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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성경 이해하기/천로역정 강해

4. 가데스 생수

by Andrew Y Lee 2011. 6. 5.

 

4. 가나안 땅을 정탐한 이후부터 가데스에서 생수를 마시기 전까지 가나안 사람들에게 쫓김

 

이 과정에서 기독도는 십자가 언덕을 내려가다가 잠자고 있는 자만(自滿), 나타(懶惰), 천박(淺薄)이라는 세 사람을 깨웠습니다. 성도들은 좁은문, 효시의 집, 십자가 언덕을 통과하면서 큰 은혜를 체험하였기 때문에 열심으로 순종하고 충성하게 되며 범사에 좋은 성과가 나타나고 그러한 생활이 계속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만심이 많아지게 됩니다. 또한 철저하게 절제하며 엄격한 극기생활을 하다가 대접받기를 좋아하고 편한 생활을 추구하면서 정욕을 만족시키는 가운데 점점 태만에 깊이 빠지게 됩니다.

이와 같이 교만하고 태만한 성도들의 생활환경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온갖 성난 풍파를 일으켜서 천대와 박대를 당하게 함으로써 자아가 깨어지고 겸손하고 부지런한 마음과 행실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가나안 사람들에게 쫓기는 과정을 통과시키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은 이 과정을 통하여 시험풍파를 많이 겪는 가운데 사람들로부터 천대와 박대를 당하면서 자만과 나타가 깨어지고 겸손하게 되어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하는 인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와 같이 자만과 나타와 천박을 깨운다는 것은 성도들의 생활환경 가운데 큰 시험풍파가 많이 일어나 자만과 태만을 비롯한 모든 죄성과 정욕의 지배를 받고 있는 마음과 행실을 철저하게 성찰하고 참회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렇게 성도들의 영혼이 잘되면 범사에 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따르게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자만과 나타와 천박을 깨우는 과정을 통과한 성도의 경험을 살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병상에서 32년 동안 복음을 증거 하면서 생활해온 K성도님은 1967년 10월 20일 하나님의 기적으로 병 고침을 받기 위하여 성주산 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생활을 하는 동안에 수많은 시험풍파를 겪는 가운데 두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하고, 1969년 3월 1일 새벽에 좁은문이 열리면서부터 효시의 집, 십자가 언덕을 4월 24일까지 모두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K성도님은 십자가 언덕에서 등짐이 떨어지는 체험 즉 하나님의 생명이 20일 동안 내주합일 되는 체험을 하였고, 며칠 후에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비록 병 고침을 받고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와 위로를 받으면서 매일매일 은혜와 진리를 사모하여 찾아오시는 손님들에게 전도하는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K성도님은 기도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부모님께 말씀드리기를 “저는 병을 고치지 못하고 돌아오긴 했지만 절대로 죄를 지을래야 지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복을 받고 내려왔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시시때때로 크고 작은 시험풍파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가운데서 날마다 복음을 증거하는 생활을 하였는데, 7월 초순 어느 수요일 저녁에 모든 가족들이 저녁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로 가셨고, 고등학교에 다니던 여동생과 함께 집에 남아있었습니다. K성도님은 여동생에게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되지 않느냐고 권하자 불만불평을 나타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심한 혈기를 내고 욕설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K성도님은 한동안 잘 참고 견디면서 온유한 말로 달래보았으나 여동생은 계속적으로 심한 혈기와 욕설을 하면서 괴롭게 하였기 때문에 K성도님은 옆에 있던 막대기를 들어서 던지는 시늉을 하다가, 그 막대기가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면서 여동생의 몸에 맞게 되었습니다. 그때 K성도님은 몇 달 전에 부모님을 향하여 결코 죄를 지을래야 지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호언장담을 했던 것 때문에 하늘과 땅이 무너진 것처럼 느껴졌고,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면서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만일 교회에 가셨던 부모님이 돌아오셔서 울고 있는 동생을 보게 된다면 호언장담을 했던 K성도님 자신을 어떻게 판단을 하실 것인가, 또한 혹시라도 울음소리를 듣고 동네 사람들이 몰려온다면 진리증거를 하였던 K성도님을 향한 사람들의 시각이 부정적인 인식으로 바꿔지게 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 등으로 눈앞이 캄캄해진 것입니다. 잘못했다고 사과하면서 애원하는 마음으로 달래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는데, 다행히 여동생은 부모님께서 집에 들어오시기 직전에 울음을 그치고 자기 공부방으로 들어갔습니다.

K성도님은 주변에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그 부끄러운 일이 드러날 뻔했던 순간은 모면했지만, 밤새도록 그 일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 K성도님은 얼마동안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생겨 수많은 시험고통을 겪는 중에도 전도하는 생활은 계속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K성도님의 경험을 분석해보면 십자가 언덕에서 등짐이 떨어지는 체험을 하고 죄를 범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된 줄로 착각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높아져 호언장담을 하였는데, 그 여동생의 심한 혈기와 욕설을 통해서 과오를 범하고 큰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K성도님은 상당한 기간 동안 고난풍파를 겪으면서 가나안 사람들에게 쫓기는 과정, 즉 천로역정의 자만과 나타와 천박을 깨우는 과정을 통과하게 된 것입니다.

 

◉ 가나안 땅을 정탐한 이후부터 가데스에서 생수를 마시기 전까지

자아를 깨뜨리심에 대하여

 

이스라엘 왕국의 발달과정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싹난 지팡이를 통하여 모세와 아론을 이스라엘의 참된 영도자라고 인정해 주신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동안 율법을 지키면서 큰 시험 고통을 당하지 않고 형통하는 가운데 광야를 통과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육적인 축복을 누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탄하게 진행하던 광야의 길을 『천로역정』에서는 기독도가 허례(虛禮)와 위선(僞善)을 만나 동행하는 것으로 상징하였습니다. 그리고 장망성에서 기독도보다 조금 늦게 출발하여 천성을 향해 가던 진충(盡忠)은 이 과정을 통과하면서 아담 노인을 만나 유혹을 받게 됩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기독도는 등짐이 떨어지는 체험을 한 후에 십자가 언덕에서 아래로 내려가다가 잠을 자고 있는 천박과 나타와 자만을 깨우게 됩니다. 그 후에 얼마동안 좁은 길을 가다가 그 길 왼편에서 담을 넘어오는 허례와 위선을 만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허영의 성에서 왔으며 영예를 구하기 위해서 시온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독도는 두 사람과 동행하다가 간난산(艱難山) 입구에 도달하여 샘물을 마신 후에 간난산으로 올라가게 되었고, 허례와 위선은 그 산이 매우 험하고 높은 것을 보면서 기독도를 따라 올라가지 않고 그 산의 아래쪽에 있는 평탄한 길, 즉 위험로와 멸망로로 갔기 때문에 다시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진충은 좁은문을 통과한 다음에 끈질기게 유혹을 하던 음녀를 떨쳐버리고 한동안 길을 가다가 아담 노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노인은 진충에게 품삯과 쾌락과 가산을 풍성하게 주고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세 딸과 결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유혹을 하였습니다. 진충은 한동안 마음이 솔깃하여 끌려가다가 그 노인의 이마에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진충의 마음 가운데 뜨거운 불길이 일어나서 그 노인이 아무리 좋은 말을 할지라도 믿어지지 않게 되었고, 그가 자신을 데리고 가서 종으로 삼을 것으로만 생각되었기 때문에 따라가지 않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아담 노인은 크게 분노하면서 떠나려고 하는 진충을 있는 힘을 다하여 움켜잡고 끌어당겼습니다.

그때 진충은 그 노인을 간신히 떨쳐버리고 떠나게 되었는데 몸의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은 큰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진충은 아담 노인을 용감하게 물리치고 매우 빠른 발걸음으로 간난산 꼭대기를 향하여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기록한 사건들에 대하여 이제부터 설명해 보겠습니다. 여기에서 허례와 위선이 동행하게 된 기독도와 아담 노인을 만나게 된 진충이 서로 다른 길을 통과한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 것이 아니라 이 과정을 통과한 성도들의 마음상태와 행실과 생활환경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를 가지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먼저 기독도가 허례와 위선을 만나 동행하는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좁은 길을 한동안 잘 가고 있던 기독도가 담을 넘어오는 허례와 위선을 만난다는 것은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의 생활 가운데 허례가 넘치는 행실과 위선적인 삶이 점점 많아지게 된다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은 아론의 싹난 지팡이 체험을 한 다음에 많은 일들이 형통하게 되고 수고할 때마다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으로 봉사하게 됩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과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인정을 받고 사랑과 존경과 대접을 받는 환경 가운데서 성도들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교만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철저히 노력을 해야만 하는데, 교만한 생각을 물리치려고 노력은 하면서도 무의식중에 은근히 이익과 쾌락을 추구하고 즐기는 육적인 마음 즉 욕심이나 교만 등이 서서히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겉으로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풀고 큰사랑을 실천하는 것 같으나, 마음속에는 물욕이나 명예욕 또는 성욕을 만족시킨다든가 체면이나 위신을 높이는 등 불순한 욕심이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과정을 통과하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종종 말씀을 증거 하거나 사랑을 실천할 때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선하고 경건한 것처럼 보이지만, 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마음 가운데 불순한 동기와 탐욕이 있는 것을 보시면서 위선자라고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도들은 이 과정이 시작될 때부터 마음과 행실 가운데 위선과 허례가 많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점점 육적인 축복을 많이 받고 범사가 형통하는 가운데 경건생활과 회개생활은 약해지고 허례와 위선이 습관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성도들이 아론의 싹난 지팡이 체험을 한 이후부터 많은 일들이 형통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으면서, 점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은밀하게 즐기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은 말씀증거나 전도, 사랑실천, 구제, 기도, 헌금 등을 열심히 하게 되면 생활 가운데 육적인 축복을 풍성히 받고 사람들로 부터도 인정과 대접을 많이 받게 됩니다. 이렇게 만사가 형통하고 육적인 축복을 많이 받는 가운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가게 되면 빛 된 말씀을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실천하고자하는 애씀과 노력이 약해지면서 점점 허례와 위선에 깊이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생활을 계속하다가 간난산 입구에서 가까운 장소에 이르렀을 때에는 삶의 구석구석에 허례와 위선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목회하시는 분이 빛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를 통하여 아주 잘 증거 한다고 할지라도 그 설교 내용 가운데 있는 교훈적인 지식들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 철저하게 회개생활을 하지 않게 되면 허례와 위선적인 행실이 많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인들에게 사랑을 베풀거나 권면이나 축복기도를 해주면서 은근히 뭔가를 바라는 욕심이 생기거나 크게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기대를 품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을 계속하는 가운데 말과 행동으로 위선적인 죄를 점점 더 많이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 또 율법사들이나 서기관들에게 “외식하는 자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아” 라고 책망하시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이것은 그 사람들의 행실이 도덕적으로 뛰어나고 아주 선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온갖 탐욕과 시기와 질투와 아집과 교만과 음욕과 거짓 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겉으로는 경건하고 착하게 보이지만 그 마음속에는 육적인 애정과 욕망을 비롯하여 온갖 악심이 들어있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외식과 위선을 책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은 위선과 허례에 깊이 빠질수록 정욕적이며 세상적인 행실이 점점 많아지게 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선하고 충성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삶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은밀한 가운데 남녀간의 애정이나 명예욕, 물욕, 성욕 등의 지배를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성자 성녀들의 생활을 보면 비록 축복과정이라고 할지라도 늘 용감하게 좁은 길을 추구하면서 철저한 회개생활과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위선과 허례에 깊이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은 순간순간 육적 행실을 버리고 빛 된 삶의 열매, 즉 사랑과 인내와 온유와 희락과 자비와 절제와 겸손과 충성과 정직 등의 열매를 풍성히 맺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면 허례와 위선에 깊이 빠지지 않게 될 것이며, 철저한 영적 생활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점점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타협을 하면서 허례와 위선이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온 인물 가운데 야곱은 허례와 위선이 동행할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야곱은 에서를 속였던 잘못 때문에 도망을 하다가 벧엘이라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풍성한 은혜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장망성을 출발한 것입니다. 그 후 야곱은 7년 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봉사한 다음에 라헬과 레아를 아내로 맞이하여 단란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을 때 좁은문을 통과하게 되었고, 라헬을 아내로 삼은 것 때문에 7년 동안의 더 머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신앙생활을 시작한 때로부터 14년 만에 아론의 싹난 지팡이 체험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야곱은 출애굽한 때로부터 14년이 지난 다음에 허례와 위선이 동행하는 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야곱은 약 6년 동안 허례와 위선이 동행하는 과정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이 시작될 때 야곱은 외삼촌 라반과 품삯을 정하게 되었는데, 양과 염소가 새끼를 낳게 되면 점이 있거나 알록달록한 것은 모두 야곱의 것으로 하고 나머지는 외삼촌의 것으로 정하자고 약속하였습니다.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 신풍나무를 이용하여 아롱진 양이나 염소들이 많이 생기도록 하였으므로 점점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화가 난 외삼촌은 열 번이나 품삯을 번복하였지만 야곱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인간적인 지혜와 방법을 적용하여 점점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론의 싹난 지팡이 체험을 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육적인 축복을 많이 주셨는데, 이 과정에서 야곱이 육적인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온갖 부도덕한 지혜와 방법을 동원하게 되었다는 것은 허례와 위선적인 마음과 행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겸손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받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보다도 앞서는 욕심과 교활한 방법으로 거부가 된 것을 볼 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허례와 위선적인 생활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라북도 어느 기도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기도원에서는 심령부흥을 위하여 ○목사님을 강사로 초청하여 집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첫날부터 집회를 인도하시면서 그 강사님은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일에 열심히 충성해야 된다고 증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그 강사님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매우 적은 것에 대하여 그 기도원의 원장님께 “내가 그래도 1,500명 정도의 교인들을 모아 놓고 목회를 하면서 설교하는 사람인데 겨우 100여명을 모아 놓고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고 나를 초청했습니까?”라고 불평하면서 그 부흥회를 인도하던 도중에 돌아갔다고 합니다.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이라면 한 명이 모여 있든, 만 명이 모여 있든 열심히 말씀을 증거해야 되는 것인데, 그 강사님은 모인 사람들의 수가 적다고 하면서 그 집회를 인도하시다가 그냥 가버린 것입니다. 이 부흥강사님은 명예욕이나 물욕 그리고 교만이나 아집 등의 육적인 마음을 가지고, 행실 가운데 위선과 외식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빛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증거하는 분이라고 할지라도 육적인 축복을 많이 받고 높임과 대접을 많이 받게 되는 가운데 정욕과 타협을 하면서 점점 허례와 위선이 습관화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기독도는 허례와 위선과 한동안 동행하다가 그들과 헤어져 간난산으로 달려 올라갔는데, 허례와 위선은 그 산이 험난하기 때문에 올라가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그 간난산 입구에서 양쪽으로 갈라진 위험로와 멸망로로 갔으므로 다시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기독도가 간난산으로 올라가기 위하여 동행하던 허례와 위선을 버리고 떠나게 되었다는 것은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마음과 행실과 생활의 구석구석에 허례와 위선적인 것들이 많다는 것을 크게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면서 육적인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목표 즉 정결케 되어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 되는 경지를 향하여 힘찬 발걸음으로 달려가게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성도들의 경험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육적인 축복을 풍성히 누리는 가운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지배를 많이 받으면서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늑대가 양의 탈을 쓰고 있는 것과 같이 비참하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깨닫고 새로운 전환점을 통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허례와 위선이 간난산을 올라가는 것보다 쉽게 갈 수 있는 위험로와 멸망로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얽매여 위선과 허례에 깊이 빠진 삶을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밝은 빛을 따라 철저하게 영성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로 하여금 허례와 위선이 동행하도록 하시는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에서 알게 된 바와 같이 성도들은 아론의 싹난 지팡이 체험을 통과한 후에 계속적인 신앙생활과 사역을 하면서 어느 정도의 영적인 은총과 함께 육적인 축복을 풍성히 받게 되는데, 처음에는 영적 생활을 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점점 시간이 흘러갈수록 은밀하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지배를 받게 되어 허례와 위선적인 행실이 많아지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허례와 위선이 동행하도록 하시는 이유는 성도들이 밝은 빛에 대한 진리를 실천궁행(實踐躬行)해야만 하는 줄 알면서도 용감한 결단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육적인 정욕과 아집의 수렁에 빠져 허례와 위선에 얽매인 생활을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크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로 하여금 큰 희생과 고통을 당할지라도 과감하게 육적인 것들을 버리고 철저한 연단과정을 통해서 마음과 행실을 정결케 하고, 그 성도들의 영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 허례와 위선이 동행하는 과정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정탐한 이후부터 애굽 땅으로 돌아가자고 반역했던 60만 명을 계속적이며 점진적으로 죽이시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60만 용사들을 준비하는 과정 가운데 일부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의 옛사람의 행실 즉 육적 행실을 하나하나 고쳐나가고 새사람의 행실 즉 영적 행실을 점진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환난과 고통이 많은 환경 가운데서 하시기도 하며, 범사가 형통하고 육적인 축복을 풍성하게 받는 환경 가운데서 하시기도 합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천박과 나타와 자만을 깨우는 과정이나 고라와 그 추종자들이 모세와 아론을 반역했던 과정은 환난과 고통이 많은 환경을 통과할 때 나타나는 자아를 깨뜨리고, 허례와 위선이 동행하는 과정은 육적인 축복을 많이 누리는 환경 가운데서 나타나는 허례와 위선적인 자아를 깨뜨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과정은 마음과 행실이 정결케 되어 하나님의 생명이 내주합일 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밝은 빛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철저하게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참회생활이나 절제생활, 경건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면, 허례와 위선의 수렁에 깊이 빠지지 않기 때문에 광야의 마지막 연단과정 즉 간난산으로 빠르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또한 성도들이 마음과 생활 가운데 나타나는 빛과 어둠,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하나님 중심적인 것과 자기중심적인 것, 영성과 육성, 새사람의 행실과 옛사람의 행실에 대하여 정확하고 세밀하게 분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철저히 실천하게 된다면 허례와 위선에 깊이 빠지지 않고 간난산으로 빨리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진충이 큰 고통을 받으면서 아담노인의 유혹을 물리치고 간난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진충이 아담 노인의 유혹을 받게 되는 경험은 기독도가 허례와 위선과 동행하는 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되는 가운데 나타나는 경험을 다른 측면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진충이 아담 노인에게 유혹을 받으면서 이끌려가는 과정은 기독도가 허례와 위선과 동행하는 중에 육적인 행복과 쾌락을 은밀하게 즐기고 상습적으로 받아들이는 때부터 위선과 허례가 동행하는 과정이 끝날 때까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진충은 허례와 위선과 어느 정도 동행하던 중에 아담 노인으로부터 품삯과 쾌락을 주고 거기다가 세 딸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결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유혹을 받으면서 간난산 입구까지 이끌려가게 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담 노인은 허위성(虛僞城)으로부터 온 사람이라는 것을 볼 때 에덴낙원에서 거짓말 쟁이었던 사탄의 유혹을 받고 타락하게 된 인류의 조상 아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거짓말 쟁이었던 사탄의 유혹을 받게 되었을 때 생명과를 따먹고 영적인 행복을 누리는 길을 선택하기보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육적인 행복을 누리는 길을 선택하게 되어 하나님의 생명과 빛과 진리를 잃어버리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아가는 인간으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노인이 진충을 유혹하여 세 딸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결혼시켜 주겠다고 한 것은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육적인 축복을 상습적으로 은밀하게 누리면서 허례와 위선이 가득 찬 삶의 수렁에 더 깊이 빠져들어 가고 있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담 노인의 유혹을 받으면서 이끌려가고 있던 진충은 그 노인의 이마에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보고 심령에 뜨거운 불길이 일어나서, 그 노인이 아무리 좋은 말로 미혹할지라도 자신을 데려다가 종으로 팔아먹을 것으로만 생각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따라 가지 않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진충이 아담 노인을 따라서 계속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만을 추구하는 삶, 즉 영적으로 매우 가난하면서도 정욕적인 축복을 누리며 죄의 수렁에 쉽게 빠지고 있는 자신의 비참한 영적 상태를 하나님의 은혜로 크게 깨닫고, 허례와 위선이 가득 찬 부끄러운 생활을 과감하게 버리기로 결단했다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진충이 더 이상 따라가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크게 분노한 아담 노인은 진충을 꾸짖고 협박하면서 있는 힘을 다해 진충의 몸을 움켜잡고 끌어당겼습니다. 그러자 진충은 억세게 잡아당기고 있는 아담 노인을 뿌리치고 간난산 꼭대기를 향하여 달려 올라가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몸의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은 큰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가 허례와 위선에 깊이 빠져있는 자신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매우 심각한 죄악이라는 것을 깨닫고 죄와 정욕에 속한 모든 것을 용감하게 끊어버리면서 철저한 영적 생활을 하게 될 때 큰 고난이 따라오게 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서 진충이 아담 노인을 물리치고 간난산으로 달려 올라가기 시작하는 것은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이 육적인 축복과 위선적이며 외식적인 생활을 끊어버리고 세 번째 연단과정 즉 영성의 밤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진충이 아담 노인의 미혹을 받으면서 이끌려가는 과정이 성도들의 생활 가운데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겠습니다.

 

앞에서 알게 된 바와 같이 아론의 싹난 지팡이 체험을 통과한 성도들은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경건생활을 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에 있어서도 풍성한 열매를 맺히는 가운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만족시킬 만한 환경과 조건들이 점점 많이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성도들은 겉으로 보기에 성공적인 사역자로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과 대접을 많이 받게 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일들이 형통하고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되며, 대접할수록 더 많은 대접을 받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허례와 위선이 동행하고 있는 성도들은 사역과 생활환경 가운데 육적 축복을 많이 받고 있지만 마음 가운데는 빛과 어둠, 영성과 육성, 새사람과 옛사람, 영적인 것들과 육적인 것들에 대한 지식과 분별력이 있기 때문에 육적인 쾌락과 만족을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고 순간순간 고민과 갈등을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은 영에 속한 생활과 육에 속한 생활에 대하여 분별할 수 있는 양심과 지성이 있기 때문에 육신에 속한 축복을 많이 받는다 할지라도 과거와 같이 무조건 감사하고 자랑하며 즐거워하지도 못하고 도리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물리치면서 살아야하므로 고민과 갈등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날이 갈수록 육신의 세력과 싸워야 하는 영적 저항력이 약해져서 자주자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끌려 다니게 되므로 빛을 따라 성실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라도 허례와 위선적인 행실이 점점 많아지게 됩니다.

진충이 아담 노인에게 끌려간다는 것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약해져서 육적 축복의 물결을 저항하지 못하고 은밀하게 정욕적인 삶을 즐기면서 위선과 허례의 수렁에 빠져있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다가 진충은 잘못된 것을 크게 깨닫고 아담 노인을 떨쳐버린 후 급히 간난산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이것은 성령님께서 성도들의 어두운 행실과 삶에 대하여 크게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의 빛과 진리로 튼튼하게 단장시키며 영적인 힘을 강하게 하셔서 모든 어둠의 세력, 즉 육적인 마음과 행실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철저하게 영성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독도가 허례와 위선과 동행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간난산 입구에서 헤어지기까지 걸리는 기간에 대해서는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의 사역이나 생활환경이나 성격이 다양하므로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 과정을 통과하는 성도들 중에 일부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간난산 즉 세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하여 성인들과 같이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에 들어가는 성도들이 있고, 일부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얽매어 살다가 마귀의 종 즉 가라지가 되어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으며, 대부분의 성도들은 세 번째 연단과정에 들어가지 못하고 허례와 위선이 동행하는 과정을 통과하다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