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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무지개/이스라엘

히브리, 헬라사상

by Andrew Y Lee 2017. 8. 17.

일원론과 이원론/시간과 공간 개념

 

창조기사(-2)는 하나님이 행한 첫 사역을 기록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 논리적으로 그의 창조 행위는 사전 계획에 따른다. 창세 전 이미 세워진 사전 계획을 하나님의 작정이라 한다. 이를 암시하는 성구들이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1:1-3: 8:22-31절 참조)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1:4-5)

 

창조기사에서 하나님의 창조 원리나 방법이 계시된다. 히브리적 사고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 Spirit)인 하나님(God)은 영원히 자존한다. 먼저 하나님은 창세 전 작정(1:4-6)을 세웠다. 이 작정의 실현을 위해 하나님은 창조 사역을 시작했다. 창세기 1 1절은 가장 기본적인 히브리 사고를 보여준다.

 

창조는 곧 시간, 공간과 물질 세계의 창조이다. 여기 태초란 하나님이 창조 사역으로 출발시킨 시간의 맨 처음을 지칭한다. 하나님도 시간을 기준하여 창조 사역을 했다. 시간의 창조와 함께 하나님은 공간과 물질 세계도 동시에 창조했다. 하나님의 작정은 계획과 목적 그리고 그 달성을 뜻하는 완성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이런 작정에 따라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했다. 시간의 창조와 함께 만물이 존재하기 시작했다.

 

시간의 시작은 시간의 끝을 전제한다. 창조기사라는 시초론(始初論: protology)은 곧 종말론(終末論: eschatology)이다. 성경의 창조기사는 만물이 영원히 존재하지 않고 언젠가 끝날 것을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세계관과 역사관이다. 히브리 사고는 앞으로만 전진하는 선형적 세계관과 역사관을 보여준다.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41:4: 참조 사44:6, 48:12)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1:8)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21:6)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22:13)

 

이 점에서 히브리 사고는 헬라 사고와 완전히 다르다. 히브리 사고는 시간 중심으로 사물을 해석하라고 요구한다그러나 두 독립된 원리가 영원히 대립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원론(二元論: dualism)을 따르는 헬라 사고는 공간 중심으로 사물을 해석하려 한다종말론적 사고를 하라는 히브리 사고를 부정하는 헬라 사고.

 

히브리 사고는 종말을 주장하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결산할 때가 있음을 가르친다. 그러나 헬라 사고는 그런 결정적 때와 시기를 부정한다. 현상만을 추구하게 된다. 전자는 금욕적 삶과 윤리를 그러나 후자는 종말을 무시한 쾌락적 삶과 윤리를 각각 가르친다.

 

시간의 처음, 나중과 그 사이 과정은 모두 시간을 달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작정이라는 계획과 목적에서 나오는 의지와 뜻이 이들을 관통한다. 현상 넘어 사고하려고 노력한다. 하나님의 작정이라는 신학(神學: theology)에 의해 다양한 역사(歷史: history)는 얼마든지 일관성 있게 또는 객관적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창조기사를 무시하는 헬라 사고는 사건과 현상만 보고 판단한다헬라 사고에 따르면 사건과 현상은 두 독립된 원리들 사이 싸움의 결과 나타난 결과이다. 대립적 이분법에 따른 해석 결과이다. 둘 중 하나를 버리는 사고 방식을 택한다. 항상 대립시킨다. 힘의 논리이다. 한 시대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이 시간을 달리하며 버려진다. 이를 사회와 역사의 발전이라고 본다. 헬라 사고는 사물을 통합적으로 볼 수 없다. 어느 한 쪽은 반드시 희생 당한다.

 

히브리 사고에선 하나님의 뜻과 의지라는 객관적 기준에 의해 모든 것들이 종합된다. 그러나 헬라 사고에선 사물들이 서로 대립하고 동일한 대상 안에서도 개념적으로 대립한다. 한 동안 헬라 사고에 따라 과학자들은 연구했다. 그러나 근세 혼돈 이론(theory of chaos)이 출현하며 물리학이 위기를 맞았다.

 

이 위기는 ‘link’라는 이론에 의해 극복되었다. 사물이나 개별적 개념은 특정 구조 안에서 다른 개념들과 긴밀히 연결됨은 물론 이 구조가 또 다른 구조와 연결되며 보다 더 큰 목적에 이바지함을 과학자들은 알았다. 때늦게 과학자들은 헬라적 사고 방식의 문제를 발견하며 히브리적 사고로 과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하나의 또 다른 발전이다.

 

그러나 헬라 사고는 끝까지 현상만 보고 해석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관점보다 인간의 관점에서 눈에 보이는 세상과 사회의 존재와 활동 목적은 해석된다. 창조주 하나님이 무시되기 때문이다.

히브리 사고는 일원론에 그러나 헬라 사고는 이원론에 각각 근거를 두고 사물을 해석한다이원론은 타락(3) 결과 사단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된 후 출현한 인본주의적 사상이다.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는 인류 사회에서 사상과 철학의 형태로 늘 함께 활동한다. 이에 따라 온갖 종교들이 또한 출현한다.

 

문제는 기독교 내에서 헬레니즘이 신학으로 포장되어 또는 각색되어 활동한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헬라적 신학이 성경적 신학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오늘도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알 수 있다. 겉만 보지 말고 사상 면에서 살펴야 한다. 창조주 신에 대한 신관이 성경적이 아니라면 그가 아무리 경건하게 보여도 사단의 종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주권사상이나 영역 주권을 믿지 않고 멋진 설교를 할 수 있다. 인본적이다. 경건한 것처럼 보일 뿐 비성경적이다. 유감스럽지만 한국 교회와 신자의 사고는 히브리적이 아니라 헬라적이다. 신자들은 시간 개념보다 공간 개념에 지배 당한다. 신자들의 삶은 지극히 쾌락적이며 현세적이다. 종말론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학자는 헬라 사고의 특징인 대립적 이분법으로 성경을 해석한다. 그 결과 기독교 신학은 성경의 진리를 반만 전한다.

 

영적 분별은 아주 쉽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관(神觀)이 무엇인가를 살피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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