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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성경 이해하기/천로역정 강해

3. 르비딤생수---가나안 땅 정탐

by Andrew Y Lee 2011. 6. 5.

 

3. 르비딤에서 생수를 마실 때부터 아말렉 군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까지

천로역정 가운데 기독도가 세지의 말을 듣고 시내산 아랫길로 가다가 다시 전도를 만날 때까지의 과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므리바 생수를 마시고 난 후부터 아말렉 군대와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의 과정에 해당됩니다. 기독도는 세지를 통해 도덕촌의 시법 선생을 만나면 등짐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전도가 가르쳐준 길을 버리고 시내산 아랫길로 향하게 됩니다.
시내산 밑에 있는 길을 통과하는 중에 기독도는 등짐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산꼭대기에서는 뜨거운 불이 떨어져 금방이라도 자신을 태워버릴 것 같이 무섭게 느껴지기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져 큰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때 갑자기 전도가 나타나 자신이 가르쳐준 길로 가지 않은 기독도를 책망하면서 다시 좁은문을 향해서 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기독도가 세지를 만나 대화를 하는 것은 모형적진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므리바 생수를 마시는 체험으로써, 성도들은 성령의 풍성한 은총을 힘입어 완덕을 사모하며 하나님께만 일생을 철저하게 바치고자 하는 의욕이 불꽃같이 타오르게 됩니다. 이러한 전환점을 통과하면서부터 성도들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나온 시내산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받게 되었던 그 산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받게 되는 두 번째 연단과정이 율법적인 단계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내산 아랫길은 성도들이 율법 즉 빛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실천함으로써 등짐 즉 원죄를 벗어버리고 의인이 되고자 애를 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존 번연은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이 천로역정을 기록했기 때문에 기독도가 쩔쩔매면서 고통을 받던 그 시내산 아랫길이 꼭 통과해야 되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길을 간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복음주의자들은 “행위와 상관없이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받는다”, “의인이 되는 것도 행위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의인을 만드신다.”라고 주장하면서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과정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을 분석해보면 시내산 아랫길이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경험적으로, 다시 말해서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로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성장론적이며 종합적인 관점으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된 길이라고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내산 아랫길은 십자가 즉 예수님의 보혈은총으로만 죄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진리를 경험적으로 깨닫게 하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통과해야 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하나님의 선한 말씀 즉 사랑과 인내 그리고 경건과 절제를 실천해보고자 스스로 애를 쓰는 과정이 있어야만, 범죄하기 쉬운 기회가 주어질 때 온전한 사랑과 인내 그리고 경건과 절제를 실천하지 못하고 범죄하게 되는 자신의 연약함과 추악함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 비로소 성도들은 자신의 노력으로는 죄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절망감을 느끼게 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의 보혈은총으로만 죄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진리를 경험적으로 깨닫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함으로써 승리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과정은 성도들이 더 높은 신앙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경험해야 되는 과정입니다.
이제부터 시내산 아랫길에서 기독도가 겪은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기독도는 시내산 아랫길에서 점점 더 무거워지는 등짐과 산꼭대기에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불덩어리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라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두 번째 연단과정에 들어간 성도들이 어떠한 환경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범죄하지 않고 온전한 사랑과 인내 겸손을 실천하고자 하지만, 자꾸 실패를 거듭하면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떨어질 것 같은 큰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은 강한데 자꾸만 실패하게 되므로 양심의 가책과 자신에 대한 절망과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로역정에서는 지옥불이 쏟아질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범죄를 많이 하거나 모든 행실이 더 추악해지기 때문에 고통과 두려움이 따르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행실로서 범죄하는 것은 점점 줄어들게 되지만, 양심은 더욱 밝아지고 예민해지기 때문에 가끔 작은 죄를 범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범한 것처럼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성도들 자신의 심령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죄성과 정욕의 추악함을 적나라하게 경험적으로 깨닫게 하심으로써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능력으로는 의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과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영적 훈련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말렉 군대와 싸우는 과정 즉 두 번째 연단과정은 세 번째 연단과정보다 약하고 엉성하기는 하지만 다양한 환경 가운데서 죄성과 정욕의 실상을 골고루 맛보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빛에 따라 생활하는 인격자로 성장시키기 위하여 점점 더 깊고 넓게 연단하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세 차례의 연단을 받게 되는데, 세 번째 즉 마지막 연단과정을 통과할 때는 훨씬 더 세밀하고 철저하게 연단하셔서 마음과 행실을 정결한 그릇으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신비로운 능력으로 죄성 곧 등짐이 떨어지는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 여호와닛시
기독도는 도덕촌에 살고 있는 시법을 만나기 위하여 번민과 괴로움을 당하면서 시내산 아랫길을 통과하는 도중에 전도를 만나 책망과 권면과 도움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아말렉 군대 즉 악령들의 활동으로 나타나는 수많은 시험과 풍파 속에서 연단을 받다가 이 두 번째 연단과정이 끝날 무렵 막다른 궁지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의 큰 은총과 말씀으로 말미암아 승리하게 되는 ‘여호와 닛시’ 체험을 가리켜 말합니다.

◉ 좁은문
시내산 아랫길에서 전도의 도움을 받은 기독도는 좁은문에 도착하여 인자의 환영과 위로를 받으면서 좁은문을 통과하게 됩니다. 이 좁은문이 열리기 직전에 좁은문을 통과하고자 하는 성도들을 방해하기 위하여 마귀가 공격함으로써 생기는 시험이 있습니다. 바알세불이 좁은문 근방에서 활을 겨누고 있다가 좁은문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나타나면 화살을 쏘아서 멸망시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도는 인자가 문을 얼른 열어주고 빨리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안전하게 좁은문을 통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 과정을 통과할 때 생활환경 배후에서 마귀가 역사하여 나타나는 고난풍파를 겪게 되지만 영적으로 멸망당하지 않고 좁은문을 통과하게 됩니다.

실례를 들면 『죽음 저편』이라는 책을 쓴 마빈 포드 증거자는 좁은문이 열린 때로부터 몇 주 전에 갑자기 심장병이 악화됨으로써 병원에 입원하여 죽게 되었는데, 30분 동안 입신하여 천국에 들어가 신비체험을 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마빈 포드가 심장병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다가 죽게 된 것은 좁은문이 열리기 직전에 마귀의 공격을 받고 시험을 당하는 환경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마빈 포드의 영혼을 천국으로 데려가셔서 신비체험을 하도록 하심으로써 좁은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좁은문을 통과하는 것은 성도들이 여호와 닛시를 통과한 후 얼마동안 형통하다가 마귀의 역사로 생긴 돌연한 시험고통을 당하는 가운데 큰 은혜를 받는 체험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 좁은문을 통과할 때 성도들이 체험하거나 깨닫게 되는 내용은 다양한 차이가 있으나 대개 4일 내지 7일 정도 걸리게 됩니다.
기독도가 두 번째로 전도를 만나서 도움을 받은 때로부터 좁은문을 통과하기까지의 과정은 여호와 닛시를 체험한 때로부터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사건을 통과하기까지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두 번째 전도의 만남과 좁은문을 통과하는 과정에 대하여 좀 더 정확하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왕국 발달사와 비교하여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연단과정 즉 아말렉 군대와의 싸움을 통과한 직후 성도들은 여호와 닛시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후에는 큰 시험풍파가 없는 가운데 비교적 평탄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아말렉 군대의 공격을 받으며 연단을 받는 과정에서 얽히고 번민하고 고통을 받던 문제들이 풀리거나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원수같이 되었던 가까운 사람과 관계를 회복하게 되기도 하고, 거친 환경으로 말미암아 고통스럽게 하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점점 풀어지는 가운데 도덕적으로 승리의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은 기독도가 두 번째 전도를 만난 때로부터 좁은문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해결되고 하나님께로부터 큰 은혜를 받으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환난풍파를 통과하는 중에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셨고,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면서 인도해주셨구나!”라는 사실을 큰 감격 중에 깨닫게 됩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성도들은 장망성을 출발할 때부터 좁은문에 도달할 때까지 있었던 모든 순경이나 역경 중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다는 사실과, 성도들로 하여금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은밀하게 돌봐주셨다는 사실을 영감이 넘치는 가운데 깨닫고 큰 감격과 기쁨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형적진리를 보면 시내산에 강림하신 하나님께서 시내산 아래에 모여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는 애굽 땅에서 종살이 하던 너희를 인도해 낸 여호와로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좁은문을 통과하는 성도들로 하여금 수많은 시험풍파 가운데서도 동행하여 주시면서 돌봐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루터, 칼빈, 웨슬리 같은 종교개혁자들도 좁은문을 통과할 때 큰 기쁨과 감격 속에서 종교개혁을 위한 핵심적인 진리 즉 복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어거스틴파에 속한 수도원에서 엄격한 절제생활을 하던 수도자였습니다. 그는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 피눈물 나는 고행을 하였습니다. 마음에 조그만 음욕이 떠오르기 만해도 채찍으로 자기의 몸을 때리며 통회하였고, 금식을 자주하고 엄격한 규칙생활을 하는 등 죄에서 정결해진 의인이 되기 위해 수도생활을 철저히 하였습니다.

특히 두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하는 동안 루터는 작은 죄를 지을 때마다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될 정도로 채찍질을 하였지만 죄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27세가 되던 해, 루터는 교황을 만나기 위해 로마를 방문했지만 교황을 만나지 못하고 성 베드로 성당과 카타콤 등을 구경한 후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받기 위해 걸어가셨다는 스칼라 산타라는 계단에 도착하였습니다. 루터는 관례를 따라 무릎으로 계단을 기어 올라갔는데 절반쯤 올라가자 무릎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루터의 마음속에는 ‘왜 이렇게 무릎에서 피가 나도록 고행을 해야 하는가? 내 마음은 여전히 완악한데 피가 나도록 계단을 기어오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회의가 생겼고, 동시에 로마서 1장 17절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강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신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충분하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가 지금까지 고민해왔던 죄문제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해결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루터는 두 번째 전도를 만난 체험을 하게 된 것인데, 모형적진리에 비추어보면 여호와 닛시를 통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8세 되던 해에 수도원의 탑 속에서 신비체험을 하면서 복음을 더욱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는데 이것이 좁은문을 통과하는 체험입니다.
웨슬리는 메도디스트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엄격하였고, 규칙적인 생활을 실천하며 강조하는 증거자였습니다. 미국의 조지아주에서 선교한 기간이 약 2년 반 정도인데, 이때 두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소피아와의 교제와 배신, 홉킨즈 목사 아내의 중상모함, 선교목회의 처절한 실패 등으로 자신이 무엇이든지 능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과 의로운 생활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완전히 부서지게 되었습니다.

처절한 실패감을 가지고 영국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회개시키려고 했지만 자신이야말로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이며 자신의 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진젠 돌프 백작을 따르는 피터 볼러를 만나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쁨과 평안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때 웨슬리는 두 번째 전도를 만난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1738년 5월 올더스케잇 거리의 집회 장소에서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는 중에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며 “이제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구나. 그동안 나는 내 자신의 의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보려고 했는데 그것은 참된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구나!”라고 깨달아지면서 큰 기쁨과 감격 속에서 복음진리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요한 웨슬리는 천로역정의 좁은문이 열리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루터나 웨슬리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좁은문을 통과할 때 사람의 노력이나 행함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공로를 통해 주시는 은총으로만 의롭다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인이 된다는 복음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병상의 증거자 K성도님은 두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할 때 성인들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철저하게 참회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시험풍파 속에서 종종 마음속에 순간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악심 때문에 내면적인 실패감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고, 의에 대한 갈증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분은 기도원에서 기도생활을 하고 계셨는데, 여동생이 K성도님의 병상생활을 돌보아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잘 돌보아 주면서도 순간순간 많은 괴로움을 겪게 하였습니다.
K성도님은 순간순간 괴로움을 주는 동생을 아침에 만났을 때 마음속에 미움이나 분노가 느껴 질까봐 밤새도록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새벽시간에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맑고, 시원하고 ,평안하게 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영감에 의하여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이 들어왔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체험을 하고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마음속에서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이 내주하여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을 나타내심으로써 자신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의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는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이때 K성도님은 천로역정의 좁은문을 통과하게 된 것입니다.
열두 사도들은 변화산에서 천로역정의 좁은문을 통과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17:5)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변화되신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중국의 성자 워치만 니는 연단과정을 통과할 때 기회가 생길 때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부패하고 타락한 모습을 보면서 참회하는 가운데 자신이 원죄 즉 죄성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체험적으로 깨닫게 되었는데, 좁은문을 통과할 때 비로소 죄인인 자기의 옛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되었다는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 큰 기쁨과 감격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 성막에서 율법선포
기독도는 좁은문을 떠나 효시(曉示)의 집으로 들어가서 효시의 인도를 받아 일곱 개의 방을 통과하면서 일곱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성도들이 좁은문을 통과한 후 며칠 또는 몇 주가 지난 뒤에 성령의 강한 감동과 역사가 나타나 복음진리를 많이 깨닫고 정돈하며 풍성한 은혜체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 과정을 통과하는 동안 성도들은 몇 주일 혹은 1개월 내지 2개월 정도 계속적으로 풍성한 영적 체험을 하면서 지나가게 됩니다. 기독도는 효시의 인도로 일곱 개의 방을 다니면서 참 전도자의 모습, 율법과 은혜, 급욕(急欲)과 인내(忍耐), 마귀의 방해와 성령의 기름, 믿음으로 승리한 자들과 배교자의 말로, 그리고 대심판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이 과정은 성도들이 자기의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며 과거에 가지고 있던 지식과 경험을 비교하면서 수많은 진리가 새롭게 정돈되고 종합되는 전환점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좁은문과 효시의 집을 통과하면서 성령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신유, 믿음, 말씀, 지혜, 지식, 능력 행함, 예언, 환상, 방언통역, 방언, 입신 등 다양한 은사들을 받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이 과정을 통과할 때 받는 은사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냄으로써 말씀을 강력히 증거하고 열심히 봉사하도록 하기 위한 은사입니다.

히브리서 6장 4절에 나오는 “하늘의 은사를 맛본다.”는 말씀이 곧 효시의 집을 통과할 때부터 풍성하게 체험하게 되는 은사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로역정의 좁은문과 효시의 집을 통과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자들에게 풍성한 성령의 은사를 나타내 주셔서 불신자들을 구원받게 하고 어린 성도들을 양육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효시의 집을 통과한 사역자들의 전도와 봉사활동을 통하여 영적으로 초보적인 단계에 있는 성도들은 은사체험을 하기도 하며 신앙생활에 많은 유익을 얻게 됩니다.

또한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장망성을 출발할 때부터 은사체험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와 같이 초보적 신앙을 가진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은사는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가운데 활발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시는 은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요셉을 살펴보면 꿈속에서 열한 단이 자기에게 절하고 열한 별과 해와 달이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요셉의 신앙이 효시의 집을 통과할 때 체험한 것입니다.

요셉은 그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꿈을 통하여 계획하신 장래 일을 상징적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효시의 집을 통과할 때 보이신 것은 먼 훗날 요셉이 영적으로 높이 성장한 40대가 되어서야 성취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신 바를 그 꿈을 통하여 미리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효시의 집을 통과하는 과정은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같이 연구하는 성장론적 진리를 체계적으로 정돈하여 처음으로 증거하신 K선생님도 효시의 집을 통과할 때 환상 중에 『난공불락』(難攻不落)이라는 책을 두 손으로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상의 칼빈, 루터, 웨슬리, 요셉과 같이 선명하게 사명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는 분도 있고, 복음진리를 깨닫고 성령 충만과 기쁨, 감격만을 체험하는 가운데 지나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 가나안 정탐
기독도는 효시의 집을 떠나서 좁은 골목길을 통과한 후 십자가 언덕에 올라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짊어지고 있던 등짐이 떨어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좁은문과 효시의 집을 통과하면서 풍성한 은혜를 받았으므로 사명감과 큰 기쁨, 그리고 용감한 마음을 가지고 증거하면서 달려가다가 시험풍파를 만나 고생하면서 여러 날이 지난 뒤에 십자가 언덕에 도달하여 등짐 즉 죄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 언덕에서 등짐이 떨어지는 체험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체험은 성도들이 십자가 언덕을 통과할 때 성도들의 영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일시적으로 내주하는 체험을 함으로써 죄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 체험자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로마서 8장 2절의 말씀과 같이 죄의 법에서 일시동안 해방되는 체험을 함과 동시에, 고린도후서 4장 1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성도들의 몸에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 됨으로써 신비로운 생명의 감각이 몸 전체에 확실하게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독도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등짐이 떨어지는 체험을 하였다는 것은 속죄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공로를 통해서 원죄 즉 죄악성이 굴러 떨어짐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서신에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죄성이 굴러 떨어지고 의로운 심령이 되었다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천로역정에서 등짐이 영구적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 성장에 대한 모형적진리를 비추어 볼 때 천로역정의 십자가 언덕은 가나안 정탐 체험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체험은 일시적인 것이지 실제로는 가나안 땅 입구에 있는 할례산을 통과할 때 등짐이 완전히 떨어지는 체험 즉 죄성이 굴러 떨어지는 체험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천로역정에서 십자가 언덕을 통과할 때 등짐이 영구적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처럼 묘사된 것은 의롭다함을 받는 것 즉 심령의 할례(골2:11; 롬2:29)를 받는 체험이 십자가의 공로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천로역정의 상·하권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형적진리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모든 성도들이 다 십자가에서 등짐이 떨어지는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천로역정의 상권에 나오는 진충이나 하권에 나오는 기독도 여사의 일행은 등짐이 떨어지는 체험을 하지 않고 통과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 입구에 있는 할례산을 통과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받음으로써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 언덕에서 등짐이 떨어지는 체험을 하지 않고 통과한 진충이나 기독도 여사 일행을 죄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잘못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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