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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메세지

십자가의 도

by Andrew Y Lee 2021. 9. 9.

십자가의 도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란 무엇인가?

 

십자가는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성경의 핵심이다.

그리고 신약 성경의 절반을 썼던 사도 바울 신앙의

초점이기도 하기에 예수 믿는 우리 모두가

이 "십자가의 도"를 한번 깨달아야 한다.

 

도라고 하는 것은 한문인데 말씀이라는 뜻이다.

 

사도행전 22 4

"4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사도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는데

 "도를 핍박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말씀의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고백을 했다.

 

사도행전 24장 22절

"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가로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 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벨릭스가 사도 바울이 증거 하는 말씀을 받지 않고

"나는 이 도를 잘 안다" 이렇게 했는데

이 성경에는 도라고 하는 말을 몇 번 쓰고 있다.

 

사도행전 24 24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여기서는 이 도를 예수 믿는 도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사도행전 18 25~26

"25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예수 믿는 도를 "주의 도" 또는 "하나님의 도"

이런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도는 예수님을 믿는 말씀,

주의 말씀, 하나님 말씀 이 "도"라고 하는 것을

"말씀"으로 이렇게 부를 수가 있다.

 

그러면 "십자가의 도"는 무엇이겠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에 관한 말씀을

"십자가의 도"라고 말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 세상에 선포된 말씀을

"십자가의 도"라고 하는데

기독교가 십자가를 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 하나님의 말씀을 빼놓고는

기독교를 생각할 수가 없다.

 

우리가 흔히 "전도 한다" 이 말은 도를 전하는데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를 전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핵심이 십자가니까 결국 전도는 십자가를 전하고

십자가에 관계된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내가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정리한 것이 25가지 정도이다.

오늘 오전 시간에는 "휘장으로 본 십자가의 도"를

증거 하려 한다.

 

성경 찾아가 보며 말씀을 나눠 보겠다.

 

마태복음 27 50~51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예수님이 소리 지르며 영원히 떠나시고 죽으시는

그 순간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서

둘이 되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같은 내용인데

마가복음 15 37~38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누가 복음 23 44~46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다른 점이 있다.

같은 사건인데 마태와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운명하시면서

그 뒤로 휘장이 찢어진 것으로 증거 했고

누가복음에는 휘장이 먼저 찢어지고 그다음에 예수님이

영혼이 떠나셔서 운명하신 걸로 앞뒤가 바뀌어 있다.

 

그런데 사실은 같은 것이다.

이 말은 예수님이 운명하는 동시에 휘장이 같이

찢어졌다는 것이다.

동시적인 사건인데 시차를 두고 각각 다르게 표현을 한 것이다.

 

마태, 마가는 예수님이 먼저 운명하신 걸로

그리고 누가는 휘장이 먼저 찢어지고

그다음에 예수님이 운명하신 걸로

결국 동시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오늘 받게 될 교훈의 첫 번째는

휘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26장은 성막을 만드는 규례를 말씀하셨는데

여러 가지로 나눠진다.

 

성막을 짓는데

1절에서 14절까지는 지성소와 성소를 덮는 막

그리고 15절에서 25절은 널판에 대해서

그리고 26절 30절은 띠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31절부터 37절까지는 휘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개역성경에는 휘장이라고 번역을 안 했다.

그냥 "장" 이라고 번역을 했다.

 

그런데 공동 번역을 비롯한 모든 번역은

전부 휘장으로 번역됐다.

 

개역성경만 "장"으로 번역을 했다.

그래서 "장"이  휘장이다.

 

출애굽기 26 31~37

"31 너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공교히 수 놓아서

32 금 갈고리로 네 기둥 위에 드리우되 그 네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받침 위에 둘찌며

33 그 장을 갈고리 아래 드리운 후에 증거궤를

그 장안에 들여 놓으라 그 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리라

34 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

35 그 장 바깥 북편에 상을 놓고 남편에 등대를 놓아

상과 대하게 할찌며

36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 놓아 짜서

성막 문을 위하여 장을 만들고

37 그 문장을 위하여 기둥 다섯을 조각목으로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갈고리도 금으로 만들찌며 또 그 기둥을

위하여 받침 다섯을 놋으로 부어 만들찌니라"

 

성막을 지이면서 휘장을 짓는 말씀이 여기에 나와 있는데

청색 홍색 자색실 이것을 꼬아서 우리 식으로 하면

커텐 같은 휘장을 만든 것이다.

 

옛날에는 교회 강대상을 전부 그런 휘장을 쳤었다.

그것이 여기 나오는 말씀을 근거로 해서

그런 색깔로 휘장을 쳤었다.

 

휘장이 33절에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리라" 그랬다.

그러니까 성소와 지성소사이를 막아놓는 커텐 인 것이다.

이것이 커텐으로 막은 벽이면서 동시에 문이 된다.

 

휘장을 걷고 들어가면 들어갈 수가 있다.

출입문이 따로 없이 휘장이라고 하는 커텐을 막아서

벽을 만들었고 그 자체가 문이다 라는 말이다.

 

히브리서 9 2~3

"2 예비한 첫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첫 장막이 등대, 떡 상, 진설병이 있는 성소이고

성소 뒤에 지성소를 막고 있는 것이 휘장이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9 6~7

"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첫 장막인 성소에는 늘 들어가서 제사하고 섬기는데

둘째 장막 그 휘장 뒤에 있는 지성소는 일 년에

일차만 들어간다.

 

이것이 레위기 16장에 있는 대 속죄 제사

7월 10일 날 드리는 제사이다.

그때 한 번만 지성소에 들어간다.

 

그리고 성소에서 모든 섬김과 제사를 다 하게 된다.

 

그러면 예수님이 죽으실 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서 둘이 되었다

이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히브리서 10 19~20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휘장이 뭐라고 했냐면 "예수님의 육체" 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의 육체가 십자가에서 죽는 순간 동시에

휘장도 둘로 갈라져서 똑같이 찢어졌다.

동시적인 사건이다.

 

빌립보서 2 6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체시고 같은 분이시다.

 

하나님의 형상도 있고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는데

그 육체가 곧 휘장이라 그랬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동시에

휘장이 갈라지고 찢어진 것이다.

 

그 휘장이 찢어졌다 하는 말은 무엇인가?

지성소와 성소의 구별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누구든지 그 성소를 통해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이때부터 열린 것이다.

지성소에는 일 년에 일차 대제사장만 들어갔었는데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는 벽과 문인 그 휘장이 찢어져서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것이 휘장이 찢어졌다고 하는 이유이다.

 

지성소는 법궤가 있는 곳인데

히브리서 10 19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이 구절에는 번역을 지성소를 성소라고 했는데

개역성경에는 이 부분이 번역의 문제가 있다.

성소가 아니고 지성소라고 해야 한다.

 

지성소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다.

피없이 그냥 들어가면 죽는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의 그 육체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휘장이 찢어져서 누구든지 지성소에 들어가는

그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공동 번역으로 읽어보겠다.

"1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예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는 마음놓고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0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새로운 살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그 휘장은 곧 그분의 육체입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지성소가 이제 열렸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 "마음 놓고" 는 다른 번역을 보니까 "떳떳하게"

또 다른 번역을 보니까 "담대하게" 라고 하였다.

 

지성소는 들어가면 죽는 곳이다.

제사장만 피를 가지고 들어간다.

그런데 이제는 "마음 놓고" 이제는 "떳떳하게"

이제는 "담대하게"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휘장이 갈라진 이유인 것이다.

 

20절에 "새로운 살길이요" 개역성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는데

다른 번역으로 읽어보면 "새롭고 산 길"

또 다른 번역에는 "새로운 생명의 길"

정확하게 번역하고 있다.

 

이 휘장이 찢어지기 전에는 다 사망의 몸이요

영원히 죽는 인생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휘장이 찢어지므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의 길, 영원히 사는 길 그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4 16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예수님이 육체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휘장이 갈라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로 누구든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보좌 앞에 담대해 나갈 수가 있는데

 

저와 여러분이 기도 응답을 받고 문제가 해결되고

이 모든 것이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이 길이 열렸기 때문에 그때부터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아무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갈 수가 없는데

예수님이 그 육체를 십자가에 찢음으로 휘장이 갈라져서

지성소에 떳떳하게 담대하게 누구든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은혜가 필요하다.

이때는 이 은혜가 필요하고 저 때는 저 은혜가 필요하다.

홍해가 갈라지는 은혜도 필요한 것이고

요단강이 갈라지는 은혜도 필요한 것이고

만나가 내리는 은혜도 필요한 것이고

생수가 터지는 은혜도 필요하고

이 광야 생활에 수없이 많은 은혜들이 필요한데

그 은혜를 얻기 위하여 보좌 앞에 담대히

나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를 해서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도

예수님이 이 휘장을 갈라놓으셨기 때문에

그 보좌 앞에 나가서 기도 응답을 받는 것이다.

 

히브리서 6 19~20

"19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예수님이 몸소 휘장을 갈라놓으시므로 이제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어서 당신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가지고

그 하늘에 부활 승천하여 그 지성소에 피를 뿌리러

들어가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소망이고 든든하고 견고한 닻과 같이

요동하지 않는 그런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있게 되었다.

 

이렇게 휘장이 갈라졌기 때문에 그때부터 개인의 심령과

마음 안에 성전이 열리고 마음에 성령이 오셔서

누구든지 그 영속에 있는 지성소까지 들어갈 길을

열어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는 동안에 이렇게 된 사람들이

14만 4천명이라는 것이다.

 

하늘에 있는 지성소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마음의 성전 안에

지성소에 그 성령이 들어가서 이기는 자가 된 14만 4천명이

이 지성소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 공중 강림한 후에 그들이 요한계시록 14장에

보면 바로 시온산에 서 있는데 거기가 바로 하늘 성전의

지성소 자리인 것이다.

 

이제 그 곳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놓으셨단 말이다.

 

세 번째,

휘장이 지성소와 성소를 구별하여 갈라놓는 벽이고 문인데

그 휘장이 찢어지기까지 어떻게 걸려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커텐이 그냥 걸려 있지 않는다.

반드시 무언가 고리가 있어서 걸어놔야 벽이 되고

문이 되는데 그것이 어떻게 걸려 있었는가?

 

출애굽기26 32

"32 금 갈고리로 네 기둥 위에 드리우되 그 네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받침 위에 둘찌며"

금 갈고리를 4개를 만들어서 그 금 갈고리로 휘장을 걸어서

어느 기둥에 걸어서 세워놓게 된다.

 

오늘날과 같은 커텐식은 아니지만 기둥을 4개를 세워서

금 갈고리로 그 기둥 위에다가 휘장을 걸었다.

 

그럼 휘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 휘장에 구멍을 내야 한다.

금 갈고리를 걸을 수 있는 휘장에 4개의 구멍을 내서 걸고

이것을 4개의 기둥에 걸게 되면 휘장은 벽이 되고

문이 되는 것이다.

 

금 갈고리를 걸을 수 있는 휘장 안에 4개의 구멍이 무엇인가?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라고 하였다.

휘장을 갈고리를 걸 수 있게 만든 것이 4개의 구멍은

예수님의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혀 구멍이 뚫어지는

그 사건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부터 이미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삶을 사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공생애 중에 베드로를 향해서

너희가 나를 따라오려면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면서 이미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을 사셨다.

 

이미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히는 삶을

처음부터 사셨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휘장이 계속해서 걸려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목수인 아버지를 따라서 거친 목수 일을

하면서 이 죄악 세상에서 손발이 단련이 되었는데

요한계시록 1장에 보면 예수님의 발을

"주석과 같이 단련된 발"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주석이 놋이다.

강하게 만들어내기 위해 연단시키고 훈련해서 만든

그런 주석과 같은 발인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이 세상에서 목수 생활을 하면서 그 많은 고난 속에서

이미 손과 발이 못에 박히는 삶을 사셨는데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완전히 못에 박히면서

구멍이 되어서 그 금 갈고리에 거는

육체의 구멍이 됐다는 것이다.

 

이것이 휘장으로 십자가에 큰 의미 중에 하나이다.

 

왜 양손과 양발에 그분은 못을 박혀야만 하는가?

휘장이 그 분의 육체인데 이것이 걸려 있으려면 양쪽에

4개의 구멍이 있어서 금 갈고리로 꿰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힐 수밖에 없는 그 이유가

모형적으로 휘장을 만드는 구약 시대의 말씀 안에

그 모형이 다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대로 하셨던 것이다.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달리셨겠지만

그분은 이렇게 휘장의 사명을 감당하고

누군가가 하나님 앞으로 담대해 나갈 수 있는 그 길을

열어놓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손과 발에 못이 박혀

4개의 구멍을 만들어 내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휘장이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는 벽의 역할을 했는데

이 휘장이 정지해 있을 때는 지파별로 자리 잡고

진을 칠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걸었는데

이것이 이동할 때는 성막을 해체해서 진행을 하는데

진행할 때 이 휘장이 무슨 역할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민수기 4 5

"5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들어가서 간 막는 장을

걷어 증거궤를 덮고"

여기 장을 휘장이라고 말씀드렸다.

 

레이지파 중에서 고핫 자손이 이동할 때 법궤를 이동시키는

사명을 맡은 자손 들이었다.

그런데 법계를 이동시키려면 휘장을 걷어서 보자기처럼

그 법궤를 덮어 싸서 옮기라는 말이다.

 

쉽게 말해 보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

 

공동번역으로 보면

"5 진지를 옮길 때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안으로 들어가서

칸막이 휘장을 내려 증거궤를 싼 다음,"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면

5 진영을 이동할 때에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먼저 성막

안으로 들어가 휘장을 걷어서 법계를 덮게 하라"

 

휘장이 법궤를 덮어 싸서 이동을 하는 보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

 

광야를 진행하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인류 역사로

보면 천년 왕국에 들어가는 건데 천년 왕국에 들어가기

전까지 하나님의 법궤는 아무도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가 없다.

 

인류 역사 속에서 예수님이라고 하는 휘장으로 싸고

덮어서 법궤를 운반을 하였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생명

그 법궤 안에는 뭐가 들어 있는가?

 

모세가 받은 십계명 돌 판이 들어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가 있다.

이것은 부활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고목나무에 싹이 난다는 건

하나님 안에 영원한 부활의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나를 감췄다.

생명의 떡인 만나가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궤 안에 들어가 있는 하나님의 생명과

영원한 부활의 능력과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을 예수님의

휘장으로 덮어버려서 움직이니까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만

생명을 받고 예수님 안에서만 말씀 받고 예수님 안에서만

부활의 능력을 따라 그분이 올 때 차례대로 부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만날 수가 없다.

영으로 계시기 때문에 만날 수 없고 예수님이라고 하는

휘장으로 덮어버렸다.

 

골로새서 3 1~34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우리의 생명이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감춰져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라고 하는 휘장으로 그 법궤를 덮어서 광야를

진행하기 때문에 광야 생활이 끝나는 그 대환란까지

인류 역사 전체에서 천년 왕국이 나타나야

휘장이 벌어지면서 그 안에 있는 생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천년 왕국 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천년 왕국에 가야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가 얻게 되고

그 천년 왕국 가야 부활의 역사를 보는 것이고

천년 왕국에 가야 만나가 나타나는 것이고

그 안에는 예수님 안에 그 휘장 안에 다 감춰져 있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이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갈라지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구약 시대의 성전은 없어져버린 것이다.

각자 사람의 마음속에 성전이 그때부터 나타났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십자가에 달려 휘장을 갈라놓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이제는 각 사람의 마음속에 예수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

성전을 세우는 그 일을 하신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의 성전에 성령님이 들어오시면

그 성령님과 함께 양심과 지성과 의지가 변화되면서

다 변화가 되면 휘장이 갈라져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지성소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 놓고 떳떳하게 담대하게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 곳에 들어간 그 사람들 누구든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목회자가 제사장이 아니다.

지성소의 생명으로 들어간 그 사람들이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시대 14만 4천 명은 목회자가 별로 없다.

내가 카톨릭 남녀 성인들을 찾아보았다.

카톨릭에도 성인들이 많다.

그런데 평신도가 훨씬 많았다.

목회자는 별로 없었다.

 

목회자가 된다는 것이 익은 열매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은사를 따라 이제 섬기고 말씀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지 지성소 안에 들어가는 것은

누구든지 마음 놓고 떳떳하고 담대하게

예수님의 휘장이 갈라져 있기 때문에 내 마음에 오신 성령님이

그 안에 들어오셔서 양심과 지성과 의지가 변화되어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을 살아 있는 동안에 이루어낸 사람들이

14만 4천 명이다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14만 4천명 이라는 숫자를 정해놓고

초대 교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에서

모두 똑같이 시작한 것이다.

 

누구든지 먼저 들어간 사람이 대제사상이 되는 것이고

예수님의 신부가 되고 그런 분이 예수님이 오실 때

휴거돼서 하늘 지성소인 시온산에 들어가

추수가 되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성전 휘장이 갈라졌고 예수님은 휘장이 되셔서

이 광야를 지나가는 동안에 그 휘장 안에 하나님의 생명,

법궤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감춰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제 이것을 보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꼭 신부는 못 된다 할지라도

또는 축하객이 되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장막을 치실 거라고 계시록 7장 15절에 약속을 하셨고

 

우리가 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과 함께 있는 새 하늘의 땅

계시록 21장 3절에 그 말씀하고 만나게 되는 것이다.

 

완성된 그곳에는

요한계시록 21 22

"22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성전이 이제는 없다.

왜?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에 동시에 앉아 있어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영으로 계신 그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등장을

안 하신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비밀이다.

 

이 거친 광야를 지나가면서 그 길을 감당하게

열어놓으셨을 것을 믿고 그것이 우리의 소망이고

우리가 나갈 수 있는 축복의 길이고 그 비밀을 알게 된

우리가 담대하게 그 자리에 나가고

 

또 이 거친 광야를 지나가면서 수많은 문제가 있을 때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거기에

담대하게 영으로 나가서 우리가 기도하고

 

그리고 광야를 진행하는 동안에 그분 안에 숨겨 있고

그리고 그분이 그 휘장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손과 발에 못을 박히고 나를 위해서 죽어주신

그래서 그 휘장이 그곳에 쳐 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이 휘장이 되시고 손과 발에 못을 박히시고

지금도 예수님 안에 그 생명을 감추셔서 이 거친 광야를

지나가는 우리들의 일이다.

 

말씀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담대하게 휘장으로 본 그 십자가의 도의 의미

그 말씀들을 깊이 깨닫고 십자가에서 다 준비해 놓으셨지만

내 개인 안에 그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거

그게 하나님의 때이고 카이로스고 그 시간이 나에게

각자 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린 그것을 소망하며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가는 길 잘 깨달아서 십자가의 도와

많은 비유들 가운데서 담대하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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