 훈련받는 장소 이것이 세상이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서 가나안 땅에 가기 전에
광야 40년을 지나가면서 말씀 지키는 훈련을 받는 광야와 같다.
두 번째,
이 세상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 빛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요한일서 1장 5절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먼저 빛은 하나님을 빛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빛이신데 하나님은 빛 뿐 아니라 거룩한 분이고
영광 중에 계신 분이고 절대 평강 가운데 계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가 없는 영으로만 계신 분이다.
아무도 볼 수 없고 아무도 만질 수 없는 알 수 없는
그 빛 된 그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형상을 입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너희가 세상에 빛이다" 그랬는데 성도와 성도가 모여 있는
교회가 세상의 빛으로 하나님의 빛을 드러내야 되는데
그 하나님은 알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영으로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의 빛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보내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빛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요한복음 1장 9절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이 죄악 된 세상은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이고 어둠의 세상인데
이 곳에 참 빛인 예수님이 하나님의 빛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빛이시다.
요한복음 8장 12절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9장 5절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주님이 오셔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데 예수님이 십자가 이전에 살아 있는
그 동안 세상에 있는 동안에 주님은 세상의 빛이시다고
말씀하고 있다.
요한복음 12장 36절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하나님의 빛을 예수님을 통해 반사하여 우리에게
그 빛을 보여주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처럼 빛이시고 사랑이시고
예수님은 성령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분은 영광이시고 바로 거룩하신 분이시다
요한복음 14장 8~9절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하나님은 볼 수 없는 분이시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님을 보면 아버지 하나님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빛이고 아버지가 사랑인 것처럼
예수님이 사랑이고 예수님의 영광이시고 예수님이 바로
거룩한 분이시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빛의 형상을 따라 오신 그 예수님이
이 세상에 서 살면서 드러냈던 모든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이 행하셨던 언행, 행실
예수님과 관계된 모든 것을 빛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관계되는 모든 것은 다 빛이다.
제자들이 이런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이 말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낸 것처럼
예수님을 보면서 하나님의 빛을 예수님처럼 세상에 반사하여
삶과 인격으로 그 빛을 드러내는 이런 사람들이
세상의 빛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을 교회라고 말한다.
에베소서 5장 8~9절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우리가 빛 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다 어둠이었는데
이제는 빛 된 예수님을 마음에 모셨기 때문에
주 안에서 빛의 자녀가 됐는데 이 증거는 오로지
열매로만 알 수 있다.
우리가 빛의 자녀가 되고 내 마음 안에 예수님이 오신 걸
무엇으로 증거하고 있는가?
열매를 보아서 알게 된다.
나무에 열매가 있을 때 그 나무를 아는 것처럼 열매는
모든 착함 이 착함은 세상적인 도덕 기준의 착함이 아니고
성경 말씀에 기준한 선을 말하며 성경에 말씀하신
그 모든 걸 삶으로 해내는 그런 착함이다.
또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하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인격과 그 삶과 말씀 안에서
명령하신 것을 지켜 행하는 모든 삶을 예수님이
하나님 뜻을 드러낸 것처럼 행해야 한다.
이것이 빛의 열매고 이것이 빛의 자녀가 된 증거인 것이다.
빌립보서 2장 15절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이 세상은 어둠인데 그들 가운데 우리가 빛이 되어지는 것은
흠이 없고 순전하고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워질 때 세상에서 빛들로
나타내야 한다.
그러니까 성경은 계속해서 너희가 흠 없고 점 없고 티 없는
그런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빛의 자녀가 된 그들을 휴거시켜서
하나님 나라의 지성소로 데리고 가신다고 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5~8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유일하게 책망이 없는 칭찬만 받는
교회였다.
데살니가전서 5장 1절 말씀에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이 때가 언제인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때가 언제인지? 심판의 때가 언제인지?
아무도 알 수 없고 아버지만 아는데 글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그 도적이 언제 오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5장 3~4절을 보면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어둠에 있는 사람은 그날이 도적과 같이 임하고
도적이 오는 걸 알 수 없고 빛 가운데 있는 빛의 아들들,
낮의 아들들에게는 그 날이 도적과 같이 임할 수가 없다 하였다.
성경에 나타난 많은 때와 징조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시겠다 하였다.
우리가 정확한 날짜는 몰라도 날씨가 흐리면 비가 오는 것처럼
그 때와 징조를 통하여 그 시대를 알 수 있다.
그 시대의 징조 중에 하나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이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가 언제인지 깨닫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이제 머지않아 그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는 시대가 온다.
요한계시록 1장 20절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요한계시록을 주면서 예수님이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있고 일곱 금촛대가 있는데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교회는 바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하는 촛대로
사역자를 별로 표현하였다.
어두운 죄악 세상을 밝히는 밤하늘의 별처럼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촛대처럼 목회자와 성도가 바로 삶의 인격과
전해지는 말씀을 통하여 바로 하나님의 빛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난 그 빛 예수님의 언어와 행실 인격 이것을 온 세상에
증거하는 사명이 있는 것이 교회이고 목회자이다.
그래서 교회를 촛대로 표현하고 있다.
로마서 13장 11~14절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개인적으로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고 하였다.
죽었다가 다시 주님 오실 때 다 깨는 그럴 때 또 개인적인
종말이 가까이 왔고 또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이 온
이런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는데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어둠의 일을 벗자" 그러는데 이 어둠의 일이 무엇인가?
방탕, 술취함, 음란과 호색 쟁투와 시기 이런 모든 죄악성에
속한 것들을 그리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말씀하고 있다.
정욕에 속한 것은 요한1서에서 본 것처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이런 것들이 육신의 일이고
세상의 일인데 여기에 빠져 있으면 어둠에 있는 것이고
낮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다 깨어서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드러내는 그런
빛으로의 삶으로 살아가라 이렇게 권면 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보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 21장 11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귀한
보석이라고 했는데 보석 중에 제일 귀한 보석이 무엇인가?
다이아몬드다.
요한 당시에는 다이아몬드라는 말이 없으니까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하였다.
이 수정은 투명한 것이고 벽옥은 푸른색의 옥인데
이것은 결국 다이아몬드를 얘기한다.
새 예루살렘이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하고 맑다 하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1장 18절 이하에 보면
그 성은 정금 벽옥이라고 하였고 12가지 보석이 쭉 나와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1장 21절
"21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그러니까 천국 그 입구에는 우리가 12지파로 들어가는 것처럼
12진주문이 있고 그 안에 모든 것이 보석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에 새 예루살렘 성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인
다이아몬드로 표현하고 있다.
그럼 가장 귀한 천국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 성,
천국은 다 같이 예루살렘 성이 아니다.
천국의 수도만 예루살렘 성이다.
그건데 왜 다이아몬드로 표현하고 있나?
다이아몬드가 왜 비싼가?
굴절각이 가장 많은 보석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그렇다.
각이 제일 많다.
다이아몬드는 굴절이 가장 많고 각이 가장 많으니까
가장 많은 빛을 서로 서로 반사하고 가장 많은 빛을
드러내니까 가장 귀한 보석이고 가장 비싼 보석이다.
결국 이 세상에 있는 보석 중에 제일 비싼 다이아몬드를
예루살렘 성으로 표현한 것은 예루살렘 성은
예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빛을 가장 많이 반사하는
사람들 예수님의 신부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가장 많은
굴절을 가지고 가장 많은 빛을 드러내는 곳이
이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곳 출입문은 왜 진주로 되어있는가?
보석 중에 진주는 유일하게 여린 살 속에 불순물이 들어오면
그것을 내뱉지 않고 품어서 계속 감싸고 감싸고 감싸면서
영롱한 보석 진주를 만들어 낸다.
천국에 들어가는 기본적인 자격은 진주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주 비유가 있다.
마태복음 13장 46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우리가 하늘나라의 자격이 되는 것이 진주를 만드는 것처럼
내 속에 들어오는 수많은 환경속의 원망, 불평, 가시처럼
찌르는 수많은 상처들을 내 뱉어 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덮고 말씀으로 덮고 용서로 덮고
사랑으로 덮고 계속 덮고 덮는 하나의 생명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천국 가는 기초적인 자격을 얻게 된다.
이렇게 진주문을 통해 들어가면 12가지의 보석과
새 예루살렘의 다양한 보석들처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빛을 얼마나 반사하는 삶을 살았는지
그 정도에 따라 그 수준에 맞는 보석의 자리로 가게 된다.
천국은 행한 대로 갚아주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상처와 슬픔을 진주처럼 계속 품어 싸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할 때 천국 들어갈 자격이 있고
내가 얼마나 많은 빛을 바라느냐 예수님이 어떠한 곳에
가셔도 말씀을 증거 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빛을 굴절이
제일 많은 다이아몬드처럼 최대한으로 반사하여
예수님의 삶을 나의 인격으로 나의 삶으로 드러내는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도 다 다이아몬드와 같은
그런 장소로 갈 수 있게 될 줄 믿는다.
반면에 지옥은 어떠한 곳인가?
마태복음 25장 30절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바깥 어두운데는 빛이 없는 곳이다.
이 세상에서 수없이 하나님의 빛을 받고 예수님을 통하여
받고 말씀을 통하여 그 많은 빛을 행할 수 있는 기회를
다 잃어버리는 빛이 전혀 없는 곳 이 곳이 바깥 어두운 곳이다.
그리고 반사할 그 빛 지옥불, 유황불 빛이 오히려 괴롭게 한다.
지옥은 수없이 많은 빛을 전할 수 있는 기회와
수없이 빛을 드러낼 수 있는 그 빛을 전부 사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를 괴롭게 하는 빛이 돼버리는 곳이
영적으로 어두운 곳 지옥이다.
소금도 마찬가지이다.
세 번째
소금은 무엇인가?
소금은
출애굽기 30장 35절
"35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여기서 소금을 사용했다.
민수기 18장 19절
"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변하지 않는 것이 소금이기 때문에 소금을 두고 언약을 한다.
그리고 예물에 뿌린다.
에스엘 16장 4절
"4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아기가 태어나면 소금이 소독제 역할을 했다.
욥기 6장 6절
"6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소금을 뿌려야 맛이 난다고 하였다.
소금은 맛을 내고 변하지 않기 때문에 소금을 두고
하나님과 언약하였고 소금을 예물에 뿌리고
소금을 향을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이것이 소금의 기능이다.
이 죄악 세상에서 우리가 변하지 않는 소금을 두고
하나님과 언약한다.
그러니까 소금을 통하여 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소금을 통하여 소독도 하고 소금을 통하여 맛을 내는
이런 역할을 현재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서 해야 할
역할인 것이다.
썩어져 가는 세상이 조금 더 썩지 않도록
소금을 치라는 것이다.
마가복음 9장 47~50절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지옥에 들어가지 않도록 권면을 하고 있다.
눈이 범죄하면 눈을 떼어버려라
한 눈으로 하나님 나라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는 것보다 낫다.
아마 우리 몸을 범죄하는 대로 다 없애버리면
몸에 남아 있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인 영적인 세계로 가면
이 세상에서는 지체가 불편하고 불안하고 잘못했어도
영채는 완전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된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두 눈이 다 멀쩡하게 된다.
손과 발이 다 멀쩡하게 되고 아픈 곳이 없다.
한 눈을 없어도 영계에서는 두 눈이 있다.
그러니까 죄를 그만큼 짓지 마라는 권면의 말씀인데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사용해야 될 빛을
사용하지 못한 것처럼 소금의 삶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은 미꾸라지를 잡아서 소금 뿌리면
팔딱 팔딱 뛰는 이런 모습을 말한다.
소금의 사명을 잃었기 때문에 오히려 소금치 듯
불로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미꾸라지에 소금을 치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와 똑같이 불로 소금치 듯이 고통을 주게 된다.
오히려 소금의 삶을 감당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느냐? 하였다.
지금은 좋은 소금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많이
있지만 예수님이 이 말씀을 전했던 2천년 전 고대 사회에는
돌소금밖에 없었다.
소금이 산 속에서 돌소금만 나왔다.
그 돌소금을 갖다가 물에 담가 놓으면
소금 맛이 다 빠져버린다.
그리고 나머지 돌은 어디다 쓰겠는가?
그냥 갖다 버리게 된다.
소금의 맛과 소금의 기능을 다 빼버린
나머지 돌은 쓸 데가 없다.
또 실제 소금은 변하지 않는데 변해버리면 쓸데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다 던져버리게 되는 것이
지옥이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롯의 아내가 바로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 것과 같이 말이다.
골로새서 4장 6절
"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소금으로 김치 담글 때 골고루 뿌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배추가 상하기도 하고 맛이 밋밋하게 된다.
소금을 골고루 뿌리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말하는 것도
골고루 사랑으로 해야 되고 은혜도 골고루 어떠한 곳에서도
골고루 이렇게 골고루 하라도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모든 신앙생활도 다 골고루 성경을 보는 것도 골고루,
감사하는 것도 골고루, 은혜 받는 것도 골고루,
말하는 것도 사랑 실천하는 것도 골고루
소금을 골고루 뿌리는 것처럼 골고루 모든 것에 동일하게
이렇게 해야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하셨다.
골고루 맛을 잃지 않고 골고루 맛을 낼 수 있는 삶으로
썩지 않고 부패하지 않도록 골고루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한다.
성도의 삶은 이 썩어진 죄악 세상 잠시 훈련받고 지나가는
세상이고 다 없어지는 세상이고 지나가는 세상인데
이 곳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고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우리 모두 마지막 가장 어두운 이 시대에 빛과 소금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런 열매에 동참하고
어둠에 빠지지 않는 귀한 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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