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요한복음 1장 35절~42절
히브리서 12장 1절~3절
1.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성경에는 곳곳에 우리의 신앙생활을 달리기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 앞에 신앙생활이 경주하는 일 달리기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곳에서도 비슷하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 앞에 달리기하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표현하고 있다
달리기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을 얻는 것과
목표점이라고 하는 것이다
상을 준비해 놓기 때문에 달리기를 하는 것이고
그다음에 그 상을 얻도록 기준하는 분명한 목표점을 정해 놓았다
달리기 안에 가장 중요한 것이 상과 목표라고 하는 것이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누가 그 보좌를 차지할 것이냐 이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하나님이 계신 보좌 우편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곳이다
그래서 그 시공간을 누가 먼저 뛰어 넘나
이것이 천국에 누가 먼저 도달하는 것이냐 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모든 경기는 다 속도를 재는 것이다
누가 먼저 그 목표에 도착 했는가 그것은 시간과 공간인 것이다
모든 운동 경기나 영적 달리기를 하는
우리가 분명히 가져야 하는 것은 목표물이다
거기에 누가 빨리 도달하느냐 이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27절
25.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것 같이 아니하여
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분명한 목표물이 있기 때문에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한다
방향을 분명히 정하고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한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오늘 분명한 목표물을 가지고 달려가야 한다
히브리서 12장 2절
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첫 번째
예수님이야 말로 우리의 영적 달리기에 분명한 목표물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목적이고
예수님이 우리의 목표물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 8장 29절로 30절에도 그 아들의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씀하시고
에베소서 4장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닮아가고
거기까지 성장해 가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 영적 달리기에 분명한 목표는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우리 삶에 모범자이시면서
닮아야 할 대상이며 최종적인 달리기의 목표점이다
요한복음 1장 36절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요한은 위에 말씀처럼 표현하고 있다
말씀에 ‘보라’ 이 말은 감탄사이다
하나님이 예언대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져가고 있지 않느냐
그것을 외치고 있다 그래서 감탄사를 쓴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사야 53장 말씀을 아주 싫어한다고 한다
이사야 53장 말씀은 예수님이 메시야이고
그 분이 나타나는 모든 말씀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사야 53장 7절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분이 바로 이사야의 예언을 통하여 나타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 모든 인생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서
오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그 양인데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서 그것에 대해 원망 불평하지 않고
잠잠히 그 길을 향해가는 그 어린양 그 분이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이사야 53장 4절~5절
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나타난 그 하나님의 어린양이 지금
약속하신 그대로 하나님에 때에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았느냐
그것을 보라는 것이다
그것을 감탄사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에 ‘보라’ 여기에 감동받은
두 제자는 안드레와 요한 사도이다
안드레와 요한은 원래 세례요한의 제자였다 그런데
그 세례요한이 약속대로 예수님이 나타나니 보라 외칠 때에
그 두 제자가 감동되어 예수님을 따라 가게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37절 39절
37.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38.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시쯤 되었더라
요한복음 4장 29절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다
물 한 그릇 대접받기를 원하는 주님과 생수문답을 시작하면서
그 분이 바로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
그 여인이 외친 말씀이 바로 ‘와 보라’ 였다
온 동네 사람들에게 이 말씀으로 전도하면서 많은 역사가
사마리아에 나타난 것을 볼 수가 있다
‘와 보라’ ‘보라’ 이 말에 의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에 따라 약속대로 예언대로 이 땅에 오셨다
그 메시야가 오늘 우리가 바로 닮아가야 하는 그 분이고
우리 삶에 모범자이고 최종적인 목표가 되어야 된다는 말이다
신앙에 목표물이 메시야 되신 예수님인 것을 믿자
예수님을 이 죄악 세상에서
신앙의 목표물로 바라보면서 나아가야 된다
두 번째
마태복음 6장 26절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예수님이 산상수훈 가운데 하신 말씀인데
여기에도 보라 라고 말씀하신다
세상 염려 근심 당하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할까 이렇게 염려하는 인생들을 향하여
예수님이 이 교훈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주신 영이라고 하는 영적인 존재가 되어서
너희는 이것들 보다 더 귀하지 아니하냐
그래서 너희가 세상에서 살면서 염려 근심 당하지 말고
그 공중의 새를 보고 그것초차도 기르시는 하나님인 걸 알고
하물며 너희가 하나님에 자녀인데
왜 돌보지 않겠느냐 라는 말씀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한 가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말씀하시고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다 라고 말씀 하신다
염려 근심하면서 살아가지 말자
눈에 보이는 사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 눈을 가져야 한다
이 모든 만물 속에 하나님의 지으신 솜씨가
다 들어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모든 만물을 보면 그 분의 뜻이 다
만물 속에 들어나 있는 것이다
영으로 계신 그 분이 자신을 무엇으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그 분이 영적인 그 분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만드신 만물이다
만물을 분명이 말씀으로 지으신 것으로 믿는다면
그 말씀으로 지은 그 만물 속에 그 분의 솜씨와 그 분의 속성과
그 분의 모든 것이 만물 속에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영적인 그 분이 만물 속에 다 들어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목표물을 직접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고 영으로만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인데
사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말은
이 눈에 보이는 사물 속에 우리의 목표물에 상응하는
여러 가지 의미가 이 만물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보아야하고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한다
무언가 내 목표물이 예수그리스도이고 그 형상을 닮아가야 하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 속에 그 분의 솜씨가 들어있고
그 분의 사랑이 들어있고 만물 속에 녹아져 들어가 있는
그 분의 섭리와 뜻을 깨달아가는
영적을 눈을 우리가 열고 살아가야한다
힘들고 고달플 때 무엇을 바라보고 사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것은 믿음의 눈으로만 보는 것이다
내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닌 성경을 통해서
믿음으로 믿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를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뜻과 섭리를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공중의 새를 바라보면서 저렇게 입히시고 먹이시고
다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면서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으로 이런 새를 보고 만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다시한번 깨닫자
세 번째
요한계시록 21장 3절~5절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3절 5절에도 ‘보라’ 라고 하는 말씀이 또 나오고 있다
이 보좌에 앉으신 이는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은 영원히 볼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런데 그 분이 언젠가는 오실 터인데 그 백보좌에 앉으신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 이신 것이다
백보좌는 예수님의 보좌이다
예수님이 함께 계신 곳이 천국이다
그 천국은 누구 것인가?
예수님을 신앙의 목표로 삼아서 그 분만을 바라보면서 달려가
예수님처럼 변화된 예수님의 형상을 입은
그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곳이 천국이다
그것을 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도착하기 까지 광야를 지나가면서 흘렸던
모든 눈물을 다 씻겨주시고 이제는 다시 사망 죽는 것도 없고
애통하는 것, 곡한 것, 아픈 것도 다시 있지 않은 그 나라를
내가 약속대로 이루었지 않느냐 그것을 보라라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는 아픈 것도 있고 슬픈 일이 얼마나 많은가
가정마다 사연이 있고 눈물이 있고 거친 광야를 지나가면서
고통당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것을 보라 예수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셔서
처음 것은 이제 다 지나가버렸다 이제는 모든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그것을 보라 라고 말씀 하신다
이것이 성도에 소망이고 이 소망은 주님이 이 땅에
오셔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에 분명한 소망은
예수님의 재림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재림이 와서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체를 입어야 이 일이 이루어진다
창 13장 14절~15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15.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가나안땅 일경이 영원이 이르기까지 결국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땅이 되어지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라 했다 창세기에 바라보았던 그 땅이
요한계시록 22장에 다시 보라 이것을 이루었다 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4장 34절~35절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전인데
이미 추수할 때가 되었다라고 말씀 하신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을 때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왔고
이 헤롯이 두 살 이하의 아이를 다 죽였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어린 아기로 오신 예수님 때문에
이미 순교를 당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을 천사로부터 전해 듣고 예수님께 예물을
가지고 와서 경배하고 그 때부터 베들레햄에 가서
이제 메시야가 오셨다고 선포하니 그들을 마을에서 다 쫓아냈다
왜냐하면 메시야가 오셨다는 그 말 때문에
우리의 아이들이 다 죽었다는 것이다
그 목자들은 다 흩어져서 30년 후에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고
나타날 그 때까지 메시야가 오셨다는 그 신앙 하나 가지고
마지막까지 달려가는 것이 그 분들의 신앙이었다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유 때문에 메시야가 오셨다는
그 선포 때문에 마을에게 일가친척들에게 다 쫓겨나고
30년 후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진짜 메시야가 되실 그때까지
그들은 숨어서 메시야 신앙을 전파하면서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12제자를
택하기 전에 몇몇 제자를 택하여 데리고 갈 때
그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그 열두목자를 하나하나 찾아 다니셨다
이미 죽은 사람들도 있고 살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분들 중심으로 70인의 제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30년 전부터 그 메시야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열두목동들의
그 신앙으로 70인의 다른 제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보라’ 하는 성경의 단어들이 여기 저기 숨어있다
예수님을 바라봐라
모든 예언의 말씀들을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셔서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셨고 다시 한 번 그 분을 보내셔서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를
이루면서 가고 있는 관계 속에 봐라 이루었지 않느냐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지 않았느냐 그것을 보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가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 생활이다
신앙생활은 영적 달리기와 같은 것이고
우리의 목표물은 예수님이시고
그 목표를 향해서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달려가서
그 행한 만큼 그 상으로 받자
하늘나라는 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을 목표로 삼고 주변에 모든 만물을 보면서
그 만물 속에서 나타난 목적에 상응하는 영적인 눈을 열어
그 목표물을 가지고 달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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