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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향연/메세지

예수님을 바라 보자

by Andrew Y Lee 2020. 12. 22.

게시글 본문내용

예수님을 바라 보자

 

히브리서 12장 1절~3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는

좋은 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좋은 책을 통해서 아이들이 정서에 도움도 받고

상식도 넓혀주고 장래 꿈을 가지게 한다

 

좋은 책 중에 한 분야가 위인전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아이들이 희망을 가지게 되고

그들을 모델로 삼고 그들을 닮아서

위인으로 나가기를 소망하게 되는 것이다

 

온 세계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희망을 주는

정치인이 한 분 계시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초등학교를 중퇴하였고

동네에 구멍하게를 열어서 실패하고 빚을 져서

그 빚을 15년 동안이나 갚았다

 

결혼했는데 악처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가지지 못했고

상원위원에 두 번 실패했고

하원위원에 두 번 도전하여 실패를 하였다

 

명연설을 했지만 당시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결국은 미국의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그 분이 바로 아브라함 링컨이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성경책 하나 밖에는

가진 것이 없는 그가 대통령이 되어서

백안관 직무실을 기도실로 만들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노예해방을 한 위대한 분이고

미국에 오늘날의 기초를 세우신 분이시다

 

미국이 지금 대통령 선거로 매우 어려운데

이런 어려운 시국에 링컨 같은 인물을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기다리기도 한다

 

초등학교를 중퇴했다는 것은

학력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구나 하는

학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모델이 되는 것이다

 

구멍가게를 열다가 실패해서 빚을 지고

15년이 걸려서 그것을 갚았고

특히 어려운 분들에게는 소망이 되고

 

결혼 했는데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지 못했는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소망이 되고

상, 하위원회 4번이나 실패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끝내 도전해서 대통령이 된 것을 보면서

어른들도 이러한 링컨 대통령을 귀감으로 삼고

소망을 가지고 도전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위인전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희망을 주고

그런 사람들을 닮게 하는 것처럼

오늘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는

누구를 바라보며 닮아야 하겠는가?

오늘 본문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2절 말씀에 그렇게 말씀 하셨다

 

첫 번째

바라볼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바라봐야 하는 것인가?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에 보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님이 믿음의 주시기 때문이다

 

믿음의 주가 되었다 하는 것은

예수님이 믿음의 근원이고 믿음의 출발지이고

믿음의 대상이고 또 그 믿음에 모델이다 라는 뜻이다

 

성도는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에 도착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로마서 1장 17절에 말씀하고 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성도들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그것이 믿음으로 오는

하나님의 의 이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그 믿음의 근원을 예수님이 세워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믿음으로 와서 믿음으로 살아가고 부활하셔서

온전한 믿음을 이루시는 그 모든 삶에 모범을 보여 주셨고

또 그분은 실제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것이다

 

이 당시 히브리서를 받는 히브리인들은

믿음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었다

 

초대교회 많은 박해 때문에 가족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믿음 때문에 희생을 해야 되고 죽음까지도 불사하게 되고

믿음 때문에 고난을 받게 되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가는 것이기에 때문에 핍박을 받기 쉽다

믿음 때문에 우리는 따돌림을 당한다

믿음 때문에 외면을 당한다

믿음 때문에 오늘 마음 아픈 일들이 많이 다가온다

 

그런데 그 순간에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 예수님은 본문가운데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주님은 앞에 있는 그 영광을 바라 보시면서

십자가를 결코 부끄러워 하지 않으시고

개의치 않았다 하셨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각자 몫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우리에게도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처럼 개의치 않고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달려가야 된다

 

감사한 것은 우리가 장차 나타날 영광으로

결산하기 이전에도 우리 일생을 통해서

영혼이 잘 되면 강건하고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반복적으로 주신다는 사실 인 것이다

 

그것마저도 중간 결산이 없이 한꺼번에 결산하게 되면

우리 일생은 얼마나 어려우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일생 가운데도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영혼이 잘 되면 그것에 걸맞은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주시고

또 강건케 해 주신다

 

마치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면 전리품을 얻게 되는 것과

똑같은 원리로 반복적으로 영혼이 잘되기만 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의 복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몫의 십자가가 있고 여러 가지

여러 가지 믿음 때문에 어려운 형편이 다가오지만

그 십자가를 잘 감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예수님을 바라 볼 수밖에 없는 것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은 온전한 것이 목적이다

온전해져야 되는데

 

히브리서 5장 7절~9절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고난이 면제되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한사람의 죄인의 입장으로서 온전하게 이루는 길을

고난 속에서 순종을 배웠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예수님이라고 해서 특혜가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저절로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고 저절로 온전하게 되는 것이고

저절로 모든 것이 통과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오셔서 여러 가지 환경가운데서

많은 고난을 통해서 순간순간 순종함을 배웠다는 것이다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온전하게 해 줄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그분이 나를 온전하게 해 주시기 때문에

 

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온전케 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게 되고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인데 그 믿는 믿음 있는 자들을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 자신이 진리이시고 예수님 자신이 말씀이시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이 말씀을 통하여

교훈을 받고 책망을 받고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유익한

이런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온전케 해 주시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다

 

온전케 되는 길은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우리를 온전케

해주시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온전케 해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이다

 

나를 온전케 해주시는 그 분이 나를 만들어 가시는데

그분을 주목하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를 온전케 하시는 그분을 주목하고 바라보면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온전케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 바라볼 것이 아니고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

는 것이다

 

2절 하반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다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편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과정을 지나서 승리하신 예수님도

그 분을 바라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이 세상을 이겼기 때문에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시는 것이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 우편 보좌에 보상으로 또 안식으로 평강으로

축복으로 그 우편 보좌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성공하려면 성공담을 듣는다

간증을 듣는다

위인과 같이 되려면 위인전을 보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 목표를 이루는데

예수님이 승리하신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그렇게 승리하게 되는 것을 믿음으로 달려가야 되는 것이다

 

큰바위 얼굴 이야기가 있다

나다니엘 호손이라고 하는 사람이 큰 바위 얼굴 이야기를

쓴 사람인데 주인공 어니스트라고 하는 소년이

산골짜기에서 사는 것이다

 

산골에서 학교 다닐 수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그 마을 앞에 큰 산 바위에 사람 얼굴의 모습이 있는

큰 바위가 있는데 오래전부터 전설을 통해서

저기 큰 바위 얼굴과 똑같은 위대한 인물이

이제 이 마을에 나타날 것이다

 

어머니가 어려서부터 그런 교육을 시켜서 어니스트는

그 곳에서 일생 살아가면서 큰 바위 얼굴이 나타나기를

소망하며 살아 간다

어느 날 그 마을에 큰 부자가 왔는데

큰 부자도 큰 바위 얼굴이 아니었다

위대한 장군이 왔는데도 그 장군도 큰 바위 얼굴이 아니었다

정치인이 왔지만 그 정치인도 큰 바위 얼굴이 아니었다

네 번째로 시인이 왔는데 그 시인도 큰 바위 얼굴이 아니었다

그러는 도중에 어니스트라고 하는 소년이

하나님을 성실히 섬기고 이웃에게 봉사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사니까 설교자가 되었다

 

어느 날 해가 뉘엿뉘엿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설교를 하는데

그 마을에 왔던 시인이 보니까

‘아 저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과 너무나 닮았고

저 사람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이다.’ 라며

소리를 쳤다는 것이다

 

정작 어니스트는 자기가 큰 바위 얼굴이다 생각하지 않고

더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일평생 하나님을 섬기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며

올바른 길을 간 그 사람이 결국은 위대한 사람이다

라는 것이다

그것이 큰 바위 얼굴이 주는 교훈인 것이다

 

진리를 따라 올바른 길을 가는 사람,

하나님을 성실히 섬기는 사람,

또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이 사람이 결국

큰 인물이 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을 모델로 닮아 가야 한다

 

우리에게 큰 바위 얼굴은 바로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인 것이다

 

내 심령에 찾아와서 지금도 나에게 말씀으로 양육해 주시고

지금도 내 가슴에 찾아와서 살아 역사하시는 그 예수님

그분을 바라보면 그분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이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내가 큰 바위 얼굴과 같이

그렇게 예수님을 닮아 가게 된다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 바라 볼 것이 아니고

우리는 보좌에 앉아계시는 예수님

어떠한 환경이 온다 할지라도 그 순간에 말씀으로

승리하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순간, 순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환경 가운데

승리하시고 또 승리하게 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

 

세 번째

바라보는 것은 곧 생각하는 것으로도 연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바라봄의 법칙은 바라보는 대상을 닮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표를 이루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신념으로 바라보느냐? 신앙으로 바라보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신념과 신앙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신념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내 뜻대로 하고자 하는 것을

바라봄의 법칙으로 이루려 하는 것이다

신앙은 하나님의 뜻이 그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뜻대로 신앙 안에서 바라봄의 법칙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내 신념을 가지고

내 뜻대로 이루려 하는 바라봄의 법칙은 잘 못 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없이 하면 전부 신념으로 바라봄의 법칙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무서운 죄가 되는 것이다

 

신앙 안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개입되어야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얼마든지 우리는 바라봄의 법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는데 그 바라보는 것은

더 나아가서 3절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까지 되어야 한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단순히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그 예수님을 생각하고 깊이, 깊이 생각을 하는데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 분을 생각하라 어떤 분이신가?

너희가 피곤하여 ‘피곤하여’ 이 말은 일하다가 지쳐서

일하다가 낙심하게 되고 기운을 잃어버린 상태를 피곤하다

 

예수님이 주변에 많은 죄인들 악한 자들, 교만한 자들,

무자비한 자들, 어리석은 자들, 조롱하는 자들,

거짓말 하는 자들 예수님의 주변에 이렇게 많은 죄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몫 박게 하려고 아우성치면 달려오는데

그 일을 당한 것이 피곤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도 낙심치 아니하고 그것을 참으셨다

이 말은 무엇이냐면 직접적으로 대항하지 않은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그 환경 속에서

자기를 피곤하게 하고 자기를 죽이려 하는 그 죄인들이

아우성치는 그 자리에서 그 모든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고 자기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그 길을 참으시면서 갔다는 그 예수님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30절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이것이 신명기 32장 35절~36절에 있는 말씀을

히브리서 기자가 인용을 하였다

 

광야 40년을 걸어가는데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하는

수많은 원수들이 있다

환경 배후에 역사하는 많은 악령들이 다

외세의 군대에 붙어서 쳐들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원수 갚는 것이 전부 하나님 앞에 달려 있다

내가 그것을 갚고 내 백성도 내가 심판을 하겠다

이런 말씀이 신명기 32장인데 그것을 인용하신 것이다

 

우리 환경 가운데 오늘 어려운 시대를 우리가 살아 간다

어려운 환경이 많이 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더 바라보면서

그것을 더 생각하는데 십자가에 승리하신 예수님은

그 악하고 교만하고 무자비하고 어리석은 자를

조롱하는 거짓말 하는 자들이 에워싸 피곤하게 하여

쓰러트리려 하는 그 순간에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참으셨다

 

그것이 하나님만 절대 의지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리는 그 신앙으로 감당을 했다

예수님이 참으신 것이다 그것을 너희가 생각을 해라

그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 상황 속에서 그것을 갚아주는 분은 하나님이고

그 원수를 처리하는 것은 하나님이시고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분을 따라가고

그분을 생각하며 그분을 닮아가고

그분을 쫓아가는 입장이니까

그 때 그것을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해라

 

그 주변에 그 많은 죄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유대 병정, 로마 병정, 빌라도 병정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였는데 자기를 거역한 그들을 전부 참으셨다

그 예수님을 너희가 생각하라

 

단순이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깊이 생각하면서

주님을 따라가야 될 줄 믿는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어려운 환경이 참 많다

한 가정에 아버지가 되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고

한 가정의 어머니로 살아가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다

한 가정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부모로 살아가는 것 쉽지 않다

더군다나 믿음을 따라 신앙의 길을 따라갈 때 쉬운 것이 아니다

시대를 봐도 그렇고 어디를 봐도 우리가 희망이 없다

 

오직 예수님 안에만 소망이 있는 줄 믿는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기 바란다

그 분이 나의 믿음의 주다

그 모든 믿음은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고

그 분이 믿음의 근원이고 발상지고 그 분이 그 믿음의 예배를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그 믿음의 대상이 예수님이시고

곧 하나님이신 그분이 예수님으로 오시니까

그분이 믿음의 대상인 것이다

요한 계시록에 가면 결국 하나님이 나타나지만

그분이 결국은 예수님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믿음의 주시오

그분이 복음을 온전케 하시는 것이다

 

도자기를 만들 때 흙 한 덩어리를 가지고 더 붙이고

띠기도 하면서 만드는데 그 도자기 자체는

주인의 손을 느낄 수도 없고 바라 볼 수도 없지만

우리는 나를 지금 걸 작품으로 빚으셔서 새롭게 만드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온전케 하시는 그분을 맛보아야 되고 바라 볼 수 있고

느껴야 하고 나를 위대한 천국의 걸 작품으로 빚어가는

그것을 느끼고 바라보면서 그 손길을 알아야 된다

 

말씀으로 나를 온전케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바라봄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열심히 걸 작품으로 만들어서 잘못된 결점들,

잘못된 죄악성을 띁어내고 좋은 것들로 자꾸 채워가는데

그분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고 바라보지 못하면

어떻게 만들어지겠는가?

바라봐야 한다

 

주님이 나의 부족한 것을 이렇게 채우고

나를 이렇게 새롭게 하시고

말씀으로 나를 이렇게 하시는구나

이것을 느끼고 바라봐야 온전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라봐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십자가를 개의치 아니하시고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감사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중간 중간 결산하면서 영혼이 잘 된 만큼 축복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편 보좌에 앉아서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분을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 분이 우편 보좌에 앉으셨는지

오늘 모든 것을 참으셨기 때문에

 

여러 가지 환경 가운데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닮아 가시고 여러 가지 죄인들이 우글거리는

그런 환경에서 참으셔서 우편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에 승리하시고

온전히 믿어지고 온전히 그 분만을 의지하는

남은 생애가 되어 지길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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