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영혼의 무지개/이스라엘

히브리사상과 헬라사상

by Andrew Y Lee 2017. 8. 17.
히브리사상과 헬라사상의 차이점


서양 문명은 커다란 두 사상의 지류 속에서 발전해왔다.
하나는 히브리 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헬라 사상이다.
히브리 사상은 유일신 사상을 중심으로 히브리인들로부터 시작되 기독교로 전달된 Christianity(기독교사상)이고, 헬라(헬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헬렌의 이름을 따서 지은 명칭임) 사상은 다신교와 이원론, 도시 국가를 중심으로 한 과학 철학 사상이다.
이런 특별한 차이점에 의해서 오늘날 서양 문화는 두 가지 문화적 상이성이 교묘히 조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히브리인들은 지파 중심이다. 그래서 집단적이며, 사회적이다.
헬라인들은 도시국가 중심이다. 그래서 개인적이며, 민주적이다. 
히브리인들은 혈연 중심이다. 그래서 가족적이며 강력한 선민 의식을 가지고 있다.
헬라인들은 시민의식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방인일지라도 누구든지 시민권을 얻을 수 있어 사회적이고, 차별이 없다.


히브리인들은 농업, 목축업 중심의 문화이다. 그래서 정주적 형태의 문화를 가진다. 시오니즘은 바로 이런 특성에서 기인한다. 헬라인들은 상업, 무역업 중심의 문화이다. 그래서 이동적 형태의 문화를 가진다. 세계화는 이런 의식에서 시작되었다. 
히브리인들은 종교적이다. 신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탁월한 율법적, 윤리적 의식을 가진다. 헬라인들은 세속적이다. 개인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자유적, 민주적 의식을 가진다.


히브리인들은 공동체즐 중심으로 살며, 헬라인들은 개인을 중심으로 생활한다.
히브리인들은 권위주의적이며, 헬라인들은 민주적이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왕국(신국)을 만들었고, 헬라인들은 인간의 왕국(지상국)을 세웠다.
이 두 왕국이 서양 문명 속에서 하나로 통합되었다.
역사의 신비 중 하나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두 요소가 히브리인들과 헬라인들의 의식 속에 함축되어져 있다.
이 두 사상은 서로 대립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인 특징을 가진다.
이런 두 상이한 문화를 보완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날 서양 문화의 특징이다.
******** 


모든 인간에게는 불가분 양면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 자체가 신과도 분리되면서 또 자연과도 분리되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적 요소와 자연적 요소가 대립적이면서도 양립 불가능하지 않은 사실을 이해하고, 그 두 요소 사이의 조화를 추구할 때,
우리의 삶은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 - 이데아 - 육체의 감옥에서 벗어나라


진정한 철학자는 누구보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죽을 연습을 한다네. 저 세상에서만 육체의 감옥에서 벗어나 순수한 지혜를 얻을 수 있거늘, 죽음을 두려워해서야 되겠는가? / 플라톤 ‘파이돈’(민성사, p.251)


이데아란 무엇인가?
*
동네에 개가 수십 마리 돌아다닌다. 저것들은 모두 ‘개’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저 개들이 모두 ‘개’의 이데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철수와 영희는 사람이다. 왜 사람인가?
사람 이데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와 사람도 이데아를 공유하고 있다. 그것이 ‘동물 이데아’다.
저 수많은 말들은 '말 이데아'를 공유하고 있다.
*
물건만 이데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미녀들은 ‘아름다움 이데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건강한 사람들은 ‘건강 이데아’를 갖고 있다. 용감한 사람들은 ‘용감 이데아’를 갖고 있다.
*
내가 입고 있는 셔츠와 친구가 입고 있는 셔츠가 비슷하다. 나는 왜 비슷하다고 생각하는가? ‘비슷함’ 이데아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으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이 비슷하다는 생각은 우리가 배우는 것인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
이데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의 본질 또는 원형(原形)을 말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들은 이데아의 복제품이다. 그것 뿐 만이 아니다. 이데아는 행위의 원인이기도 하다.
붕어빵 틀(이데아)과 붕어빵(개별 사물)의 관계를 상상하면 이해하기 수월할 것이다.
*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계속해서 변하고 어느새 훌쩍 사라져버린다. 이런 변화무쌍한 물질세계에 휘말리면 거의 술에 취한 상태가 된다. 어린 아이가 바로 이렇다. 어린 아이는 감각 세계에 휘말리기 때문에, 본질을 보지 못하고, 사물을 분류하거나 일반화할 수 없다. 결국 이데아를 보지 못하면 학문을 할 수 없다.
*
우리는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리지는 못한다.
아무리 완벽해보여도 완전 동그라미는 아니다. 동그라미 이데아는 현실에 없다.


*
이데아는 완전하고 이 세상에 있는 사물보다 더 실재적이다.
이데아는 감각되는 것보다 우월한 존재이다. 감각적인 것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한시도 그대로 있는 법이 없어서 존재라고 하기도 어렵다.
*
우리는 이것저것을 본 후에, 공통적인 특성이나 본질을 알아내고 개념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플라톤은 그런 공통적인 특성이나 본질이 ‘실제로 있다’고 믿었다.
정신이 이데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데아가 먼저 있다. 다시 말해, 이데아는 초월적이다.


이데아 피라미드
*
이데아라고 다 같은 이데아가 아니다. 이데아도 등급이 있고, 피라미드와 같이 위로 갈수록 이데아의 수는 줄어든다. 위에 있는 이데아는 밑에 있는 이데아보다 폭이 넓고 힘도 세다. 밑에 있는 이데아는 위에 있는 이데아를 위해 존재한다.


*
이렇게 계속 올라가면, 맨 꼭대기에는 모든 이데아를 포괄하는 대왕 이데아가 있다.
그것의 이름은 ‘선(善)의 이데아’다. 모든 이데아는 이 꼭대기를 사랑하고, 여기에 도달하려고 애쓴다. 한마디로 존재는 이데아로 올라가려는 노력이다.


어떻게 아는가?
*
본래 우리의 영혼은 천국에서 선의 이데아와 함께 있다가 우리가 태어나면서 몸에 들어왔으나, 불행하게도 몸에 들어오면서 이데아를 모조리 잊어버렸다. 게다가 우리의 몸은 끊임없이 자극과 유혹에 휘말려 영혼에 때가 낀다. 그래서 이데아를 보지 못한다.


*
감각의 유혹을 뿌리치고 영혼의 때를 벗기고 순수하게 생각해서 추상화를 해나가다보면, 이데아를 볼 수 있다. 때를 벗겨내면 영혼이 잊고 있었던 망각했던 이데아를 다시 찾게 된다.(상기설)


그런데 영혼의 때는 누가 벗기는가? 철학자가 벗겨야 한다.
철학자는 순수한 사유로 이데아를 보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
사람들은 동굴 속에 갇혀 그림자만 본다. 철학자는 이들을 동굴 밖으로 끄집어내어 빛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조심해야 한다. 그림자를 진짜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그런 게 있다는 것을 믿지도 않고, 오히려 철학자를 미친놈 취급하고 칼부림을 할 수도 있다.


딜레마 - 악의 이데아
*
사물의 종류마다 이데아가 있다면, 핸드폰,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의 이데아도 있을 것이다. 이런 물건은 옛날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된 이데아는 어디서 왔는가? 지금 컴퓨터를 만지고 있는 본인의 주위에도 컴퓨터 이데아, 모니터 이데아, 마우스 이데아, 전기 플러그 이데아 등 온갖 이데아가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이데아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인가?
*
이미 퇴치된 병균들의 이데아, 고대에 멸종한 생물들, 백악기에 멸종한 공룡의 이데아, 그리고 지금은 사라져버린 흑백 TV 이데아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
모든 이데아는 완전하고 선을 목표로 삼기 때문에, 악의 이데아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많은 악행이 존재한다. 모든 사물, 행위에는 그에 상응하는 이데아가 있다고 한다면, 악의 이데아도 있는 것이 아닌가?
*
플라톤은 악은 선이 결여된 상태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다른 사물, 행동과는 달리, 악이 '결여'라는 소극적인 형태로 규정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결여’의 이데아도 있는 것이 아닌가?
*
신이 있고, 선의 이데아가 있는데,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사람들은 이데아를 전혀 알지 못하고, 신은 이 세상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플라톤은 이런 문제에 시원한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이 2천년전에 살았던 고대인이라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여하간, 플라톤의 이데아 체계는 기독교 신학과 매우 닮아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주의자들보다 우리와 가까운 자들은 없다’고 단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플라톤의 딜레마는 곧 신학의 딜레마이다.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이데아 이론의 전체적인 성격을 평가했는데,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은 순수하고 합리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사회가 붕괴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변화는 타락'이라는 주장을 내포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데아 이론은 세계 최초의 체계적인 신학 이론이면서, 최초의 ‘세상 설계도’라는 의미도 갖는다. 그것도 그냥 설계도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려는 치밀한 사색을 통해 그려낸 설계도이다.


플라톤은 '세계가 왜 이런 상태로 존재하는가?'에 대해 하느님이 며칠만에 뚝딱 세계를 만들었다는 식이 아니라, 나름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했고, 바로 이 때문에 수천년 동안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론화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울러, 플라톤이 이데아 이론을 통해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주관적인 관점을 훌쩍 벗어난 객관적인 규범을 마련하고자 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지금 세상에도 '난 나야' 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져있거나, 온갖 감각/자극에 휘말려 탐욕을 부리고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두 가지 사상
* 살고 있다= 시간 안에 있다.
생명=시간 , 삶의 연장
역사= 시간 안에 삶의 연속적인 작용
역사관이 없는 자= 어린아이, 자기발전이 없는 자
역사를 벗어난 자= 돈을 벌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지나친 신비주의로 역사를 벗어난 신앙 공간성만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위험하다.
History 기록된 역사 예 ;1919년 3월1일 기미년 독립운동.....
Geschichte(게쉬히테):사건 , Event의연속,그 내용이 평면적이 아니고 입체적으로 사건을 보는 것
하나님의 개입(하나님의 의도 ,뜻 ,생각이 담겨 있는 사건)
하나님의 개입을 볼 수 없는 사건 , 인간의 노력, 투쟁 , 수고로 점철된 사건


*히스토리에(Historie)와 게쉬히테()의 차이와 관련된 질문:
예수 부활과 승천을 히스토리라고 믿는가, 게쉬히테라고 믿는가 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해당합니다. 이 둘의 차이는 하늘만큼 땅만큼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히스토리에로 보는가 게쉬히테로 보는가에, 교회의 사활이 달려 있습니다. '역사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다른 마당에서 하고 싶습니다.
바르트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묻습니다. 바르트가 예수님의 실제적인 부활과 승천을 믿었습니까? 예수 님의 부활 또는 승천 당시 지구의 무게가 예수님의 몸무게만큼 줄어들었다고 그가 믿었습니까? 이 주제는 바르트의 성경관과 구원론에 직결되어 있습니다. 바르트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주관적 차원으로 격하시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닙니다. 인간의 증언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신학 구도는 인간의 개인적 경험, 체험을 성경본문과 동등한 지위에 둡니다. 사실상 인간 경험을 신학 쟁점들에 대한 '성경'으로 간주합니다. 바르트주의 성경관은 기독교에 위협적인 진리상대주의, 주관주의 그리고 결과적으로 만민보편구원주의와 종교다원주의에 대로(大路)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신 신학자님들의 도움을 구합니다, 바르트는 20세기 신학의 거장입니다. 그런데 왜 그의 신학을 받아들인 교회들이 생명력을 상실했습니까? 지난 반세기 동안, 왜 바르트주의를 추종하는 교회들, 바르트가 구원했다고 하는 유럽, 특히 독일교회들이 빈사 상태에 이르렀고, 사실상 조종을 울리고 있습니까? 루터 전통을 따르는 독일교회가 바르트주의를 수용한 뒤에 생명력을 상실하게 된 구체적인 까닭에 대한 학문적 연구물, 에세이, 논문, 책 등 정보 있으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최덕성 교수 연락처 choicollege@naver.com
헬라 사상 히브리 사상
1)B.C 920년경 그리스 호머(서사시 ‘일리아드,오딧세이’가 이 사상의 효시라고 봄 B.C 900년 경 모세오경
2) B.C300년경완성 , 아리스토텔레스때 B.C300년 70인역 히브리어성경을 헬라어로 번역 70인역(구약)완성
3)배워야 산다 . 진리의 전당 = 대학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산다.
예수가 진리다.
4) 인간의 노력, 투쟁 과 수고가 있어야 (역능의지) 믿음으로 산다.
5) 원의 역사 (영겁 회귀) 선의 역사(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6)History Geschichte
7)인격을 연마하여 인간 사랑(Humanism)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생명을 얻은 다음 그분으로 인하여 사랑을 실천
8)자연법에 지배를 받는다. 자연법에 지배를 받으나 때로는 초월하기도 한다.
8) 인간은 사고와 분석과 조작이 가능한 고등동물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그 재료는 흙이다.
9) 그밖의 나라 유대와 아랍족속 일부에 들어갔다.

 

'영혼의 무지개 > 이스라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상1  (0) 2017.08.17
히브리, 헬라사상  (0) 2017.08.17
[스크랩] 샬롬  (0) 2017.05.04
이스라엘의 결혼  (0) 2017.05.01
다윗의 성채  (0) 2017.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