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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향연/메세지

더 큰 평안의 비결

by Andrew Y Lee 2021. 6. 17.
더 큰 평안의 비결


역대하 14장 9절~15절




칼 퍼킨스라고 하는 분이 이런 명언을 했다고 한다.
"개울 바닥에 돌이 없다면 시냇물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유명한 최용덕이라고 하는 복음성가 가수가
1집을 내며 그대에게 쓰는 편지 쓰며
칼 퍼킨스의 이 말을 편지 속에 집어넣었다.


이 편지를 읽어보면
"힘들지 않은 삶은 없습니다.
개울 바닥에 돌이 없으면
시냇물은 노래하지 않습니다.
비아냥을 겪은 열매가 더 달콤하고
상처 입은 과일이 더 향기롭습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난이나 시험은
내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고
가진 것이 없다고 부족한 점이 많다고
낙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희망은 거창한 시작이 아니라
작은 시작입니다.
인생에서 결코 늦은 것은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건강 속에서 사랑과 함께
좋은 일이 넘치시기를"


시냇가나 넓은 둑이나 잔잔하게 흐르는 물에
작은 조약돌들이 있기 때문에 그 물소리가 나게 된다.


더 나아가서 계곡에 가서 보면
크고 작은 바위들 때문에 그 물이 노래 소리 하듯이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놀라운 폭포에 장엄하고 웅장한 그 물소리는
그 험한 바위들이 있기 때문에
놀라운 장엄한 소리가 들리는 것인데
칼 퍼킨스는 이것을 노래 소리라고 표현을 했다.


돌이 없다면 그 시냇가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돌은 고난과 역경을 의미하는 것이고
노래 소리는 기쁨과 평안을 의미한다.


고난과 역경이 없다면 기쁨과 평안도 없다.
돌이 있기 때문에 시냇물이 노래하는 것처럼
기쁨과 평안은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나타난다.


때론 평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더 큰 평안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왜냐하면 천국은 절대 평안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평안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


건강 문제도 있고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사람과의 관계도 있고
얼마나 많은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는가?
그런데 천국은 놀라운 오직 평안함만 있는 나라!
절대 평강의 나라! 그래서 우리가 그 절대 평강의
하나님의 나라를 가는 성도라면
하나님은 평안위에 더 큰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시고
더 큰 평안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천국을 향해서 가게 된다.


이렇게 평안 없이 막 살다가 하루아침에 죽어서 천국에 이르러
평안을 찾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평안위에 더 큰 평안. 점점점 맛보면서 내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돌과 같이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더 큰 평안을 얻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더 큰 평안의 비결이다.
더 큰 평안을 얻어가는 비결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첫 번째
성경을 통해서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아사의 평안을 우리가 보겠다.


역대하 14 1
"아비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 시대에
그 땅이 십년을 평안하니라"
한 나라가 10년 동안 평안하다는 것은 작은 평안이 아니다.


솔로몬 이후에 나라가 북쪽 이스라엘 열지파와
남쪽 두지파로 나눠졌는데 북쪽은 여로보암이 왕이었고
남쪽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됐다.
르호보암은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았다.


역대하 12 16
"르호보암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비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아비야는 르호보암의 아들이다.


아비야가 열조와 함께 죽고 아사가 왕이 되면서
그 땅이 10년을 평안했다.
그 시대에 그 땅이 10년을 평안했다.


그런데 그 10년 동안의 그 평안은 아비야 라고 하는
아사의 아버지 대에 부모님의 공덕이 거기 있었다.


아비야가 그래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그런 왕이었기 때문에
부모 선조의 공덕과 거기에 아비야가 부모의 신앙을 본 받아서
하나님을 잘 섬겨 나갔기 때문에 10년 동안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셨다.


역대하 13 3
"아비야는 택한바 싸움에 용맹한 군사 사십만으로
싸움을 예비하였고 여로보암은 택한바 큰 용사
팔십만으로 대진한지라"
여로보암의 군대는 80만이었고
아비야의 군대는 40만 밖에 안 됐다.
2대 1의 싸움이다.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숫자가 많은 80만 대군이 이길 것이다.
그런데 2대 1의 싸움에서 아비야는 9절 이하 말씀을 보면
이렇게 선포를 하고 있다.


역대하 13 9절~12
"9  너희가 아론 자손 된 여호와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쫓아내고 이방 백성의 풍속을 좇아 제사장을 삼지
아니하였느냐 무론 누구든지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일곱을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하는 자마다 허무한 신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다
10 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 그를
우리가 배반치 아니하였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있으니 아론의 자손이요 또 레위 사람이 수종을 들어
11 조석으로 여호와 앞에 번제를 드리며 분향하며 또
깨끗한 상에 진설병을 놓고 또 금 등대가 있어 그 등에
저녁마다 불을 켜나니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나 너희는 그를 배반하였느니라
12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하여 경고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치 못하리라"


남쪽 유다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어서 정통 제사장과
레위지파를 통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북쪽은 성전이 없기 때문에 산당을 만들어
가짜 제사장과 가짜 레위지파를 세워
계명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다.


그래서 아비야는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치 아니하였고 너희는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산당에 잘못된 제사장을 세워서 계명을
지키지 못했고 너희는 그를 배반하였고 너희는 우리와
싸우는 것이 여호와와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너희가
형통치 못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비야는 나름대로 하나님을 배반치 않으면서
그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제사하는
이런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역대하 13 18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항복하고 유다 자손이 이기었으니
이는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
남쪽 유다의 아비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80만 대 40만 2대 1의 싸움이었지만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


역대하 13 19절~22
"19   아비야가 여로보암을 쫓아가서 그 성읍들을 빼앗았으니
곧 벧엘과 그 동네와 여사나와 그 동네와 에브론과 그 동네라
20 아비야 때에 여로보암이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여호와의
치심을 입어 죽었고
21 아비야는 점점 강성하며 아내 열 넷을 취하여 아들 스물
둘과 딸 열 여섯을 낳았더라
22 아비야의 남은 사적과 그 행위와 그 말은 선지자 잇도의
주석 책에 기록되니라"
이렇게 하나님이 아비야를 세웠는데 그 아비야가 나름대로
하나님을 올바로 섬겼고 이어서 아비야의 아들인 아사가 또
하나님을 잘 섬겼기 때문에 그 시대의 땅이 10년을 평안하였다.


부모의 신앙이 이렇게 중요하다.
부모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 그 자식들까지
다 평안을 누리게 된다.


아비야에 이어서 아사가 왕이 될 때 아사는 어떻게 했는가?


역대하 14 2~5
"2 아사가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3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이하고 주상을 훼파하며 아세라
상을 찍고
4 유다 사람을 명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하며 그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5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이하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얻으니라"
아사도 아비야를 쫓아서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며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훼파하고 아세라 상을 찍고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고 율법과 명령을 행하니까
하나님이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대하 14 6절~7
"6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해 싸움이 없은지라 저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7 아사가 일찌기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사방의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저희가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 하였더라"
평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이 세상에 돈이 많다고 평안한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권세가 있다고 평안한 것이 아니다.
이 평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이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없다.


그런데 아사가 하나님을 말씀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잘 섬기니까 하나님이 평안을 주셨다.


두 번째
하나님이 더 큰 평안을 주시려고 전쟁을 일으키셨다.


역대하 14 9
" 구스 사람 세라가 저희를 치려하여 군사 백만과 병거
삼백승을 거느리고 마레사에 이르매"
이번에는 남쪽에 있는 아프리카 구스 사람이 군사 100만과
병거 300승을 거느리고 아사에게 쳐들어왔다.


그런데 아사의 군대는 얼마인가?
8 말씀을 보니까
"아사의 군대는 유다 중에서 큰 방패와 창을 잡는 자가
삼십만이요 베냐민 중에서 작은 방패를 잡으며 활을
당기는 자가 이십 팔만이라 다 큰 용사더라"
30만과 28만을 합치면 58만 밖에 안된다.


그런데 구스는 백만이 왔다.
거기에다 많은 마병대가 왔다.
또 2대 1의 싸움이 되었다.


하나님이 아비야에 이어 아사에게도 평안을 주셨는데
더 큰 평안을 주시려고 군사를 일으켜서 전쟁을 일으키셨다.


역대하 15 6
"이 나라가 저 나라와 서로 치고 이 성읍이 저 성읍과 또한
그러하여 피차 상한바 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이 모든
고난으로 요란케 하셨음이니라"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거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평안을 얻지 못하고 여러 가지 고난을 주면서
요란케 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요란케 될 수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사에게 더 큰 평안을 주려고
구스의 마음을 흔들어서 전쟁을 하게 했다.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흐르는 계곡물속에 노래 소리가
들리게 하려고 크고 작은 조약돌 또 더 나아가서 계곡의
바위를 또 낭떠러지에 폭포 이 웅장한 그 노래 소리를
들리게 하려고 많은 돌들을 거기에 두신 것처럼
우리 인생에게 찬양을 받으시고 감사와 영광을 받고
더 큰 평안을 주시려고 하나님이 역경과 고난을 허락하셨다.


시편 69 1~4
"1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2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3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내 목이 마르며 내 하나님을
바람으로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4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내 머리털보다 많고 무리히
내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취치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다윗이 환란 고통을 받으면서 영혼 속에 물들이 흘러온 것처럼
깊은 수렁에 빠진 것처럼 얼마나 부르짖었으면
피곤하고 목이 마르고 하나님을 바람으로 눈이 쇠하였는데
나를 미워하는 자가 머리털보다도 많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다윗의 생애였지만 사실은 예수님이 당할 일을 
미리 예표로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두셨을 때 얼마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는가?


유대 병사들 로마 병사들 제사장 바리새인 다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으라고 했다.
그 예수님의 영혼에 물이 흘러들어오고 머리털보다 더 많은
원수들로 인해 결국 예수님은 십자에서 죽으셨다.


다윗을 빙자하여 다윗의 생애도 그랬지만 예수님이 당할
그 일을 이 말씀이 하고 있다.


계속해서 69편의 뒷부분을 보면 다 예수님께서 당한 얘기들이다.
근데 예수님은 어떻게 됐나?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극복하심으로 말미암아
절대 평안의 경지에 나가시게 되었다.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요한복음 20 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예수님을 죽였던 그 무리들을 얼마나 두려워했겠는가?
그런데 주님이 오시자마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제자들에게 처음하신 말씀이다.


요한복음 20 21, 26
"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제일 먼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평강있으라" 라고 말씀하셨다.


머리털보다 더 많은 원수들이 에워싸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부활을 입으시고
그 부활의 주님이 절대 평강을 가지고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 있기를 원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인 것이다.


마태복음 10 11~13
"11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파송하면서
그 열두 제자 사역중의 하나가 평안의 전도자였다.
합당한 자를 찾아나서 평안히 빌어주는 것이다.
그 집이 합당하면 그 평안이 거기 임한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누군가의 평안을 빈다면
거기에 합당하면 그것이 거기에 임한다.
근데 그것이 합당치 않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평안을 빈 사람에게 돌아간다.


제자들이 삼년 공생애를 살아가면서 파송되어 나가서
처음 전도할 때 평안을 빌었지만 그것이 여러 가지
훈련과 고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더 큰 평안으로 더더 큰 평안으로 그 마음속에는 점점
큰 하늘의 평안들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더 큰 평안의 전도자가 되어져 갔던 것이다.


여러분 평안이라는 건 무엇인가?
사람 몸에 비유하면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무 이상 없이
모든 지체가 온전한 연합을 이뤄야 하는 것이다.
손가락에 가시하나가 찔려도 평안한 것이 아니다.


집안이 평안하다는 것은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평안해야하고 대한민국이 평안하다는 것은
저 시골 농부까지 모든 구성원이 있는 자리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야 거기에 평안이 있다.


내 몸에 조금이나마 불편한 것이 있으면
그것은 평안한 것이 아니다.
이런 평안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완전하게 건강한 사람이 누가 있나?
완전히 건강한 나라가 어디 있나?
완전히 온전한 가정이 어디 있나?
이 세상에는 평안이 없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평안을 비는 평안의 전도자들이었다.
그들이 훈련을 받는 동안 더 큰 평안을 얻은 것처럼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더 큰 평안을 주시려고
전쟁을 일으키고 원수를 갖다 붙이면서 환경을 새롭게 해주신다.


세 번째
아사가 더 큰 평안을 얻게 됐는데 본문의 말씀처럼
그 비결이 무엇인가?


역대하 14 11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첫 번째 그 평안의 비결은 하나님께 부르짖어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기도 하는 것이다.
적군은 100만 아사의 군대는 58만
또 적군은 많은 마병들을 데리고 왔다.
2대 1의 싸움에서 우리군대는 약한 자고 적군은 강한 자인데
그 사이에 주밖에는 도와줄 사람이 없고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으니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그래서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처럼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걸 볼 수 있다.
주님을 의지하오니 주님께서 도와달라고
이것이 더 큰 평안을 얻는 비결이다.


또 하나의 비결은
역대하 15 2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실찌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만나주시지만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도 그들을 버리신다.


그런데 아사는 어떻게 했나?
하나님을 찾았다.


역대하 15 8
"아사가 이 말 곧 선지자 오뎃의 예언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가증한 물건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제하고 또
에브라임 산지에서 빼앗은 성읍들에서 제하고 또 여호와의
낭실 앞 여호와의 단을 중수하고"
하나님의 선지자 오뎃의 예언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하나님을 찾았다.


역대하 15 12,15
"12 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15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을 만나주시는 것이고
하나님을 버린 자는 하나님도 버리신다.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에 만나주셨고 하나님이 함께하니까
그 전쟁에서 이겨서 하나님 평안을 주셨다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세 번째 비결은
역대하15 16~17
"16 아사왕의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니
17 산당은 이스라엘 중에서 제하지 아니하였으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더라"
아사가 개혁을 했는데 아사의 어머니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가증한 아세라의 목상을 만드니까 그 왕위를 폐해 버리고
우상을 찍어서 시냇가에 불살라 버릴 만큼 철저하게
하나님께 온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걸 기쁘게 여기셨다.


"온전하였다" 라는 말은 에베소서 6 24의 말씀처럼
변함없이 주님을 섬겼다는 말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평안해주신 비결인 것이다.


역대하 15 19
"이 때부터 아사왕 삼십 오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으니라"


처음 10년 동안 평안을 주셨는데 구스와의 전쟁을 통해
더 큰 평안을 얻게 된 것이 35년이라는 전쟁이 없는
평안이었던 것이다.


한 나라에 35년 동안 전쟁이 없는 평안이 있었던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우리는 약하다고
고백하고 하나님을 찾으니 하나님이 함께하여 더 큰 은혜를
주셔서 35년 동안 더 큰 평안을 얻게 되었다.


크고 작은 돌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고 신앙생활에 방해
거리가 많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지름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 크고 많은 돌들이 있어서 방해 거리가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더 큰 평안을 얻는 지름길이고 최용덕 복음가수가 말한 것처럼
그것이 나의 디딤돌인 것이다.
이것을 딛고 가야한다.


미국의 크로스비라고하는 찬송 작사가가 있다.
이 분은 장님이었는데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그런데 이 분은 찬양시를 9000개를 지었다.
눈은 안 보였지만 많은 찬양시를 지었다.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우리가 잘 아는 446장도 이분이 작사한 것이다.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및 안전한 그 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예수님이 거친 자에게는 거칠고 넘어지게 하는 자에게는 돌이지만
능력을 받아 성공한 사람에게 예수님이 반석이 되시고
큰 바위가 되셔서 피하게 하신다.


크고 작은 방해 거리가 있는 그 돌들이
오히려 반석이 된 것이다.


각자의 삶에 돌덩어리가 있고 각자의 삶에 큰 바위들이
다가오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시냇물이 노래하는 이유인 것처럼
이것이 우리가 찬양하는 이유가 되고 영광을 돌리게 되고
더 큰 평안을 얻는 디딤돌이 되는 것이다.


각자의 삶에 돌덩어리가 없다면 일부러라도 만들어야 한다.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지만 돌덩어리가 없으면
평안하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고
더 큰 평안을 얻으려면 일부러라도 만들어야 한다.


어느 권사님은 1년에 1000포기를 김장 하신다고 한다.
본인이 먹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걸 가지고 전도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 1000포기지 배추 값이 오르는 해는
얼마나 큰 부담이겠나?
또 배추 값은 싼데 고춧가루 값이 갑자기 올라가버리면
그 얼마나 큰 부담이겠는가?


그런데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과 약속을 하고
매년 1000포기를 김장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전도를 하였다.
이것이 이 분의 디딤돌이 되었다.
일부러라도 이렇게 했던 것이다.


제가 목회를 이 나이에 안한다고
은퇴할 때가 돼서 은퇴하면 그만이지
누가 뭐라고 하겠나?
그러나 이것이 나의 십자가이고
그리고 내가 이것을 디딤돌로 하여
더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고
더 큰 은혜와 더 큰 평안을 바꾸려고
이 길을 가는 것이다.
이것이 더 큰 평안의 비결인 것이다.


오늘 비결은 3가지였다.
나는 약한 자지만 내가 주님을 의지하오니
그래서 저들이 하나님과 싸우는 것이다.
왜?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시니까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자를 만나주시고 함께하지만
찾지 않으면 버리신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절명의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또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더라 변함없이
우상을 타파하면서 하나님만 섬기는 아사의 고백
이 세 가지가 더 큰 평안을 얻는 비결이었다.


여러분 남은 생애를 통하여 크고 작은 돌들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할지라도 이것이 시냇물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찬양이 되는 것처럼 이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더 큰 평안을 얻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누리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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