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영성의 신비가/무명의 사부

로마서 8:2

by Andrew Y Lee 2012. 1. 26.

 

2절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과거사로 되어 있어요.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미 경험했잖아요. 자신의 체험담을 이렇게 진리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런데 '너를'이라고 했잖아요. '너'라고 하니까 아무나 다 되는 것 같거든요. 관주성경 난해주에는 '나를'로 되어 있어요.

해당된 자신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성경은 읽는 사람들에게 다 해당된 것으로 착각을 하지요.

 

▷ 가나안 정탐 때 죄성은 어떤 상태로 있는 거예요?

눌려 있어서 마음에 그걸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지요. 마음속으로 죄의 법칙이 나타 나지 못하도록 막아주고 있는 거예요.

 

▷ 생명 때문에 죄성이 내몰린 상태는 아니잖아요?

가나안 정탐 때는 영 안에서 없어진 상태는 아니지요. 생명의 능력이 그것을 꽉 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력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요. 실제로 전신갑주를 입은 상태라면 이 육체에 죄성은 여전히 있고, 그것이 죄의 법칙을 마음에 나타내고 싶어 할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갑주와 같이 생명을 입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옷 입었기 때문에 내부로, 즉 마음속으로 침투를 못하는 거지요.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28)고 했는데 이것도 사실상 생명의 전신갑주, 그리스도의 전신갑주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 가나안 정탐할 때 생명 내주와 이긴자들이 경험하는 생명 내주와는 조금 다른 것인가요?

비슷한 현상이지요. 일단 생명이 영속에 내주하신 상태니까, 죄성이 있어도 마음속으로 침투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상태란 말이지요.

 

▷ 그럼 전신갑주 경험과 상태는 비슷하네요?

네, 비슷한 상태인데 조금 약하지요. 그래서 몸 전체에 나타나는 신비로운 생명의 감각도 좀 약해요. 아무래도 큰 차이점이 있어요.

 

▷ 제가 그 경험을 할 때 보니까 육신에 속한 생각이 나타나도 쉽게 물리칠 수 있더군요.

가나안 정탐할 때, 다시 말해서 십자가 언덕을 통과할 때는 그 생각도 비교적 쉽게 나타날 수밖에 없지요. 로마서 8장 5절에 보면 육신의 생각, 영의 생각이 나오거든요. 그것이 있게 된단 말이지요. 이 경지에 들어가도 생각이 들어오는 것은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즉각즉각 발견해서 물리쳐버리는 것이지요. 그런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다는 것은 아닙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떠오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 제가 느낀 것은 선을 행하는 데 장애물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며칠 전만 해도 뭐가 큰 것이 막고 있었는데 장애물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한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라고 한 것이지요. 성령이 이제는 생명이 되신 거예요. 그러므로 생명의 성령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게 바로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는 것을 알리라"(요14:20)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라는 말씀과 같은 것이지요. 그러니까 성령이 우리 영 속에 내주하면 비로소 생명이 되신다 이렇게 보면 되겠어요.

 

 

▷ 성령 자체가 생명이 되셨다고 봐야 하나요?

그렇지요. 성령 자신이 우리 속에서 생명 역할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 생명이 있어요. 성령은 하나님의 생명이지요. 그분이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생명력을 나타내시면서 생명 역할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 우리; 속에도 성령이 있으니까 생명이 있는 것 아닌가요?

생명이요? 성령을 받았다면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생명력은 나타나는 것이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십자가를 믿게 되면 의롭다하심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확보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 우리의 생명과 가나안 땅에 들어간 생명은 구분이 되잖아요.

영속에 내주하셔야만 되지요. 물론 천국에 들어가서도 지성소에 들어간 성도와 성소에 들어간 성도가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요.

 

▷ 그러니까 광야 성도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는 것이 결론이지요?

성경에 나타난 바는 분명히 그 값진 진주를 완전히 소유하려면 소유를 다 팔아야 된다. 광야연단과정을 다 밟아야 된다고 되어 있잖아요.

 

▷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명 있잖아요. 또 영혼의 생명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생명과 이 생명을 구분해야지요?

성경에서는 생명이라는 말을 여러 가지로 사용하고 있어요. 육체의 목숨을 생명이라고 말한 경우도 있고, 우리 영혼 자체를 생명이라고 말한 경우도 있고요.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 생명은 우리 영 속에 들어오셔야 될 하나님의 생명을 가리켜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까 육체의 목숨, 영혼, 또 하나님의 생명을 다 생명이라고 해놨기 때문에 우리 한국어성경은 이해하기 좀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더군요. 성경에 생명이란 말을 다양하게 쓰고 있으니까 우리가 그 의미를 잘 분석해서 진리를 선명하게 증거 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 '영혼의 생명'은 영혼으로 표현하고, '육신의 생명'은 육신으로 표현하고, 하나님의 생명 하나만 부각시켜서 진리가 살아나게 하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 영혼과 생명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하나님의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고, 영혼은 피조물인 우리의 생명이지요. 성경에서는 그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 그것을 생명이라고 하지 말자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영혼으로 표현해서 진리가 흐려지지 않도록 하자는 거예요.

 

▷ 마귀도 생명이 있잖아요?

마귀의 생명이 있지요. 이를테면 마귀의 영이 우리 영 속에 들어오면 마귀의 초능력이 나타나는데 그게 바로 마귀의 생명력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혈기 내는 능력, 교만해지는 능력, 음란한 능력 들을 나타냅니다.

 

▷ 우리 영혼이 갖고 있는 인격도 있잖아요.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오실 수 있는 하나의 그릇이란 말이지요. 거기 담겨져서 우리 영혼 안에 있는 지성과 의지와 감정을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 이긴자들의 경우는 그렇지만, 사실 우리는 죄성과 정욕의 도구로 이용당하고 있잖아요. 의지도 다 빼앗기고요.

그것도 너무 극단적으로 얘기하시면 안 돼요. 선한 행실도 얼마든지 있어서 점진적으로 성화된다는 것을 가볍게 여기도록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심령도표 중에서 3번은 첫 번째, 두 번째 연단과정이 끝나고 나서 마음속에 예수님의 생명의 빛이 비추게 되어 있잖아요. 2번 도표에는 육신, 외부에만 빛이 닿게 되어 있고요.

그건 내면생활에 대한 반성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 반성하도록 하기 위해서 생명이 마음속에 와 계시다. 그렇게 표현할 수는 없다는 거지요?

성령께서 마음에 와 계신다고 해야지요. 성령을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 영 속에 들어와야 비로소 생명 역할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실례를 들어 생각해 보자면 A집사님 있잖아요. 그분의 영 속에 마귀의 영이 들어와 있으니까 순간순간 필요할 때 혈기라든가, 아집이 속에서 강한 초능력을 나타내면서 지배하잖아요. 하나님의 생명이 영 속에 내주합일 되면 바로 그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 이 비밀을 누가 알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기독교 사상이 오늘날 혼란 투성이가 된 것입니다.

 

▷ 성령님이 영 속에 내주되면 생명과를 먹었다고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의 성령, 그 자체를 생명과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그것을 우리의 영으로 먹어야만 비로소 생명 구실하는 거예요. 그래야 생명력이 나타날 거 아니겠어요.

 

▷ 여기서 생명의 개념을 잘 설명해야 될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리가 선명하지 않아요.

 

▷ 사실 '영생'과 '생명'은 별개의 문제 아닙니까? 영원히 사는 것이 생명이 아니잖아요.

그렇지요.

 

▷ 이긴자를 기준으로 생명이라는 단어를 써야지요?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니까요. 그래서 요한복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10:34-35) 이런 말씀이 나온 것입니다. 신의 생명을 받은 것이지요.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여러 가지 생명이 있으니까 혼란스러워요. 사경회에서 증거할 때는 하나님의 생명만 강조해야 될 것 같아요. 폭넓게 하면 더 혼란스러워요.

그러니까 구약성경 잠언이라든가 전도서 같은 곳을 보면 생명이라는 단어가 여러 군데 나와요. 그걸 자세히 분석해보면 어느 곳은 육체의 목숨을 생명이라고 했고, 다른 곳에서는 우리 영혼을 생명이라고 했어요. 그러나 신약에 예수님께서 "생명에 이르려면 좁은 문 좁은길로 가라"고 말씀하셨지요. 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고요. 이런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 부활체까지 입는다면 에덴동산에서 타락하기 이전보다 더 완전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 144,000명만 좋은 것 같아요. 우리는 뭐예요?

다 마찬가지예요. 조금 차이점은 있을지라도 영적할례 받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허락해주시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죄의 법에서 해방시켜주시는 단계에 들어와서 이런 경험담을 기록한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 '법' 이라고 한 것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헌법이나 율법, 국법 등을 가지고 말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거든요. 그게 아니라 여기서는 기회만 주어지면 법칙적으로 나타나는 능력의 법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와 사망의 법이 나오지요. 죄의 법도 있고 사망의 법도 있다는 뜻이지요. 그것으로부터 모두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완전히 거듭나게 되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 이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 것은 언제지요? 부활하실 때인가요?

그렇지요. 몸의 구속이 이루어지는 때에 사망의 법에서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 영적할례 받을 때 이미 따놓은 것이잖아요?

그렇지요. 따놓은 것이지요. 그런데 출애굽한 성도도 이미 따놓은 거예요. 중도에 가라지만 안 되면 되는 것예요. 그래서 죄의 법칙에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망의 법칙에서도 해방된 것이다. 이미 확보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려.' 이러한 기도가 세상 어디에 있을 수 있겠어요. 이 기도에 대한 시원스러운 응답이 지금 2절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이 기도에 응답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속죄론에서 분향의 핵심이 이것이잖아요?

그렇지요. 거기서 제일 중요한 것이지요. 향연에서 수많은 기도가 포함되잖아요. 아플때 병 고쳐달라고 할 수도 있고요. 그게 다 종합적으로 포함된 것이지만, 특히 죄문제 때문에 올려드리는 향연이지요.

 

▷ 거기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이지요?

먼저 이런 기도를 드리게 하고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의 우너리를 생각해 볼 수 있지요.

 

▷ 자꾸 죄의 법에 사로잡히니까 하나님께 절규의 기도를 드리는 내용이군요.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요.

그렇지요.

 

▷ 특히 이 부분을 증거 할 때는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생명에 대해서 많이 증거 해야 될 것 같아요. 악령과 대조해서 설명해 주면 이해가 쉽지요. 예를 들어서 교만의 능력과 겸손의 능력을 자꾸 대조해줘야 하겠어요.

 

거듭거듭 얘기해야 됩니다. 2절을 조금 더 설명해보도록 하지요. 만약 영적 할례에 대한 진리를 잘못 이해해서 우리의 영과 몸 안에 모든 죄성을 제거하는 것처럼 증거 되면 큰일 나는 거예요. 영 속에 있는 죄성 만 제거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분이 되어야만 그 다음에 나오는 진리가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할례를 받을 때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모두 의롭다하심을 받았다면, 8장 2절 말씀은 소용없는 것입니다. 죄성을 다 떼어버리면, 죄의 법칙에서 해방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여전히 육체 가운데 들어 있는 죄성의 힘은 법칙적으로 우리 마음에 나타나려고 하는 잔존 세력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했을 때에 그것으로부터 해방 되어서 자유롭게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에 남아 있는 죄성이 여전히 죄의 법칙을 나타내려고 하지만, 생명의 법칙에 의해서 해방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영혼의 구속과 육체의 구속이 있잖아요. 영적할례는 영혼에 있는 죄성을 제거하는 것이지요?

 

구속은 영혼에 해당되는 구속도 있고, 또 육체까지도 구속한다는 진리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로마서 7장 25절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여기서는 사실상 영혼의 구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체험적으로 이루어져요. 그리고 몸의 구속은 휴거되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육체가 부활될 때 이루어져요.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만약 생명의 법칙이 없다면 죄의 법칙이 마음속에 나타나게 되는데, 생명의 법칙이 있기 때문에 죄의 법칙이 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영성의 신비가 > 무명의 사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8:4  (0) 2012.01.26
로마서 8:3  (0) 2012.01.26
로마서 8:1  (0) 2012.01.26
로마서 7:25  (0) 2012.01.26
로마서 7:24  (0) 2012.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