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집 주말 칼럼 아아, 아리엘이여!
미가엘
게시글 본문내용
아아, 아리엘이여!
대한민국은 대단한 나라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도 대단합니다. 이들은 크리스천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공격할 줄 압니다. 그들을 만나면 잠복기도 없이 바로 양성 반응이 나옵니다. 세계 최고의 변종입니다.
이 바이러스는 우한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중국에서 온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언론마다 ‘교회발(發)’이라고 말합니다. 우한이나 중국이라는 단어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이 시대에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의 원천입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크리스천들을 극진히 사랑합니다. 바이러스로부터 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위대한 용단을 내리셨습니다. 8월 19일부터 모든 예배를 중단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 시국에도 예배 받으시려는 하나님을 ‘용서’할 수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말고 나를 믿으라고, 내가 지켜주겠다고 나서는 충정은 눈물 겹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정말 ‘자애로운 어버이 대통령 밑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행복한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자애로운 명령을 내린 날 저녁 기도 중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29:1-8 말씀을 하셨습니다. 1-4절은 예루살렘에 대한 말씀입니다.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그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너를 에워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이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이리라.” 아리엘은 ‘하나님의 사자(獅子)’라는 뜻으로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유일한 민족이었던 이스라엘의 수도, 하나님의 영광의 성전이 있는 도성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우상으로 달려가 창녀와 같이 음행한 결과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고, 마침내 낮아지고 낮아져서 그의 말소리는 티끌에서 나는 소리처럼 되었습니다. 티끌에서 나오는 소리를 누가 귀 기울여 듣겠습니까?
오늘날 한국 교회의 처지도 아리엘과 같습니다. 복음의 빛과 그 생명을 잃어버리니 교회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세도가들에게 이리저리 조리돌림을 당해도 수치를 알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싸우며, 바람에 흩날리는 티끌과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핍박의 결과였다면 동정의 여지가 있었을 텐데, 스스로 선택해서 살아온 삶의 열매입니다. 교인은 많으나 성도(=거룩한 백성)는 드물고, 목사는 많으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십자가는 많으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적고, 설교는 많으나 회심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기도는 많으나 대부분은 하나마나 한 것들입니다. 찬양은 많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는 드뭅니다.
참으로 초라하고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하나님의 긍휼은 소진되지 않았습니다. 앞의 말씀에 이어지는 구절입니다. “그럴지라도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날려 가는 겨 같으리니 그 일이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날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 곧 아리엘과 그 요새를 쳐서 그를 곤고하게 하는 모든 자는 꿈 같이, 밤의 환상 같이 되리니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 시온 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같으리라(사 29:5-8).”
오늘날 교회가 티끌이라면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은 ‘세미한 티끌’입니다. 우리 말로는 같은 티끌이지만 히브리어는 다릅니다. 아리엘의 티끌은 ‘아파르’이고, 대적의 티끌은 ‘아바크’입니다. 아파르는 사람을 만드신 땅의 흙(창 2:7, 3:19)이지만, 아바크는 ‘공허한’, ‘부질없는’, ‘정처 없는’의 뜻을 포함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아리엘의 티끌과 대적의 티끌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아리엘에게는 정처가 있고 회복의 소망이 있지만, 대적에게는 공허함과 심판뿐입니다.
대적들에게는 순식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 텐데,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의기양양하여 교회를 괴롭히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차단하고, 스스로를 높여 하나님의 자리를 즐기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징벌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할 것이고, 그들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제야 그들은 자기들이 단지 꿈을 꾸고 있었을 뿐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운명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습니다.
이 말씀 후에 한 말씀을 더하셨습니다. 이사야 10:1-4입니다.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벌하시는 날과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의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포로 된 자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가난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 드릴 권리를 박탈하는 자들에게 벌하시는 날이 임할 것이며, 그들은 환난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을 도와줄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며, 그들이 누리던 영화는 꿈처럼 사라지고, 가장 비천한 자리, 죽음과 다름없는 자리가 그들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진노는 돌아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 다음 날 아침, 미처 묻기도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이사야 19:1-3입니다.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내가 애굽인을 격동하여 애굽인을 치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의 계획을 내가 깨뜨리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애굽인들의 마음이 녹아내리고, 자기들끼리 싸우다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두려움에 가득 찬 지도자들은 국민들을 폭정으로 억누릅니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더 강해집니다.
이 말씀은 지난 해 10월 2일에 하셨던 말씀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당시 주님은 그들이 미디안의 때와 같이 멸망할 것이고 그 흔적도 찾기 어려우며 다시는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하게 된 것 같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기드온은 300명 용사와 함께 횃불과 나팔로 미디안 대군을 물리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큰 소리로 선포할 때, 미디안은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멸망했습니다(삿 7:18, 22).
이 시대에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백성을 짓밟는 무리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다 거의 멸절되고 말 것입니다. ‘거의 멸절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표입니다. 그들이 다시는 이 나라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못할 것이며, 대한민국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머무시며 영광을 받으시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도 아니 되고 능으로도 아니 되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일입니다(슥 4:6).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미 작정하셨고 스스로 거듭 말씀하셨으므로 그 일이 매우 임박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잘 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더럽혀진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회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36:23). 그 분의 보좌는 영원하고 그 영광은 대대에 이를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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