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 순종하라
에베소서 6장 1절~3절
어머니의 날만 있었는데
아빠들이 왜 불공정하게 아빠의 날은 없느냐 해서
합쳐서 어버이의 날이 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는 지금도 어머니의 날이 따로 있다.
그날이 오늘 5월 둘째 주가 어머니의 날이다.
6월 달에 아빠의 날이 따로 있다.
교회에서는 어버이의 주일로 함께 아이들과
예배드리고 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 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드릴 텐데
첫 번째
부모가 누구일까?
우리의 생명이 두 가지가 있는 것을 알아야 된다.
눈에 보이는 육정인 생명이 있고
눈에 안보이는 영적인 생명이 있다.
우리 각자의 육적인 생명은 엄마 아빠를 통해서 왔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영적인 생명도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주기도문에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 부른다.
육적인 생명을 엄마 아빠가 낳아서 길러주신 것처럼
영적인 생명은 누가 길러주는가?
물론 예수 믿는 부모님도 우리에게 영적인 생명을 길러주시지만
이 교회 학교에서 우리 전도사님, 선생님들, 목사님, 사모님
이런 분들이 영적인 생명을 길러주는 것이다.
부모님은 나를 낳아서 길러주는 부모님도 부모님이지만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도 아버지시고
선생님, 목사님, 사모님도 영적으로는 부모님이라는 것이다.
성경에는 부모님을 공경하라, 부모님을 순종하라 그러면
육적인 부모님에게도 순종하고 공경해야되고
나의 영적인 생명을 키워주는 전도사님과 선생님들,
목사님과 사모님에게도 공경을 같이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육적인 부모님과 함께 영적인 부모님도
계시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두 번째
부모님을 순종하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순종이라고 하는 말은
내가 그 앞에서 그분의 말을 듣는 것이다.
말을 듣고 그다음에는 말씀하신 것을 지키는 것이
순종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2장 51절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어린아이 시절에 나사렛에 가셔서
그 부모님에게 순종하며 받드셨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셨다.
우리가 부모님을 순종하라 그러면 부모님을 높이 받들어서
그 분의 말을 듣고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부모님을 무시하면 안 된다.
부모님을 깔보면 안 된다.
내가 원하는 건 못해준다고 깔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이 나보다 잘 모른다고 무시해서도 안 된다.
나이가 들면 부모님이 점점점 모르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82세 된 노인 아버지와 52세 된 아들이
거실에 앉아 있는데 창밖에 이렇게 보니까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저게 뭐냐?’
아들이 다정하게 대답했다.
‘까마귀예요. 아버지’
그런데 조금 있다가 아버지가 또 묻는 것이다.
‘저게 뭐냐’ 그러니까 아들이 ‘까마귀라니까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노인이 세 번째 또 물었다.
‘저게 뭐냐?’
아들은 좀 짜증이 많이 났다.
‘아버지 까마귀라니까요.’
아버지가 느낄 만큼 짜증이 섞여 있었다.
조금 있다 아버지가 또 물었다. ‘저게 뭐냐?’
아들이 화가 나서
‘까마귀! 까마귀라고요. 왜 자꾸만 같은 말을 똑같이 해요.
까마귀라니까’
그러니까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서 오래된 책 한 권을 들고
나왔는데 그게 뭐냐 하면 아버지가 쓴 일기장 이었다.
그 일기장을 열어보니까 그날이 마침 5월 9일 날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5월 9일 날 쓴 일기인데
그 일기장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오늘은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이 ‘저게 뭐야?’ 하고 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대답해 주었다.
아들이 세 살 때 일기이다.
조금 후에 아들은 또 물었다. ‘저게 뭐야?’
나는 웃으며 대답 했다.
‘저것은 까마귀야’
그런데 아들이 조금 있다가 또 물었다.
‘저게 뭐야?’ ‘저것은 까마귀야’
아버지 일기장에는 연이어 23번을 똑같이 물었다는 것이다.
3살짜리 아들이 저게 뭐냐고 23번을 물었는데
아버지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아들은 똑같이 물었지만 나는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대답해줬다. ‘까마귀라고’
똑같은 대답을 23번이나 하면서도 나는 즐거웠다.
아들과 내가 묻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아들에게 사랑을 준다는 일이 즐거웠다.
그 일기장을 본 아들은 어떻게 했을까?
눈물을 글썽이며 아버지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세 번 묻고 네 번 물을 때 짜증을 내면서
까마귀라고 왜 그것도 알아듣지 못하냐고 계속 화를 냈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이 3살 때 23번을 물었어도 사랑으로
대답해 주면서 그것 자체가 기쁘고 즐거웠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우리를 낳으시고 기르면서 이렇게 하신 것이다.
그러니 부모님이 내가 하는 걸 모른다고 무시해도 안 되고
깔보아도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을 높이 예수님처럼 받들면서
부모님에게 순종해야 한다.
잠언 23장 22절, 25절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부모님을 무시하거나 깔보지 말고 그 부모님을 순종하여
높이 받들어서 그 말씀을 듣고 경히 여지기 말고
부모를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해 드리는 것
그것이 부모님을 순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보니까
에베소서 6장 1절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에 부모님이 예수님을 안 믿어 ‘너는 교회 가면 안 돼’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가 순종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목사님이 ‘여러분 거짓말을 해서라도 부자가 되어야
됩니다. 남을 짓밟고라도 성공을 해야 됩니다.’
그럼 그 목사님 말씀에 순종해야 되는가?
순종하면 안 되는 것이다.
부모님과 영적인 부모님에게 순종할 때
우리가 ‘주 안에서 순종하라’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먼저 아버지가 되셔서
그 아버지 하나님이 성경에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그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순종하는 것이다.
잘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주 안에서 순종해야 되는 것이다.
세 번째
부모를 공경하라 이렇게 본문에 말씀하셨는데
이 공경하라 이 말은
‘저분들이 나의 부모님인 것을 명예롭게 여겨라’
‘그 부모님을 높이 평가하라’
‘나의 부모님이 대통령보다도 높으신 분이다.’
이렇게 귀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내 부모님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여기모인 우리들이 자녀도 있지만도
우리에게 부모도 계시다.
그래서 우리가 다 부모님 입장, 자녀 된 입장에서
부모님을 높이 귀하게 여겨서 공경해야한다.
왜냐하면 ‘부모님을 공격하라’ 하는 것이
약속이 있는 첫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다.
그중에 네 가지의 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 나머지 여섯 가지는 사람을 섬기는 건데
그 첫째 계명이 주 안에서 네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
이런 계명인 것이다.
부모님을 잘 섬기고 공경하면 그다음에
에베소서 6장 3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님을 공경하고 잘 섬기면 오래 살 수 있고
하는 일이 잘 될 수 있다고 성경에는 분명하게
약속을 해주고 계신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을 잘 공경을 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도 부모님을 잘 섬겼다.
그래서 왕이 되고 훌륭하게 되었다.
요셉도 형들이 자기를 팔았지만 그 형들의 아이들까지
다 양육을 시키며 부모님을 잘 섬겼다.
그래서 애굽의 총리가 되어 110살 까지 살았다.
요한사도는 직접적인 어머니는 아니지만
예수님이 마리아 어머니를 부탁한다고 하니까
마리아를 돌아가실 때까지 잘 모셨다.
요한은 98세까지 살면서 요한계시록을 완성했다.
부모님을 잘 섬기면 우리가 장수하고 땅에서 잘 되는
이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잠언 30장 17절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고 아버지를 조롱하면
까마귀와 독수리가 눈을 빼 먹는다.
얼마나 무서운 하나님 말씀인가?
이렇게 두려운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
신명기 27장은 16절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주면서
네 부모를 경홀히 여기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백성에게 ‘아멘’하라고 하였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말씀을 해 주셨다.
부모님을 공경하면서 부모에게 잘 하면
하나님이 장수하고 잘되는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세 가지로 효도를 해야 한다.
1) 부모님을 육체적으로도 공경을 해야 한다.
엄마 아빠가 아프다고 하면 주물러 드리면서
육체적으로도 잘 공경을 해야 하고
2) 마음을 편하게 해 드려야 된다.
3) 영적으로도 효도를 해야 한다.
부모님이 예수 안 믿으면 전도하고 어찌하든지 부모님이
영적으로 잘 되도록 영혼육 세 가지로 잘 섬겨야 한다.
그 유명한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흥렬이라고 하는 분이 일본에 가서
음악공부를 하는데 피아노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어머니 이제 돈도 없고 피아노도 살 수 없어
공부할 수가 없으니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유학 간 아들 이흥렬을 뒷바라지하는 어머니가
‘그래. 돈도 없고 너 도와주기가 힘드니까 돌아와라’
그렇게 하지 않고
어머니가 독한 마음을 먹고 새벽부터 나가서
돈 되는 것이 없으니 동네 산을 다 돌며
솔방울을 긁어모았다.
그렇게 하여 큰돈을 마련했는데 1930년대니까 82년 전에
쌀 한가마니가 13원 하는데 400원을 마련했다.
그 돈을 일본에 있는 아들에게 보냈다.
그 아들이 그 돈으로 피아노를 사
피아노로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음악가가 되었다.
그래서 작곡한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란 노래이다.
양주동씨가 곡에 가사를 썼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엔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니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깍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 없어라
어머니의 사랑으로 그 어머니가 보내주신 돈을 가지고
피아노 공부를 해서 ‘어머니의 마음’이라고 하는
이런 노래를 만들어 낸 것이 지금까지 불려지는 것이다.
경상도 지역에 가면 양반자녀들에게 삶의 도리,
부모님을 섬기는 것, 어른 섬기는 이런 도리를 가르치는
규방가사라고 하는 그런 가사가 있는데
경계사라고 하는 곳에 부모님을 모신 노래가 있다.
무정하다 세월이여 연기가 성년이라
지낸 세월 생각하니 꿈속같이 지냈구나
십세 전 자랄 때는 철이 없어 몰랐세라
다시 깨쳐 생각하니 부모은공 어찌할꼬
저를 낳아 기른 은공 어찌하여 보답할꼬
산아 산아 높은 산아 네 아무리 높다한들
우리 부모 날 기르신 부모공덕 미칠소냐
바다 바다 깊은 바다 네 아무리 깊다한들
우리 부모 날 기르신 부모 은혜 미치소냐
남녀를 막론하고 사람이면 사람이랴
사람도리 닦은 후에 방가위지 사람이랴
말이 어려운데
남녀를 막론하고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고
사람도리를 다 닦은 후에 부모 은공을 갚아야
과연 이것이 사람이구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이런 노래이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경상도에서도
부모 은공을 갚으려고 노력했다.
우리나라에는 두 가지 자랑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북한에 있는데 아주 아름다운 금강산
그리고 우리 한국 조선에는 부모 공경하는 미덕
이것이 금강산과 더불어 민족적인 자랑이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다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금강산은 북한에 있어 가볼 수도 없고
부모 공경하는 미덕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십여 년 전에 어떤 뉴스를 보니까
수유리 한 골짜기에서 노부부가 그 골짜기에서
부부동반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육남매를 키우느라고 집 팔고 땅 팔고 다 가르치고
이제 노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자식들에게 가서 얹혀살게 되었는데
어느 자식 하나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육남매를 집 팔고 땅 팔아 이렇게 키워냈는데
아무도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고 나중에는
의지할 곳이 없고 눈칫밥을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차라리 이렇게 살려면 죽는 것이 낫다싶어
노인부부가 동반해서 투신자살했다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3장 2절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치 아니한다고 말세의 때가 이르면
그런 때가 온다고 말씀한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치 않는 것이
말세의 징조이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면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
자식들이 철이 나서 효도하려고 이제는 마음을 먹었는데
그때 이미 어머니 아버지는 다 돌아가시고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전에 열심히 효도하라는 것이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 다하여라
지나간 뒤면 애닯아 어이하리
평생의 고쳐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살아계실 때 잘 섬기지 못하고
지나가면 애가 닮고 후회하는데
평생에 이것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모님 살아계실 때
육신적으로도 잘 공경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고
영적으로도 기도하면서 효도하여
좋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그렇게 세 가지로 부모님을 섬겨야 된다.
어버이 주일날 우리 어린이들 어리지만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님을 공격하고
예수님처럼 받들어 섬기시기 바란다.
그럼 여러분이 잘 되고 장수하는 그런 축복을
받을 것이다.
부모님들은 어린 아이 마음이 되어서 우리도 부모들에게
어린 아이들이 나에게 그렇게 순종한 것처럼
우리 모두도 순종하고 공경해서
이 약속처럼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귀한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기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