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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성경 이해하기/천로역정 강해

5. 미디안 군대와의 싸움

by Andrew Y Lee 2011. 6. 5.

 

5. 가데스에서 생수를 마실 때부터 아모리, 바산, 미디안 군대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가나안 땅을 분배받기까지


 

 

◉ 가데스의 반석에서 생수를 마심

 

 

천로역정에서는 성도들이 가데스에서 생수를 마시는 체험에 대하여 기독도가 허례와 위선을 버리고 샘물을 마시는 것으로 상징하고 있으며, 진충이 아담 노인을 떨쳐버리고 간난산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하는 것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얽매어 허례와 위선이 자기의 행실과 생활 가운데 많다는 것을 크게 깨닫고 심각하게 느끼면서 떨쳐버리기 위해 고민하며 괴로워하다가 가데스 므리바의 생수, 즉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고 철저한 영성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모든 육적인 소유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밝은 빛 좁은 길을 적극적으로 달려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때 성도들은 일사각오의 정신을 가지고 엄격한 극기생활, 철저한 절제생활, 영웅적인 사랑실천, 규모 있는 경건생활을 실천하고 큰 고난과 손해를 감내하며 명예나 권세, 사업, 부요한 물질생활, 남녀관계, 부부관계 등 모든 것들을 과감히 포기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자아를 포기하고 육적인 소유를 버리는 훈련은 이전에 자아가 깨어지는 경험을 할 때에도 종종 있었지만, 이 가데스에서 생수를 마시는 체험을 할 때는 가장 크고 귀하게 여기는 것들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모두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엄격한 고행극기를 하고, 사랑을 온전하게 실천하며, 청빈생활을 귀중하게 여기고, 천대와 멸시를 받는다 할지라도 인내를 실천하며 오직 주님의 발자취만을 따라서 용사같이 달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은 확실한 영적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수많은 역경을 잘 극복하게 되며,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용기와 소망과 평안을 힘입어 모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목표에 대한 견해는 성도들마다 다양합니다. 어떤 성도들은 완덕, 어떤 성도들은 신인합일, 어떤 성도들은 영성결혼 혹은 사랑의 합일, 어떤 성도들은 성결 또는 완전성화, 어떤 성도들은 신비로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싶어 하는 목표를 가지고 정진합니다. 이와 같이 목표에 대한 견해들은 다양하지만,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는 목표는 성결은총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되고 생명의 법이 나타나 죄의 법으로부터 해방되는 체험(롬8:2)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가데스에서 므리바 생수를 마시게 될 때 육신에 속한 모든 것들을 끊고 버리게 되는데, 이때 소유를 많이 가지고 있는 성도들은 소유를 적게 가지고 있는 성도들보다 더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욥의 경우와 12사도를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온 욥은 허례와 위선이 동행할 때 아내와 10명의 자녀들, 많은 종들과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가지고 부요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욥이 므리바 생수를 마시고 세 번째 연단과정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이러한 모든 소유를 다 잃어버리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욥으로 하여금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던 많은 소유를 잃어버리는 고통을 겪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2사도를 보면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가족이나 친척들, 생업이나 물질 등을 모두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다니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3년 동안의 제자훈련과정을 마칠 무렵 즉 허례와 위선이 동행하는 과정을 마치고 므리바 생수를 마시게 될 때에는 욥과 같이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육적인 소유를 버려야하는 고통을 크게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들이 가지고 있던 소유는 오직 예수님뿐이었는데 그 소유마저도 세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하면서 다 잃어버리게 됨으로써, 성령이 강림하신 오순절 날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 되는 큰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므리바 생수를 마시고 세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하게 될 때 소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소유를 끊고 버리는 고통을 많이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 발락왕과 발람선지자와 음녀들의 유혹

 

 

이제는 발락과 발람, 음녀들이 유혹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천로역정에 비춰보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천로역정을 보면 기독도가 간난산의 입구에 있는 샘에서 물을 마시고 정신이 상쾌하게 된 후에 가파르고 좁은 간난산을 올라가는데, 처음에는 달음박질을 잘하다가 지치게 되었고, 다음에는 빨리 달리기가 어려우므로 걸어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기어서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독도는 간난산 중턱에 있는 휴식정(休息亭)까지 간신히 기어서 올라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책을 보며 휴식을 하다가 잠이 들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나온 간난산(艱難山)은 세 번째 연단과정을 가리켜 말하는데,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은 많은 환난과 고통을 당하면서 연단을 받고 정결케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의 가장 큰 특징은 확실한 영적 목표를 가지고 연단을 받으며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환난과 고통이 심할지라도 하나님의 은밀한 위로와 도움의 손길이 언제나 함께 하시기 때문에 좁은 길을 용감하게 정진하게 됩니다.

 


기독도가 간난산 입구에서 샘물을 마신 것은 성도들이 세 번째 연단과정에 들어가기 직전에 성령의 풍성한 역사와 큰 은혜를 체험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 샘물을 마신 기독도가 간난산을 달려 올라가기 시작한다는 것은 성도들이 간난산 입구에서 풍성한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철저한 영성생활을 결단하고 정욕적이며 세상적인 육적 생활을 용감하게 끊고 버리면서 열성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으로 정진하게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때 성도들은 세상적이며 육신적인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어떠한 고난을 당한다할지라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을 따르겠다고 용감하게 결단하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경건과 절제생활을 철저히 하는 가운데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사명을 감당하며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그리고 빠르게 달려 올라가던 기독도가 지치고 어려워서 걸어간다는 것은 성도들이 오랫동안 많은 시험과 고통을 겪는 가운데 열성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은 어느 정도 식어졌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목표를 향하여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며 주님의 밝은 빛을 따라 최선을 다해 생활하게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또한 기어간다는 것은 계속되는 시험풍파와 감당하기 어려운 극기생활 때문에 열성적이며 적극적이며 자원하는 마음이 식어지고 험난한 시험풍파를 힘겹게 극복하면서 주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 번째 연단과정의 전반기를 통과하는 성도들이 처음에는 적극적이며 열성적으로 육적인 것들을 버리면서 영성생활을 잘하다가 점점 고난풍파가 심해지고 가시밭 좁은 길이 오랫동안 계속되기 때문에 철저한 영성생활이 약해지게 되는데, 이러한 삶의 모습을 기독도가 달려가다가 걸어가고 나중에는 기어가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가파른 산길을 기어서 올라가던 기독도는 산중턱에 있는 휴식정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책을 읽으며 쉬고 있다가 잠들게 되었습니다. 기독도가 이 휴식정을 통과하는 과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락과 발람과 음녀들의 미혹을 당하면서 범죄하는 과정과 같은 것입니다. 이 휴식정은 ‘그 산의 주인’ 즉 하나님께서 철저한 영성생활을 하기 위해 좁은 길을 가다가 지친 성도들을 위해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 ‘휴식정’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발달과정에 비춰볼 때 성도들은 가데스에서 생수를 마실 때부터 영적 생활의 규칙을 따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철저하게 절제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종종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리고 아모리왕과 바산왕의 군대들과 싸움을 하는 과정, 즉 성도들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마귀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시험풍파를 많이 겪게 되는 과정을 통과하면서 잘 참고 견디며 승리하는 생활을 하다가 지치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세 번째 연단과정의 전반기를 통과하면서 승승장구하다가 나중에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약해진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와 위로를 많이 베푸시고 쉬게 하시는데 이 과정을 휴식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 성도들의 생활환경에는 극심했던 시험풍파가 잠잠해지고 물질적인 축복과 함께 정욕을 만족시켜주는 환경과 조건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독도가 이 휴식정에서 쉬다가 잠이 들었다는 것은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육적 축복을 맛보는 가운데 철저한 영성생활이 약해지고 침체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엄격하게 자기를 극복하고 정욕을 버리면서 예수님의 밝은 빛을 따라 꾸준히 영성생활을 철저하게 해야만 되는데,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을 어느 정도 따르거나 타협하면서 철저한 생활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휴식정을 통과할 때 의식주 문제를 비롯하여 육체가 휴식하며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베풀어주시는데, 마귀들은 이러한 환경을 미끼로 사용하여 성도들의 철저한 영성생활을 못하게 함으로써 목표에 도달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 염병과 음녀 심판

 

 

천로역정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거역했기 때문에 염병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과정을 휴식정에서 잠을 자다가 깨어난 기독도가 간난산 꼭대기를 향해 달려 올라가다가 회의(懷疑)와 억겁(臆怯)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휴식정에서 잠을 자고 있던 기독도는 꿈속에 한 사람이 나타나서 깨우며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 있는 자가 되라.”고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그 산의 꼭대기를 향하여 달려 올라가게 됩니다.

 

 

여기에서 잠을 자던 기독도가 꿈을 통해서 깨어 일어나라는 음성을 듣고 깜짝 놀라 일어나 간난산 꼭대기를 향하여 달려 올라간다는 것은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한동안 육적이며 세상적인 것들과 타협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던 자신의 부끄러움을 크게 깨닫고 영적인 목표를 향하여 용감하게 정진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때 성도들은 지극히 작은 육적 소유까지도 모두 버리면서 온전한 사랑과 인내와 겸손과 충성과 용기와 절제 등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좁은 길을 힘차게 달려가게 됩니다.

 


또한 기독도가 간난산 꼭대기를 향하여 달려 올라가다가 회의와 억겁을 만나게 된다는 것은 세 번째 연단과정의 후반기를 통과하는 성도들이 철저한 회개생활과 영성생활을 하는 가운데 환경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으면서 영적 목표가 희미해지고 사방팔방으로 갈 길이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절망적이기 때문에 진퇴양난의 궁지에 빠져서 회의와 두려움을 크게 느끼게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은 세상 줄을 다 끊어버리고 엄격한 극기생활이나 희생적이며 적극적인 사랑실천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육신은 매우 약해지고, 세상으로부터도 완전히 고립되어 막다른 궁지에 빠졌고,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은총이 내릴 것인지 아닌지 의심에 빠지게 되고, 절망적이며 암담한 상황 가운데서 회의와 두려움에 깊이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 성도들은 성난 시험풍파에 시달리면서도 예수님의 밝은 빛을 따라 철저하게 영성생활을 하고자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미워하시기 때문에 어둠 속에 던져 버리신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을 하면서 심한 불안과 내적 고민과 회의적이고 절망적인 마음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회의와 억겁이 떠난 후에 비로소 기독도는 휴식정에서 잠을 자다가 책을 잃어버리고 올라온 사실을 깨닫고 엎드려서 자기의 우매한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 후 기독도는 휴식정에 도착하여 책을 다시 찾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빠르게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기독도가 휴식정에서 잃어버린 책은 십자가 언덕에서 받은 것으로써 천성으로 가는데 꼭 필요한 지침서, 즉 성경을 가리켜 말합니다. 여기에는 기독도가 이 책을 십자가 언덕에서 처음으로 받은 것처럼 되어있지만 사실은 장망성을 출발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중요한 전환점을 통과할 때마다 특별히 더 성경말씀을 필요로 하고 큰 감동을 받게 되는데, 기독도가 십자가 언덕을 통과할 때 처음으로 성경책을 받은 것처럼 표현한 것도 이 과정이 중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기독도가 휴식정에서 잠을 자다가 책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한다는 것은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좁은 길을 열심히 달리다가 지쳐서 잠깐 동안 육적인 것들을 맛보며 영성생활이 약해지고 침체되었을 때부터 회의와 억겁이 만났다가 헤어지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크게 깨닫고 회개하게 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휴식정을 통과할 때 영적으로 잠을 자게 된 성도들이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닫고 철저한 영성생활을 결단하고 실천하는 가운데 간난산 꼭대기를 향하여 달려 올라가지만, 철저한 극기생활로 인한 어려움과 맹렬한 시험풍파를 겪으면서 점점 좁아지는 가시밭길을 걷다가 영적으로 약해져서 회의와 억겁에 빠졌을 때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생활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도가 잃어버렸던 책을 다시 찾게 된다는 것은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극심한 고난 풍파를 겪는 가운데 목표의식이 흐려지고 막다른 궁지에서 회의와 고독과 절망에 깊이 빠졌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믿고 실천하면 된다는 것을 크게 깨닫고 성경말씀만 건 믿으면서 용사같이 달려가게 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번에는 십자가의 요한 성자(스페인, 1542-1591)가 회의와 억겁을 만나는 과정을 통과할 때 있었던 경험들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유익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요한은 매우 가난하였지만 경건하고 신앙이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스물한 살이 되었던 1563년에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하여 단식이나 철야기도, 고행극기나 육식을 절제하는 생활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면서 정진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철저한 영적 생활을 추구하고 있던 요한은 1568년, 오랫동안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던 아빌라의 테레사 성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을 위해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가르멜 수도회는 철저하게 그동안 지켜왔던 초기의 수도규칙을 버리고 세속과 많이 타협하면서 생활하는 완화파 가르멜 수도회와 엄격한 고행과 극기생활의 규칙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개혁파 가르멜 수도회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두 수도회는 날이 갈수록 아주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요한 성자의 전기를 보면 1574년부터 1578년까지 세 번째 연단과정 즉 영성의 밤을 통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기간 동안에 개혁을 추구하던 수도사들은 완화된 수도회 회칙을 따라 살던 수도사들로부터 극심한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요한 성자는 이러한 수도회의 논쟁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명망이 높았으므로 완화파에 속한 수도사들에게 대표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1576년 초에는 그의 동료와 함께 납치되어 완화파에 속한 수도원에 구금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요한은 교황대사 오르마네또의 도움으로 석방되었지만 완화파의 수도사들이 계속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증오와 원한을 보고 느끼면서 엄청난 괴로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개혁파의 수도사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주던 교황대사 오르마네또가 별세하게 되자 완화파 수도사들은 개혁파를 굴복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교묘한 계략을 꾸미게 되었습니다.

 


1577년 12월 2일 격분한 완화파의 수도사들은 십자가의 요한을 납치하여 똘레도에 있는 수도원에 감금하였습니다. 요한 성자가 감금되었던 작은 방은 돌벽과 돌바닥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냉기가 심했으며, 창문도 없었습니다.

 

그가 감금되었을 때는 날씨가 매우 추운 겨울이었지만 몸을 녹일 수 있는 것은 바닥에 놓인 널판때기 두 장과 낡은 담요 한 장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변기로 사용할 수 있는 양동이 한 개가 구석에 놓여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방은 변소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이 어둡고 냄새나는 방에서 요한은 9개월 동안 감금되어 있으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옥에 사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악조건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요한 성자는 점차로 매우 지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몸과 마음이 더욱 약해지면서 완화파의 수도사들이 자기를 죽이게 될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요한 수사는 완화파에 속한 수도사들이 남긴 음식 찌꺼기를 먹었는데 거기에 독을 넣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겁에 질린 그는 그것을 먹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사람들을 용서하면서 선한 생각 즉 하나님의 뜻대로만 생각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요한 성자의 몸은 아주 허약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의 요한이 감금되어 있는 동안 가장 큰 고통을 겪었던 것 중에 하나는 매주 금요일마다 치러지는 예식이었는데, 그때마다 매우 치욕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매주 금요일이 되면 완화파에 속한 수도사들의 식당으로 끌려 나갔습니다. 80명 정도의 수도사들이 벽쪽으로 둘러 놓여있는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십자가의 요한은 방 한복판에 놓여진 딱딱한 돌바닥에 무릎을 꿇고 빵과 물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그 식사가 끝나게 되면 수도원장은 모든 수도사들이 보는 가운데 십자가의 요한을 향하여 장황하게 열변을 토했습니다. “요한 수사, 당신은 자신의 명성을 위하여 고집스럽게 반항을 하고 있소. 당신은 복종을 거부하고 있소. 순종이야말로 수도생활에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는 초석인데 당신은 그것을 쓰레기처럼 짓밟고 있는 것이오. 당신의 불순종을 통회하시오.” 이렇게 혹독한 비난을 들을 때마다 요한은 너무나 큰 고통을 느꼈습니다.

 


수도원장이 설교를 끝낸 다음에 모든 수도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시편 50편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노래를 하면서 한 사람씩 요한에게 다가갔습니다. 먼저는 수도원장이, 그 다음에는 뒤따르는 다른 수도사들이 차례대로 이 작은 혁명가의 벗겨진 어깨에 채찍질을 하였습니다. 여러 개의 매듭이 있고 세 겹으로 된 짤막한 밧줄은 채찍질을 할 때마다 그의 맨살에 자국을 내었습니다. 십자가의 요한이 차디찬 골방 속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그의 등과 어깨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요한은 그들이 퍼붓는 비난과 책망의 소리에 지쳐 다음과 같이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저 사람들이 옳을지도 몰라. 결국 나는 수도회의 장상들에게 순명해야 하는데, 바로 이 사람들이 나의 장상들이 아닌가? 나는 나의 몹쓸 고집 때문에 지옥에 던져지려고 이 모든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무런 근거도 없는데 나는 하나님과 사랑하는 교회로부터 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내가 정말 마귀들을 섬기고 있단 말인가?” 요한은 더 이상 자신의 입장에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싸늘한 냉기가 가득하고 악취가 나며 곰팡이가 많이 피어있는 감방에 갇혀서 몇 달 동안 먹는 것도 아주 빈약하고 잠을 자지도 못하는 가운데 그의 몸은 점점 약해져가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입맛이 떨어져서 며칠씩 전혀 음식을 입에 대지도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며칠씩 변기를 비우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어떤 때는 이질에 걸려서 큰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완화파에 속한 수도사들의 잔인하고 냉정한 마음은 누그러질 줄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개혁파에 대한 요한의 충성심을 꺾기 위해서 개혁파에 속한 모든 수도사들이 이미 굴복을 하고 완화파로 되돌아왔다고 거짓말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요한 성자에게 그 도시밖에 있는 빈 우물에 던져 넣는다할지라도 누가 알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협박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을 들을 때에 요한은 개혁파의 모든 수도사들이 개혁운동을 포기한 것으로 생각되었으므로 ‘이렇게 은밀한 감방에서 당하는 지겨운 곤욕을 참고 견디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라고 생각하면서 회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실망에 빠져 하나님께서 제발 자기 목숨을 거두어 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요한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더욱더 무섭고 지독한 시련이 덮쳐왔습니다. 이때 요한 성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도 않고 돌봐주시지도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내온 생애 즉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들이 헛된 것으로 생각되어 더 이상 기도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버림받은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자포자기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당시에 요한은 썩고 다 떨어진 속옷을 몸에 걸치고 아주 심한 병으로 고생하였습니다. 몸가짐이 매우 깔끔했던 그는 몇 달 동안 세수까지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여름철의 무더위가 시작되었을 때는 숨이 막혀서 견딜 수 없는 지독한 열기로 말미암아 아주 심한 괴로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가 갇혀있는 골방은 화덕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 고약한 하나님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가? 왜, 무엇 때문에?” 그는 으깨어지고 또 으스러졌습니다. 그는 그 암흑의 구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홀로 철저하게 번민하면서 괴롭고 쓰라린 영혼의 맨 밑바닥에서 터져 나오는 울부짖음을 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번민과 절망뿐 아니라 갖가지 정욕이 마음속에 자꾸만 나타나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자기 안에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들 즉 오래 전부터 억제하는 생활을 계속하는 가운데 없어졌다고 생각한 죄와 정욕들이 그의 마음속에 거듭거듭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그의 마음 즉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끌어다가 암흑 속에 내동댕이치는 것 같았습니다. 몇 주간 동안 육체와 정신 가운데 가해지는 이 맹렬한 공격은 무자비하게 계속 되었습니다. 심신을 압박하는 번민과 고통 속에서 그는 간신히 참고 견디는 것이었습니다.

 


요한 성자는 1578년 5월, 몇 주간 동안 이 무서운 시련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험이 천로역정에 나온 기독도가 회의와 억겁을 만나는 과정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회의와 억겁을 만나는 과정이 끝날 무렵 요한 성자의 감방을 지키는 간수가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간수는 혹독한 고난 풍파 속에서도 몇 달 동안 한 번도 짜증이나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않고, 언제나 온유와 겸손과 사랑으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면서 살고 있는 요한의 거룩한 행실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친절하게 돌봐주었습니다.

 


이 간수는 요한 성자가 투옥되던 날부터 입고 있던 낡은 속옷을 갈아입도록 새 옷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감방의 문을 열어 주었으므로 요한은 밖으로 나와서 햇볕도 쬐고 신선한 공기도 마실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요한의 부탁을 받은 간수가 종이와 잉크와 펜을 가져다주었으므로 그때부터 요한 성자는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전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그의 사상이 기록된 책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면 요한 성자가 이 과정을 통과한 후에 풍성한 은혜를 받고 생명의 전신갑주를 입고 생명수의 폭주를 체험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체험적 진리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하게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요한 성자는 9개월 동안 엄청나게 고생을 했던 감옥에서 나온 후에 탁월한 영성지도자로서 가르멜 수도회를 개혁하였고, 기독교 역사 가운데 영성신학을 체계화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공로를 세운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음녀가 심판을 받는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음행을 하였기 때문에 염병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 자신들의 죄를 크게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백성들이 철저하게 회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맨 나중까지 음행을 하고 있던 시므리와 고스비는 제사장 비느하스의 창에 찔려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귀의 지배를 받아 상습적으로 백성들을 미혹하고 음행하였던 음녀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천로역정에서는 이 음녀가 심판을 받는 경험에 대해서 기독도가 미궁(美宮)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발 묶인 사자 두 마리가 으르렁거리고 있는 길을 통과하는 것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휴식정에서 잃어버렸던 책을 다시 찾은 기독도가 그 책의 도움을 받고 힘을 얻어 미궁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 궁전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목의 양쪽에 울부짖는 사자 두 마리가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고 두려워하면서 망설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때 미궁의 문지기가 말하기를 사자들은 발이 묶여있기 때문에 그 한가운데로 지나오면 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음녀가 심판을 받는 과정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 묶인 두 마리의 사자는 어떠한 생활환경 가운데서라도 죄성과 정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철저한 영적 생활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을 유혹하고 괴롭히던 마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자들이 묶여있다는 것은 마귀들이 성도들의 생활환경 배후에서 수많은 시험풍파를 일으키면서 유혹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창조주이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어떤 일이든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또한 미궁의 문지기가 발 묶인 사자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에게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한 마음으로 대적하면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 과정을 통과하면서 자아가 철저하게 깨어지고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분리되어 마음과 행실이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과한 성도들 중에서 어떤 분들은 실제로 사자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하는 신비로운 체험에 대하여 간증하고 있습니다. 『천로역정』을 지은 존 번연이나 인도의 썬다 싱 성자의 전기를 보면 이러한 체험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은 1913년 1월에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때가 바로 세 번째 연단과정이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그는 40일 금식기도를 하는 도중에 한동안 사자의 울음소리가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면서 반복적으로 들렸다는 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썬다 싱 전집』을 보면 “육체의 힘이 쇠진하여 거의 없어진 때 사자와 맹수의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점점 가까이 곁에 온 것을 알았다. 그러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감각이 예민하게 되어 보는 것보다 감각하는 것이 더 빠르게 되었다. 그러나 조금도 해하지 않을 뿐더러 무서움도 없었다. 기력이 너무 쇠진하여 날짜도 헤아릴 수 없게 되었으므로 며칠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40일은 못되리라 생각된다.”라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병상의 증거자 K성도님이 이 과정을 통과할 때 체험하였던 사실을 살펴보겠습니다. “1970년 12월 12일부터 14일까지 삼일동안, 저는 새벽에 잠에서 깨어날 때부터 날이 새기까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면서 계속적으로 들려오는 무서운 사자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오래 전부터 금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중이었고, 낮에는 장난기가 가득 찼던 5살짜리 어린 남동생을 통하여 매일같이 참기 어려운 시험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매일매일 극심한 고난 풍파를 하나님의 도움으로 잘 극복하면서 지내는 중에 3일 동안 새벽마다 발 묶인 사자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12월 15일 새벽부터는 은총과 위로와 영감이 풍성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 모압평지에서 계수와 율법선포와 여호수아 안수

 

 

천로역정을 보면 이 모압평지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계수하고 말씀을 선포하고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후계자로 만드는 과정을 기독도가 간난산의 꼭대기에 있는 미궁(美宮)에서 풍성한 은혜를 받고 전신갑주(全身甲胄)를 입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독도는 발 묶인 사자 두 마리가 으르렁대고 있는 길을 간신히 통과하여 미궁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경성이라고 하는 문지기의 안내를 받으며 근신과 명철과 경건과 인애를 만났고 그들과 교제를 하면서 큰 위로와 지혜와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독도를 군기고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전신갑주를 입혀주었습니다.

 


여기에서 기독도가 미궁 안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큰 위로와 평안과 기쁨을 얻는다는 것은 성도들이 이 과정을 통과할 때 풍성한 지혜와 명철과 위로와 사랑과 은혜를 받게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앞에서 알게 된 바와 같이 성도들은 세 번째 연단과정이 시작될 때부터 계수를 하기 전까지, 즉 간난산의 입구에서부터 미궁에 도달할 때까지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환난 고통을 받는 가운데 모든 자아를 깨뜨리고 소유를 철저하게 버리면서 달려왔습니다.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은 이러한 고난의 가시밭길을 오직 하나님의 생명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온 것입니다.

 


미궁은 많은 환난과 고통을 받으면서 세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하는 가운데 피곤해진 성도들이 하나님의 풍성한 위로와 사랑과 지혜와 평강을 체험하게 되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때 성도들은 수많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도와주셨다는 것을 크게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 미궁을 통과할 때 어떤 성도들은 신비로운 입신체험을 하는 가운데 천국이나 심판대, 지옥 등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하나님의 풍성한 위로와 은혜와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 다음에 기독도는 군기고가 있는 곳으로 가서 전신갑주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성도들의 영속에 내주하게 되는 체험을 가리켜 말합니다. 생명의 전신갑주를 입게 되는 이 체험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받을 수 있는 수많은 체험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신비적인 체험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이 성도들의 영속에 내주하시게 되면, 마음속에 생명의 성령의 법칙이 나타나서 죄의 법칙으로부터 해방될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몸에는 신비로운 생명의 감각과 능력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옷을 입은 것처럼 감각적으로 확실하게 체험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미궁에서 전신갑주를 입는 체험에 대하여 병상의 증거자 K성도님의 간증을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저는 1970년 12월 15일부터 3일 동안, 천로역정에서 말하는 미궁을 통과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하나님의 위로와 깨달음과 은혜를 풍성하게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 겪었던 극심한 고난 풍파에 대해서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였고, 주님에 대한 사랑이 아주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12월 18일 새벽에 기독도가 미궁에 있는 군기고에서 전신갑주를 입었던 것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체험은 저의 일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새벽 두시 경에 잠에서 깨어나 조용히 눈을 감고 누워있었는데, 약 30분 동안 저의 의지와 정욕이 마음속에서 서로 논쟁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의지는 정욕에게 ‘나는 지금까지 너 때문에 죄를 많이 짓고 살았기 때문에 결코 너와 같이 살 수 없다.’고 하면서 떨쳐버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또한 정욕은 ‘나는 지금까지 너와 함께 살아왔고 결코 너를 버리고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너는 꼭 나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의지를 붙잡으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약 30분 동안 의지는 떨쳐버리려고 하고 정욕은 붙잡으려고 하는 싸움이 계속되었는데, 양쪽에서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던 고무줄이 갑자기 툭하고 끊어지는 것처럼, 제 마음 가운데서 끈질기게 싸우고 있던 의지와 정욕이 갑자기 떨어져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눈에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저의 몸속으로 제 육체의 크기만한 바위덩어리 같은 것이 꽉 차게 들어오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하신 것을 감각적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생명의 감각은 손끝, 발끝, 머리끝을 비롯하여 온 몸의 구석구석까지 신비롭게 체험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시작된 이 신비로운 생명의 감각과 능력을 29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적으로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생명과 평강이 감각적으로 몸 안에 나타나게 되면서부터 마음은 죄의 법칙에서 해방된 상태가 되었으며, 몸에는 내주하신 하나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신비로운 내세의 능력이 감각적인 체험으로 항상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바울 사도께서는 로마서 7장 24절부터 8장 2절까지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 미디안 왕들의 군대들과 싸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각 지파별로 일천 명씩 선택하여, 열 두 지파에서 모두 일만 이천 명의 용사들을 싸움터로 보내서 미디안 왕들의 군대들을 멸망시키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모세는 제사장 비느하스를 인솔자로 선택하여 미디안 왕들의 군대들과 싸우게 하였습니다.

 

이때 비느하스와 12,000명의 용사들은 미디안 왕들과 그 군대들을 물리치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싸움을 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용사들은 한 사람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싸움을 마지막으로 광야의 모든 여정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싸움에서 12,000명의 용사 중 단 한명도 상하거나 죽지 않고 큰 승리를 한 것과 같이,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은 마귀들과 싸울 때 범죄하지 않고 온전한 승리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미디안 왕들의 군대들과의 싸움 즉 마귀들과의 싸움에게 크게 승리함으로써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온전히 갖추게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싸움을 마지막으로, 광야에서 받게 되는 은혜와 연단을 통해서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들을 버리게 하시고, 죄성과 정욕의 지배를 당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을 철저하게 순종하게 하심으로써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 즉 마음과 행실을 정결케 하시는 과정을 마치게 하십니다.

 

 


천로역정에서는 이 경험을 미궁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기독도가 아볼루온과 싸워 승리하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간난산 꼭대기에 있는 미궁에서 전신갑주를 입게 된 기독도는 그 산 아래로 내려와 겸손의 골짜기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지독하게 화가 난 아볼루온과 싸워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생명의 전신갑주를 입은 성도들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마귀들이 총공격을 하게 되지만, 결국 전신갑주를 입은 성도들이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마귀들이 성도들을 향하여 분노하면서 총공격을 하게 된 이유는 성도들이 출애굽 할 때부터 광야를 다 통과하는 동안 성도들의 영속에 내주하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유혹하고 핍박하는 등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그 성도들이 결국 생명의 전신갑주를 입는 체험을 하였으므로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통과할 때 생명의 전신갑주를 입은 성도들은 극심한 환난과 고통을 당할지라도 영적으로 온전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이때 성도들은 거룩하고 흠 없는 덕과 영웅적인 행실로 승리하면서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아볼루온은 성도들의 눈에 보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보이지 않고 몸이나 환경을 통하여 공격합니다.

 

 

이제부터 아볼루온과 싸움을 하였던 이용도 목사님(1901-1933)의 경험담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이 목사님의 전기를 보면 세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할 때 폐결핵을 비롯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사님은 거칠고 사나운 환경이 계속되는 가운데 조금도 흠과 티가 없는 온전한 행실로써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고자 최선을 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자신을 성찰하고 참회하면서 조그마한 잘못이라도 깨닫게 될 때에는 철저하게 회개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이 목사님은 매일매일 새벽 3시가 되면 성전에 나가 하나님 앞에서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버지여, 나의 혼을 빼어버리소서. 그리고 예수님께 아주 미쳐버릴 수 있는 혼을 넣어 주소서. 예수님께 미쳐야겠나이다. 예수님께 미치기 전에는 주님을 온전히 따를 수 없사옵고 또한 마귀와 싸워 이기지 못하겠나이다.”

 


이와 같은 기도를 꾸준히 드리시던 이용도 목사님은 1928년 12월 24일 새벽,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도 이 목사님은 강대상 앞에서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목사님의 눈앞에 아주 크고 시커먼 마귀가 나타났습니다. 그 마귀는 손톱발톱이 삼지창같이 날카로웠으며, 눈은 사자의 눈같이 크고 번들거렸으며, 이빨은 사자의 이빨같이 날카롭고 무서우며, 머리에는 두 개의 큰 뿔이 나와 있었습니다.

 

험상궂게 생긴 마귀는 목사님의 기도를 방해하기 위해 흉측스럽게 웃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그 무서운 손을 내밀어 목사님을 움켜잡으려고 하는 등 가슴이 서늘하고 소름끼치게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무섭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여 몸을 돌이켰습니다. 그런데 그 마귀는 목사님이 몸을 돌렸는데도 눈앞에 와서 마주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점점 더 목사님을 집어삼킬 듯이 덤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마귀를 향해 두 주먹을 굳게 쥐고 “사단아, 물러가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자세히 보니 이러한 마귀들이 성전에 가득 차 있었고, 또 밖에도 많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용도 목사님은 주먹을 쥐고 마귀들을 내어 쫓기 위해 덤벼들었습니다. 벽력같이 호령을 하며 고함을 지르며 퉁탕거리며 이리 치고 저리 치다가, 마귀를 친다는 것이 유리창을 때리고 담 벽을 때리므로 목사님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또한 새벽 내내 마귀를 물리치느라고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쳤기 때문에 목은 쉬었고 기진맥진하였습니다.

 


그런데 마귀들이 모두 떠난 줄 알고 있다가 가만히 보니 아직도 한 마리의 마귀가 남아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본 목사님은 소리를 높여 “사단아 물러가라. 이 집은 아버지의 성전이니 물러가라.”고 외쳤습니다. 목사님이 주먹으로 치려하자 그 마귀는 도망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목사님은 그 마귀를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로 들어간 마귀는 신앙이 약해진 어느 권사님 댁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목사님은 “권사님, 마귀가 들어왔으니 일어나십시오.”라고 외치면서 뛰어 들어갔습니다.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던 권사님의 가족들은 깜짝 놀라 일어났습니다.

 


기운이 쇠진하여 거의 다 죽어가고 있는 목사님은 아랫목 윗목을 왔다 갔다 하면서 두 주먹으로 무엇인가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사단아, 너 이놈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도 해치 못하리라.” 한참 후에 마귀가 그 집에서 도망을 하자 목사님도 따라갔습니다. 통천시내가 멀리 보이도록 목사님은 마귀를 쫓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마귀를 물리친 목사님께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찬양을 부르면서 돌아오실 때는 날이 이미 다 밝아진 아침이었습니다. 피 묻은 의복, 피 흐르는 손, 땀을 많이 흘려서 핼쑥한 얼굴로 목사님은 찬양을 부르면서 교회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마귀 즉 아볼루온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목사님은 이때부터 하나님의 권능과 생명을 힘입어 기도와 설교와 모든 영적 생활에 큰 변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 놀랍고 신비로운 사건이 있은 후, 이용도 목사님은 전날의 목사님이 아니었습니다. 육신의 모습을 보면 며칠도 살 수 없는 사람 같아 보였으나 심령 가운데는 엄청난 능력과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목사님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사람 같았습니다.

 


그 다음날은 성탄절이었는데, 예배를 인도하시던 목사님께서 열렬하게 설교를 하시자 성전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통곡하며 쓰러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는 많은 사람들의 심령 가운데 성령이 놀랍게 역사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교인들은 약 60명 정도에 불과하였고, 그들의 신앙생활은 냉랭하고 빛의 열매가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몇 주일 후에는 160명 정도로 부흥되어 예배당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년 초부터 통천지역에 있는 일곱 교회에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목사님이 가시는 곳마다 성령의 불이 임하고 뜨겁게 통회하는 역사가 일어나며 놀라운 생활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이용도 목사님은 그 후부터 6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시면서 열렬하게 외치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또한 병상의 증거자 K선생님의 간증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1970년 12월 21일 저녁부터 25일 아침까지 마귀의 강력한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아볼루온과 싸우는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12월 21일 저녁식사를 마치고 조용히 묵상기도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양쪽 다리에서부터 칼로 뼈를 깎는 것과 같은 고통이 시작되었는데 순식간에 몸 전체로 확산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참고 견디기 어려운 그 고통을 잘 극복하였지만 나중에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떼굴떼굴 뒹굴면서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 영혼은 생명의 전신갑주를 입고 있었으므로 평강의 능력이 충만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제 몸은 계속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몸부림을 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마귀가 여러 시간 동안 뼈를 깎는 것과 같은 고통을 주더니, 나중에는 갑자기 참고 견디기 어려운 딸꾹질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딸꾹질은 뱃속에서부터 창자를 둘둘 말아 올려서 목구멍으로 끄집어내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딸꾹질을 할 때마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던지 제 눈은 불이 타는 것과 같이 되었고 금방이라도 빠져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딸꾹질을 중단시키기 위해서 물을 한 모금이라도 마시게 되면, 즉시 구역질을 하면서 다 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2월 22일부터 약 4일 동안 물이나 음료수, 미음 등을 먹어보려고 할 때마다 계속되는 딸꾹질로 말미암아 구토하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장기간의 절식과 금식으로 말미암아 육체적인 고통이 이루 형언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딸꾹질과 구토를 계속하였으므로 제 몸은 죽은 상태와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아볼루온과의 싸움은 서울에서 신학교에 다니던 사촌누님이 내려와서 방언기도를 하는 가운데 끝나게 되었습니다. 사촌누님은 방언의 은사를 매우 강하게 받은 분이었기 때문에, 방언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그 누님과 함께 기도하게 되면 대부분 방언체험을 하였습니다.

 


12월 24일 오후에 사촌누님은 제 형편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했는데, 성탄절 행사를 위해 준비해야 되는 일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대천에 있는 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그 일들을 모두 접어놓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날 저녁 저희 집에 도착한 사촌누님은 딸꾹질과 구토 등으로 지독한 고통을 당하고 있던 제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방언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방언기도가 시작되는 순간 신기하게도 나흘 동안이나 저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딸꾹질이 잠잠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사촌누님의 방언기도가 중단되었을 때 멈추었던 딸꾹질이 다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촌누님은 또다시 적극적인 마음으로 방언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도 아주 심하게 괴롭히던 그 딸꾹질은 즉시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음이나 음료수를 조심조심 먹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먹은 음식을 모두 토하면서 딸꾹질이 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방언기도를 받으면 딸꾹질이 잠잠하게 되었다가 음식을 먹게 되면 구토와 딸꾹질이 다시 나타나는 악순환이 밤새도록 반복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볼루온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나타나고 있던 딸꾹질과 구토는 성탄절 아침에 사촌누님이 방언기도를 계속적으로 하는 가운데, 어머니께서 미음을 반 그릇 정도 먹게 해주신 후에 비로소 완전히 멈추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사촌누님의 방언기도를 통해서 아불루온과의 싸움이 끝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볼루온과의 싸움을 할 때 모든 성도들이 저와 똑같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의 경험은 아주 다양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장기간의 절식과 금식을 하는 가운데 뱃속은 비어 있었고 몸은 굉장히 허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약점을 알고 있던 마귀가 지독한 딸꾹질과 구토가 나타나도록 공격을 한 것입니다.”

 

 

 

◉ 할례산과 가나안 땅 정복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산에서 할례를 받은 후에 여호수아의 영도를 받으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이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약속하셨던 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 정착하기 전까지 이 땅에는 하나님을 불신하고 거역하며 우상을 숭배하던 가나안 7족(族) 즉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서 살게 되는 이 가나안 땅은, 성도들이 들어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며 살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장소일 뿐 아니라, 성도들의 영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7족이 우상을 숭배하면서 살고 있던 가나안 땅은 일곱 가지 죄성이 뿌리박힌 상태로 정욕을 섬기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영을 가리켜 말합니다. 따라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7족을 멸망시켰다는 것은 성령께서 성도들의 영에 뿌리 박혀 있는 죄성을 제거해주시고, 그 가운데 내주하시어 심령천국을 만들어주셨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여기에서 일곱 가지 죄성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교만성, 포악성, 음란성, 아집성, 질투성, 태만성, 거짓성 등입니다. 이러한 죄성 즉 마귀의 성질이 뿌리 박혀 있는 사람들의 영은 더럽고 악하기 때문에 영혼 가운데 있는 죄성이 제거되는 은총, 즉 영적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 죄성으로 말미암아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다 통과할 때까지는 가나안 7족이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출애굽한 성도들이 광야의 모든 연단과정을 마치고 정결케 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는 영 가운데 죄성이 뿌리 박혀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다 통과한 후에 가나안 7족을 멸망시킨다는 것은 성도들이 광야를 통과하면서 행실을 정결케 한 후에 영 안에 뿌리 박혀 있는 일곱 가지 죄성이 제거되는 은총 즉 영적 할례를 받게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천로역정』을 보면 가나안 7족을 정복하는 과정에 대하여 기독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독도는 아볼루온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이곳은 음침한 구름이 산란하게 떠돌고 사망이 날개를 펼치고 있으며, 오른편에는 개천이 있고 왼편에는 깊은 수렁이 있어서 매우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또한 망령들과 각색 괴물들과 용들이 있어서 계속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기독도는 이 골짜기를 통과하는 중에 점점 정신이 혼란해져서 자신의 소리도 알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기독도는 이렇게 불쾌하고 위험스러운 환경 가운데 한동안 전진하다가, 앞서 가던 어떤 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때 기독도는 이렇게 험난한 길인데도 불구하고 통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해주신다는 것을 깨닫고 기뻐하였습니다.

 


조금 후에 어둡던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되어 해가 떠오르자 기독도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 통과했다는 것을 알고 크게 감격하였습니다. 해를 보는 순간 기독도는 “주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치시매 내가 그 밝은 빛을 힘입어 흑암 가운데서도 진행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암울한 환경 가운데서 괴로움을 많이 당하는 과정인데, 그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설해 보겠습니다.

 


기독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한 걸음 한 걸음 통과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 7족을 하나하나 정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망령들과 괴물들과 용들은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을 괴롭히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악령들을 상징합니다. 이 악령들이 때로는 속살거리기도 하고 또는 맹렬하게 울부짖으며 삼키려 하기 때문에 기독도는 크게 두려움을 느끼는데, 이것은 마귀들이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성도들을 공격하여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혼동시키고 정신을 잃어버리게 하며 괴롭히는 것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악령들은 가나안 7족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수많은 방법으로 공격을 하는 것과 같이, 성도들의 영을 빼앗기지 않고 계속 지배하기 위하여 공격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독도가 아주 좁고 협착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한다는 것은,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영혼이나 육체나 환경 가운데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간신히 통과하게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기독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 통과했을 때 날이 새고 밝은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성도들이 이 골짜기를 다 통과한 직후 천국 보좌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생명수를 풍성하게 체험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중국의 성자 워치만 니는 그의 저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 경험하였던 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워치만 니 성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과정을 ‘암흑의 밤’을 통과했다고 하였으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는 체험을 ‘부활의 아침’을 체험했다고 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암흑의 밤을 통과하는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했던 것처럼 표현하였으며, 그 기간은 수개월동안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증언을 ‘영적 성장론’에 비추어 분석해보면, 워치만 니의 ‘암흑의 밤’에 대한 견해는 천로역정의 기독도가 회의와 억겁을 만날 때부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 통과할 때까지 걸린 기간을 가리켜 말하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성도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기간은 약 한달 정도 걸리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이 책에 나온 암흑의 밤에 대한 내용을 소개함으로써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이상 감히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깊고 암흑한 경험을 통하여 우리의 자아 능력이 상처를 받아 근본적으로 약해지는 지점에까지 우리를 이끌어 오셔야만 하는 것이다. 어떠한 방법으로 그렇게 할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그 지점까지 인도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대단히 가혹하게 다루시고 곤란하고 고통스러운 길로 인도하지 않으면 안 되셨던 것이다.

 


우리가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그 암흑의 밤을 통과해야 된다는 것이다. 주님은 은혜로 나의 생애 가운데 한 번 나를 수개월동안 내버려두신 과정, 즉 영적으로 완전히 어두운 상태에 집어넣으신 일이 있었다. 그것은 거의 주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 같았으며, 아무 일도 진행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나는 정말 종말에 이른 것만 같았다.

그 다음에 주님은 점차 모든 것을 원 상태로 회복시켜 주셨다.

 

다른 성도들의 경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데 얼마나 오랜 기간이 걸리게 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나는 안심하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을 거기에 머물러 두시는 일정한 기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같이 보일 것이다. 당신이 귀하게 생각하던 모든 것이 당신 손에서 빠져나간다. 거기서 당신은 문이 없는 벽을 직면한다. 겉으로 보기에 다른 사람들은 축복을 받으며 사용되는 것같이 생각이 된다. 반면에 당신 자신만 외면을 당하며 패배를 당하는 것같이 생각이 된다. 조용히 누워있어라. 만물이 암흑 가운데 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불과 하룻밤이 지나자마자 싹이 난 것과 같이 부활의 아침은 틀림없이 오는 것이다. 그것은 실로 온밤이 필요한 것이다. 그 후 당신은 영광스러운 부활의 영역에서 모든 것이 돌려주시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전에 있었던 것과 현재 있는 것과의 차이를 아무도 측량할 수가 없다.』

 

〔워치만 니 著,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 생명의 말씀사 1976년, p276-281〕

 

【참고사항】 이스라엘 왕국의 발달과정에 나타난 ‘할례’와 천로역정에 나타난 ‘전신갑주’에 대한 폭넓은 이해

 

 

여기에서는 여호수아가 안수 받을 때부터 할례산을 통과한 후 가나안 7족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분배해 줄 때까지, 즉 성령께서 성도들의 영 안에 내주하시면서 뿌리박힌 죄성을 제거하고 생명수가 폭포수와 같이 흘러 들어오는 체험을 하기까지에 대한 진리를 종합적으로 정돈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체험에 대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천로역정』과 비교하면서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에서 우리는 모형적진리 가운데 여호수아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도자로 안수를 받게 된다는 것이,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의 영 안에 성령님께서 죄성을 제거하면서 내주하시는 것을 상징한다고 해석하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입구에 있는 길갈에서 할례를 받는 것과 가나안 땅에서 우상을 숭배하며 살고 있던 일곱 족속을 정복하는 것이, 성령께서 성도들의 영 안에 있는 죄성을 제거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가 안수 받은 때와 길갈에서 할례를 받은 때와 가나안 7족을 정복하는 때 중에, 성도들의 영 안에 뿌리박힌 죄성이 실제적이며 체험적으로 제거되는 때는 언제일까요? 대부분의 성도들은 가나안 7족을 정복하는 과정이 끝날 때 이러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7족은 일곱 가지 죄성에 따라 구분되어 있으므로, 가나안 7족이 멸망하였다는 것은 심령 속에 뿌리박힌 죄성이 제거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안수를 받을 때나 길갈에서 할례를 받을 때는 가나안 7족을 멸망시키지 않았을 때이므로, 죄성이 성도들의 영 안에 여전히 뿌리 박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에서 우리는 여호수아가 안수 받을 때, 즉 천로역정의 기독도가 전신갑주를 입을 때 성령께서 성도들의 영 안에 뿌리박힌 죄성을 제거하시면서 내주합일 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7족을 멸망시키지 않았을 때이므로 죄성을 제거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점은 여호수아가 안수 받을 때 받은 사명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로부터 안수를 받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가나안 7족을 멸망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분배해주는 권세와 능력과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성도들이 가나안 7족이 멸망하는 과정에 영적 할례은총을 받게 되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 여호수아가 안수 받는 과정을 통과하는 극소수의 성도들 중에 일부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사역을 위해서 영적 할례를 받고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 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일부 성도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 되는 은혜 체험을 주시는 이유는 극심한 환난과 고통을 비롯한 모든 마귀의 공격을 가볍게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은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을 보면 여호수아가 안수 받을 때부터 가나안 땅을 백성들에게 분배해줄 때까지 성장하는 과정에 대하여, 기독도가 체험한 것과 진충과 기독도 여사 일행이 체험한 것이 각각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도는 간난산 꼭대기를 통과할 때 미궁에 들어가서 전신갑주를 입고 간난산을 다 통과한 후 아볼루온과 싸움에서 승리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였습니다. 그런데 진충이나 기독도 여사와 그 일행은 미궁에 들어가지 않고 간난산을 다 통과한 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했습니다.

 


기독도가 미궁에서 전신갑주를 입었다는 것은, 앞에서 알게 된 바와 같이 성도들이 이 과정을 통과할 때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 되는 체험, 즉 생명의 전신갑주를 입었다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기독도는 생명의 전신갑주를 입었기 때문에, 간난산을 내려갈 때나 아볼루온과 싸움을 할 때 그리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 극심한 어려움을 당하였지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충과 기독도 여사 일행은 미궁에 들어가 전신갑주를 입지 않았지만 간난산을 잘 통과하였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비교적 쉽게 통과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분배받는 체험, 즉 하나님의 생명수가 영 안에 유입되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탁월한 영성지도자들의 간증을 살펴보면 두 종류로 구분되어 있는데, 그것은 기독도와 같이 미궁을 통과할 때 생명의 전신갑주를 입는 성도들과, 진충과 기독도 여사 일행과 같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 통과한 후 하나님의 생명수가 폭주 유입되는 체험을 한 성도들로 구분됩니다.

 


기독도와 같이 생명의 전신갑주를 입고 통과한 성도들은 천로역정을 집필한 존 번연, 가르멜 수도회를 개혁했던 십자가의 요한 성자, 병상의 증거자 K성도님 등입니다. 이러한 영성지도자들은 간난산의 후반기와 아볼루온의 공격을 받을 때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 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도와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충과 기독도 여사 일행과 같이 통과한 분들은 중국의 성자 워치만 니, 한국의 위대한 부흥사 이용도 목사 등입니다. 진충과 같이 이 과정을 통과한 성도들은 여호수아가 안수를 받을 때나 길갈에서 할례 받을 때 풍성한 은혜체험을 하면서 통과하며, 죄성이 제거되는 영적 할례은총은 가나안 7족을 정복할 때 경험하게 됩니다.

 


이상에 열거한 다섯 분은 이분들의 간증내용들을 자세하게 검토해보고 확인하였기 때문에 성장과정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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