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메세지

축복의 통로

by Andrew Y Lee 2021. 6. 3.

축복의 통로

 

민수기 6장 22절~27절

 

 

우리가 정말 복을 한번 받아야겠구나!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축복의 통로’라고 하는 말씀을 준비했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수돗물이 수도관이 없다면

어떻게 물이 나올 수가 있겠는가?

수도가 막히거나 터져버리면 우리는 물을 사용할 수가 없다.

 

가정과 공장에서 사용하는 전기가 전선을 통하지 않고는

공급을 받을 수가 있겠는가?

반드시 전선이 있기 때문에 그 전기가 가정과 공장으로

공급이 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축복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축복의 통로가 있다’ 라는 것이다.

 

7가지의 축복의 통로를 통해서 모두가 축복을 받는

우리가 되길 축원한다.

 

첫 번째

"축복의 통로가 부모다" 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성경에는 부모로부터 아버지로부터 축복의 통로를 통해서

복을 받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다.

 

창세기 9장에 보면 노아의 홍수 후에

노아가 자녀들에게 축복을 한다.

 

특별히 가나안을 저주하고 셈과 야벳을 축복했는데

그 인류 역사 속에서 노아의 축복과 저주가

그대로 되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창세기 9 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함의 자손 가나안은 현재의 흑인들이다.

온 세계에 흩어져서 노예 생활을 면치 못했다.

 

셈은 황인종이다.

그래서 "셈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한 것처럼

세계 모든 종교는 이 셈의 족속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다.

 

야벳은 서양 사람들 즉 백인종들이다.

그들이 셈의 장막에 셈을 통하여 나타난 모든 종교를 통해서

그들이 창대하게 되고 가나안이라고 하는 함의 족속들

흑인들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노아가 저주하고 축복한 그대로 인류 역사는

지금까지 그대로 된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다.

 

창세기 27장에 보니 이삭이 축복하는 모습이 나와 있다.

창세기 27 4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장남은 에서였는데 야곱이 먼저 별미를 만들어가지고 와서

축복을 받게 된다.

창세기 27 19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그대로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

 

에서가 뒤늦게 와서 아버지에게 복을 받기 원하지만

"네 복이 다 빼앗겼고 이제 남은 것이 없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히브리서 11 20~21

"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이삭은 야곱과 에서 모두에게 축복을 하였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또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은 열두 아들들을

그 분량대로 축복을 했다.

 

이와 같이 성경은 "부모가 자녀에게 축복의 통로다"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5월은 가정의 달인데 부모 된 입장에서 또 자녀 된 입장에서

부모로부터 이렇게 복을 받고 성경 그대로 자녀를 축복하면

우리 자녀들의 축복을 받을 줄 믿는다.

 

두 번째

축복의 통로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시편 128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찌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찌로다"

 

시편 122 6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창세기 12장 3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고 그 아브라함의 후손들에

대해서 그들을 축복하면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축복은 지금까지 살아있는 예언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루살렘과 시온,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하면

살아 있는 예언 그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게 돼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이스라엘과 합쳐서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하늘나라의 유업을 받은 것이 이스라엘이고

이 모든 말씀을 받은 것이 이스라엘이고

우리는 그 이스라엘에게 접붙여서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다.

 

이스라엘 나라가 구원을 받지 못하면 접붙임을 당하는

우리도 함께 구원받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때 우리도 구원을 받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이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리신다는 것이다.

 

지금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지금 전쟁하다가 휴전 상태로

들어갔는데 전부 사실은 그 배후에 어둠의 세력들에

대해서 나타나는 전쟁이다.

 

온 세계를 어둠에 빠지고 혼란에 빠뜨리려고 하고 있다.

이때에 우리가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도록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할 때

창세기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대로 그 복이 우리에게

임할 줄 믿는다.

 

세 번째

축복의 통로는 본문 말씀에 제사장을 통하여

축복이 온다고 말씀하고 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이고 레위지파인데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한다.

 

민수기6 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이다.

 

하나님이 그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고 얼굴 보기를 원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시고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그런데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것이 아니고

아론과 그 아들들인 제사상을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면

27에 나온 그대로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 제사장이 축복의 통로인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목사님이 제사장이 아니다.

제사장은 왕이다.

 

바로 이분들은 이기는 자들이다.

이기는 자들이 왕이 되는 것이다.

계시록에서는 그들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갖고 있다 하였다.

 

욥기 42장에 보니까 욥이 연단 외에 정금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나와서 많은 친구들과 자녀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제사할 때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하고

축복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우리가 많은 연단을 통하여 더 영적인 성장이 되어 질수록

더 많은 축복을 가질 수가 있다.

 

우리 모두 믿기 바란다.

더 많이 성장하여 많은 영혼을 위해서 제사하고

많은 영혼을 위해서 축복할 때 우리가 성장한 만큼

축복할 수 있다.

 

네 번째

주일을 성수하는 것이 축복의 통로다 하는 것이다.

말씀 그대로이다.

 

창세기 2 3

"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하나님의 약속이다.

 

모든 걸 창조하시고 안식의 날 그날을 복주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그래서 우리가 이 안식일을 잘 성수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나님의 날로 드리면 하나님이 신령한 복을 주시고

또 여러 가지 복을 내리신다 하셨다.

 

안식일을 잘 준수하는 것 그것이 축복의 통로인 것이다.

 

다섯 번째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복을 받게 돼있다.

 

신명기 16 10

"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출애굽기 23 25~26

"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26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모든 하나님의 절기 그 절기 때 하나님 앞에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면서 그 하나님을 잘 섬기면 양식과 물의 복을 내리고

병을 제한다고 약속 하셨다.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십일조를 구별해 예물을 드리고 또 감사의 모든 예물을

드리는 것 그리고 특별히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

또 특별히 시간의 첫 시간을 드리는 것

 

시편 46 5

"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일어나자마자 새벽의 첫 시간은 하나님의 시간이다.

 

이 순간에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전부 하나님께 드릴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전부 "축복의 통로다" 라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오래전에 중국 선교를 하는 선교사님의 얘기를 들었는데

중국 공산당이 세운 삼자교회라고 하는 교회가 있다.

지하교회 진짜 성도들은 삼자교회에 가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부활절에 그 삼자교회에서 메시지가

왔다고 한다.

내용은 "예수님이 부활했으니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충성합시다."

이런 교회를 누가 가겠나? 공산당이 세운 교회인데

그런데 많은 지하교회의 성도들이 그 교회에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물어봤다고 한다.

"아니 공산당에서 세운 그 교회를 뭐 하려고 갑니까?"

그러자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며 대답하기를

‘찬송을 합법적으로 마음대로 불러보고 싶어서’

그래서 그곳에 간다는 것이다.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으면 공산당이 붙잡아가니까

그들이 세워놓은 가짜 삼자교회지만은 거기에 가면

찬송을 합법적으로 불러볼 수가 있으니까 간다고 하였다.

 

코로나로 예배가 지장을 받고 코로나가 여러 가지 예배를

축소시켰지만 마음껏 찬송하고 마음껏 예배하고

하나님을 마음껏 섬길 수 있는 이 나라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마음껏 제대로 섬기기만 하면

하나님 반드시 축복의 통로를 통해 복을 주신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기만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복을 받을 수 있다.

 

여섯 번째

"어려운 환경이 축복의 통로다" 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된다.

 

고린도후서12 9~10

"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여러 가지  약한 것들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 약할 때

하나님의 강함이 그 때 나타나기 때문에

그 때가 축복의 통로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신앙의 고백이다.

 

고린도후서 11 30

"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약한 것이 우리를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 부족하고 연약하다.

믿음이 온전한 사람이 누가 있겠나?

사랑이 온전한 사람이 누가 있겠나?

건강이 온전한 사람이 누가 있겠나?

물질에 온전한 사람이 누가 있겠나?

다 부족하고 어려운 세대에 허우적거리고 살아가지만

그 약함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것이 우리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약한 것을 자랑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이 크신 능력으로 우리를 그 가운데 머물게 해

약한 것들이 강함이 되고 약한 환경이 축복의 통로로

전환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 일곱 번째

축복의 통로는 바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 축복의 통로다"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성경학자 레스비 훌린 박사는 대접을 19가지 하나님의

은사중 하나라고 했다.

남을 잘 대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사인 것이다.

 

로마서 12장을 6~8

"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각종 은사에 대해 나오고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대접하는 것이 은사 중에 하나라고 나와 있다.

 

우리는 남에게 대접을 받으면 기쁘다.

또 대접하는 것도 기쁘다.

대접은 서로를 기쁘게 한다.

 

히브리말로 이 대접이라고 하는 말이 원어로 "하난" 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친절하게 대하다, 은혜를 베풀다,

아름답다, 좋다, 행복하다, 즐겁다, 유익을 주다,

기쁘게 하다, 대리자가 되다.

이렇게 대접은 여러 가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헤세드"라는 단어로 표현하는데 사랑, 친절, 신앙심

이것이 전부 대접이다.

사랑이 대접이다. 친절이 대접이다. 신앙심이 대접이다.

 

또 헬라어로 "에피메레이아" 라고 발음하는데 손님을 맞이하다,

친절하게 대접하다. 이것이 축복의 통로라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부터 신약성경의 많은 말씀들을 보면

마태복음 25 40

"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아주 지극히 작은 자인데 이름도 없는 작은 자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

주님은 내게 한 것이다 말씀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멸망의 나라에 들어가는 기준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누가 대접했느냐

이것이 심판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마태복음 10 40~42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12사도들을 파송하면서

말씀하신 결론이다.

 

예수님이 파송한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선지자를 영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파송한 선지자를 영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똑같이 받는다는 것이다.

선지자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데 그러한 선지자를 영접하면 똑같은 상을 받는다니

얼마나 좋은가?

이것이 축복의 통로인 것이다.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 탄생할 때 헤롯왕은 메시아 예수를 경배한다고 속여

죽이려고 했지만 동방의 박사들은 예수님께 세 가지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리면서 대접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그의 집에 초청하여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대접했다.

 

특별히 막달라 마리아는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주면서

장사를 준비하고 거기에 향유옥합을 부었다.

예수님의 부활하실 때 제일 먼저 마리아에게 보여주신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구약시대를 한번 보자.

창세기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세 천사를 대접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여호와이다.

세 천사가 나타나니까 아브라함이 달려가서 영접하고

나무 그늘 아래에 모셔서 발 씻을 물을 갖다 드리고

좋은 송아지고기, 우유, 버터, 떡 이렇게 대접을 하니까

그때 그들이 사라를 찾아 네가 내년이맘때 아들을 낳을

것이며 이삭이라는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

 

얼마나 놀라운가?

대접을 한번 했는데 그렇게 일생에 찾던 아들을 받는 복을

그때 받게 된 것이다.

 

요셉이 이집트 왕 바로에게 가서 꿈을 해몽할 때

바로는 요셉을 애굽의 2인자인 총리로 세워서

대접할 때 함께 7년 흉년의 큰 환란을 넘어가게 되는

복을 받게 된 것이다.

 

여리고성의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주고

그들을 대접하니까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 가족과 함께

살아남았고 구원의 반열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족보 안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

 

수넴여인이 남편과 함께 엘리사를 위해 음식을 대접하고

방을 만들고 여기에 침상, 의자, 촛대, 책상을 들여 놔주었다.

이곳에서 먹고 마시고 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 이 가정에 복을 내리셨다.

심지어는 아들이 죽어버렸는데 아들을 그들이 만든 침상 위에

올려놓고 기도할 때 거기서 기적이 나타나서 살아났다.

 

고넬료는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고 대접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보내고 천사를 보내셔서 말씀을 듣고

가족 모두가 성령을 받으면서 이방인의 구원의 가정이 되었다.

하나님이 대접하고 기도한 것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로마서 16 1~2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2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을 영접하고 소용되는 바를

도와주고 여러 사람과 그 보호자가 되어준 베베라고 하는

집사님은 바울에게 천거를 받고 합당한 예절로 영접하고

무엇이든 소용되는 것을 도움을 받게 되며 베베집사님은

영적으로 귀한 사람이 되었다.

 

3~4

"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브리스가와 아굴라 이 부부가 사도바울의 복음을 위해서

대접하고 목숨을 내 놓기까지 했기 때문에 이들은 초대교회의

귀한 일꾼으로 세워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루디아는 바울사도일행을 집에 모셔 거처하게 하면서

많은 복을 받게 되었다.

 

빌레몬서에 보면 빌레몬이 자기 집에 교회를 세우고

사도바울을 동역자로 믿음의 형제로 사도바울의 처소를

예비할 정도로 대접할 때에 성경에 등장할 만큼

놀라운 복을 받았다.

 

대접이라고 하는 것은 큰 하나님의 은사요

축복의 통로라는 것을 믿기 바란다.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 예배인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대접하는 것이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그분 앞에 감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이것이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많은 복을 주실 수밖에 없다.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 소외된 이웃과 영혼을 돌보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파송한 이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를 대접하며 선지자의 상을 받게 되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축복의 통로를 통해서 이 땅에서 신령한 복을 받고

이 세상의 좋은 복들을 받길 바란다.

 

말씀을 요약하면

첫 번째는 부모를 통하여 받게 되는 것이다.

자녀들을 축복하길 바란다.

자녀들을 축복할 때 축복한 그대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길 바란다.

이스라엘의 모든 축복을 창세기 12장 3절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그대로 그들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길 바란다.

 

세 번째는 제사장을 통해 축복을 받는다.

연단을 잘 받아서 많은 축복을 가지고

성도들을 축복할 수 있게 된다.

 

네 번째는 주일을 잘 성수하는 것이다.

일곱 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주일 성수를

잘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신다.

 

다섯 번째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이 축복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절기를 명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첫 열매를 드리고 첫 시간을 드리는 것

새벽에 일어나 새벽예배 드리길 바란다.

하나님은 첫 시간을 기뻐 받으시고

첫 시간을 도우신다고 약속 하셨다.

 

여섯 번째는 어려운 환경이 다가올 때

이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고 어려운 환경이 나타난

약하고 어려운 그 순간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온전함과 능력이 들어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약하고 어려운 환경이 곧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일곱 번째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대접하고

선지자를 대접하는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일곱 가지 축복의 통로를 잘 명심하여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환란이 가까이 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가 축복의 통로를 잘 열어놓으면

환란 속에서도 늘 지키시고 반드시 함께 하실 것이다.

 

엘리야의 때도 환란의 때였지만 엘리야를 통해서

축복할 사람은 축복을 하신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일곱 가지 축복을 꼭 명심하여

남은 여생 신령한 복과 이 땅의 기름진 복을 함께 받아

누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말씀의 향연 > 메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프링과 오뚜기  (0) 2021.06.17
소견대로 사는 삶  (0) 2021.06.17
부모에게 순종하라  (0) 2021.05.27
보수하는 자  (0) 2021.04.24
새로운 생명의 길  (0) 2021.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