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견대로 사는 삶
사사기 17장 6절~13절
오늘도 주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모든 꽃은 모양과 색깔과 향기가 다르다.
지금 장미가 한창 피는데
장미도 다 똑같지 않고
모양과 색깔의 향기가 다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생김새가 다 다르고
신분이 다르고 빈부귀천이 다르고
여러 가지 특별한 점이 다 다르다.
그런 것처럼 성경의 모든 책도
다 주제가 틀리고 전부 특징이 다르다.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그 성경마다 주제가 있고
특별한 점이 있다.
다 특징이 있다.
첫 번째
오늘 읽은 사사기의 주제는 무엇일까?
사사기의 특징은 무엇일까?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분배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아직 왕이 없기 때문에 통일 왕국이 없었다.
그 시대가 약 300여 년간 이어졌는데
사무엘이 나타나서 사울에게 왕으로 기름 부을 때까지
그때까지 약 300여 년간 사사들이 다스리는 시대였다.
아브라함 이후에 400년 만에 모세와 함께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지나가면서
하나님께 계명을 받고 말씀 지키는 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
계속해서 우상을 섬겼고 12지파 동족 간에 전쟁을 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셨다.
그래서 주변 나라를 강하게 하셔서
그 나라가 어려움을 겪게 하셨다.
그리고 사사들을 통해서 구원하셨다.
이 사사기의 주제 중에 하나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다.
자그마치 사사 시대 300년 동안
일곱 번이나 반복을 했다.
일곱 번이나 하나님 말씀을 잘 실천하면
사사를 세워서 이기게 하시고
나라를 잘 되게 하시다가
우상을 섬기고 말씀을 실천하지 않으면
또 주변 나라를 강하게 하고 또 압박을 하시고
또 잘 섬기면 하나님이 사사를 통해서 다시 건지셨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와
여전히 택한 백성을 사랑하셔서 건지시는 하나님!
이것이 사사기의 주제다.
반면에 특징은
사사기 17장 6절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왕이 없으니까 사람마다 자기 소견대로
이렇게 사는 시대였다는 것이 사사 시대의 특징이었다.
사사기 18장 1절, 21장 25절
"18: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 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사사 시대의 특징은 왕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것이 사사기의 특징이다.
소견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어떤 일이나 사건, 물건을 보고 그때 느끼는
생각이나 의견이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소견서를 써주는 것처럼
"이 사람은 지금 어떤 병인 것 같다"
이런 소견, 자기 의견, 생각을 말한다.
이 소견을 다른 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을 했다.
소견대로 다 자기 옳은 소견으로 살았다는 것이
"사람마다 제멋대로 하던 시대였다",
"사람마다 자기 생각에 좋을 대로 하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
이렇게 번역을 했다.
즉 이 말은 자기의 뜻대로 했다는 것이다.
제멋대로 하던 시대였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하였다는 것이다.
이 본문 17장에서는 자기 소견대로,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자기 뜻대로 하는
가정의 예를 우리가 여기서 볼 수가 있다.
사사기17장 1~5절
"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2 그 어미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일천 일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취하였나이다
어미가 가로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3 미가가 은 일천 일백을 그 어미에게 도로 주매 어미가
가로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 차로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돌리리라
4 미가가 그 은을 어미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미가 그 은
이백을 취하여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5 이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더라"
미가의 가정에 자기 뜻대로 자기 소견대로
제멋대로 하는 그런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다.
오늘 읽은 말씀처럼 이 미가라고 하는 사람이
은 일천일백을 어머니가 잃어버렸는데
어머니 것을 도적질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 은을 훔쳐간 사람을
저주 해버리니까 겁이 나서 도로 갖다 주었다.
그 장면이 1~2절에 나와 있다.
그런데도 그 어미가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받기를 원하노라"
자식은 부모의 돈을 훔쳐가고 자기가 훔쳐간 사람을
저주했지만 그것이 자기 아들인 걸 알고 내 아들이
복 받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그래서 은 일천일백이라는 그 돈을 가지고
아들을 위해서 신상을 만들었다.
이것을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리노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은 이백을 취하여 은장색에게 주어서 신상을 만들고
그것을 집에다 갖다 두었다.
그리고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다.
여기서 제멋대로 했다는 게 무엇인가?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에 속한 곳이다.
성전은 남쪽 유다 예루살렘에 가야 있는데
거기까지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없으니까
각각 신당을 차렸다.
신당을 차려놓고 거기다 신상을 갖다 놓았다.
그리고 제사장이 입는 옷을 마음대로 만들었다.
그리고 우상 드라빔을 만들고
심지어는 자기 아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았다.
이것이 제멋대로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법과 계명으로 정하신 법도를 다 무시하고
제사장을 마음대로 세우고 우상을 세우고 신상을 만들고
드라빔을 만들고 들을 세워 제사장을 삼고
왕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종교적으로
제멋대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고
사사기 17장 7절 이후에 말씀에 보면
한 유다 베들레헴 한 소년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레위지파 사람이었다.
두루 돌아다니다가 미가에 집에 와서 거할 것을 찾았는데
그 미가가 이 사람이 레위지파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가정의 제사장으로 삼았다.
자기 가정의 제사장으로 삼아서 은 열과 의복 한 벌,
식물을 주어서 함께 거하게 되었다.
사사기 17장 11~13절
"11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으니 이는
그 소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12 미가가 레위인을 거룩히 구별하매 소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거한지라
13 이에 미가가 가로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자기 멋대로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고
이제 어린 소년을 제사장으로 삼고 그러고
이제 내가 이 레위인을 내 제사장으로 삼았으니까
하나님이 내게 복 주실 것을 안다"
이것이 얼마나 제 멋대로 사는 것인가?
이것이 사사기를 통해서 나타난 소견대로 사는
그 시대에 한 가정의 모습을 우리가 여기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사기 18장 1절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 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이 단 지파는 땅이었기 때문에 기업을 찾으러 다니는데
다섯 사람의 정탐꾼을 먼저 보냈다.
이 다섯 사람의 정탐꾼들이 미가의 집에 왔다가
그 레위지파 사람이 제사장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이런 사건이 또 나타나있다.
사사기18장 18~19절
"18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만든 신상을 취하여 내매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19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단 지파 사람들이 와서 미가의 드라빔도 뺏어가고 에봇도
뺏어가고 신상도 뺏어가고 결국은 600명이 그 세력을 가지고
자기들의 제사장으로 뺏어가 버리고 말았다.
사사기 18장 26절
" 단 자손이 자기 길을 행한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600명의 군대가 와서 그것을 다 뺏어 가니까 미가는
아무 소리 못하고 그걸 다 뺏기고 말았다는 것이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단지파가 빠진 것을 볼 수 있다.
단 지파가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각 지파마다 축복할 때
그 단은 첩경의 독사로서 적그리스도의 지파가 되는 것을
미리예언 하고 있다.
사사기 17장 18장의 미가의 집을 중심으로 볼 때
그 당시에 종교적으로 난장판이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난장판이 된 세상이고
경제적으로 난장판이 될 세상이었다.
결국 이것은 자기 소견대로, 자기 옳은 대로, 제멋대로
자기 생각에 좋을 대로만 살아가는 그런 때였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받는 교훈이 무엇이겠는가?
로마서 10장 2~3절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자기 멋대로, 자기 소견대로, 자기 뜻대로 이렇게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의를 세운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의 로마서 10장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멸망한
분명한 이유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는데
지식을 쫓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를
세우려고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멸망했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자기 의’ 대로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의’ 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어야 한다.
미가와 그 어머니가 그 가정에서 복 받기를 원해서
신상에 섬기는 것 자체가 ‘자기 의’ 이다.
아무리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린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우상의 신상을 만든 것 자체가
하나님의 법도를 무시하는 것이다.
멋대로의 에봇을 만들고 멋대로 제사장을 세우고
이렇게 전부 열심은 있고 복 받기를 원하지만
전부 ‘자기 의’ 대로 한 것이다.
마태복음 5장 20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의 의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의라는 것이다.
이 의는 좀 전의 로마서에서 말한 "자기의 의" 인 것이다.
그래서 바리세인들이 멸망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자기의 의를 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찾아야만 한다.
자기 의는 자기 소견대로, 옳은 대로 한다고 하는 것이고
자기 기준의 삶이고 성경해석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인 것이다.
결국 사사가 왜 필요했는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사는 재판관이다.
캐톨릭에서는 사사기를 판관기라고 한다.
기준이 없던 세상에서 사사가 재판관이 되어서
기준을 세워주는 것이다.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지 않으니까 사사들 통해서
그 시대를 건져낸다고 하는 것은 그 난장판 된 세상,
자기 멋대로 하는 세상을 하나님이 사사를 통해서
기준을 세워주기로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한 성경의 기준과 하나님의 의를 찾아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누가 우리의 왕인가?
성경의 본문은 왕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의 모든 교훈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들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예수님이 공중강림하여 오시면 예수님이
7년 큰 환란을 통하여 메시야 왕국을 이루고
그때 하나님의 나라가 눈에 보이게 나타난다.
천년왕국이 지나고 나면 새 하늘 새 땅을 이루어서
하나님 나라가 나타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나라는 우리의 심령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내 심령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어떻게 메시야 왕국에 들어가고 우리가 새하늘 새땅에
가서 하나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겠는가
내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한다.
나라는 반드시 세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
나라는 반드시 땅이 있어야한다.
영토가 있어야 한다.
땅이 없는 나라는 없다.
그다음에는 백성, 국민이 있어야 나라가 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주권이 있어야 되는데
그 나라를 누가 다스릴 것이냐?
그 다스리는 주체 주권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세상 나라에 세 가지 조건이 있어야
나라가 되는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마음속에
이 하나님의 나라에도 세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오시는 메시아 왕국에도
세 가지 조건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하나님이 왕이 되셔야 하나님 나라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왕이 되어야 한다.
사사기 8장 22~23절
"22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23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기드온 시대에도 하나님이 나라와 민족이 어려울 때
기드온을 통해서 나라를 건졌는데
모든 백성들이 "기드온이 우리를 다스렸으면 좋겠습니다"
요청했지만 기드온은
"내가 너희를 다스지 아니하고 나의 아들도 다스리지
않을 것이고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릴 것이다"
사사 배후에는 하나님이 그들을 세워서 다스리게 하는
거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이다.
사울을 세우고 다윗을 세우고 솔로몬을 세워도
세상 나라 왕의 그 배후에는 하나님 왕이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이 왕이요
하나님이 왕이신 것을 여러분 믿길 바란다.
요한복음 18장 35~37절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 앞에 나간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포하고 계신다.
그리고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다"
그것 때문에 내가 왔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왕이시고
이 세상 안에 있는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왕이신 것이다.
이 나라는 주님이 다스릴 장차 나타날 메시야 왕국이고
또 하나는 사람의 마음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바로 땅인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이 다스리는 영토이다.
그러면 그 백성은 누구인가?
우리의 마음이 땅이라고 하면 그 마음 안에 있는
양심과 지성과 의지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다고 하는 것은
내 마음의 땅이라고 하는 이 영토 속에 내 안에 있는
내 양심과 지성과 의지라고 하는 그 백성이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는 그런 나라가 나타날 때 그의 심령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된다.
양심과 지성과 의지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내 마음의 땅 안에 백성이 바로 이 세 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지 않고 내 양심이 내 멋대로 내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제멋대로 사는 것이다.
지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내가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는 것인데
그 지성이 내 멋대로 세상지식과 내 멋대로
내 손 소견대로 살아가면
그것이 제멋대로 사는 난장판 세상이 된다.
양심으로 깨닫고 지성으로 알게 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 의지를 드려서 그 왕 되신 주님 앞에 순복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인데
의지가 내 멋대로 내 계산대로 내 방법대로
내 멋대로 살아가면 그건 하나님 나라가 아니고
오늘 말씀한 것처럼 소견대로 살아가는 삶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간
사사시대처럼 자기의 양심과 지성과 의지가
자기의 소견대로 살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37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고 내 마음의 땅에
양심과 지성과 의지라고 하는 백성이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는
그 사람들은 반드시 진리에 대해서 듣게 돼 있고
진리를 알게 된다고 말씀한다.
그 진리를 모르면 양심이 왕으로 섬긴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하게 된다.
반드시 진리의 소리를 듣게 돼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가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에 주님은 길이 되신 분이다.
그리고 그분은 진리라고 말씀하신다.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인데 그 길은 진리로만 갈 수 있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복하여 사는 양심과 지성과
의지로 만들어 질 때 예수님이 나의 왕이 되시고
하나님 나라를 내 속에 이루게 되는 것이다.
디모데 후서 2장 15절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지 못하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일꾼이 되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해야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을 잘 듣지 못하면 그 백성이 될 수가 없고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가 없기 때문에 진리를 옳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4장 1~4절
"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이것은 마지막 때 징조 중에 하나인데
바른 교훈보다는 미가의 가정처럼 오직 정욕을 따라
복을 받고 그것을 만족시켜주는 그 귀에 듣기 좋은
그 말만 하는 그런 스승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귀가 가려운 것이다.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서 허탈한 이야기를 쫓으리라"
이게 마지막 때의 큰 징조 중에 하나이다.
바울은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교회가 분명한 진리의 기동과 터로 이렇게 세워져야
그것이 참된 교회고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그 길이 되는 것이고 진리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고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우리의 심령 안에 왕으로 분명히 모시고
그 왕의 소리를 들어서 내 양심과 지성이 거기에 따라
늘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이 진리를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거라고 요한복음에 말씀하고 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너희가 말씀대로 계명대로 사는 것,
진리대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진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영혼을 자유케 하는 길이다.
자기의 소견대로 살아가는 이러한 시대 속에서 우리는
자기의 멋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좋은 대로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고 분명한 성경의 기준인
말씀과 진리를 중심으로 해서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섬기는
그런 사람이 되어 질 때
우리는 소견대로 살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진정한 축복의 길을 가게 된다.
오늘 사사 시대와 같이 왕이 없으므로 제멋대로 사는
세상인데 이것이 마지막 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섬긴다고 하지만
사실은 경건의 모양만 있지 경건의 능력이 없다고 하는 것은
진리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이 왕이 되지 않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나는 삶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심령의 만왕의 왕으로 모시고
그 주님의 음성의 귀를 기울이면서 정말 내 마음이라고 하는
땅속에 양심과 지성과 의지라고 하는 백성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그래서 우리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그 음성을 통해서 매일매일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