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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메세지

들을 귀 있는 자

by Andrew Y Lee 2021. 10. 9.

들을 귀 있는 자

 

마가복음 4장 1~9절

 

 

오늘도 주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스피노자라고 하는 철학자가 아주 유명한 말을 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인즉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고

사람은 서로 돕고 의존하면서

공동체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말이다.

 

그래서 이런 사회적인 유대관계를 이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소통하는 것이다.

소통하기 위해서 언어가 필요하고 말과 글이 필요하다.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고 대화를 하게 된다.

 

그런데 소통이 안 되면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

서로 유대 관계를 가지고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창세기 11장에 바벨탑을 쌓을 때

하나님이 "그 언어를 혼잡하게 하였다" 했다.

혼잡 하게 했다는 것이 바벨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서로가 소통이 안 되니까

사회성을 유지할 수 없어서 그들이 다 흩어지게 되었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서로 하나님과의 소통

또 말씀 전할 자와 여러분과의 소통

또 가족 간에도 소통 이런 것이 다 필요하다.

 

또 언어를 못하는 사람들은 수화를 통해서

또 손짓 발짓 몸짓을 통해서라도 의사를 표현한다.

 

이러한 소통의 원리는 하늘나라에서도

똑같은 원리로 되어 진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늘나라를 소개 하시고

복음을 전하실 때 말과 글로 이렇게 하셨고

많은 비유로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한 여인 앞에

예수님은 땅에다 글을 쓰셨는데

이것이 무슨 글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글을 쓰셨다.

 

그리고 많은 비유를 가르치면서 그 말씀을 들을 때에

귀가 열려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마가복음 4 3

"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들으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9 말씀에 이 비유를 끝내면서

"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서로 소통하면서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을 들을 때 귀가 있어야 듣고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귀가 없으면 세상 말은 다 들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들을 수가 없다.

 

요한 계시록 2장과 3장에는 아시아 7개를 향해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한다.

 

이 성령님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고 예수님의 영이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 주시고

우리에게 감화 감동하시고 이 말씀이

들리도록 역사하는 것이 성령인데

그 성령과 신부가 요한 계시록 마지막에 보면

하늘나라로 초청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아침에는 귀는 자가 되어야 할 이유

왜 우리가 귀가 열려 하는 것인가?

왜 귀 있는 자가 되어야 될 것인가?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첫 번째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가 믿음을 가져야 구원을 받고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믿음이 우리에게 능력인데

로마서 10 8부터 말씀해 보니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이 믿음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에게 믿음이 생겨서

구원을 얻고 때문에 들어야 되는데 14에 그렇게 말씀하셨다.

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

누군가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서 가서 말씀을 선포할 때

그것을 듣고 그 들음으로써 믿음이 나타나서

그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그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을 시인하고 아멘으로 받아 우리가 믿음이 생겨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마가복음 4장에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4 4에 씨 뿌리는 비율을 해석을 하셨다.

4절에는 뿌릴 쌔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고

새들이 와서 먹었고

5절에는 흑이 아닌 돌밭에 떨어지고

그래서 네 가지 마음 밭이 나타났는데

 

14 말씀에 보니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 밭에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는 것인데 15 말씀을 보자

말씀이 길 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일단 말씀을 들어야 되는데 그 들은 말씀이 싹이 나지 못하고

사단에게 그 말씀을 빼앗겨버렸다는 것이다.

 

16에 돌밭을 해석하면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16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일시적으로 싹이 나서 출애굽은 됐지만 바로의 추격처럼

연단이 오니까 환란 핍박이 일어날 때 넘어지는 자요

돌밭에서 그냥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신앙이 멈춰버리는 것이다.

 

가시 떨기는 18절 말씀에 보니까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바로의 추격이라고 하는 첫 번째 연단을 마쳤지만

1차 연단 이후에 신광야 축복 과정 속에서

욕심이 들어왔기 때문에 말씀이 결실을 못하는 밭을

가시떨기 밭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20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말씀을 듣고 그 네 가지 받이 전부 말씀을 듣는 가운데

그래서 좋은 땅이 됐다가 다시 땅에 갔다가

돌밭이 됐다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성장론적으로 계속 좋은 밭이 될 때까지

말씀을 계속 들어야지 열매 맺는 데까지

올라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계속 들을 때에 믿음이 나타나기 때문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이고 좋은 마음 밭이 되어야지

열매를 맺기 때문에 좋은 마음 밭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성장을 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이 말이다.

 

마가복음 4 33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 들을 수

있는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예수님은 그 상대방이 그 말씀을 알아듣는 데까지

비유로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영적으로 어린 사람에게는 어린이에게 해당하는 그런 말씀으로

성장한 사람에게 성장하는 말씀으로

그 비율을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최대한 열매를 맺고

그 믿음이 생기도록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래서 34절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수많은 군중이 와서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을 다 알아듣는 게 아니다.

 

전부 들을 귀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많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가는 제자들만 모였을 때

그것을 해석을 해 주시는 것이다.

 

들을 수 있는 만큼, 성장된 만큼 열리게 하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6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우리의 심령 속에 떨어지는 하나의 말씀이 들려지고

그의 마음 밭에 떨어지는데 그 말이 곧 하나님의 영이고

그것이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말씀 말이 우리 안에 떨어지고

그것을 들을 때 영의 역사가 나타난 것이고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말씀을 들음으로 우리가 믿음이 생기며 구원을 받기 때문에

계속해서 귀가 열려야 된다는 것이다.

 

중세의 카톨릭 교회를 우리는 암묵의 시대라고 한다.

왜 그러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려운 언어로 번역을 해놓고

사제들만 이것을 읽었고 일반 평신도들에게는

말씀을 주지 않았다.

 

하나님 말씀이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시대를 암묵의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빛이고 생명이고 영인데 말씀이 전파되지 않고

사제들만 이것을 가지고 읽게 되니까

영의 역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 개혁을 하면서

개신교가 오직 믿음이라고 하는 주제를 가지고

오직 은혜라고 하는 주제를 가지고

그리고 오직 말씀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개혁을 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 말씀을 받아야 되고

오직 은혜를 입어야 되고 오직 믿음을 가져야 된다는

그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온 세계 언어로 번역을 되면서

지금 우리까지 마음 놓고 성경을 볼 수 있는 이런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에게 말씀이 마음대로 공급이 되고 있다.

 

인터넷 문화가 발달되고 tv가 있고 라디오에서

말씀이 오히려 홍수 시대 우리가 지금 살아간다.

 

그래서 이후로는 말씀을 다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변명할 수가 없다.

 

네 가지 마음 밖에서 나는 무슨 마음 밭이 돼서

말씀을 사탄에게 다 빼앗겨서 신앙에 싹도 나지 못하고

믿음도 갖지 못했다 핑계할 수가 없다.

수없이 많은 말씀을 듣는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우리가 열려야

더 믿음이 자라고 마음에 좋은 마음 밭이 되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그런 밭이 되어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말씀을 한번 같이 찾아보자

 

이사야 50 4~5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면서 너희는 다 나의 증인이 되라고

부탁하셨다.

 

우리는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은

곧 내게 찾아오신 그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사명이 있는데

이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학자의 혀가 돼야 된다는 것이다.

 

학자의 혀가 되어야 4절 말씀처럼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사도 바울이 이 복음을 전하면서 말의 능한 자가 아니지만

하나님이 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단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학자의 혀가

열려서 곤핍한 자를 말로 도와줄 줄을 알아야 되는데

학자의 혀가 되려면 먼저 학자의 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귀를 열어야 학자 같이 알아듣게 되고

그래야 학자의 혀가 되어서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다 그 말이다.

 

우리가 귀가 열려야 되는 것은 학자의 혀가 돼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는 주님이 내게 귀를 열으셨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니까

하나님의 뜻이 깨달아졌다는 것이다.

 

깨달아지니까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절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이야기다.

 

예수님을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보내셔서

십자가의 날로 죽게 한다고 하는 하나님 말씀이

귀가 열려서 듣고 알아듣게 되니까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것을 거역하지 않고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이 삶으로

자기를 드릴 수가 있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귀가 열려지지 않으면

순교적인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귀가 열어져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되면서

거역하지 않고 때리는 자들에게 내 모든 것을 맡기면서

뜻대로 그 길을 걸어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귀가 열려야 하는 것이다.

 

오늘 마가복음 4장에 이 비유의 말씀

마태복음 13장에서는 일곱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마가복음 4장에는 일곱 가지 다 말씀을 안 드리지만

그 말씀을 하시고 4 35 말씀 보시기 바란다.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바다 건너 건너가시는데 큰 광풍이 일어나고 물결이 부딪히고

배에 물이 들어와서 전부 어려움을 겪게 되는 되었다.

예수님이 바다를 꾸짖으셔서 고요하고 잠잠케 됐고

그러면서 40절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그러면서 이제 바다 건너가면서 풍랑을 만나서 연단을 받고

훈련을 받게 됐는데 35절에 있는 그날이 무슨 날인가?

마태복음 13장에 일곱 가지 비율을 말씀해 주신날인 것이다.

 

마가복음 4장에도 비유로 말씀을 해 준 그날

그 말씀을 받게 되면 그 말씀으로 훈련받고 연단 받는 그것이

오늘 예수님이 이사야 50장에 말씀하신 것처럼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유로 깨달았고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알게 되니까 그 나라에 흘려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씀이 임하면 그다음에 하나님이 훈련하시고

연단하시고 실습을 하는 것이다

그날 우리가 한번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 보자

그래서 하나님이 두 번째 세 번째 연단을 주기 전에

무리가 생수라고 하는 큰 은혜를 먼저 주신다.

 

그것이 무엇인가? 말씀을 먼저 받아서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더 알게 되니까 여러 가지 환경에서

거역하지 않고 예수님처럼 순종하며 순교를 나가는 것이다.

 

말씀이 들어 왔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허락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들을 귀가 열려야 하는 것은

학자의 귀가 열려서 학자의 혀가 되어서

사도바울처럼 말에는 조란자지만 이 복음을 쓰고

이것을 전파하는 하나님이 지혜를 주었기 때문에

학자의 혀가 돼서 공핍한 자를 말로 도와줄 줄을 알게 됐는데

그러기 위해서 먼저 귀가 열려야 하는 것이다.

 

그가 열려야 학자의 허가 되어서 우리 사명을 감당하고

증인도 되고 또 귀가 열려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 뜻대로 나 자신을 어떠한 환경에서도 드리면서

순교까지라도 달려갈 수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요한 계시록의 아시아 일곱 교회를 통해서

일곱 번이나 말씀하셨다.

 

이 구약에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고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한 다음에

성령이 오셔서 그 성령을 통해서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히브리서 1 1~2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옛적에는 선지자들로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여러 가지 여러 부분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는데

그 하나님이 이제는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그 아들이 부활 승천하니까

하나님이 대신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이 오셔서

그 성령님이 오셔서 성경 기자들에게 감동을 주어서

성경을 쓰게 했다.

 

디모데후서 3 15~17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만 되었다는 것이다.

 

구약 성경도 하나님의 감동으로 써야 했지만

신약 성경도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

 

베드로후서 1 19~21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예언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장차 되어 질 예언이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는데 그 감동이 성령의 감동이라는 것이다.

 

성령이 예수그리스도의 영이고 하나님의 영인데

그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하는 것이 성경이기 때문에 이 성경을 해석할 때

마음의 샛별이신 예수님이 떠오를 때까지 해석하지 말아라

성령의 감동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떠오를 때까지

이것을 해석하는 것을 주의하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 교회들이 성령께서 하시는 그 말씀

아시아 일곱 교회는 지난번에도 말씀하였지만 인류 역사의

모든 되어지는 교회들을 다 대표적으로 말씀하신 것이고

그 속에 책망과 권능과 칭찬과 약속 모든 교회에 약속하신

내용이고 오늘 우리에게 해당되는 내용들이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이 성경을 읽을 때

또 설교를 들을 때 영적인 책을 읽을 때

그 하나님이 성령의 감동으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이곳을 대할 때

말씀을 듣던지 내가 성경을 읽던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또 누군가의 영적 책을 읽을 때

이것이 서로 간에 소통이 안 되면 아무 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간에 소통을 누가 해 주냐면

성령께서 해준다는 것이다.

 

성령이 하나님의 영이고 예수께서 영이고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이것은 저자의 성령님이 소통케 해서 전하는 말이

생명이고 이것이 곧 영이고 이것이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 충만을 사모하여야 되고

말씀을 듣고 그럴 때마다 성령의 역사로

이것이 깨우쳐지도록 귀가 열리도록 기도하면서

말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 마지막 대에는 성경을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된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개척하셨던 조용기 목사님이 얼마 전에

소천하셨다. 그리고 여의도 교회가 3천억에 팔려버렸다.

 

이런 되어지는 일들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된다.

조용기 목사님이 소천하시고 그 큰 여의도 교회가

팔려갔다고 하는 이야기는 삼박자 축복과 오중 축복이라고 하는

이 축복과 번영의 신앙의 때가 이미 지나갔다는 것이다.

 

이제는 환란과 연단의 시대가 온다는 걸

하나님이 알려주신 것이다.

 

100세 시대에 85세면 작은 나이도 아니겠지만

또 오래 사신 것도 아니시다.

이 시대가 축복의 시대가 끝난 시대이기 때문에

이 시대에 정말 축복의 말씀으로 많은 교회들을 세우고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는가?

그러나 그의 사명이 거기까지고 하나님이 그를 불렀다고

하는 것은 이제는 때가 다른 시대로 넘어간다는 걸

우리는 알아야 된다.

 

세상에 이런 목사님 하나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도

우리는 시대를 알아가는 것이다.

 

그 시대가 끝났다. 축복의 시대가 끝났다.

이제는 환란과 연단의 시대가 찾아오는데

그러므로 말씀을 깊게 깨달아야 한다.

 

단순히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그런 얕은 말씀이 아닌 것이다.

이제는 예수 믿고 복 받는다는 예수 믿으면

무조건 병 낫는다는 그런 말씀이 아닌 것이다.

이제는 말씀을 깊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내가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아는 만큼만 세상이 보이는 것이다.

내가 귀가 열려서 깨닫지 못하고 이러면

그 이상은 안 보이는 것이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귀가 열리도록 기도하면서

말씀을 받아야하는 것이다.

 

말씀을 들을 때에 사탄에게 빼앗기면 여전히 길가 밭인 것이다.

말씀을 들을 때 조금 싹이 나와서 어느 정도 됐지만

환란 핍박이 오면 넘어지는 것이다.

말씀을 들었지만 가시떨기 밭이 되어도

세상 염려로 결실하지 못하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도 그것이 귀가 거기밖에 안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마음 밭이 되어도 여전히 말씀을 들어야 된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자신들이 학자의 귀가 되도록 기도하자.

 

귀가 열려야만 믿음으로 나갈 수가 있고

귀가 열려야만 말씀이 들어와서 믿음이 생기는 것이고

귀가 열려서 학자의 귀가 되어야만 학자의 혀를 가져서

곤핍한 자를 도와줄 수도 있고 증인의 삶을 살고

귀가 열려서 학자의 귀가 돼야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거역하지 않고

순교의 자리까지라도 따라가는 것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 모범을 보이셨다.

학자의 혀를 예수님이 가지셨던 것이다.

학자의 귀는 예수님이 가지셨던 것이다.

그러니까 거역하지도 않고

등을 때리는 자에게 다 맞는 이사야의 말씀들이

다 그것이다.

 

그것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이 학자의 귀가 열렸기 때문에

뜻을 알았다는 것이다.

 

내게 필요한 말씀을 주시려고

우리가 금식까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성령 충만을 사모하시며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가 다 열리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그렇게 또 열리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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