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The Maverick Gospel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요한복음과 공관복음 사이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차이점과 유사점을 봄으로써 우리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요한복음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좀 더 요한복음을 요한복음답게 바라보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1] 복음서의 시작
4 복음서의 시작은 4복음서의 내용을 암시하는 머릿글 (혹은 서곡 overture) 역할을 한다. 마태복음은 예수의 족보로 시작을 하여 탄생이야기에서는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헤롯왕이 이스라엘 왕이 태어남을 두려워하여 유아들을 살해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제껏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모세를 뛰어넘는 새로운 모세를 암시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다.
누가복음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 그리고 여성에 대한 관심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복음서이다. 그러기에 마리아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하고 있고 마리아의 기도에서도 소외된 자를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태어나셨을 때 이 탄생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은 바로 그 당시의 하층계급 양을 치는 목동이었다.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에서는 이후에 나올 요한복음의 관점을 암시하는 창조 때부터 선재하셨다는, 그리고 신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로 시작을 한다. 마태와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에 하나님의 역할이 있었고, 성령의 역사함이 있었지만,
요한복음은 그러한 장치가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는 미리 존재하셨고, 신이셨기 때문이다.
[2] 사용되는 언어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은 사용되는 언어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여준다
요한복음은 생명, 빛, 어둠, 세상, 아들/아버지 같은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어지고,
또한 아는 것(Knowing)과 보는 것(Seeing)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리고 "나는 ~이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공관복음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단어들이
요한복음에서는 강조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단어는 하나님 나라 (Kingdom of God or Kingdom of Heaven)이다.
NIV 성경에서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즉 마태,마가,누가복음에서는 이 하나님 나라가 주요 메세지인 반면에 요한복음에서는
"I am" 즉 예수님이 누구인가가 주요 메세지인 대조를 보여준다.
마태 - 35, 마가 -14, 누가 - 31, 요한 -2
이 외에도 회개, 사도들, 간음, 세리들, 바리새인 같이 공관복음에 많이 사용된 단어들도
요한복음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
[3] 시간/공간적 그리고 수난 사건에서의 차이점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예수님의 행적에 있어서의 차이점은
공관복음은 유월절(파스카) 절기를 한 번만 지낸 것에 반해
요한복음에서는 유월절 사건이 세번 언급이 된다. (2:13, 6:4, 11:55)
그리스도교의 전통으로 내려오는 예수님의 공생애는 삼 년이라는 이야기는
요한복음에 기초하고 있다 만약 공관복음에 기초하였다면 1년이 된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예수님의 활동 지역이다.
공관복음에서 보면 거의 모든 사역을 갈릴리 지역에서 행하시다가
십자가 처형 즈음에 이르러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한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일찍부터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셨고,
예루살렘과 갈릴리 지역을 왔다갔다 하면서 사역을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성전정화사건도 공관복음에서는 십자가 수난을 겪기 바로 직전에 발생했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아주 이른 시기에 행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 둘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으로 예수께서 성전정화를 두 번 했다는 주장도 하곤 한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
공관복음에서는 유월절(파스카)를 기념하는 날에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유월절 식사 = 최후의 만찬이라는 자연스러운 등식이 성립한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유월절 이전에 최후의 만찬이 행하여지기 때문에
최후의 만찬을 유월절 기념식사로 볼 수 없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아 마지막으로...
공관복음에서는 성전정화사건이 십자가 처형으로 이끄는 주요한 구실이 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린 사건이 십자가 처형의 주요 구실이 된다.
이 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어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했다. (요 12;9-10)
[4] 어떻게 예수님을 그리고 있는가?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 사이에서 발견되는
예수에 대한 다른 관점이다.
먼저 공관복음에는 있는데, 요한복음에는 없는 사건들을 보면,
1) 광야에서의 사탄에 의한 시험
2) 베드로의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빌립보 가이사랴에서의 고백
3) 영화로운 모습으로 변화해서 제자들에게 나타난 사건
4) 겟세마네에서의 고뇌하면서 드리는 기도
5) 마지막 만찬을 기념함
6) 십자가에서의 외침 :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다음은 요한복음에는 있는데 공관복음에는 없는 사건들을 보면
1) 가나에서의 혼인잔치
2) 니고데모와의 대화
3)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 그리고 대화
4)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
5)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
그리고 공관복음이 그리는 예수는 유대교의 랍비 이미지가 강하다.
안식일에 대해서, 그리고 유대교의 율법에 대해서 바리새인들과 논쟁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유대교의 랍비 이미지는 없고, 유대교 지도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그리고,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를 메시야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와 귀신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즉 자신이 메시야라는 정체성을 철저히 은폐하는
"Messianic Secret"의 특징이 발견된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의 예수는 항상 초인간적이고 그러한 그의 특성은 공개적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읽으시고, 자신에게 악의를 품은 무리 사이를 유유히 걸어나가신다.
Chirstology(그리스도론)에 있어서 예수님에 대한 관점이 신에 가까우면
그 Christology를 High Christology라고 학자들은 일컫는다.
그리고 인간에 가까우면 Low Christology라고 말한다.
즉 공관복음이 그리는 Christology는 Low Christology에 가까운 반면,
요한복음이 그리는 Christology는 High Christology에 가깝다.
요한복음에서 발견되는 하나의 특징은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이 빠져 있고,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 전에 제자들과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장면이 빠져있다.
초대교회의 교회의식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세례의식(Baptism)과 성찬의식(Eucharist)가
요한복음에서 언급되지 않은 것은 요한공동체에 대한 많은 추측을 불러왔다.
1. 요한공동체는 이 의식이 초대교회에 행해졌는지 알면서도 이 의식들을 무시하였는가?
2. 아님 요한공동체는 주류 초대교회로부터 독자적인 행보를 취하였기에 이러한 의식들에 대해 무지하였는가?
3. 이러한 의식들을 외형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거부하고 내재적인 형태로 소화하였는가?
이 중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요한공동체의 독특한 성격에 대해 또 하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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