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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메세지

사랑의 편지

by Andrew Y Lee 2021. 10. 8.

사랑의 편지

 

요한계시록 1장 1~8절

 

오늘 말씀의 제목은 요한계시록 1장을 중심으로 한

"사랑의 편지" 이런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The day, 하나님 나라 내비게이션"

이번에 출판하기위한 책 제목이다.

"The day"라고 하는 이 제목은 6년 전에 하나님께서 주셨다.

그래서 책을 "The day"

그리고 부재가 "하나님 나라 내비게이션"

 

"The day"는 "그 날"인데

"그 날"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떤 지정한 한 날을

생각하게 된다.

 

하루 24시간의 "그 날"이 아니다.

성경에는 수없이 많은 날들이 나오는데

그 날은 어떤 기간, 한 과정 이것을 전부 아우르는 말이다.

 

구약 시대부터 신약 시대까지 성경에

그 날, 여호와의 날, 재난의 날 수많은 날들이 나오는데

그 모든 날이 구약 시대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이 정한 그 날에 바벨론 나라가 쳐들어와서

전쟁하는 모든 기간을 다 그 날이라고 했다.

 

앗수르가 쳐들어오는 그 날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과

명령을 떠나서 심판을 받게 되는 그 날, 하루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앗수르가 쳐들어오고

애굽이 쳐들어오고 메대 바사가 쳐들어오고

헬라가 쳐들어오고 로마가 쳐들어오고

외세에 의해서 멸망 받는 그 전체 기간

이것을 그 날이라고 표현한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이 초림하여 오시는 그 날도

그 날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해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는 그 날, 이것도 하나의 그 날이고

예수님의 초림 전체를 그 날이라고 한다.

 

그리고 재림하여 다시 오시는 모든 기간을 다

그 날이라고 표현 했다.

 

그런가 하면 7년 대환란 때 심판하는 그 날이

제일 많이 말이 나오는데

그날, 환란의 날, 재앙의 날, 여호와의 분노의 날, 심판의 날

이 모든 날이 7년 대환란 전체를 가리키는 그 날이다.

 

또 천년 왕국이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날이 아니고

천년이라는 기간 동안의 모든 날 그 기간 전체를

그 날이라 말한다.

 

하나님이 이제 새 하늘 새 땅을 주는 그 날

물질세계의 하늘과 땅이 다 불로 없어지고

십자가 안에 들어간 그 우주 만물이 튀어나오는 그 날

새 하늘 새 땅 전체가 그 날이다.

 

성경 전체가 말하는 그 날은 인류 전체에 다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공중 강림하여 오는 그 날이 실제적으로

임박했는데 그 날이 오면 그때부터 땅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 천년 왕국 그리고 새 하늘 새 땅,

그 날이 가까이 왔고 그 날부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곳에 가는 지도가 성경이고

그 곳에 가는 그 길을 네비게이션 인 성경이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책의 주제이고 그날이 임박했다는 것과

그 곳에 들어가려면 우리에게 네비게이션이

필요 하는 말이다.

 

실제로 내비게이션은 여러 종류가 나와 있고

차마다 내비게이션을 이용하거나

핸드폰 네비게이션을 통해 길을 찾아가는데

꼭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우리가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데 있어 대충 알아도

어느 길이 밀리지 않는지 길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된다.

 

밀리는 길이면 한없이 밀리는데

어떻게 하면 밀리지 않는 길로

어떻게 하면 주차장까지 가장 짧고 빠른 시간에

정확하고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게 해주는지

네비게이션은 점점점 진화해 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좋은 네비게이션을

선호하고 공유하게 된다.

 

옛날 내비게이션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

모든 것을 핸드폰이 다 해주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점점 진화하고 새로워지는데

이런 발달과 더불어서 마지막 때가 되어 지면

하나님이 더 많은 계시와 비밀들을 계속 열어 가신다.

 

그래서 시대가 달라지고 업그레이드 되면서

지금 까지 제가 깨닫고 제가 드러낸 이 계시와 비밀을

책으로 정리해 놓았다.

 

내비게이션은 써본 사람은 안다.

이게 제일 좋더라, 정확하더라, 이런 것처럼

이렇게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선택해야 하는데

결국 네비게이션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려고 하는

책인 것이다.

마지막 때 하나님 나라에 도착하는 것이

계시록 중심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오늘 이것을 여러분께 말씀드리면서 제가 출판하려는 책이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좀 알리면서 말씀을 전하려고 한다.

 

사도 요한이 AD95년경에 로마 황제 도미티안의 박해로

밧모 섬에 유배 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요한을 끓는 기름 가마 속에 집어넣어서

죽이려고 했는데 죽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님이 요한계시록을 쓰게 하려고 하는 목적 때문에

살려두셔서 밧모 섬에 유배 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주일날 예수님이 그 밧모 섬에 있는

요한에게 찾아오셨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1 9 10 말씀에 나와 있다.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예수님이 오셔서 요한 계시록을 쓰게 됐는데

그럼 이 요한계시록이 무슨 책인가 하면?

 

첫 번째

1장 1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렇게 돼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 말씀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어인가? 계시가 주어인가?

두 가지를 생각을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말이 주어라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다" 이렇게

해석을 해야 되는 것이고

 

반면에 계시가 주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계시다"

이렇게 해석을 해야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러면

어느 것이 주어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어인지? 계시가 주어인지?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 한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에 예수님이 오시겠다고 하는 예언이

300번 정도 나온다.

그리고 예언 그대로 예수님이 오셨다.

 

인류 역사는 성경에 예언된 대로 그대로 진행돼 왔다.

그럼 앞으로 다시 오시겠다고 하는 요한계시록의

모든 내용이 그대로 될 것을 우리는 믿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두 가지가 다 맞는 것이

오시겠다고 하는 예수님이 오셔서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다시 오시겠다 약속했는데 신약 전체를 통해서

또 300번 이상 다시 오시겠다는 예언이 돼 있다.

 

이 요한계시록의 모든 주인공도 예수님이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관한 계시다"

요한계시록 1 1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예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를

예수님을 통하여 천사를 통하여 요한에게 지금 알려주셔서

그 요한이 일곱 교회에 편지하여 그 편지를 통하여

오늘날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인 우리에게까지

이것이 전해지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계시다

이렇게 해석을 할 수가 있다.

 

이 계시라고 하는 말은 "장막을 거둔다" 이런 뜻이다.

연극을 할 때 앞에 막이 쳐 있는데 이 막을 거둬내면

그 안에 내용물이 다 보인다.

베일을 드러내다.

"베일을 거두어서 베일 속에 감추인 비밀을 드러내다"

이런 뜻이다.

 

구약의 요한계시록과 같은 다니엘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 600년 전에 쓰여 진 말씀인데

다니엘서 12 4에 보면 "이 글을 봉함하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니엘 12 4

"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구약의 계시록이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은

그 말씀이 감춰진 비밀이고 봉함하라 열지 말라는 말이다.

 

다니엘서 12 4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마지막 때까지 다니엘 말씀은 열리지 않게 돼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2장 말씀을 함께 보겠다.

요한계시록 22 10

"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다니엘에게는 구약의 요한계시록 같은 말씀을 인봉하여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라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인봉하지 말라

그러면서 이천년 전에 요한계시록을 우리에게 주면서

이미 그때부터 열려진 말씀이었다.

 

다니엘을 통하고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합하라고 했는데

마지막 때가 되니까 요한 계시록이 열려지는 것처럼

다니엘서도 함께 열려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감춰진 말씀이 아니다.

"인봉하지 마라"

마지막 때가 되면 다니엘서를 통해서 열릴 것이다

이것처럼 지금은 열린 책이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 시대가 주님이 오실 날이

매우 가까운데 종말 의식을 가지고 개인의 종말이 온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마가복음 13 28~37

'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여기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을 말한다.

 

예수님 당시에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

그런데 "그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다시 독립이 돼서 나라 민족을

세웠다는 것이다.

1948년 5월 14일 이미 지나간 일이다.

이미 나라를 세웠다.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하신 말씀인데 이것을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씀이다"

이렇게 37절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 모든 사람이라면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과

예수 믿는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주인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 날과 시는 아무도 모른다.

아버지만 아신다.

 

이 구약 시대에 남자가 장가를 가기위해 약혼한 다음에

집을 장만하고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날을 정하게 된다.

이 날을 정하는 것은 아버지의 권한이다.

 

예수님이 지금 집 장만 하기위해 가셨는데

언제 다시 올지는 아버지만 아신다.

그런데 주님이 2천 년 전에 올라가시고 나서 그 2천 년 동안

우리 모든 사람에게 "전부 깨어 있어라 그 날이 언제일지

알지 못한다" 이렇게 권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인데 부활 승천하시고 나서

2천 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안 오셨다.

그런데 왜 2천 년 전부터 "깨어 있으라"

그리고 1900여 년 전에 왜 요한 계시록을 그때부터

속히 될 일을 말씀하시면서 계시록을 그때부터

줄 수밖에 없었느냐 하는 것인데

그러니까 모든 사람에게 종말이 동시에 온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여러분이 잘 이해를 해야 네비게이션을

깨닫게 된다.

 

교회 시대 동안에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서 그때부터

언제 오실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때부터 요한계시록을 통해

모든 인류 역사에 되어지는 과정을 쭉 알려주셨는데 그

모든 과정이 개인이 지나가는 과정이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개인이 교회시대 어느 때 죽었든지 죽으면

다 자는 것이다.

 

성경에 잔다는 말이 나온다.

야이로의 딸이 죽을 때도 잔다고 그랬고

나사로가 죽었을 때도 잔다고 했고

전부 자다가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도

휴거되는 그때도 "자던 사람에 대해서"

죽은 다음에 자다가 주님이 공중에 오시는 때에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깨어 있게 되는데

자는 순간 그 직전에 깨어 있는 신앙으로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죽었느냐? 하지 못하고 죽었느냐?

그러니 모든 사람에게 이것이 해당되는 말씀이다

라는 것이다.

 

우리가 남은 생애를 언제까지 살지 모르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 죽으면 자다가

깨어나는 순간에 주님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럼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휴거 될 자격을

갖추고 살았느냐, 신부가 될 자격을 갖추고 살았느냐

대환란을 면제받을 자격을 갖추고 살았느냐

그때부터 다시 그 남은 생애를 남은 기간을

다시 연단 받고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어느 시대를 살았든지 주님이 오시면

개인적으로 다 종말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깨어나는 그 날이 앞에 놓여 있다.

심판이 앞에 놓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할 필요가 있고

1900년 전에 요한계시록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이유이다.

 

요한복음 4 31~35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살아가는 그 당시부터

이미 추수할 때가 됐다고 말씀하셨다.

 

그럼 이 넉 달이 지나는 건 무엇 의미인가?

오순절이 지나고 나서 나팔절이 와서 장막절까지

그 기간이 넉 달 동안의 기간이다.

 

5월쯤에 추수하고 오순절이 지나면서 9월 10월에 와서

마지막 농사를 다 거두는 그것이 넉 달 기간인데

이것은 영적인 농사를 말하고 있다.

 

오순절 이후로 넉 달 지나서 추수하고 장막절 천년왕국이

오고 7년대환란에 추수하게 되는데 이것이 아니고

이미 추수 할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이 오실 때 베들레헴의 어린 아이들로

이미 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났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미 많은 사람이 이때부터

익은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익은 열매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벌써 추수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그것처럼 요한계시록을 쓸 그 당시부터 이미 이렇게

주님을 만나서 휴거될 자격을 갖춘 성도들이 나타났고

또 하늘에 들어갈 성도들이 나타난 그 과정을

미리 보여주셨다.

 

개인의 과정이나 인류 역사의 과정이나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알아야 우리가 개인적인 종말 의식을 가지면서

아~ 이것이 왜 열려진 말씀이고 나에게 주신 말씀인가?

이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요한계시록이라는 책이 1장 3절 말씀에 보니까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요한 계시록은 예언이다.

 

예언은 미래에 되어 질 일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초림하여 올 때도 구약 성경에 300번 이상을

알려줘서 그대로 오셨다.

 

그럼 재림에 대한 예언도 300건 이상이 있는데

이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인류 역사가 어떻게 진행이

될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까지도 인류 역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요한계시록대로 예언한

말씀대로 그대로 되는 것을 믿는다.

 

말세를 살아가는 지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류 역사가 이렇게 진행이 될 것이구나!

그래서 이렇게 진행되는 그 과정을 네비게이션으로

설명을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는 길이 이런 길이다."

"여기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이런 길을 지나야 된다" 하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목적지를 찾아가려면 꼭 내비게이션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주차장까지 알려줘야 하고

빠른 길을 찾아 알려줘야 한다.

대충 알아 가지고는 고생을 한다.

 

이 세상에는 안 가도 될 곳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우리는 반드시 꼭 가야 한다.

 

그러니까 이 말씀대로 되어 질 터인데 어떻게 거기에

도착할 것인가?

이것을 네비게이션이라는 책을 통해서 증거하겠다는

취지가 있다.

 

세 번째

요한계시록 1 4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요한계시록이 "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다"

1 11

"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초대 교회는 많은 교회들이 있었다.

 

초대 교회가 있던 곳은 지금 터키이다.

여기에 많은 교회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일곱 개를 택하신 것이다.

일곱 교회를 택해서 편지하라 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일곱 교회는 인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되어지는 교회의

형태를 주님이 먼저 알게 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에베소 교회는 초대 교회이다.

초대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이다.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건 그 예수님에 대한

첫 사랑 초대 교회를 버렸다는 것이다.

 

초대 교회 사도들이 점점 없어지고 이러면서 초대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

 

그러고 이어서 로마의 핍박이 오면서 서머나 교회

많은 핍박을 받은 교회였다.

 

그러다가 이제 카톨릭이 완전히 로마 국교로 되어서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이 교회들은 다 종교 개혁이

일어나기 전에 카톨릭 교회들을 말한다.

그러니까 인류 역사에 되어지는 교회의 형태를

미리 점검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빌라델비아 교회가 종교 개혁을 일으키고 나서

경건의 운동이 일어났던 그런 시대의 교회

가장 바람직한 교회이다.

 

그리고 라오디아 교회가 마지막 현대 교회를 말하고 있다.

차든지 더웁던지 하지 않는 교회, 책망이 제일 많이 나왔던

말세의 교회이다.

 

여기 나오는 교회가 장차 되어 질 교회의 형태를

미리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교회마다 칭찬하고 책망하고

권면하고 약속한 내용들을 인류 역사의 모든 교회의

특징들이 다 이 말씀으로 알 수 있다.

 

모든 교회를 미리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 일곱 교회 속에 있는

여러 가지 특징들이 모든 인류역사속의 교회들에게 전부

해당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성채 교회는 빌라델비아형의 교회인지

아니면 무슨 형의 교회인지 모든 교회들의 특징이

일곱 교회 속에 다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곱 교회에 편지하면서 인류 역사에 나타나는

모든 교회들에게 동시에 편지하는 것이고

모든 성도들에게 다 편지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2천 년 전에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편지이다.

나에게 주신 편지이다.

 

예수님이 이 천 년 후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왜 이 편지를 띄웠겠는가?

이것이 사랑의 편지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편지를 보낸 것이다.

 

춘향과 이도령의 이야기를 어느 목사님이 마지막 때

재림하신 예수님과 우리 성도들로 이렇게 각색해서

설교 하신 목사님이 계시는데

감옥에 있는 춘향이에게 이도령이 편지 한 장을 보냈으면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는가?

 

변사또에게 어려움 당하고 감옥에서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그에게 편지라도 보내줬으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는가?

 

지금 주님도 반드시 예언대로 다시 오시는데

그때까지 환란을 지나야 되기 때문에

너희들이 그걸 잘 참고 견디면

내가 이러한 나라를 만들어주고 이런 상급을 주고

이렇게 할 것이다 그분의 계획과 뜻과 섭리를

이 편지를 통하여 이렇게 알려 주고 계시다.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네가 힘들고 어려워도 잠시만 참으면 내가 갈 것이다.

 

앞에서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을 말했다.

신랑 신부가 약혼을 하면 우리나라 약혼 개념이 아니다.

법적으로 부부이지만 동거는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랑이 신혼집을 장만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혼집을 장만하는 신랑은 아버지 집으로 가서

신혼집을 장만하는데 그 대신에 지참금을 신부에게 주고 간다.

 

신부는 그 지참금을 가지고 신분 단장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집이 장만 되면 신랑이 다시 와서

신부를 데려가고 다음에 모든 축하객이 신랑 집에 가서

그때 비로소 혼인 잔치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이스라엘은 결혼 풍습이다.

 

오늘 짧은 시간에 하는 걸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하나님은 인류역사가 진행되어져 가는 과정을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미리 다 보이셨다.

이스라엘을 샘플로 해서 보이셨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군대 추격이라고 하는 첫 번째 연단,

아말렉과 싸우는 두 번째 연단을 마치고 나니까

시내산에서 비로소 하나님이 강림하셨다.

 

그래서 율법을 주시고 성막을 짓게 되었다.

이것이 인류 역사 전체 속에서는 예수님이

공중 강림하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강림하면서 율법을 주셨는데

이 율법을 주면서 너희가 이 율법을 잘 지키면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내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

출애굽기 24장에 약속을 하셨다.

 

그리고 예레미야 31장에 보니까

이 시내산에서 약속한 그때의 내가 너희의 남편이고

너희는 아내였는데 그 혼인 계약이 깨졌다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면서 부부지간이 되는

이스라엘 민족과 정혼을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계속해서 신부 단장을 안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AD70년에 완전히 버림을 받게 되었다.

 

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강림하였다는 이 모형적인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정혼한 관계고

인류역사 속에서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강림한 사건이

실제로 예수님이 초림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셔서 그때부터 예수 믿는 모든 사람과

정혼을 하는 관계가 되었다.

 

예수님은 집을 마련하기 위해 떠나셨다.

그럼 이 교회 시대에 사는 모든 분들이 어느 시대를

살든지 간에 개인적으로 첫 번째 두 번째 연단을 마치고

시내산에 도착하면 그때 약혼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내산까지 도착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 정혼이 안 된 것이다.

 

그럼 여기에 도착한 정혼한 사람들 중에서

신부 단장을 한 사람만 예수님 공중 강림 할 때

신부가 되어서 주님이 휴거로 데리고 가서

7년 동안 신방을 가지고 나머지는 다 축하객으로

준비하는 대환란이 오게 된다.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에 하나님이 강림한 것이

이스라엘 민족과 정혼한 관계인데 그 혼인관계가 깨진 것은

신부 단장을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인류 역사 속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믿는 자와 정혼관계를 가지는데

개인적으로 시내산에 도착한 사람이 약혼관계, 정혼관계를

가진 것이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 신부 단장을 한 사람만 신부가 되고 휴거가 된다.

 

지금 내가 사는 동안에 영적으로 성장이 돼서

시내산까지 이르러서 약혼 단계가 됐고

그다음부터 우리 주님이 오실 때까지 개인적으로 주님이 주신

지참금 즉 성령, 은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말하는데

성령과 말씀으로 기도하면서 은혜 생활하면서

내가 아름다운 신부로 단장하는 그때 개인적으로

어느 시대를 살든지 간에 자다가 깨어났을 때

신부 단장 한 사람은 신부로 휴거 되는 것이고

나머지는 그래도 버릴 수가 없으니까

축하객으로 큰 환란에 단체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너무나 분명하다.

우리는 남은 생애 얼마나 살 수 있을 것 같은가?

여러분 우리가 다 백년 천년 사는 거 아니고

다 짧은 생애를 살아가는데

간단한 예로 신랑 신부가 헤어지게 되면 증표를 준다.

옥으로 된 어떠한 것을 반쪽으로 쪼개서 만났을 때

맞춰보는 증표를 준다.

 

우리에게 증표를 주셨다.

성령을 주셨고 말씀을 깨닫게 하셨고

믿음이라는 증표를 주셨고

그것을 가지고 주님이 오실 때를 믿고

이 증표 하나를 가지고 언젠가 약속대로 돌아온다는 것을

믿고 기다리면서 신부 단장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하여 위로가 되는 편지로,

간직하고 기다리라고 하는 믿음을 주는 편지로,

사랑의 편지로 주셨다.

 

그리고 신부 단장한 단계까지 간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편지로 다가 오게 된다.

그 외에는 사랑의 편지가 아니다.

두렵고 떨리는 편지고 공포의 편지이다.

 

그런데 신부들에게는 이것이 위로의 편지고 사랑의 편지고

믿음의 편지이다.

"반드시 약속대로 올 거야" 하는 믿음으로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신부 단장을 하는 이것이

사랑의 편지가 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계시고

인류 역사 속에 반드시 속개될 예언의 말씀이고

또 사랑한 성도들에게는 신부 단장을 하고

사랑의 편지로 주신 말씀이라고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대환란이 사모되는 것이고

주님 오실 때를 사모하면서 신부 단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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