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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메세지

공격과 방어

by Andrew Y Lee 2022. 1. 13.

공격과 방어

 

에베소서 6장 10~20절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아담의 타락이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 그때부터

생존 경쟁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었다.

 

약한 것은 강한 것에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나타났고 개인이나 단체나 공동체와 나라 모두가

다 전쟁을 치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됐다.

 

아주 작게는 매일매일 주차를 하는 것도 전쟁이다.

주차 전쟁, 직장에서의 전쟁, 나라도 전쟁, 여러 가지 질병

때문에 전쟁, 한국은 정권 창출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또 세계적으로는 백신과의 전쟁, 멀리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에도 전쟁의 위기가 이제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인류는 끊임없이 전쟁 속에 살아가는데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로 "전쟁이다" 하는 사실을

깨닫고 살아가야 된다.

 

전쟁에서 지면 망할 수밖에 없다.

전쟁에서 지면 죽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의 전쟁에서도 지면

우리의 영적생명이 죽는 것이다.

망하는 것이다.

 

오늘은 "방어와 공격" 또 거꾸로 말하면 "공격과 방어"

이런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첫 번째

그러면 성도의 전쟁은 무엇인가?

 

디모데후서 4 7~8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전쟁을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이다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다.

"믿음을 지켰으니" 그래서 믿음을 지키려고 싸우는

선한 싸움이다.

 

이 믿음으로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서 그 길을 마칠 때까지

싸우는 선한 싸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도 바울뿐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모든 하나님의 자녀가 다 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 우리의 전쟁인 것이다.

 

오늘 본문 가운데 보면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우리의 전쟁은

마귀와 싸우는 전쟁이다.

 

이어서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오늘 우리의 싸움은 악령들과의 싸움이다.

 

육신적인 혈과 육의 씨름이 아니고 악의 영들과 싸우는

전쟁이다.

 

16 말씀을 보면 "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이 악한 자가 바로 마귀, 사탄을 말한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불의 전쟁" 마귀, 사탄이 불로 태우고

죽이려고 하는 불의 전쟁을 소멸케 하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전쟁은 악한 영들, 사탄, 마귀, 타락한 천사들

요한 계시록에 보면 3분의 1의 천사들이 타락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악한 영들이 우리 환경배후에서 역사를 하고 있다.

이 싸움이다.

 

우리가 욥의 경험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동방의 의로웠던 욥을 하나님이 사탄에게 붙여서

생명은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재산도 다 없어지고

가축들도 다 죽고 몸에는 악창이 일어나고

욥의 배후의 모든 환경이 전부 악한 영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환경이었다.

이런 영적인 싸움이 우리의 싸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서 가나안 가는 것이

우리의 영적 싸움의 거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죄악 된 세상 애굽을 떠났지만 이어서 바로의 군대가

추격을 해오고 이것이 다 원수 마귀를 상징한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세 가지 외세 바로의 군대,

아말렉, 미디안 연합군들 전부 악령들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천국 가기까지 계속 악령들과

그 환경에서 싸워야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요단강을 건너서 할례산에서 할례를 받은 후에도

가난한 7족이 그 땅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가나안 7족을 다 죽여야만 된다.

그래야지 그 땅이 우리의 기업이 된다.

이것도 여전히 영적인 싸움이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천국 들어가기까지 계속

선한 싸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도바울이 디모데후서 4 7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그리고 나서 상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갔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빌립보서 3 15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찌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사도 바울은 "온전히 이루었다"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다.

 

영적으로는 이미 완전한 단계에 나가는 것을

온전히 이루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직 부활이라고 하는 육신의 완전은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빌립보서 312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이것이 바로 부활이다.

 

몸의 구속인 부활에는 아직 온전히 이루지 못했지만

영적으로는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서

이미 온전히 이루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우리 각자가 완전에 이를 때까지

계속 싸우는 선한 싸움이다.

 

히브리서 4 10에는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안식에 들어가야 싸움이 끝나는 것인데 안식에 들어가기까지는

계속해서 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전쟁은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몸의 구속을

이루어서 부활을 이룰 때까지 계속해서 악한 영들과 싸우는

영적인 전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두 번째는

전신갑주의 필요성이다.

 

사도 바울은 본문 가운데

1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이렇게 말씀하였고

13에는 "전신 갑주를 취하라" 라고 말씀하였다.

 

그러면 전신갑주가 왜 필요한가?

11에는 "마귀의 교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전신갑주는 광야의 여정 속에서 계속해서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해서 필요하고 최종적으로는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마지막 영적 싸움을 싸우는 마귀와의 싸움에

꼭 필요한 것이 전신갑주이다.

 

전신갑주는 점점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구원의 확신도 점점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이 흉배도 점점 만들어져 간다.

복음의 신도 점점 만들어가면서 마지막 싸움 때는

완전한 전신갑주가 입혀져야 한다.

 

구원의 투구도 완전한 투구가 되도록 발전해 가는 것이고

복음의 신도 복음이 점점점 깨달아지면서

점점점 만들어져 가는 것이고 이 전신갑주가 처음부터

다 완성이 돼서 처음부터 취하는 게 아니고

점점점 만들어져 가면서 마지막 싸움을 싸울 그때는

완전히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제2의 성경이라고 하는 천로역정에 보면 간난산이라고 하는

세 번째 마지막 싸움을 싸우고 내려오는 곳에서

아블론이라고 하는 사탄을 만나게 된다.

 

요한계시록 9장에 나와 있다.

아블론 아바돈 이것이 곧 사탄인데 세 번째 연단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버리면 이제는 놓쳐버리게 된다.

그래서 그 마지막 싸움에는 아볼론이라는 사탄이

직접 나와서 싸운다.

 

입에서는 불을 토하고 그 괴물과 같은 사탄이 나타나는데

그때 필요한 것이 완전히 갖추어진 전신갑주이다.

 

세 번째 싸움 마지막 순간에 내려오기 직전에 미궁이라고

하는 곳에서 하나님이 이 기독도에게 전신갑주를 입혀준다.

 

그래서 전신갑주는 악한 영과 마지막 싸움을 싸우는 이 때

꼭 필요하지만 세 번째 연단 가기 전에 계속해서 이것이

점점 무장해 가면서 마지막 순간에 전신갑주가 완성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각자 내가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이 구원의 확신 정도에 따라 우리의 구원의 투구가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그리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 믿음의 방패

이 방패도 가진 사람들의 믿음의 정도에 따라 다 다르다.

 

그래서 이 전신갑주는 광야 여정 동안에 계속해서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마지막 영적 싸움을 싸우는

마지막 순간에는 완성된 전신갑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광야의 여정 가운데도 계속해서 필요하다.

전신 갑주는 출애굽 이후에 세 번째 연단에서 싸우는

13절에 있는 "악한 날"  "악한 날"이 바로 마지막 싸움을

하는 그날을 말하고 있다.

 

이어서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이때 아볼론과의 싸움이후 이제 비로소 믿음에

완전히 서게 된다 하였다.

 

전신갑주는 출애굽의 광야 여정 가운데도 계속해서 악령과의

싸움에도 필요하지만 이것이 점점점 완성되어 가면서

마지막 사탄과의 싸움에는 완전히 갖춰져 있어야 한다.

 

세 번째는

공격과 방어라고 하는 전신갑주가 공격용이 있고

방어용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공격용은 무엇인가?

17에 있는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그랬다.

 

하나님의 말씀만 유일하게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공격 무기이다.

나머지는 다 자신을 방어하는 방어용이다.

우리가 이 점을 잘 깨달아야 한다.

 

물론 진리의 허리띠와 복음의 신이라고 하는 허리띠와

신 이 두 가지 다 사용할 수 있다.

 

방어할 때도 허리띠가 잘 묶여져 있어야 힘을 쓰면서

몸을 움직일 수 있다.

허리띠는 방어하는 데도 필요하지만 공격할 때도

허리가 있어야 한다.

허리띠도 필요하고 신발도 발을 움직여야 하니까

공격할 때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전부 말씀이라는 사실이다.

 

진리의 허리띠, 복음의 신 이것 모두 다 말씀이다.

유일하게 공격할 수 있는 성령의 검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니까 말씀만이 우리가 공격하는 공격용이라는 사실을

깊이 알아야 한다.

 

축구 시합을 하는데 방어만 잘해도 최소한 꼴을 안 주면

최소한 비길 수 있다.

방어가 얼마나 중요한가?

 

한 점이라도 따려면 공격을 해서 골을 넣어야 되는데

그 공격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말씀이 이렇게 매우 중요하다.

 

"구원의 투구" 구원의 확신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구원파에서는

구원 받은 날짜를 자꾸 강조하는데 우리는 예수님 믿고

분명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십자가의 도를

바로 깨달아야 한다.

 

인류가 아담과 더불어서 아담 이후에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아담 때문에 다 영육간에 죽는 인생이 되었다.

 

육체적으로도 늙어 죽지만 영적으로도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하는 영적 사망 하나님과 단절되었다.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영적 사망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인류와 타락한 우주만물이 다 아담 한 사람으로

완전히 하나님 앞에서 버림받고 사망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감사하게도 마지막 아담 되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그때에 타락한 우주만물과 모든 죄를 십자가 안에

집어 넣으셨다.

 

한 사람 아담이 대표가 되어서 모든 우주만물과 모든 인생이

전부 죄인이 되고 타락한 것처럼 마지막 아담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구원받아야 될 하나님의 자녀가 다 그 속에 들어가고

타락한 우주만물이 다 그 속에 들어갔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은 여기에 있다.

내가 무슨 공로를 세워서 구원받고 이런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총을 믿는 그 믿음이 2천년전

십자가 안으로 우리의 옛 사람이 그 속에 들어갔다.

 

그래서 그 십자가에 들어가서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로 우리를 변화시켜서 예수님이 재림하여 다시 오실 때는

그 십자가에 들어가 있는 그 인생과 우주만물을 건져내고

다시 그 안에서 새롭게 변화시켜주는 것이 십자가의 도이다.

 

예수님이 반드시 재림하여 오지 않으면 우리의 구원은

이룰 수가 없다.

예수님이 오시면 그 십자가 안에서 2천 년 동안에

옛 사람이 완전히 죽어서 다시 건져내는 것이

첫 번째 처음 익은 열매인 14만 4천이다.

 

그들은 영적으로 먼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몸의 구원인

부활을 이루고 휴거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예수님 지상 재림할 때 그다음에 두 번째 익은

열매인 순교자들이 그 십자가에서 나오고 천년왕국 끝날 때

마지막 부활 때 모든 세 번째 익은 열매들이 다 십자가에서

나오게 된다.

 

그래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십자가 안에서 전부 하나의 몸으로

나오게 된다.

 

머리 구원받는 사람도 있고 팔 다리 발끝까지 그 모든

지체가 완전히 다 부활이 되면 하나의 몸으로서 나오는 것이

천년왕국 때 완전한 사람이 하나 나오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십자가의 도이다.

저와 여러분은 이 십자가의 도를 믿어야 된다.

 

그를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을 준다.

나는 아무 공로가 없지만 주님이 나를 위해서 죽고

주님이 그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것을 이루신

그 믿는 믿음으로 십자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십자가를 통해서 나의 옛 사람은 죽고

나의 새 사람이 십자가를 통해서 나온다.

주님이 오실 때 그 십자가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구원의 역사가 그래서 일어나게 된다.

우리는 십자가를 떠나서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의 확신이 필요하다.

 

내가 비로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내가 믿음으로 십자가 안에

들어가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구원을 이룬다.

 

그 다음에 "진리의 허리띠" 이 띠가 없으면

우리가 활동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진리에는 허리띠를 든든하게 진리로 무장하는

것이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진리의 허리띠가 있기 때문에

방어도 할 수 있을 뿐더러 공격할 때 몸이 움직여지게 된다.

 

진리가 없으면 공격도 할 수 없다.

 

"의의 흉배"는 무엇인가?

흉배는 가슴을 보호하는 갑옷 "호심경"이라고도 한다.

그 흉배를 붙여야 되는데 "의의 흉배" 이것도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겨주셔야만 된다.

 

칭의의 단계,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그것이 우리의 중요한 것을 다 막아내게 된다.

 

"복음의 신"은 무엇인가?

복음으로 무장되어 있는 신이 있어야 되는데

이것도 방어와 공격에 다 쓰인다.

 

그리고 "믿음의 방패"

든든한 믿음으로써 상대방의 공격을 다 방패로 막아낼 수 있다.

 

그런데 오직 공격용은 "말씀의 검"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이 세 가지 시험을 받을 때 마귀의 공격 속에서

예수님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 방어하면서 말씀으로

공격해서 세 가지 시험을 다 이기셨다.

 

말씀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아모스 8 11~13

"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이 마지막 때에는 양식이 없어 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서 갈함이 아니고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 온다고 하였다.

 

대 환란 때의 상황이다.

점점점 그런 시대가 오고 있다.

 

말씀을 구하려고 이리저리 동서로 달려가도 얻지 못한다.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말씀이 없기 때문에

갈하고 피곤한 시대가 오는데 벌써 지금부터 점점

그런 시대가 돼 가고 있다.

 

말씀을 듣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고 신앙 생활하지 못하게

하려고 사탄 마귀가 전부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세상에 빠지게 하고 정욕에 빠지게 하고 TV에 빠지게 하고

세상 오락에 빠지게 하고 모든 문화를 다 동원해서

말씀을 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탄의 궤계이다.

 

이런 시대가 점점 오고 있다.

그런데 말씀이 없어 공격을 할 수 없으면 우리는

질 수밖에 없다.

 

네 가지 마음 밭에 비유해 보면 우리의 마음이라고 하는

밭에 하나님의 말씀인 씨앗을 뿌려도 그것을 새들이 와서

먹어버린다.

 

씨앗은 싹이 날 수 없다.

새들이 누군가? 마귀이다.

 

마귀가 그 말씀이 싹이 나지 못하도록 의심을 갖다 주고

또 여러 가지 일들을 만들어서 믿지 못하게 한다.

 

그 말씀이 싹이 나야 신앙이 시작이 되는데 아무리 들어도

새들이 자꾸 씨앗을 먹어버리니까 싹이 날 수가 없다.

 

혹시 싹이 나도 그것이 자라지 못하게 하도록 환경배후에서

계속 역사를 한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훈련이 잘 돼 있지 않으면 말씀 접하기가

어려운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도 게임, 유튜브 이런 것들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더욱 말씀을 접할 기회가 없어지고 있다.

 

세 살버릇 여든 날까지 간다 하였다.

어린 시절에 잡아놓지 않으면 매우 어렵다.

우리는 기회만 되면 말씀을 접하려고 해야 한다.

말씀만이 공격할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금년에도 저희가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전하자!" 라는

표어로 진행해 가는데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바로 알려면

말씀을 통해서만 바로 알 수가 있다.

 

바로 알아야 바로 믿게 되고 바로 믿고 바로 알아야

우리가 바로 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모르면 바로 전할 수 없다.

 

초대교회 많은 베뢰아 성도들처럼 이것이 정말 하나님

말씀인가? 해서 매일 묵상하면서 전하는 이런 삶을

우리가 살아가야 될 줄로 믿는다.

 

우리는 부지런히 말씀을 접해서 이것을 가지고 공격을 해야

이단사설도 깰 수가 있는 것이고 사탄의 궤계를 깰 수가 있고

하나님 말씀이 검이고 심령 골수를 쪼갤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본문 가운데 사도 바울이 18에 이렇게 부탁을 한다.

에베소서 6 18~19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이 유일한 전신갑주의 공격용이지만

이 공격과 방어를 잘 감당하는 그 배후에 기도와 간구가 없으면

공격할 수도 없고 방어할 수도 없다.

 

반드시 기도가 있어야 공격도 할 수가 있고

기도가 있어야 방어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도록 나를 위해서도 구하고

여러 성도를 위해서 구해달라고 하고 있다.

 

기도가 있어야 우리가 악령과의 싸움에서 방어가 된다.

그리고 기도가 있어야 공격이 된다.

 

그래서 여러분도 대적기도도 하시기 바란다.

예수님도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대적하셨다.

 

능히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말씀처럼

우리가 대적하는 기도도 필요하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무시로 하는 기도가 뒷받침 되어질 때

말씀의 검을 가지고 상대방의 모든 것을 다 물리치고

공격을 받아도 전신갑주가 잘 무장돼 있으면

이 모든 싸움을 이길 수가 있다.

 

금년 안에 여러분의 전신갑주가 더 잘 무장이 돼 가는

은혜의 때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이 구원의 확신도 더 가져서 구원의 투구, 십자가의 도를

깨달아서 나는 부족하지만 그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받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고 진리의 허리띠 또 의의 흉패,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이 모든 것을 든든히 하고 준비하여서

이것을 가지고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한다.

 

새해 말씀과 기도로 잘 무장하셔서 환경배후에서 역사하는

마귀를 대적하며 이겨나가시고 새해 진리의 허리띠,

복음의 신, 말씀의 검 잘 무장이 되어서 어떤 환경에서도

승리해 나가는 귀한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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