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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메세지

시온의 대로

by Andrew Y Lee 2021. 6. 30.
시온의 대로


시편 84:1~12




시편 84편은 ‘고라 자손의 시다’
이런 제목이 붙어 있다.
그리고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
이런 부제가 되어 있다.


역대상 23장에 보면 다윗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아들 솔로몬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그때에 성전 중심의 레위 사람들을 불러다가
직제를 개편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사장을 따로 세우고 찬송한 자들을 세우고
곳간을 관리하는 자들을 세우고
성전 관리를 또 이렇게 세우고
심지어는 무교병을 만드는
냄비에다 떡을 이렇게 만드는 떡을 만드는 자를 세우시고


그러면서 26장 1절~19절에 보면
이 고라 자손들을 성전 문지기로 임명하는
그런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이 고라 자손들이 성전 문지기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왔기 때문에
이제는 성전에서 찬양할 수도 없고 예배할 수도 없는
그럴 때에 고라 자손들이 이 시를 쓴 것이다.


시편 84 10 말씀에 보면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성전을 빼앗기고 포로 생활하기 전에는 고라자손이
그 복된 성전에서 문지기로 함께 찬양하고 예배하고
마음껏 하나님을 섬겼는데 이제는 포로 생활로 잡혀가서
그 성전을 빼앗기고 나니까 그 문지기 했던 그 한 날이
악인의 장막보다 첫 날보다 더 복된 날이었다고
그것을 회상하면서 이 시편을 지금 쓰고 있는 것이다.


그다음에 이 고라자손의 시 그러면서 영장으로 이렇게 했는데
이 영장은 그 당시 성가대 지휘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 성가의 지휘자 깃딧에 맞춘 노래다
이 깃딧은 악기의 한 종류이다.


이 악기에 맞춰서 특별히 많은 전승에 의하면 포도 수확을
할 때 깃딧이라고 하는 악기를 가지고 찬양을 하면서
포도 수학을 했다고 한다.


82편에도 보면 ‘아삽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
깃딧에 맞춘 노래가 시편에 세 편이 있다.


고라 자손들이 성전을 사모하면서 성가대 지휘자가
깃딧이라는 악기에 맞추어서 하나님께 노래한 것이
시편 84편이다.


첫 번째
제일 먼저 받고자 하는 교훈은 5 말씀에 보니까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말씀의 제목처럼 마음속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가
복이 있는데 그러면 그 시온이 어딘가? 하는 것이다.


시온이 어딘가? 이 시온의 대로가 마음에 있는 자가
복이 있는데 인생이 받는 복 중에서 최고의 복이다.


우리가 팔단진복에 가서 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고
하나님 나라가 저들의 것이라고 하는
그 인생 중에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복이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린 자이다.


시온이 과연 어디인가? 그래서 이 시온이 우리의 마음에
어떻게 대로로 열려져 있는가?


성경에 시온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이
사무엘하 5장에 있는 말씀이다.
사무엘하 5 4부터 말씀을 보니
다윗이 삼십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년을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년 육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다윗이 일생 동안 40년 동안 왕을 했는데 헤브론을 수도로
삼아서 유다의 왕이 될 동안에 7년 6개월 동안 다스렸고
그다음에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됐을 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33년을 다스렸다고 말씀하고 있다.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됐을 때 제일 먼저 한 것이
6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예루살렘으로 쳐들어가서
그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자 하는 정책이었던 것이다.


6 말씀에 보니
왕과 그 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저희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그 예루살렘에는 여부스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산성이 아주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너희가 쳐들어와도 빼앗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장담했는데


7절 말씀에 보니까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예루살렘을 처 들어가서 제일 먼저 시온 산성을 빼앗아서
그것을 바울성이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면서
시온이라는 말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다.


여기 예루살렘이 있고 시온이 나왔는데
이것이 같은 곳이 아니고 다른 곳이다 하는 사실을
먼저 우리가 염두에 둬야 되겠다.


여호수아 15장 63절 말씀에 보면 가난한 땅을 분배할 때
이 예루살렘 그곳을 유다 지파 사람들에게 기업으로
준 줄을 우리가 알 수가 있다.


여호수아 15 63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그 예루살렘을 유다 지파에게 땅을 기업으로 줬는데
그 여부스 족속이 살고 있는데 그들을 정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에는 계속해서 여부수족속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사사기 1장에 가서도 또 나오고 있다.
사사기 1 8 말씀에 보면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성을 불살랐으며
눈에 가시처럼 여부스 족속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으니까
그 기업을 받은 땅에서 예루살렘을 계속 공격하는 것이다.


사사기 1 21 말씀에 보니까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더라
유다가 분배받은 그 예루살렘이 바로 경계선에
베냐민 지파가 또 땅을 기억으로 받았는데
그 예루살렘에 여부스 족속이 사니까
그 베나민 지파도 여부스 사람을 공격했는데
이겨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여부스가 예루살렘에
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제 다윗이 왕이 되니까 그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으려고 왕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예루살렘을
쳐들어간 것이다.


거기에 오늘 첫 관문인 시온산,
시온이 언덕 지역이기 때문에 요새지역,
그래서 시온 산이다 이렇게 부른다.


이것이 전혀 시온 예루살렘이 다른 지역이다 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6.25 때 인천 상륙 작전을 하면서
유엔군이 들어오면서 서울을 탄환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천과 서울이 다른 거와 같은 그런 원리라는 것이다.


열왕기상 8 1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두목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예루살렘의 성전을 짓고 나니까 솔로몬이 그 성전의 법궤를
안치해야 되는데 그 법궤는 그때까지 다윗이 빼앗은
시온 산성 (다윗성) 거기에 안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시온에서부터 그 법궤를 올리고자 하여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 지파의 두목들을 함께 모았다 그랬다.


그러니까 예루살렘과 시온은 같은 지역이지만 다른 지명으로
달랐다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모형으로 하여 땅의 시온과 예루살렘이 다른 것처럼
히브리서 12에 가서 보면 22~23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히브리 사람들을 향하여 히브리 기자가 히브리서를 쓰면서
너희가 이른 곳 그러니까 초대교회에 히브리서가 쓰여 질
당시에 하늘에서는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 하늘의 성이 각기 다르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온산과 예루살렘은 같은 지역이었지만
분명히 다른 이름으로 이렇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4장에 가서 보면 14만 4천 명이
시온산에 나타나고 있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다.


요한계시록 14 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신약에 와서 그 시온산에 14만 4천 명 이기는 자들이
예수님 공중 강림 할 때 휴거 되어서 그들이 있는 곳이
시온산이었다.


13장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후3년 반에 14만 4천 명이 어디 있는가를 보여주는데
시오산에 있었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3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짐승이 나타나서 하나님을 훼방하고 그때 하늘에 거하는
자들이 휴거된 14만 4천 명인데 그들이 거하는 시온산을
‘하나님의 장막이다’ 이렇게 부른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온산은 하나님의 장막이다.


요한계시록 15 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하늘에 장막 성전이 있는 것이다.


모세가 성전을 본 따서 그대로 성막을 세웠다.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성전,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기 전까지
하늘나라에는 증거 장막이라고 하는 성전이
모형으로 있는 것이다.


그 증거 장막의 성전에 지성소가 시온산이라는 말이다.


14만 4천 명의 휴거되는 분들이 장막 성전인 시온산
지성소의 추수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3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가라지와 알곡 말씀하시면서
그 알곡은 모아 내 곳간에 들이겠다.
익은 열매 처음 열매 된 그들을 추수하여 곳간에
넣은 것이 시온산이고 그것이 장막 성전의 지성소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다.


요한계시록 7장 말씀에 보면
14만 4천 명을 하나님이 구별하여 인을 맞은 자들이
모여 있고 5절부터 보면 대 환란, 큰 환란을 통과한 자들
휴거 되지 못한 모든 사람들 이들이 다 큰 환란을 통과한다.


요한계시록 7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큰 환란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전부 한꺼번에 큰 환란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이 흰옷 입은 자들이 어디서 왔느냐?
이들은 14절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성전에 도착해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하나님이 그들 위에 장막을 치겠다 이 말은
여기에 큰 환란을 통과한 사람들이 성소에 한꺼번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니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새 하늘 새 땅이 나타날 때 거기서
이 장막이 열리게 된다.


그때까지 큰 환란을 통과한 사람들은 부활체를 입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늘의 도성인 예루살렘 시온산, 하늘나라에 있는데
구약 시대에 익은 열매 된 24사 장로를 비롯해서 교회 장로들,
총회, 천만 천사 이들이 다 예루살렘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장막 성전을 곡간으로 삼아서 영혼들을
추수하고 요한계시록 15장, 14장 계속 보면
그 성전에서부터 천사가 나오고 일꾼들이 나와서
계속 이 장막 성들을 중심으로 일을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가 있다.


고린도후서 5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예수 믿는 우리가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전을 모시고
그 가운데 육체 속에, 이 마음속에 장막이 있는데
우리가 죽어 지면은 이 장막을 떠나는 것이다.


그럼 그다음에 어떻게 되겠는가?
하늘에 있는 장막 그것이 하늘 집인 것이다.
그 장막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휴거 되는 분들은 지성소 시온산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큰 환란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단체로 그들이 다 성소로
함께 들어가게 돼 있는 것이다.
그것을 하늘 장막이라고 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21절~22절에 보면 모든 지체가 모여서
성전이 이루어져 가고 있다고 사도 바울이 표현 했다.


시편 84편 시온의 대로라고 하는 말을
어떤 성경에는 시월의 순례길이다
이렇게 표현을 하였다.


그러니까 내 마음의 시온이라고 하는 하늘 본양을 향해서
그 분을 신뢰하여 목적지로 삼고 간 사람을 순례자라고 한다.


우리는 그 하늘 시온을 순례지로 삼아서
그곳까지 가는 순례자들인 것이다.
그것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자가 복이 있다
이렇게 말씀한 것이다.


두 번째
마음속에 시온의 대로라고 했는데
그것은 또한 소로이기도 하다. 하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겠는가?
대로면 고속도로다. 지금 하이웨이이다.


그냥 마음껏, 신호동도 없이 마음껏 순식간에 할 수 있는
그런 도로인데 반면에 그것이 좁은 길이다 하는 사실을
우리가 또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7 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넓은 문으로 가는 멸망의 문은 그 문도 크고 길이 넓어서
많은 사람이 넓은 문, 넓은 길로 걸어가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은 문을 들어가서
좁고 협착한 길을 다 지나야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속에는 시온의 대로가 활짝 열려 있지만
이 시온에 대로가 가는 우리의 모든 삶은 좁고 협착한
길이라는 것이다.
대로이자 동시에 소로라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목사님이 강원도 인제에서 군 생활하기 수십 년 전에는
휴가를 받으면 부산까지 고향 집에 가는 데
13시간 반이 걸렸다는 것이다.


13시간 반을 전철타고 기차타고 버스를 타고 가는데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기쁘다는 것이다.


오래간만에 휴가를 받았으니까 부모님을 만날 수 있고
동생들도 만날 수 있고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고향에 가는 마음은 휴가로 들뜨고 깊은데
실제로 거기까지 가는 길은 13시간 반 동안
몸은 고달프고 힘든 그런 간증을 했는데 바로 그것이다.


내 마음에는 시온의 대로가 열려서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그 즐거움으로 그 하늘 순례길을 가지만 실제는
이 세상에서 십자가를 져야 되고 자기를 부인해야 되고
여러 가지 원수들과 싸워야 되고 여러 가지 고통과 지료를
받으면서 이 길을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대로이기도 하면서 또한 소로이기도 하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가는 길이 마음의 시온의 대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믿음으로 가는 길이 대로고 영광에 동참하고 영생을 향하여
가는 그 길이 그 기쁘고 즐거운 길인데
십자가를 져야 되겠고 내 몸에 베인 십자가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는 것 때문에 이 영적인 선한 싸움 때문에
우리는 좁고 협착한 길이라고 하는 좁은 길을
또한 동시에 간다는 것이다.


그나마 시온의 대로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복된 자고
그 소망을 따라가기 때문에 우리 모든 이 좁은 길을 감당하며
달려갈 줄로 믿는다.


마지막 세 번째
시온의 대로를 걸어가는 자들의 실제적인 삶이
본문 가운데 나와 있다.


이 마음의 시온에 데려가 있는 자들은 언제나 성전을
그리워하며 사모하는 삶이다 라는 사실을 우리가
시편 84 1~2을 통해서 알 수 있다.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모세가 지은 그 성막을 주의 장막이라고 했는데
아까 본 것처럼 하늘에도 그 장막이 있다.
지금 그걸 향해서 가는데 그 장막을 바라보는데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걸 사모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 고라 자손이 문지기 직책을 맡았다가
포르생활로 끌려가서 이제는 성전을 사모하지만
예배도 드릴 수 없고 찬양도 할 수 없고
그러니까 그 문지기 생활했던 하루가 얼마나 복 되었던가
악인의 장막의 천 날보다 더 귀했다.
그것을 생각하며 사모하는 것이다.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마음의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의 삶인 것이다.


주의 성전을 그리워하고 얼마나 주의 궁전을 사모하였으면
쇠약했다고 하겠는가? 병이 낫다.


포로 생활 가운데 있지만 그 여호와의 궁전을 그렇게 사모하고
그것을 기다리고 돌아가는 날을 보면서 병이 났다는 것이다.


코로나 핑계 때문에 예배가 많이 축소됐는데 ‘코로나 때문에
어차피 교회 못 가는데 핑계 낌에 집에서 예배드리지’
이런 마음들이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정말로 마음의 시온의 대로가 열린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그것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여
부르짖어 기도하고 그다음에는
주의 집에 거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다


시온의 대로가 열린 사람은 주에 전에 와서
항상 찬양하는 사람, 부르짖는 사람들이다.


3절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마음의 시온의 대로가 열린 사람은 하나님의 집,
이 제단이 보금자리에 같다는 것이다.
그것이 마음의 시온의 대로가 열린 자들의 삶인 것이다.


미물인 참새도 성전의 처마 밑에다가 집을 짓고
보금자리를 삼았는데 너희는 하물며 참새일까 보냐?


참새보다 귀한 우리인데 우리가 다 이 하나님의 성전을
보금자리로 삼아서 살아가는 인생이 성전을 사모하는
삶이고 시온의 대로를 걷는 자의 삶인 것이다.


시온에 대로가 열린 자들은 5 말씀 이하에 있는 것처럼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눈물 골짜기 같은 죄악 세상을 살아가지만
주님께 힘을 얻고 또 힘을 얻어서 그 눈물 골짜기도
오히려 은혜를 샘으로 아무 쓸데없는 이른 비와 같은 것도
은택을 입혀서 결국은 모든 만물이 전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가 된다는 것이다.


시온의 대로를 향하여 걸어간 자들은
5절 주께 나와서 힘을 얻고
7절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서
한 번 힘을 얻는 것이 아니다.


마치 독수리가 날개 칠 때 날개를 한 번 한 다음에
그다음에 쉴 수가 없다.
또 날개 짓을 해야 계속해서 공중을 훨훨 날아가는 것처럼
주님께 나와서 힘을 얻고 또 얻고 계속해서
그 시온의 대로의 일을 그때까지 힘을 얻고 또 얻으면서
가는 것이 마음의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의 삶이다 하는 것이다.


그다음에 시온에 대로가 있는 자는 11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온의 대로가 마음에 있는 자들은 정직히 행하는 삶을
사랑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롭게 하고 영화롭게 하고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시고 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시온에 대에 와 있는 사람은 12에 말씀하신 것처럼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에서 아시아에서 당한 환란 때문에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것 같은 그런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늘 하나님만을 의지했다 말씀한다.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우리가 계속해서 어떤 환경이 온다 할지라도 주님을 의지하여
거기서 건져주시고 또 더 주님께 의지하고 그런 줄을 믿고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지난번에 우리가 역대야 14장 11절에 아사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아사 때에 구수 사람이
백만 대군으로 쳐들어왔지만 절반밖에 안 되는 군대였는데
이런 고백을 했다.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나는 약한 자이다. 저쪽은 백만 군대를 사가지고 다가오는데
골리앗과 다윗이 싸우는 것처럼 잘 무장된 갑옷을 입고
달려오는데 다윗과 같이 물맷돌밖에 없다.


그런데 그 골리앗은 누구를 대척하는 것인가?
하나님을 대척하는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아사의 고백 따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이 도우셔서
그 약한 자를 도우셔서 하나님이 구스를 쳐서 패배하게 했는데
백만 대군이 한 명도 남지 않고 다 죽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약한 자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놀랍게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자꾸 마음이 나이가 먹을수록 약해지고
뭔가 자녀를 의지하는 마음이 생기고
무언가 건강도 자꾸 나빠지고 세상이 어려워지니까
자꾸만 괜히 쓸데없이 눈물이 나기도 하고
그러면서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의지할 것은 하나님의 그 모든 것을
의지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믿음의 선진들은 가나한 땅에 들어갔지만
거기는 진짜 본향이 아닌 것을 생각하고 더 나은 본향을
생각하니까 하나님이 한 성을 예비해 놓으셨다고
그것이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인 것이다.


우리는 때에 따라 십자가를 지고 가지만 우리의 마음에는
시온의 대도가 있는 자들인 것이다.


이 마음의 시온에 대로가 있는 자들이
진실로 산 소망이 있는 자들이고
진실한 사랑을 찾아가는 자들이고
그들이 믿음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다.


이사야 35 8~10 말씀
8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9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10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천년 왕국에서 이루어진 일을 말씀한 내용이다.


그가 하나님의 나라 천년 왕국의 대도가 열려 있는데
그 시온의 이를 자들은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만 위하여 있는 길이라고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다니지 못하고
거기에는 사자도 사나운 진승도 올라오지 않고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오고 속량함을 받은 자들만
돌아와서 그곳에서 노래하여 영영한 희락을 띄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을 것이고 슬픔과 탄식이 사라진다.


찬송과 340장을 부르신 것처럼 ‘주를 의지하는 자’
그것이 정말 기쁜 일인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나의 생명의 주인 되시고
이 영원한 희락과 기쁨을 줄 그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그 자체가 우리의 그것이 기쁜 것이다.


남은 생에 마음의 시온에 대로가 활짝 열려서
이 땅에는 좁은 길을 걸어가지만 주님께 힘을 얻고
성전을 사모하고 정직하게 행하고 주님만을 의지하여
순간순간 승리하며 이 복된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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