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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신비가/무명의 사부

십자가의 도에 대한 구원파의 오류

by Andrew Y Lee 2011. 6. 5.

십자가의 도에 대한 구원파의 오류



 

십자가의 도에 대한 진리를 많이 남용하다가
이단시되고 있는 종파가 바로 구원파입니다.

구원파에서는 십자가의 도를 확실하게 깨달았느냐,
못 깨달았느냐에 따라
구원을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다시 의인으로 부활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에 따라서
구원을 받은 사람인지, 못 받은 사람인지를 구분한다는 것입니다.

병 고치는 체험을 했거나 귀신을 쫓아냈거나
방언이나 예언을 하고 입신 체험이나 성령의 불체험
혹은 성령충만이나 능력행함 등

여러 가지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고 고백하지 않는다면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원파에서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가 예수님과 함께 부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확신합니까?”

혹은 “의심하고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면서
중생했는지 못했는지를 판단한다고 합니다.

만일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믿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의심한다면
무조건 그 사람은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원파에서 극단적인 주장을 하게 된 것은
십자가의 도에 대한 진리를 잘못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직 십자가의 도에 대하여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계속 십자가의 도에 대한 증거를 듣게 하다가

성령의 감동으로 확실하게 깨달았다고 할 때
비로소 중생했다고 인정해줍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운지 몰라요.
그때부터 구원파의 신자로서
그 종파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되지요.

또한 확실하게 깨닫지 못한 사람은
십자가의 도에 대한 설명을 계속적으로 들으면서 이해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한 노력을 하는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구원받게 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마음속에 미움이나 분노, 질투 등의 악심이 나타납니까?”라고 질문한답니다.

그 사람이 그러한 악심이 나타난다고 대답하면
그 죄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질문한다고 해요.

그때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라면
“그거야 날마다 철저하게 회개하면서 보혈의 은총으로 닦아내면 되지요.”

라고 하거나 “매일매일 주님께 용서받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면서 계속적으로
보혈의 은총으로 닦아내면 되지요.”라고 답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파에 속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답변은
무조건 “당신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가 부활하면 의인이 되는 것인데
왜 자꾸만 회개를 합니까?”라고 하면서
무시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생활을 열심히 하는 성도들을 향해서
“복음적 신앙을 모르고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한다.”고
비난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구원파에서는 ‘십자가의 도’에 대하여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적용하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바른 신앙관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성도가 새벽예배를 드리려고 집에서 나가려 하다가
날씨가 추워서 가기 싫은 마음이 생겼을 때,

가기 싫은 마음을 물리치면서 억지로 가게 된다면
구원파에서는 율법적인 생활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들은 거듭난 성도들이기 때문에
예배드리러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가는 것이고
그러한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포기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성도들이 새벽예배를 드리기
싫어하는 마음을 회개하면서
영적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잘못 깨닫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성도들을 타락하고 방종에 빠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성도들은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부터 순간순간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점진적으로 성장해야 된다는 이치를 모르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서 점진적으로 성화되는 과정을 통과해야만
죄성이 굴러 떨어지는 영적할례를 받고
생명이 내주하는 성도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파뿐만 아니라 왕중생파도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조건 자기의 노력을 포기하면
영혼 속에 내주하신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언제나
승리생활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중국의 성자 워치만 니가 성결은총을 받은 후에 증거했던 사상들을
잘못 이해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워치만 니의 사상은 성장론적으로 광야연단과정을 통과하고
그리스도의 할례와 생명의 내주경험을 한 후 정돈된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러한 성장과정을
다 통과한 후의 체험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식적으로 믿기 때문에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결은총과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되는 경험적 진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경험자가 증거한 지식과 믿음만으로 다된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생활하다가
큰 갈등과 실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광야연단과정을 다 마치지 못한 초보적인 성도들에게
이 진리를 적용하기 때문에 큰 모순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워치만 니가 풍성한 생명력으로 말미암아서
승리의 생활을 하기까지는 약 15년이라는 기간 동안을 광야연단과정에서
많은 훈련과 교육을 받고 그 경지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성장론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워치만 니의 사상을 잘못 적용하기 때문에
큰 모순과 갈등과 실망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파나 왕중생파에서는 율법적인 노력을 포기하면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가르치는데,

분명히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경지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파에서는
“포기하세요. 포기하세요.

당신이 자꾸 해보려고 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다 맡기면 쉽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라고 주장하는데

성도들은 그대로 실천해보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할 때마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실패의 경험을 계속하게 되면
큰 고민에 빠졌다가 그 사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지요.

대부분의 성도들은 워치만 니와 같이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고 생명이 내주하신 경험이 없기 때문에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적할례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진리가 선명하지 않으니까
완전하게 된 것으로 착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자연히 현실과는 큰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영적할례 즉 성결은총을 받지 못한 성도들이
죄성이나 정욕이 요구하는 대로 계속적으로 생활을 한다면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왕중생파에 속해있던 P목사님이라는 분이
저희 집에 오셔서 제가 며칠 동안 그분과 대화를 하면서
진리를 증거했던 적이 있었지요.

그 당시 저의 가정에서는 60세 되신 아버님의 생신잔치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식사 때마다 반찬이 풍성했어요.

 

그런데 그 목사님은 반찬이 그렇게 다양하고 많은데도
음식 준비를 하느라고 바쁜 가족들에게
“상추쌈을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목사님의 그런 부탁을 하시는 것에 대하여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나중에 그 목사님과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바로 식사할 때 마음 가운데 상추쌈이 먹고 싶은 욕구가 생겼기 때문에
그와 같은 부탁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욕망을 억지로 절제하게 되면
율법적인 생활이라고 양심과 지성이 가책을 받게 되니까
먹고 싶은 생각과 욕망이 나타날 때 부탁하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어요.

자신들은 하나님의 생명이 있으니까
범죄하지 않고 의롭게 살 수 있다고 믿으면서
실상은 육신의 정욕을 따라 생활하는 큰 모순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래서 왕중생파에서는
새벽예배를 드려야하는 시간인데
춥거나 귀찮거나 여러 가지 악조건이 생겨서

가기 싫은 마음이 강하게 일어날때
억지로 가게 된다면

율법적인 생활이므로 아무 소용이 없다고
가르친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새벽예배를 가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지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생겨서 새벽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면

곧 하나님의 생명이 주장하는 것이므로
복음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는 것이었습니다.

 

P목사님의 경우에도 그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행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가족들은
‘전혀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죄성과 정욕의 지배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는
P목사님을 행실이 타락한 분으로 여긴다.’는 것이었어요.

 

그러한 생활을 계속하시던 중에
P목사님은 등과 목에 마귀가 붙어서 큰 고통을 당하시다가
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오신 것이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잘못 생활하신 것에 대하여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또한 그 병도 깨끗이 고침을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진리를 잘못 이해하게 되면 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파의 경우에도
십자가의 도를 깨닫기만 하면 이미 의인이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성자 성녀들을 본받는 생활이나
참회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지요.


이와 같은 오류는 진리를 부분적으로만 알고
전체적으로나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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