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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향연/메세지

하나님이 생각해 주는 인생

by Andrew Y Lee 2021. 8. 18.

하나님이 생각해주는 인생

 

시편 8편

 

 

이 세상에서 가장 복받는 자가 누구일까?

 

시대마다 복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은 다르다.

 

대부분 자손들이 다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장성하여 부귀영화 누리는

이런 것들을 다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 안에서 볼 때 구원받는 것이

최고의 복이다.

 

팔복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얻고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자가

천국을 얻는다고 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이

최고의 복인 것이다.

 

시편 기자는 시편 1편에 복 있는 자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러나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본문 가운데 4절에 있는 말씀이다.

 

시편 8 4

"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인데 주님이 저를 생각하시는가?

 

제가 생각할 때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주님이 생각해 주는 사람, 하나님이 생각해 주는 사람,

이 사람이 진짜 복 있는 사람이다.

 

사람 사이에도 누군가를 생각해 주면 얼마나 감사한가?

부모 자식 간에 생각하고 성도끼리 서로 생각하는 것이

사랑 아니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생각해 주시는지 믿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하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구하기 전에 필요를 다 알고 계시고

머리카락까지 다 세고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신음까지 들으시고 남한테 말하지 못하는 속사정까지

다 알고 계시고 그 모든 중심을 전부 알고 계신다.

 

사람끼리도 나를 생각해 주고 기억하면 감사하고 감격하는데

하나님이 나 같은 인생을 생각해 주고 계시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해 주시는 것은 복 있는 인생이다.

 

하나님이 생각해 주시면 인생의 판도가 바뀌는 것이고

기적이 나타나는 것이고 응답이 나타나는 것이고

성경은 전부 하나님이 생각해 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하나님이 생각해 주는 인생"

이것이 오늘 말씀의 제목이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를 생각해 주었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면서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생각해주는

복된 인생, 그런 인생들이 되길 간절히 축원한다.

 

누가복음 23 42~43

"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성경에는 우편 강도라는 말이 없는데

하나님 편에선 우편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흔히

우편 강도라고 생각한다.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우편이 될 수 있고

좌편이 될 수 있는데

하나님은 방향의 지배를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이 말씀은 강도가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는 내용이다.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다 십자가 달려 죽을 수밖에 없지만

저분이 행하시는 것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다 옳을 뿐이다"라고

하며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인정하고 십자가에 죽으면서

강도가 "나를 생각해 달라고" 할 때

예수님은 "네가 나와 낙원에 있 있을 것이다" 말씀하셨다.

 

그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영계에서는 시공간이 없는 내일이 오늘이기에

언젠가는 그 강도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구원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이라도 회개하며

주님께 나가는 이 인생들을 하나님이 생각하신다.

 

요나서 1 6

"6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요나가 큰 성 니느웨에 가서 40일 후에 이 성이

멸할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라고 했지만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을 때

그 배가 광풍을 만나는 상황이다.

 

지금 환란이 와서 다 죽게 되었는데 이것이 누구의 잘못

때문인가 하여 제비 뽑을 때 요나가 뽑히게 되었다.

 

요나 한 사람 때문에 그 배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였는데 한 사람의 잘못으로

연대 기합 받는 것처럼 다 함께 죽게 되는 경우였다.

 

상처가 나면 그 상처가 나중에 다 온몸을 썩게 하니까

그 상처를 도려내야 하듯이 원인을 제거하여

요나를 바다에 던져버리자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고

고기 뱃속에서 회개하여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생각하셔서 혹시 망하게 될 우리를

살려주지 않겠느냐

이것이 하나님이 생각하는 인생이다.

 

그래서 요나가 회개하여서 배에 있는 사람들이 살고

요나도 살게 되어서 그의 사명을 감당하고

니느웨 사람들도 회개하여 다 함께 살게 되었다.

 

하나님은 종종 회개할 사람을 생각하시고

회개하는 인생을 생각하셔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신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생각해 주신다.

 

창세기 19 29

"29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롯도 소돔 고모라의 그 죄악 가운데서 비교적 의인이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야고보서에 보면

하나님의 벗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벗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소돔 고모라를 멸하실 것을

벗된 아브라함에게 그 비밀을 말씀해 주셨다.

아브라함이 중보하여 기도하는 내용이 18장에 나와 있다.

 

"하나님 소돔 고모라에 의인 50명이 있으면

이 성을 멸할 수 있겠습니까?

의인이 40명이면 30명이면  그런데 의인 10명도 없기 때문에

소돔 고모라를 멸할 수밖에 없었다.

 

소돔 고모라를 멸하는데 하나님이 그 가운데 롯을

건져주시는 것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아브라함이 기도한 중보기도의 내용을 하나님이 생각하시고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소돔 고모라를 엎으시는 중에

롯을 건져내신다.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길 축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중보하는 기도를 받으시고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도 헛되지 않음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정말 전심을 다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영혼들이 멸망당하지 않도록 간절히 중보하는 기도는

하나님 그 기도를 생각하신다.

그 기도를 받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롯을 건지셨다.

 

세 번째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 있는 인생들을 생각해 주신다.

 

창세기 30 22~24

"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신고로

23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함이었더라"

 

야곱의 아내 라헬은 자녀를 낳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자녀를 많이 나았는데

라헬이 자녀를 낳지 못할 때 그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이 고통 가운데 있는 라헬을 하나님은 생각하셨다.

하나님이 태의 문을 열어주셔서 귀한 요셉을 낳게 하셨다.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에 있는 국무총리로 세워서

70인이 이주하여 인류 역사의 모형적인 진리를 나타내는

그 섭리를 위해서 고통 가운데 있는 라헬을

하나님이 생각하셔서 그 태를 여시고 요셉을

낳게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종종 고통 가운데 있는 인생들을 생각하시고

다 기억하고 계신다.

 

사사기 16 28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삼손이 두 눈이 뽑히고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이번 한 번만 생각해서

그 원수를 갚게 해달라고 할 때 하나님이 삼손을 생각하셨다.

 

그래서 30절 말씀에 보면

"30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이 때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말씀하고 있다.

 

삼손이 사사로서 많은 원수들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하나님 편에 섰지만 드릴라와 사랑하고 영적인 음행을 저질러

결국 두 눈이 뽑히고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이 사랑하니까

그 마지막 순간 삼손의 인생이 마감되기 전에

하나님이 그를 한 번 생각하셔서 도우신 것이

일생 동안 해놓은 일보다 더 많게 되었다.

 

시편 40 5

"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하나님도 생각이 많으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이 많다.

왜 생각이 많겠는가?

인생들이 고통이 많으면 생각이 많게 된다.

 

하나님도 인생 가운데 자녀들의 수없이 많은 고통을

보면서 생각이 많으시다.

 

인생도 주변에 어려움을 당하고 또 자신도 환란을 당하고

어려울 만큼 생각이 많다.

그래서 하나님도 생각이 많으시다.

 

시편 115 12~13

"12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13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하시어 복을 주신다.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고

대소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데

이 어려움을 당한 많은 인생들을 하나님이 생각하시는데

그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나의 인생의 문제를 맡겨드리고

하나님께로 가려고 하는 인생들을 하나님은 생각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신다.

 

시편 13편 3~4절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이 말씀에서 시편 기자는

원수에게 질까 봐 원수들이 나를 이겼다 할까 봐

내가 요동될 때 그 대적들이 기뻐하는 그 일을 원치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질까 봐 하나님께 나를 생각해 달라고

나에게 응답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여러 가지 고통 가운데 있지만 그 가운데서 삼손처럼

라헬처럼 눈물로 기도한 한나처럼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시고 생각하셔서 응답해 주셨다.

 

고통 가운데 있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을 생각하신다.

 

그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가서 응답해 달라고 부르짖는 인생들을

하나님은 더 생각을 하신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누구를 더 생각하시는가 보면

열왕기하 20 1~3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했다.

 

그리고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 나를 생각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많은 왕들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을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종교를 회복하려고 제단을 다시 수축하고

여호와의 종교를 새롭게 하고 말씀을 선포하며

나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쳤던 왕이었다.

 

이것을 기억해 달라고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 하고 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의 모든 내용을 주님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 중심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것을 기억해 달라고 생각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나가는 것이 이 장면이다.

 

하나님께서 5절에 말씀하시고 있다.

열왕기하 20 5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눈물을 보았다"

내가 너를 생각하고 너를 기억해 주겠다는 말씀이다.

기도에 응답하셨다.

 

열왕기하 20 7

"7 이사야가 가로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종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결국 히스기야의 병은 나았다.

 

히스기야를 이렇게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고 기도를 듣고

눈물을 보시고

열왕기하 20 6

"6 내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어서 30년 동안 사생활을 살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를 모시고 살다가

30세가 돼서 공생애를 살아갈 때

예수님의 정체성은 드러나기 시작하게 되었다.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양육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그런데 예수님의 정체성이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마지막 한 주에 가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지 않으면

그분이 오신 목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시간이 가고 날이 갈수록

영적으로 성장하고 기도가 쌓이고 점점점 가면서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보내신 그 정체성이

마지막 순간이 될 때 드러나게 된다.

 

우리를 일상속에서 훈련하고 연단하신 것이 마지막 순간에

쓰시기 위한 이것이 각자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삼년을 위해서 마지막 한 주간을 위해서

이것이 예수님의 정체성이다.

 

저와 여러분의 정체성도 이것이다.

 

우리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해 주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 뜻대로 살아 갈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안에 역사하시고 생각해 주신다.

 

사람들은 저축을 많이 한다.

어려운 가운데도 만약을 위해서 저축을 많이 하는데

바로 이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을 위해 살아왔던 인생이

마치 저축이 된 것처럼 내 믿음이 저축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한 그 사랑이 저축이 된다.

 

우리의 사랑의 수고가 일생동안 쌓여 있으면

저축해 놓은 것처럼 내가 위급할 때 그것을

통장을 통해서 찾아서 쓰는 것과 똑같은 원리라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병들어 죽게 되었지만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했다.

 

결국 선하게 행한 것이 없으면 기억해 줄 것이 없게 된다.

 

감사하게도 우편 강도는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여

하나님이 그 인생을 생각해 줬지만

하나님이 보시기 선하게 행한 것이 잔득 쌓여 있다면

하나님은 당연히 기억하고도 남으신다.

 

그래서 우리는 기회만 되면 믿음을 저축하여야 한다.

기회만 되면 사랑을 저축하시기 바란다.

기회만 되면 선행을 저축해서 계속 우리가 그것을 쌓을 때

위급할 때 찾아 쓰는 것처럼

"하나님 나의 이것을 기억해 주십시요" 라고

하나님께 말 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사람들이 생각해줄 때 감사하지만

하나님이 생각해 준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이고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줄 믿는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간대 주께서 권고 하시나이까"

 

인생이 무엇인가?

어떤 분은 사람의 절반은 식당이고

절반을 화장실이라고 말한다.

 

인생이 믿음과 사랑과 하나님의 영적인 걸 빼면

짐승과 뭐가 다르겠나?

 

인생이야 절반은 식당이고 절반은 화장실 인생인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인생이 무엇이관데 생각해 주셔서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우셨는지

우리는 이 한마디의 말씀은 감격하고 정말 놀라게 된다.

 

이 인생이 살면서 죄만 짓다 죽을 인생인데

어떻게 나와 같은 인생을 생각해 줄 수 있는지

또 이제는 놀라운 부활의 영광의 몸을 입고

그 영광의 자리로 나가서 그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고

만물을 다 발 앞에 다스리게 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70억 인구가 살아가는데 그중에 나를 만세전에 택하시고

뽑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하나님 말씀을 듣게 하시고 나 같은 인생을 부르시고

광야로 지나갈 때 매일매일 순간을 생각해 주신다.

 

얘기할 때마다 생각해 주시고 살아왔던 내용을 생각해서

다 생각해 주시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생각해 주시고

더욱이 고통을 당하는 그 순간에도 생각해 주셔서

전부 하나님이 문제들을 처리해 주시고 해결해 주신다.

 

늘 남은 생애를 살아가실 때

하나님이 생각해 주시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은 기도하는 인생을 생각해 주시고

특별히 고통 가운데 있는 인생을 생각해 주시고

하나님은 지나간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그것을 생각해 주신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이 생각해 주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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