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을 제치고
창세기 8:13~19절 "13 육백 일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14 이월 이십칠일에 땅이 말랐더라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17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19 땅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하나님의 은혜로 새해를 맞아서 신년 첫 주일 예배로 하나님께 나간다. 1월 달은 시작의 날이고 새해 표어는 작년과 동일하게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전하자" 그대로 진행을 할 계획이다. 새해 첫 시간인데 노아의 사건이 주는 교훈을 받으면서 새해를 시작하려고 한다. 마태복음 24장 32~37절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 사건 "인자에 임함이 노아의 때와 같다" 이렇게 주님이 직접 말씀 하셨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32절에 말씀하셨는데 이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이사야서에 여러 번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AD 70년에 완전히 멸망하였다가 1948년 5월 14일에 독립 했다. 이것이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를 내는 사건이다. 이스라엘 독립이 2천 년 가까운 세월 만에 이루어졌는데 그 이스라엘이라는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33절에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있는 줄을 알라" 이스라엘이 독립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의 일정이 가까이 다가온 사실을 알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대로 인류 역사가 지금까지 이루어져 왔는데 "천지가 없어져도 하나님 말씀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이것이 다 이뤄질 것이다" 그런데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그랬다. 성경에 모세를 통하여 사람이 70이고 강건하면 80이라고 하였다. 한 세대를 100년으로 본다면 1948년에 독립을 했으니까 2048년이 된다. 그런데 한 세대를 70년으로 보면 2018년이다. 그리고 80년으로 보면 2028년이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를 내면 인자가 문 앞에 있는 줄을 알라" 그러니까 우리가 매우 임박한 재림의 시대를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고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랬다. 구약 시대에 아들이 장가를 가려고 할 때 혼인이 성사가 되면 그 아들이 집에 와서 혼인집을 마련한다. 그 혼인집을 다 짓고 나면 아버지가 가서 "신부를 데려와라" 하는 것은 아버지의 권한이다. 그러니까 그날과 그 시는 아버지만 안다. 37절의 말씀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 임함도 그러하리라" 힌트를 주셨다. 그 날과 그 시는 알 수가 없지만 노아의 때를 잘 깨달으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다 그 날과 시는 몰라도 힌트를 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노아의 때를 매우 주목하여 살피면서 은혜를 받아야 된다. 마태복음 24장 38~44절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계속해서 말씀 보면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그날은 마지막 날이다. 방주에 들어가면 비가 쏟아질 텐데 그날까지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집 사고 팔고 그러면서 홍수가 나서 멸하게 된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고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두 사람 중에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다가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지는 고통을 당하고 그래서 어느 날에 주가 임할는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 있어라 44절에 보면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였다. 그래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야 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이 노아의 때가 인자의 때와 같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으면서 오늘 노아를 중심으로 하여 새해를 시작하면서 이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다. 첫 번째는 마지막 때일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한다. 노아의 때는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창세기 6장 5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그래서 하나님이 지면의 모든 것 창조한 사람, 공중의 새, 육지의 기는 것 모든 것이 다 악하고 모든 것에 죄가 관영하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노아의 홍수사건이 나타났다. 그런데 8절 말씀에 보니까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죄가 관영하여 하나님이 사람 지은 것을 후회하시고 싹 쓸어서 멸망하려고 하는데 "그러나" 이 그러나가 얼마나 은혜 되는 말인가?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마찬가지이다. 주님이 재림하여 오시겠다고 하는 것은 노아의 홍수처럼 심판하러 오시겠다는 건데 우리도 노아처럼 하나님께 "그러나 누구누구는 은혜를 입었더라" 이렇게 되어야 한다. 마지막 때 일수록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럼 노아가 왜 은혜를 받았고 하나님께서 노아를 특별히 택하셨을까? 창세기 6장 9절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를 하나님이 택하시고 노아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노아가 의인이었기 때문이다.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당세에 완전한 자라 하나님과 동행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노아가 의를 행하는 사람이었고 그 당대에 완전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를 입혀주셨다. 그러면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의롭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 완전을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런 삶이 되는 사람들은 하나님 은혜를 입게 된다. 세상이 아무리 죄가 관영해도 "그러나"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은혜를 입혀 주신다. 베드로후서 2장 5절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하나님이 죄악 세상을 심판하는데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일곱 식구를 보존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누구 하나가 의롭게 살아가면 그 가족과 그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덕을 봐서 함께 구원을 받게 된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가? "의를 전파했다"고 하는 말은 몸소 의롭게 살아가면서 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을 전파했다는 말이다. 저와 여러분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의를 전파한다고 하는 것은 내가 의롭게 살아야 된다는 것을 말씀으로 증거 하여 전파하고 또 내 삶의 행실을 의롭게 살아감으로 저절로 빛이 되어 사람들에게 전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많은 업적을 행해서가 아니라 가만히 서 있어도 저절로 빛이 되고 저절로 의를 전파하게 된다. 성인들이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빛이 되는 것과 같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자그만 빛이 나도 그게 큰 빛이 된다. 전파한다는 게 직접 가서 말씀을 전파하고 의를 전파하는 것도 있지만 노아는 그저 일곱 식구와 함께 평범하게 살아도 의를 전파하는 사역으로 저절로 드러났다. 베드로후서 2장 5~8절 "5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노아의 홍수는 물심판의 본이 되신 거고 소돔 고모라는 불과 유황으로 멸망하여 재가 되게 한 것은 불로 심판하는 본을 삼으신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물심판도 하시고 불심판도 하신다.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는데 하나님 나라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데 물로 거듭나는 것이 물세례를 받는 것이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성령세례인데 이것을 불세례라고 한다. 우리가 물심판 물세례도 받아야 되고 불세례 성령세례도 개인적으로 받아야 된다. 인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노아를 통해서 물 심판의 본을 보이셨고 소돔 고모라를 통하여 불심판의 본을 보이셨는데 그 불심판 때도 그 가운데 롯을 의롭다 하시면서 이 롯을 건지셨다. 이 죄악이 가득한 소돔 고모라 안에 동성애와 죄악이 관영하여 불로 심판받은 그 가운데 의로운 롯은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의로운 사람에겐 죄악 세상을 보면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의로운 사람에게 하나님이 불심판이 오든 물심판이 오든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지 그 시대에 하나님이 은혜를 입혀주신다 하고 말씀하고 있다. 창세기 7장 1절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하나님이 노아의 의를 보았다. 그래서 일곱 식구가 함께 방주에 들어가서 그 심판을 면하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받게 되었다. 누군가 하나가 하나님 앞에 의로움을 보여주면 그 가족까지도 다 함께 구원을 받게 된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함께 구원을 받게 된다. 그리고 노아는 당세의 완전한 자라 그랬다. 시대마다 하나님의 완전의 기준이 틀리고 그 시대마다 하나님이 의의 기준이 다 틀리겠지만 노아는 그 당시에 완전한 자다 하였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이 완전하니 너희도 완전하라" 그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을 닮아보려고 부모님이 완전하시고 부모님이 사랑이신데 똑같은 성령을 가져야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있지 않는가?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이 완전한 분이고 거룩한 분이고 그분이 의로운 분이고 오직 사랑만 있는 분이신데 그 하나님의 집에 함께 살려면 똑같은 성향이 돼야만 한다. 우리가 완전을 추구하려고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그리고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한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주셨다. 노아는 이 세 가지를 갖추고 있다. 의인이고 당세의 완전한 자고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그리고 노아를 한 가지 더 추가해서 본다고 한다면 모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노아를 하나님이 의를 보시고 완전하고 동행하여 택하셔서 방주로 들어가게 하는데 그 방주를 만들 때 보면 방주의 규례를 쭉 말씀하시면서 창세기 6장 22절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7장 5절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방주로 돌아가라 할 때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대로 다 준행하였다.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순종하고 준행하는 삶이 아니면 구원받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노아처럼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통하여 말씀한다면 그 말씀을 순종하고 의롭게 살기를 몸부림치고 완전해지기를 추구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런 삶에 하나님이 반드시 은혜를 입혀주신다.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가 오시는 때인데 우리가 은혜를 사모해야 된다. 새해에는 더 은혜 받으려고 몸부림치시고 더욱 하나님과 동행해 보려고 몸부림치고 하나님이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해 보려고 몸부림치는 삶을 지향한다면 반드시 은혜를 주실 줄로 믿는다. 우리는 은혜 받는 자리를 사모하고 은혜 받는 냄새를 맡아야만 한다. '아~ 오늘 은혜가 있겠구나! 이렇게 하면 은혜를 받을 수 있겠구나!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 주겠네!' 이것을 사모하고 그 자리를 찾아다녀야 되는데 은혜 받는 것을 피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미꾸라지 같은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어떻게든지 은혜 받을 자리를 사모여야만 한다.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다 살피셔서 은혜 받을 자가 누구인가? 살피시면서 노아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완전하고 동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아에게 은혜를 입혀 주셨다. 세상에 아무리 죄가 관영하고 코로나가 와서 계속해서 어려운 환경이 와도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된다. 두 번째, 창세기 8장 13절 본문 "육백 일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노아가 600세 1월 1일 지면에 물이 걷히고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오늘 말씀 제목이다. 자세히 보면 방주에 들어갈 때는 창세기 7장 16절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 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이제 다 들어갔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방주에 들어가서 뚜껑을 닫아 놓으신 건 하나님이 하셨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 제치고 나오는 건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우리를 택해 주시고 하나님이 많은 일들을 해주시지만 여전히 뚜껑을 제치고 나오는 것은 노아가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사람 편에서 해야 할 일은 사람이 해야만 한다. 우리 이 교훈을 받아야 한다. 누군가가 밥상을 차려주고 맛있는 걸 준비해놔도 떠먹는 것은 내가 해야 된다. 누가 혹시 떠 먹여줘도 그걸 씹어서 넘기는 건 내가 해야 된다. 어떻게 우리가 그냥 먹을 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맛있는 피자를 조각내서 갖다 줘도 이걸 집어서 내가 먹고 씹어서 넘겨서 소화하는 건 내가 해야 된다. 예배 참석을 누가 대신 해주겠는가? 기도를 누가 대신 해주겠는가? 물론 중보하여 누군가가 기도도 하겠지만 영적 생활은 내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해야 된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제가 상주에 있을 때 집집마다 감이 엄청 많았다. 그런데 감이 다 익어서 떨어지는데 가만히 가서 입만 벌리고 있으면 그것이 딱딱 들어오겠는가? 하다못해 깔대기라도 만들어서 좀 범위를 넓혀서 깔대기에 떨어질 수 있도록 하던지 연시가 땅에 떨어져도 터지지 않게 뭘 좀 깔아놓고 기다리던지 아니면 장대를 이용하던지 아니면 성질이 급하면 나무로 올라가서 직접 따던지 뭔가 사람 편에서 해야 할 일을 해야지 가만히 쳐다보고 입만 벌리고 있다고 그것이 은혜가 되고 그것에 하나님 역사가 이루어지겠는지? 뚜껑을 제치고 나오는 건 노아가 해야 했던 것처럼 들어가 닫아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다 해 주셨다. 어떤 방법으로 닫으셨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닫아 주셨다. 뚜껑을 닫아 주셨다는 것은 그 심판의 기간 동안에 절대 보호하시고 절대 지켜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나오는 건 뚜껑을 제치고 나오는 건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하루가 24시간인데 바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기독교인은 하루 25시간이어서 한두 시간 따로 챙겨서 이 시간 갖고 신앙생활하고 있는가? 아니다. 다 똑같은 시간이고 그러니까 불신자보다 몇 배 더 부지런해야 한다. 로마서 12장 11~13절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로마서 11장까지는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교리인데 그러면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말씀이 12장부터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너희가 산 제사를 드려라" 이제 이렇게 살아야 된다. 그런데 그중에 하나가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어려움이 있어도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환란 중에 참고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고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얼마나 바쁜가?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아야 이렇게 살 수 있다. 우리가 부지런 하고 사람 편에서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한다. 이것이 "뚜껑을 제치고"의 의미이다. 세 번째, "뚜껑이 제쳐졌다" 이 말은 하늘이 열려졌다는 것이다. 방주를 잘 살펴보면 창세기 7장 11절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노아가 600세 2월17일부터 40주야 동안 비가 오니까 방주가 물에 떴고 150일 동안 진행이 되면서 8장에 와서 물들이 또 물러가고 7월 달에 아라랏산에 도착하고 그러면서 8장 10절에 있는 본문대로 601년 정월 초하루 그러니까 거의 1년의 시간이다. 지금 600세 2월 17일 날 밤에 들어가서 비가 오고 물이 빠지면서 뚜껑을 제치고 나오는 그때가 거의 300여 일 거의 1년 가까운 세월을 방주 속에 갇혀 있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절대 보호하시어 방주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지만 그 안에 1년 가까운 세월을 냄새 나는 짐승들과 같이 지냈겠는가? 그런데 그때 방주의 규격을 보니까 다 창문들이 있고 문들이 있는데 뚜껑은 규격에 안 나오는데 뚜껑이 있었다. 비가 다 끝나고 지면에 걷히니까 뚜껑을 제쳤다. 그러니까 삼백여 일 만에 하늘을 처음 보았다는 말이다. 하늘이 열렸다! 하늘을 여는 사건을 생각해 보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창세기 28장 12~14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하나님이 이 모든 약속을 주시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꿈속에 하늘이 열려서 사닥다리위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을 해주셨다. 하늘이 열린다고 하는 것은 야곱처럼 약속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약속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약속대로 어떻게 하셨나? 창세기 32장 10절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처량 맞게 야곱이 집에서 떠나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사서 벧엘에서 돌베개하고 자다가 꿈속에 하늘이 열려서 하나님께 약속을 받았는데 이제 집에 돌아올 때는 어떻게 되었나? 지팡이 하나 짚고 갔는데 이제는 아내가 여럿이고 자녀 12명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축복의 약속이 바로 하늘이 열리면서 창세기 28장에 야곱에게 임한 것이 뚜껑을 제친 것처럼 하늘이 열렸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약속을 받아야 된다. 새해에 그런 뚜껑이 열려서 하나님께 약속을 받길 바란다. 마가복음 1장 9~11절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30세가 되셔서 공생애를 시작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가서 할례 받는 것처럼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으시고 이것은 예수님이 죄와 상관없이 영적 할례 받는 모습이다. 그런 후 하늘이 갈라졌고 비둘기가 내렸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면서 하나님이 인준해 주셨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인준을 받으면서 하늘이 갈라져서 방주 뚜껑을 제치는 것처럼 역사를 하시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공적인 사역에 정식으로 등장하는 그런 일들이 이루어진다. 우리 사역이 열리게 된다. 그 첫걸음이 방주 뚜껑을 제치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 사건은 인류 전체의 출애굽 사건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는 그때도 똑같은 방주의 원리대로 역사하시겠다는 것이다. 주님 오실 때 우리가 빨리빨리 하나님의 인준을 받아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하늘이 갈라지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서 본격적으로 쓰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주 뚜껑을 사람 편에서 제쳐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지만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인준을 받는 하늘이 열려지고 하늘이 보이고 하늘이 갈라지는 이 놀라운 역사가 우리에게 나타나야 한다. 이렇게 되기를 축원한다. 저와 여러분을 가두고 있는 모든 환경이 있다. 각자의 환경들이 있다. 그 환경에서 하늘이 열려야 한다. 방주 뚜껑을 제쳐야 한다. 환경에서 탈출하는 그 첫걸음이 방주 뚜껑을 제치는 것이다. 송구영신 예배 때 제가 "뚫어야 산다"고 그러면 설교를 하였다. 이것이 막힌 게 뚫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 보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지만 1년 가까운 세월을 냄새나는 방주 안에서 그 얼마나 답답한 환경인가? 시원한 공기를 맛보며 하늘이 열리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첫걸음이 뚜껑을 제치는 것이다. 뚜껑이 제쳐 지면서 하늘이 열려지고 새로운 환경의 시발점이 되는 그때가 정월 초하루 날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독일의 괴테 "파우스트"라고 하는 유명한 책을 썼는데 그 파우스트라고 하는 책에서 그런 말을 했다한다. "껍질을 벗지 않는 뱀은 죽는다" 그런 말을 했다. 뱀의 껍질 안에 가시가 돋쳐 있어서 뱀이 그 껍질을 벗지 않으면 가시에 찔려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뱀은 일 년에 한 번씩 껍질을 벗는다. 시골에 가보면 우물가나 돌 틈에 가서 껍질 벗는걸 보았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옛 사람이라는 껍질을 벗어내지 못하면 그 나의 옛 사람의 가시가 나를 찔러 죽게 된다. 정욕이라고 하는 가시가 나를 찔러 죽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시와 같은 환경 속에서 그를 어떻게든 벗어내는 것이 하늘이 열려지고 방주 뚜껑이 제쳐 지는 것인데 가시를 그대로 박고 살아가다가 찔려 그것 때문에 죽게 된다. 나의 아집 때문에 죽고 나의 포악 때문에 죽고 나의 음란 때문에 죽고 나를 찌르는 그 가시 때문에 죽는다. 그러니까 그 옛 사람의 것들을 벗어버려야 된다.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가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란다. 아무리 세상이 악해지고 아무리 환경이 어떻게 다가와도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 "그러나" "그러나" 세상에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그러나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 반열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누구누구는 은혜를 입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은혜 주는 조건은 그 의롭게 사는 것이다. 완전해져 가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대로 준행해야 한다. 모세가 그랬다. 방주를 짓는데 그대로 다 준행 하였다. 방주를 짓는데 규격대로 하지 않으면 물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한 사람을 택하였다. 이것이 은혜 받는 비결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우리를 택해 주시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할지라도 내 편에서 뚜껑을 제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금년 안에 부지런하게 영적 생활 하여서 하늘이 열려지길 축원한다. 새해 1월 2일인데 우리가 새롭게 송구영신 예배하면서 언약을 갱신하고 작년에는 그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 할지라도 또 1년의 기회를 주셨으니까 언약이 갱신되었다. 오늘은 새해 시작하는 첫 주일이다. 우리 옛 사람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방주 속의 구원의 역사를 함께 맛보고 하나님의 절대 보호하는 그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 마지막 때에 우리 스스로가 뚜껑을 제치고 또 하늘을 볼 수 있는 그런 놀라운 역사가 2022년 꼭 우리에게 임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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