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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말씀의 향연/메세지

보수하는 자

by Andrew Y Lee 2021. 4. 24.

보수하시는 자

 

이사야 61장 4절~11절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던

자세한 모습들이 소개되어 있다.

 

누가복음 4 1~2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일 먼저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그 후에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마귀의 시험을 받게 된다.

 

누가복음 4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이렇게 40일 동안 금식하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고 나서

 

누가복음 4 14~15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갈릴리 지역을 돌아다니며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면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그 시작한 사역 중에서

누가복음 4 16~19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

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사야 61 1~2 

"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시면서 나사렛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것은

첫 번째,

'예수님은 보수하시는 분이다' 하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가 있다.

 

이사야 58 12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여기에 "너"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이사야는 메시야가 올 것을 많은 말씀으로 예언하고 있다.

12절에 있는 말씀 "너"는 예수님인데

"그 예수님이 무너지는 곳을 수보하는 자라"

개역성경에서는 수보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다른 성경에는 보수라고 써있다.

 

예수님이 메시야이고 그분이 보수하는 자고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하는 자라

이렇게 예언한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보수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수리하여 보존하는 것이다.

그냥 버리지 않고 그 부족한 것을 고쳐서 수리하여

그것을 보존하는 것을 보수라고 한다.

 

집이 망가지면 집을 없애버린 것이 아니고

그 어딘가 고장 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수리하여

다시 그 집을 보존하여 쓰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보수하시는 예수님이

이사야 61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4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여호와의 은혜의 해"

이 해가 바로 희년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성막을 지으시고 율법을 선포하면서 여러 규례들을 말씀하시는데

레위기 25 1~7은 안식년에 대해 나와 있다.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지켜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처럼

이 땅도 안식년을 지켜야 하는데

레위기 25장 3절~4절

"3 너는 육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년 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4 제 칠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찌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사람이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고 그다음 이레째는

안식을 지키는 것처럼 땅도 6년 동안 파종하여 농사를 지으면

7년째는 안식년을 주워서 농사짓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다.

 

광야 40년을 지나가면서 매일매일 만나가 내렸는데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았다.

40년을 훈련받으면서 먹고 살았는데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70년간 포로 생활한 것은

490년 동안의 안식년 70년을 지켜야 했는데

안 지켰기 때문에 한꺼번에 계산을 한 것이다.

 

이것이 포로생활 70년이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것을 찾으신다.

안식년을 안 지킨 것을 갚으신다.

언젠가 계산할 때가 오게 된다.

 

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가게 되면 희년이 오는데

8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찌니 이는 칠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

그러니까 7년씩 안식일이 일곱 번을 지나가서 49년이 지나면

50년째 되는 그해가 희년이라는 해이다.

희년이 되어 지면 레위기 25장에 길게 말씀을 하시면서

규례를 정해 놓았다.

 

그럼 희년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12지파에게 땅을 다 기업으로

나누어 주었는데 소유권은 하나님이시고

사용권만 갖고 있게 된다.

 

그런데 생활이 어려워서 그 땅을 소유권이 아닌 사용권을

누군가에게 넘겼을 때 희년이 오면 그 본래의 기업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고 빚진 것이 있으면 다 탕감해 주게 된다.

 

그리고 어디에서 종살이 하게 되면 다시 가족에게로 돌아가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희년을 지켰을 리가 없다.

그래서 율법으로 주신 안식년과 희년이 지켜지지 못한

그 부족한 부분을 예수님이 오셔서 보수하며

그 희년을 선포한 것이 누가복음 4장의 말씀이다.

 

예수님이 희년을 선포하면서 이제 그 희년과 안식년을 보수하여

그것을 세워나가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이 됐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4 21

"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율법으로 주셨을 때는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그 희년을 선포하면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셔서 가난한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기름을 부어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이것이 전부 은혜의 해인 희년에 이루어질 그 일이

이제는 예수님이 오셔서 희년을 선포하여

이 일이 이루어지면서

"이사야의 이 말씀이 오늘날 너희에게 응하였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가난한자에게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마음이 상한 자를 치료하시고

포로 되고 눌리자 눈 먼 자 이들을 다 고쳐주는데

바로 마음이 상하고 포로 되고 눈 멀 고

이 사람들이 안식년이 필요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희년이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구약의 희년을 누가 선포를 했는가?

바로 기름 부은 자 모세가 선지자가 되어

율법을 받아서 선포했다.

그것처럼 예수님도 성령이 오시니까 기름 부으셔서

선지자가 되어서 모세가 선포했던 그 희년을

예수님이 선포하셨다.

 

그런데 율법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서 그 희년이 선포되면서 

병들고 고통당하고 가난하고 포로 된 이 사람들에게

해방의 소식을 전해주고 자유의 소식을 전해주니까

그것이 바로 기쁜 소식이고 복음이 되었다.

 

예수님은 희년에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으며 예수님은 보수 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두 번째,

보수함을 받은 자가 누군가 하는 것이다.

 

나사렛에서 희년을 선포하신 이 복음기사는

오직 누가복음에만 있다.

다른 마태 마가 요한복음에는 없는 기사이다.

 

누가복음에만 유일하게 나타난 기사인데

누가복음 4장 말씀을 계속해서 좀 더 보면

누가복음 4 22

"22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포로 되고 눌린 자가 자유함을 얻고 눈먼 자가 눈이 열리게 되고

가난한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나사렛 사람들이

희년을 선포하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로운 말인지는 알지만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하며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씀을 기이히 여겼다고 하였다.

23

"2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여기서 "의원아 너를 고치라" 이 말은

"의사에게 너나 고쳐라" ,"너 자신이나 고쳐라"

 

그러면서 나사렛 사람들은 "우리가 들은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많은 기적을 보이셨는데 그 일을 여기서도 행하라!

 

그러면서 24

"24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오셔서 나사렛에서 희년를 선포하고 말씀을 전했는데

그것을 환영하고 받아들이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25절~27절까지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를 한다.

엘리야시대에도 3년 6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서

큰 흉년이 들었다.

그 곳에 많은 과부들이 있었는데 엘리야는 오직

시돈땅 사렙다 과부에게 보내졌다.

 

그리고 엘리사 때에도 많은 문둥이가 있었지만

수리아사람 나아만 이 한 사람밖에 깨끗함을 얻지 못했다.

 

이 예를 들으니까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쫓아내고

산 낭떠러지로 끌고 가서 밀쳐서 죽이려 했다.

 

왜 그들이 분이 가득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나?

 

엘리야 시대에 많은 사람 중에 은혜를 받았던

그 사렙다 과부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이방인이었다.

엘리사 때에도 수리아사람 나아만은 이방인이었다.

 

예수님께서 희년을 선포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영접하지 않으니까 이제는 예수님이

"이방인에게 이 희년을 선포하겠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말에 분하여

예수님을 밀쳐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희년을 선포했지만 그 소식을 환영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보수함을 입는다.

 

요한복음 1장 11~13절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이 이스라엘 가문에서 오셨고 이스라엘 땅에 오셔서

희년을 선포하며 그들을 치유하고 그들이 새롭게 되기를

원하셨지만 영접치 않았다.

 

그러니까 오직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런데 이것은 혈통으로도 아니고 육적으로도 아니고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다.

 

그 기쁜 희년의 선포에 복음의 소식을 듣고 영접하는 자와

환영하는 자들만 그 보수함이 이루어져서 죄 가운데 불행한

이 인생을 고치고 치료하고 새롭게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 놀라운 희년의 선포를 따라

그 길을 가게 된 사람들이다.

얼마나 놀라운 역사인가?

 

세 번째,

예수님을 본받아서 희년의 정신을 우리가 계승하고

그 정신을 실천하며 살면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5 11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시몬 베드로와 여러 제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시몬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들이 다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5 28

"28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마태가 세간에 앉은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나를 쫓으라 하시니까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쫓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당시에 세리는 부정을 저질러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마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아갔는가?

그것은 예수님이 희년을 선포하신 그 복음을 믿고 영접하니까

마음이 가난한 그들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고

마음이 상했던 그들이 치료되고 눈멀었던 것이

영적으로 눈이 열렸고 이 악한 세상에서 율법 안에 포로 되고

갇힌 상태에서 자유를 경험하게 되니까

아! 이 희년을 선포한 메시아를 쫓아갈 때 나는 이제

이 자유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구나!

이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쫓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적으로 그들의 삶 속에서 희년이 선포될 때 다시 한 번

새로워지면서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메시야인 그분이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인 것을 알게 되었다.

 

모세를 믿고 출애굽을 했던 이스라엘의 백성들처럼

제자들은 바로 그 순간 출애굽을 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가게 된 것이다.

 

희년 선포와 함께 부르실 때

그 희년의 기쁨에 체험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걸 버리고 따라갈 수가 있었다.

악한 세상을 살아보니까 이것저것 돈의 노예가 되고

건강의 노예가 되고 여러 가지 악습의 노예가 되고

수 없이 많은 포로생활 가운데 눈이 멀고

상한 마음의 상태에서 희년의 선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영접하니까 따라 갈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누가복음 12 29~30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세상살이를 하면서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무엇을 마셔야 하는지 근심하고 염려하며

이 세상의 것을 구하는 사람들은

희년의 경험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따라오라 할 때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이것을 믿고 희년을 체험하면서 따라갔을 때

놀라운 역사를 맛보면서 그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을 염려하지 않게 되고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한다"

그러면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너희에게 더 하시겠다"

이 말씀이 믿어지면서 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부 희년의 경험과 큰 기쁨을 맛보았느냐?

못 봤느냐? 여기에 달려있다.

 

누가복음 15 1~2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이 볼 때는

죄인들의 친구가 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세리, 죄인들이 바로

희년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15장에서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고 있다.

세 개의 비유를 말씀하고 있는데 탕자의 비유를

우리가 생각해 본다면 돌아온 탕자는 마치 지금까지 진 빚을

탕감해주고 종살이 하던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돌아온 탕자도 희년의 선포를 받아서 자기 기업인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 왔다는 것이다.

 

아~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되는구나!

아버지가 자기 기업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허랑방탕하게 살던 삶은 종의 삶이었고

포로 된 삶이었고 죄 가운데 있던 삶이었지만

이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주는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집이 나의 기업이다 라는 것을 알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비유의 말씀이

이 희년과 관련되어 있다.

 

희년을 선포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멀리 떠난 아들이 돌아오도록 밤새 불을 켜놓고

좋은 옷과 먹을 것을 준비해 놓고 

매일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이

희년을 선포하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전체는 희년의 사랑이 곳곳에 숨어있다.

우리의 구원이라는 것은

내게 속한 기업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이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고 영접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 집,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가 주는 그 기업을

받는 것이 우리 구원의 완성인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희년의 정신을 잘 이해하고

그러면서 우리가 이제 남은 생애를 통해서

희년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우리도 이 탕자의 아버지처럼

용서해 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탕감을 받았기 때문에

나의 빚이 청산이 되었기 때문에

나의 죄와 허물이 용서받았기 때문에

나도 그 희년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나도 남들을 용서하고 탕감해주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마태복음 19 21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이 말씀은 희년을 선포하라는 것이다.

 

가난한자들에게 다 나눠주면서 그들에게도 희년이 이루도록

그 희년을 선포하고 따라오라는 것이다.

 

레위기 25장에 50년마다 한 번 돌아오는 희년이 아닌

예수님을 영접하여 오늘이라고 하는 이 순간에

나의 삶과 나의 현장에서 매일매일 희년의 기쁨을

체험하는 삶을 통해 용서를 하고 탕감해 줄 수 있다.

 

내가 실제적으로 영접하여 희년의 놀라운 기쁨이

나에게 들어오고 그 희년을 경험해야 우리가 따라갈 수 있고

성공할 수도 있게 된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희년을 경험하고 선포하고 따라간다면

매일 매일의 삶이 축제가 된다.

 

초대교회는 이것을 실천하는 교회였기 때문에

내 것, 네 것이 없이 복음을 통해서 매일매일 희년이

성취되는 교회였다.

 

천년왕국이 이런 나라이다.

모든 사람들이 천년왕국에서 자기 기업을 받고

모든 병이 치료되고 눈 먼 것이 다 열어지고

천년왕국은 희년이 완성된 나라인 것이다.

 

우리도 개인적으로 희년이 내게 임하면

70년 포로생활이 끝나는 것처럼

나의 7년 대환란과 같은 죄악의 40년 광야생활을 끝낼 때

영적으로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처럼

그 희년의 삶을 즐기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시기 바란다.

마음이 상한 자 얼마나 많은가?

영적으로 눈먼 자가 얼마나 많은가?

포로 된 자가 얼마나 많은가?

갇힌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죄에 갇혀있고 악습에 갇혀있어 희년이 필요한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나?

우리 각자가 희년을 경험하고 따라가며 선포할 때

예수님처럼 이 시대에 보수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사야 61 4

"4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61장 1절~3절 까지는 초림하여 이루어질 일이고

4절부터는 재림하여 이루어질 일들이다.

 

버림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서 구원하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이 되면 오래 황폐했던 곳

자그마치 2천년동안 황폐하였던 이스라엘의 땅

이 곳이 무너진 곳인데 다시 회복하고 다시 새롭게 하는

그들이 누구인가 바로 구원받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구원받는 이방인들이다.

 

우리도 이 속에 들어가 있다.

우리가 이스라엘과 함께 쌓아가면서 하게 된다.

그렇게 할 때 그들은 6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제사장이다"

이것은 14만 4천명을 말하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봉사자다" 각자가 희년을 경험하고

희년을 따라가고 예수님을 따라가서 희년대로 살면서

희년을 선포하는 모두가 하나님의 봉사자가 되는 것이다.

 

주님처럼 그 희년을 선포하면서 따라가는

모든 보수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봉사자가 된다.

7

"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고토로 다 돌아와서

이제는 자신들의 기업을 다시 되찾기 때문에

영영한 기쁨이 있는데 그들만이 아니고

거기에 접붙쳐서 함께 구원받는 이방인인 우리도

각각 기업으로 돌아가서 영영한 기쁨을 갖게 된다.

 

8

"8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이것이 새 언약이다.

 

9

"9 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누가 복을 받나?

 

희년을 선포한 메시야를 영접하여 모든 것 가운데서

해방이 되고 새로워져서 언약 속에 들어가

그들이 복 받은 자손들이다.

 

우리 자녀들도 함께 그 기업 속에 들어와야 복 받은 자손들로

인정을 받게 된다.

 

10

"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이것은 신부가 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신랑 되신 예수님은 사모를 쓰고 신부들은 구원의 옷을

입은 후에 의의 겉옷으로 더하여 신부가 단장을 하게 된다.

 

예수님이 재림하여 버림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다시 한 번 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주님 오실 때가 매우 임박한 이때

우리가 희년의 정신을 따라가고 이해하고 내 삶에 경험하고

이것을 선포할 때 예수님과 함께 보수하는 자가 된다.

 

주변에 보수가 필요한 영혼들이 많다.

마음이 상한 자들

영적으로 눈 먼 자들

여러 악습에 포로 된 자들

죄에 포로 된 자들

영육 간에 가난한자들

다 복음이 필요한 자들이고 희년이 필요한 자들이다.

 

우리 자신이 희년을 경험하고 맛보면서

희년의 정신을 이해하고 따라가며 선포하여

예수님처럼 보수하는 자가되어

자손대대로 복 있는 자로 인정을 받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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