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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향연/메세지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by Andrew Y Lee 2022. 1. 22.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여호수아 14장 6~15절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엊그제 새해를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셋째 주가 됐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빨리 지나가고
한 주 한 주가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모른다.
세월을 아껴서 마지막 때에 영적인 것에 더 분발하고
힘낼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란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12절에 있는 것처럼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다.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인류 구원의 그 모든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하는 샘플을 택하셔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교훈하시고 이스라엘을 통해서
역사하시면서 오늘의 우리에게 교훈하시고 계신다.


그래서 성경에 나와 있는 이스라엘의 이 모든
하나님 말씀과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것은
저와 여러분에게 교훈이 되는 말씀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크게 나눠 보면 아브라함에게
그 가나안 일경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지만
실제는 400년 후에 모세의 때에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출애굽하며 떠나게 된다.


그래서 출애굽하기 이전 400년의 역사는 애굽의 역사이다.


그리고 모세를 불러서 출애굽한 후 광야 40년의 역사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며 전쟁하는 그런 역사로 흘러간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사사들, 사울, 다윗, 솔로몬으로
이어지고 솔로몬 때에 예루살렘성을 만들게 된다.
여기까지가 바로 인류를 향한 모형이다.


인류 역사가 요한계시록 21장에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그때까지 이스라엘에게 보이신 그 모형대로 인류 역사가
진행되는 것이고 우리 한 사람의 개인 개인의 천국 가는
원리도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 오늘 본문의 배경은 모세가 죽고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가는데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안수하여 여호수아를 세웠고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해 가는데
그중에 갈렙의 이야기가 본문의 내용이다.


이 갈렙의 이야기를 통해서 몇 가지 교훈을 받도록 하겠다.


첫 번째는,
12에 나오는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구절에서
"이 산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나왔는데
이 산지는 바로 "약속의 땅"이라는 것을
우리가 먼저 알아야 된다.


본문 가운데 9 말씀에 보면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그리고 12 말씀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찌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여기서 12에도 "그 날"이라고 했고 9에도 "그 날"이라고 하였다.


"그 날"이 어떤 날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그 때를 말한다.


민수기 14 22~24
"22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왔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니까 쳐들어가자고 하였고
나머지 열 사람들은 그곳에는 크고 장대한 족속들이
살기 때문에 메뚜기 같은 우리가 가면 죽게 된다는
엇갈리는 가나안 정탐 보고를 하였다.


광야에서 행한 이적을 보고도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들은 하나라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주겠다고 한 약속이 민수기 14 말씀이다.


그래서 그 산지는 하나님이 갈렙에게 주기로 한
약속의 땅이었다.


이것처럼 우리에게도 산지가 있는데 우리에게 주신
무언가의 약속이 있다면 그 약속이 우리에게 준 산지이다.


이 약속은 어떤 약속인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이 있다.
이것이 우리의 산지이다.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약속의 땅이
우리에게 준 산지이다.


그리고 또 사는 동안 우리 각자에게 주신 여러 가지 약속들
그것이 우리의 꿈이 될 수도 있고 비전이 될 수도 있고
나의 기도 응답이 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나에게 준 모든 약속들이
우리 각자의 산지인 것이다.


갈렙에게 산지를 약속하고 가나안 땅을 약속해 주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약속한 그 무엇가가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산지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성전을 주시면 500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는데 이것을 어떻게 이루실지는 모른다.


실제 건물이 생겨서 500명의 성도를 주는 건지
아니면 이제 책이 완성됐기 때문에 책을 출판해서
이렇게 주시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유튜브 방송을 통해서
그렇게 500명을 주실지 실제적인 방법은 모르지만은
하나님이 그 약속을 저에게 주셨고 믿고 나아가고 있다.


이것이 저의 비전이고 꿈이고 성체교회의 사명이고 꿈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산지가 된다. 


그래서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 약속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꿈이다.
우리의 비전인 것이다.


물론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그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도 우리의 꿈이고 우리의 약속이고
당연한 우리의 소원이지만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여러 가지로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고 계신다.


성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꿈으로도 보여줄 수도 있고
계시를 통하여 알려줄 수도 있고 은사적인 방법으로
찬양하는 가운데 가사로 줄 수도 있고 내 양심에 스스로
깨달아서 알게 되는 하나님과 교통의 여러 통로를 통해서
각자에게 약속을 주신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약속들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준 산지이다.


제가 여러 번 간증했는데 미국에 있을 때 제가 구세군
사관학교로 저희 성도님 그 가정을 보내서 지금 워싱턴
근처에서 구세군 사관을 잘 하고 있다.


평신도로 미국에 오셨는데 구세군 사관 하나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그 중에 딸 둘 중에서 작은 딸이
꼭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빠 제가 학교에서 뭐가 필요해요"


아빠는 구세군 월급이 작으니까 돈이 없다.
"그럼 돈 생기면 사줄 거지?"
딸아이는 약속만 받아놓았다.
그러면 아빠 월급날이 되면 가서
"아빠 저번에 아빠가 약속한거 사주셔야지요?"
그러니까 그 딸아이는 아빠가 돈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약속을 받아내서 그걸 꼭 얻어낸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께 약속을 받아야 된다.
갈렙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그날에 우리가
보고한 것으로 "나와 당신에게 그 약속의 땅을 주신다고
당신도 듣지 않았습니까?" 여호수아에게 말하고 있다.


이것이 이들의 산지인 것이다.
저와 여러분도 바로 이렇게 약속은 하나님께 받은
우리의 약속이다.
비전인 것이다.


그래서 광야 같은 세상을 살면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수많은 약속들을 받아내면서
그 산지를 달라고 기도하며 나가야 될 줄로 믿는다.


두 번째,
그러면 이 약속을 실제적으로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


본문 가운데 8~9 말씀을 보겠다.
"8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9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쫓았기 때문에
그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14절 말씀도 한번 같이 보겠다.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갈렙이 그 땅을 차지한 것은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쫓았기 때문에 그 약속도 받은 것이고
또 온전히 쫓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그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온전"이라고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
온전이 완전인 것이다.
장성하다, 성숙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려면 하나님은 온전한 제물만 받으시는데
그 양 한 마리가 하나님이 받을 만큼 완전하고
성숙하게 자라났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기뻐 받을 만한 제물이 다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도 온전히 다 성장하여 어른이 되는 것처럼
완전히 장성한 것, 성숙한 것, 온전한 것이
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갈렙은
온전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실제적으로 온전했다고 하는 게 무엇인가?


7 말씀을 보면
"7 내 나이 사십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온전하다고 하는 것은 먼저 "성실하다"는 것이다.


민수기 14 6~9
"6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그 땅은 하나님이 지시한 땅이고 하나님이 준다고 약속한
땅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약속대로 우리를 인도하여
들일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고
거역하지 말라 거기에 아무리 장대한 족속이 살아도
그들은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니까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자라고 한 것이 성실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온전히 쫓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회중은 그들을 돌로 치려 하니까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떠났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회중은 성실하지 못했다.


그러나 갈렙은 성실하게 보고하고 온전한 믿음과 온전한
약속을 믿는 그 믿음을 가지고 따라갔다.
이것이 바로 성실하다고 하는 것이다.


약속을 믿고 따라가는 것 이것을 믿음으로 받는 이것이
바로 성실하다고 말한다.


본문 말씀 7 말씀을 보니까
"7 내 나이 사십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에 성실한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갈렙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것이 40세였다.


그러면 애굽을 떠나서 성막을 지은 것이 1년 차 가나안을
정탐한 것이 2년 차이다.
갈렙이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 것이 38세이다. 


본문 10 말씀 보면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갈렙이 78세에 요단강을 건너가서 가나안 땅에 도착하면서
정복하는 전쟁을 7년 차 하고 있다.


그래서 45년이라고 하는 세월동안 그 약속을 믿고 약속대로
주실 걸 믿는 믿음으로 지금 그 땅을 달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것이 온전한 믿음이고 이것이 약속을 믿는 것이고
이것이 성실한 것이다.


4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약속을 붙잡고
그 땅을 달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그대로 믿는 그 믿음!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그 약속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그것이 성실한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따라가는 것이다.


히브리서 3 말씀 보겠다.
히브리서 3 8
"8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이 광야를 지나가면 여러 가지 시험을 받을 때
마음이 강팍해진다.


이것은 성실한 믿음이 아니다.
온전히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강팍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히브리서 3 12~13
"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이 40년 광야를 지나가면서 믿지 아니하는 것을
악심이라고 한다.


믿지 않는 악심을 품으면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고
그걸 염려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이라고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에서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팍하게 됨을 면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히브리서3 18~19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19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순종치 못했기 때문에 못 들어가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못 들어가고 믿지 아니하는 것이 악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떨어져버린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이 올 때 시험받을 때
주의 이름으로 강팍케 되는 것을 면해야
성실히 따라가는 것이고 온전히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갈렙은 45년의 세월 동안에 온전히 따라갔다.
성실하게 그 믿음을 붙잡고 끝까지 약속을 붙잡고
이렇게 따라갔다.


히브리서 4 1~2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복음을 받아서 말씀을 들었는데 유익이 없다는 것은
손바닥이 마주쳐 소리가 나는 것처럼 믿음으로 받아서
믿음으로 화합을 해야 되는데 이렇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안식에 들어가는 약속만 있지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성실치 못한 것이다.


히브리서 3 11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스라엘 백성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60만 명은 다 광야에서 죽었다.


순종치 않았기 때문에 성실치 않았기 때문에
온전히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전부 다 광야에서 죽었다.


그 본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까 성실하게 온전히 따랐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켰고 그 약속을 붙잡고 순종하며
따라갔다는 말이다.


저와 여러분이 갈렙처럼 온전히 따라가는 가운데
그 약속을 받은 것을 받아 누려야 된다.


약속만 받았지 실제 내 것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온전한 믿음과 순종으로 가야 된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이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우리는 갈렙의 용기를 배워야 한다.


금년 안에도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또 개인적으로 준 약속 이 산지를 지금 내게 달라고
기도하며 나갈 때 갈렙은 45년 전에 했던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45년이 얼마나 오랜 시간인가?
본문 12,15 말씀을 보면
"12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찌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그 땅에는 아낙 사람이라고 하는 가나안 족속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그 산지는
산골짜기고 산악지대였다.
산지는 지금 평야가 아니었다.


전쟁이 제일 어려운  이 곳에서 아낙 사람들을 치지 못하고
지금까지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갈렙의 나이가 85세 됐는데 45년 전 약속을 붙잡고
"내가 지금 전쟁에 앞서 나가서 그걸 차지하겠다"고
여호수아에게 자기를 보내달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약속을 함께 들었던 60만 명은 이미 다 죽어버렸다.
그 약속을 주었던 모세도 죽었다.
그 증인은 여호수아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 갈렙은 이제 나는 85살 되어서 힘도 없고
그러니까 이 전쟁에서 벗어나 내 자손들이 나가서
차지하게 하라고 얼마든지 핑계거리를 대서 얼마든지
이 전쟁을 피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직접 가장 강력한
아낙 사람들을 내가 앞장서 나가 싸우겠다고 하고 있다.


실제 이스라엘에 가보면 그 헤브르는 산악지대이다.
전쟁하기 제일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 가장 장대한 아낙 자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생명을 걸어야 되는 전쟁이었다.


본문 11~12 말씀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12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찌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렙은 그 약속을 붙잡고
나를 보내달고 하고 있다.


가나안을 정탐했던 그때처럼 내가 지금도 강건하여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12에는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하시면"
이라고 말씀한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한다고 무조건 가는
그런 믿음이 아니고 "혹시" 그분이 나와 함께해 주신다면
내가 쫓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갈렙은 겸손하면서도
담대한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갈렙의 용기이다.


저 역시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비전과 꿈들이 있기 때문에
갈렙처럼 그 용기를 가지고 나가고 싶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한국의 은퇴 목사님들이 하는 "뉴 라이프 선교회"라고 하는
그런 선교회가 있다.
은퇴 목사님들의 모임이다.


그런데 이분들을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동대문에 큰 사무실을
얻어서 이주자들을 상대로 상담하고 전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선교회를 운영하는 유 목사님이라는 분이 책을 써서
냈는데 책 제목이  "은퇴란 없다"


은퇴 목사님들끼리 모여서 선교회가 잘 돼서 동대문에서
상가도 하시고 사람들도 파송하고 있다.


그리고 제가 있었던 애틀란타에 90세가 된
박찬환 목사님이라고 하는 분이 장로교 장신대 신학장이었던
분인데 90세때에 애틀란타에서 바이블아카데미를 열었다.
이 아카데미 통해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또 제 기적의 방에는 기도 제목에 하나 올라왔는데
헵시바라고 하는 나이 많은 권사님이 계시는데
이 분이 무슬림 지역에 들어가서 선교를 하겠다고 하면서
선교회 본부에서 파송 받을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 하셨다.


이 분은 무슬림 선교에서 순교를 하더라도 가겠다고
하는 분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 한 번 따라해 보자
은퇴란 없다!  은퇴란 없다!
할레루야!


우리는 갈렙의 용기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용기를 하나님 쓰시려고 건강을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씀을 정리하면
우리 각자에게 먼저 산지가 있어야 된다.
막연하게 신앙생활 하다가 적당히 믿다가 죽으면 천국 가겠지
이런 막연한 믿음으로 살지 않고 천국은 당연히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유업이고 약속이니까 그걸 붙잡고
있으면 천국은 가지만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께 받은
수많은 비전과 꿈들이 전부 약속인 것이다.


이 산지를 내게 달라고 그 산지를 달라고 이 받은 약속을
하나님이 어떻게 이루실지는 모르지만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서 애를 써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꿈을 금년 안에 가지고 살길 바란다.
비전을 가지시기 바란다.
하나님께 약속을 받아 누리시기 바란다.


그리고 그 약속을 받아내면 갈렙처럼 온전히 따라가야 되고
성실하게 따라가야 한다.


갈렙이 약속을 끝까지 45년이 됐는데도 그걸 믿고 붙잡고
놓지 않았던 것처럼 믿음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고
갈렙의 용기를 우리가 함께 교훈 받아서 나가야 한다.


거대한 아낙 자손이 버티고 있는 그 산지,
산악지대고 풀 한 포기 안 나는 그런 광야인 그런 땅에 가서
전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그런데 갈렙은 그 산지를 달라고 하면서 그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이 혹시 나와 함께하시면 이렇게 겸손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갔던 용기를 우리는 본 받아야 한다.


마지막 15을 보니까 
아낙 자손을 물리쳤고 그 땅을 차지했기 때문에
그 땅의 전쟁이 그쳤다고 말씀하고 있다.


또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쫓았기 때문에 그 땅을
받게 됐고 여호수아도 13에 보니까 갈렙을 축복했고
기업을 허락해 줬다고 말씀하고 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다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성령님 또 예수님을 상징한다.
여호수아와 예슈아는 같은 뜻이다.


결국 그 용기를 보고 예수님이 그를 축복하고
그 기업으로 헤브론 땅을 주었다.


헤브론은 나중에 다윗의 첫째 유대 나라의 성읍이 된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받아 누리되 그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또 순종으로 이렇게 약속을 붙잡고
성실한 마음으로 온전히 따라가는 가운데
그 약속들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이 한 해 저와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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