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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성도가 가야 할 완전의 길
영성의 신비가/썬다싱

[스크랩] 그 발 앞에 엎디어 (분할) - 3

by Andrew Y Lee 2007. 4. 26.

제 3 장 기 도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에게 오는 자에게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준다. 이 샘이 그 속에서
강이 되어 솟아 나와 한없는 생명에 이른다" (요 4:14)

1절
제자: 주여, 나는 어느 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한 것을 충분히 알고, 또 최선의 방법으로 그것을 만족케 하실 줄 압
니다. 신학자 뿐 아니라 악한 자에게도 사랑으로 임하실진대 우리가 우리의 필요에 대하여
일부러 기도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현세의 일시적인 것이나 영의 일이나 우리의 필요
에 따라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면할 수가 과연 있겠습니까?"

주님:
1. 그런 질문을 하는 자들은 확실히 기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기도
에 충분한 시간을 보낸 일이 없고 또 기도는 다만 하나님께 구하는 형식일 뿐이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 기도는 다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받으려는 노력일 뿐 아니라 생명의 창조자
이신 나를 붙잡고 생명을 보존코자 하는 노력이다.
사람이 생명의 근원인 그를 발견하여 친밀한 교제에 들어갈 때 생활 전체가 만족되고 완전
하게 된다. 악을 행하는 자에게도 하나님은 사랑인고로 이 세상의 생애에 필요한 것을 준다.
그러나 영적 생명이 없는 그들은 영적 요구가 없으므로 그 필요를 모른다.

비록 하나님이 그들의 위에 영적 축복을 내려 주어도 그들은 그 가치를 모른다. 그러나 믿
는 자에게는 요구와 (무엇을 구할 것인가가 알려진다) 은사의 두 가지 은총이 내려진다. 신
령한 은혜를 받으면 자연 일시적인 물직적 은혜에는 생각이 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영적
사물에 마음이 끌려 이것을 사모하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변하게 할 수 없으나 기도하는 사람은 그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숨은
뜻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마음 속 밀실에서 자기를 계시하고 그
와 교통하며 그의 보배롭고 은혜로운 목적이 계시될 때 그들이 불만족하게 생각하던 의혹과
곤란은 영원히 떠나 버린다.

2. 기도는 즉 성령 안에 있는 호흡이다. 하나님은 깊이 기도하는 자의 생명 중에 성령을 부
어준다. 이와 같이 하여 산 영이 된다 (창 2:7). 그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것은 기도 중
성령이 그의 영적인 폐부 속에 들어 가 그 영을 건강과 능력과 무한한 생명으로 충만케 하
기 때문이다.

사랑인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 영적 또는 물질적 생명에 필요한 것을 공급한다. 하
나님은 구원과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 주는데 사람은 이것을 경히 여긴다. 그러나 기
도는 모든 사람에게 그 가치를 가르쳐 준다. 공기, 열, 물, 빛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 같이 기
도가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영적 생명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은 이와 같이 자유로 공급함에
도 불구하고 사람은 이것을 경히 여겨 창조자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에 반하여 그들이 실로 애써서 겨우 얻는 바 금, 은, 보배를 몇 배나 더 귀히 여긴
다. 이런 사람은 그 육체가 굶주린 때나 마음이 갈급한 때나 아무 요구도 얻지 못한다. 세상
사람은 이와 같은 미련한 방법으로써 영의 일을 취급한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참
지혜와 영원한 생명이 내린다.

3. 이 세상은 넓은 바다 한 가운데서 사람이 빠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바다에 사는 짐승은
가장 깊은 바다 가운데 있어도 그 생명을 보전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그들이 때때로 해면에
나와서 입을 벌리고 공기를 호흡하므로 또 물 속에 들어가 살 수 있다. 이와 같이 인생의
바다에서도 그 표면에 나와 밀실의 기도로써 생명의 성령을 호흡하므로 인하여 이 세상에
살면서도 생과 안전을 발견할 수 있다.

4. 어류는 비록 그 생애를 소금물 속에서 보내지만 그 몸은 짜지 않다. 왜냐하면 그 속에 생
명이 있는 까닭이다. 그와 같이 기도의 사람은 죄 많은 세상 중에 살면서도 죄에 물들지 않
고 자유로 살 수 있다. 그것은 기도에 의하여 그의 생명이 지지되는 까닭이다.

5. 바다의 짠물이 태양의 뜨거운 볕에 쪼이면 증발하여 높이 올라가 천천히 구름이 되고 아
름답고 순수한 물이 되고 비가 되어 땅에 떨어진다(바닷물은 증발할 때 염분은 밑에 둔다).
그처럼 기도하는 사람의 사상과 요구는 의(義)의 태양에 비치어 죄의 오예(汚穢)를 뒤에 버
리고 순결한 자가 되어 높이 올라 가 그 기도는 큰 구름이 되고 은혜의 소낙비가 되어 하늘
에서 내려 와 땅 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힘을 준다.

6. 물새는 물 가운데서 헤엄치면서 생애를 보낸다. 그러나 날아갈 때에는 그 날개가 온전히
마른 상태이다. 기도의 사람도 그 주거를 이 세상에 두고 있으나 높이 날아갈 때가 오면 죄
에 물든 세상을 떠나 티끌과 더러움이 없는 영원한 본향에 돌아간다(눅 21:34-36).

7. 배는 물 가운데서 쓰기에 적당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물이 배 가운데 들어올 때는 부적
당하고 또 위험하게 된다. 그처럼 기도의 사람이 이 세상에 있어서는 그와 다른 사람에게
대하여 정당하고 유용한 존재다. 그것은 그가 죄에 물들지 않고 현세를 초탈(超脫)하여 자타
(自他)를 바른 길과 생명의 항구로 인도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세상 세력
이 들어오면 배속에 물이 들어온 것 같이 죽음과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의
사람은 부단히 그 마음을 하나님의 전으로 만드신 하나님을 위하여서만 보존하여 둔다. 그
러므로 그는 이 세상에서나 다음 세상에서나 평안하고 안전하다.

8. 사람에게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물밑에 잠겨 있으면 질식
하여 죽어버린다. 우리는 물을 마실 것을 요구하지만 그 중에 빠져서는 안 된다. 세상 물건
도 생존에 필요한 것이니 이것을 정당히 사용하고 감사할 것이다. 이것이 없이는 생명을 유
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세상을 정당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케 하려고 창조
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그 밑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기도의 호흡을 중지하면 멸망
한다.

9. 만약 기도의 생활을 중지하여 영적 생명이 쇠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그에게 해를 주고 멸
망으로 인도한다. 태양의 열과 빛은 모든 식물을 생육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 이를 시들게 하고 말라죽게 하는 힘도 된다. 공기도 또한 모든 생물에 생명과 힘을 주지
만 그 자신이 그것을 파괴하는 원인도 된다. 그러므로 "깨어 기도하라."

10. 우리는 세상에 있으면서도 세상을 초월하고 살아야 된다. 그러면 세상 사물은 그에게 해
를 주지 않고 모두 유익하게 되어 그의 영적 생명의 진보를 돕는다. 그렇다. 그것은 다만 영
이 그 낯을 의의 태양을 향하여 정당히 생활하는 조건하에서라야 가능하다.

어떤 극히 더러운 장소에 꽃이 나서 아름답게 피었다. 꽃의 향기가 그 장소의 더러운 냄새
를 완전히 정복하였다.

식물이 태양을 향하고 있는 중에 그 빛과 열을 받아서 그 더러운 것이 해가 되지 않고 도리
어 비료가 되어 잘 자라고 꽃피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처럼 기도의 사람도 그 기도로 나에게 그 마음을 향할 때는 나에게서 빛과 따뜻함을 받아
이 악한 세상의 더러운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그의 맑고 깨끗한 생활의 향기가 나를 찬송한
다. 그래서 그 마음의 향기를 나타낼 뿐 아니라 영생에 이르는 결실을 맺는다.


2 절
1.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든지
우리의 필요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태도에서 더욱 하나님이 주고
자 하는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게 되고 또 이것을 받을만한 큰 편리를 얻는다. 그러므로 사
도들의 위에 첫날부터 즉시 성령의 넘치는 은혜를 주지 않았고, 또 주어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10일 동안 준비를 이룬 후에 부어 내렸다.

만약 특별한 준비가 없이 은혜가 내린다면 사람은 그 가치를 모르고 이를 존중히 여기지 않
을 것이다. 또 이것을 길이 잃지 않고 보존할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사울은 그것을 구하지 않았는데 성령과 왕위를 주었다. 그러나 또 홀연히 잃어버렸
다. 이것은 그가 집을 떠날 때 성령과 왕위를 구하고 나온 것이 아니요 잃었던 나귀를 찾으
려고 나온 까닭이다(삼상 9:3, 10:11, 5:13-14, 31:4).

2 기도의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예배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해받이꽃
과 같이 예배 시간에만 근신하여 그 머리를 숙이고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교회당을 나오자
마자 경건을 잃어버리고 전과 같게 된다.

3. 비록 좋은 꽃이 피고 좋은 열매를 맺는 초목이라도 잘 가꾸지 않으면 또 다시 들풀과 같
은 상태로 돌아가기 쉽다. 신자도 영적 생활과 기도를 게을리 하여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은혜의 자리에서 떨어져 다시 앞서의 죄 가운데 빠져 멸망하여 버릴 것이다.

4. 학(鶴)이 못 가에나 논두렁에 부동의 자세로 서 있는 것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나
맑은 물에 대하여 묵상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 그는 몇 시간
이든지 고요히 서 있다가 수면에 개구리나 송사리가 보이면 순식간에 그것을 잡아먹는다.

이와 같은 것이 보통 사람들의 기도와 종교적 명상의 방법이다. 하나님의 무한한 대양의 언
덕 가에 앉아 있으면서 하나님의 존엄, 사랑 또는 죄에서 깨끗케 하고 기갈을 만족케 하는
신성에 대하여는 조금도 생각지 않는다. 다만 이 아침 이슬 같은 세상의 쾌락을 더 많이 즐
기려 하는 골똘한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다. 이와 같이 그들은 평화의 본 장에서 멀리 떠나
이 세상의 물거품 같은 희락을 탐하여 그와 함께 죽고 또 멸망하여 간다.

5. 물이나 휘발유는 다 땅에서 나오는 것으로 외형은 같지만 그 성질과 용도는 전혀 다르다.
하나는 불을 일으키고 하나는 불을 끈다. 이 세상과 그 보화는 하나님을 찾는 인생의 갈망
에 대하여 아무 만족을 주지 못한다(재물을 모아 영혼의 평안을 얻고자 함은 불을 끄려고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

이 세상의 부와 명예, 교만에 의하여 마음의 요구를 만족케 하려는 것은 다만 불에 휘발유
를 뿌려서 불을 끄려는 것과 같은 결과를 줄 뿐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그 마음과 그
갈망을 지으신 하나님으로만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시 42:1-2).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에
게 오는 자에게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준다. 이 샘이 그 속에서 강이 되어 솟아 나와 한
없는 생명에 이른다(요 4:14).

6. 사람들은 세상과 세상의 것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것은 허사다.
경험이 증명하는 바와 같이 참 평화와 만족은 그 중에서는 볼 수 없다. 마치 아이가 파 껍
질을 벗기고 그 속에서 무슨 실물을 얻어보려는 것과 같다.

그는 마침내 껍질 밖에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영원의 기초를 얻기까지
는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공(空)의 공에 불과한 것을 알아야 한다 (사 55장, 렘 2:13, 계
22:17).

7. 세상은 신기루와 같다. 진실한 구도자는 그 영혼의 기갈을 만족케 할 무엇을 찾으려고 탐
구를 떠났다. 그러나 만나는 것마다 모두 그에게 실망을 주었다. 생명수는 인간이 만든 통이
나 기구 중에는 없다. 그러나 다만 순결한 마음의 기도로써 나에게 나오는 자는 내 안에서
그것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생명 샘의 근원이다. 여기서 만족과 활력과 영원한 생명이 흐른
다(사 55:1, 렘 2:13, 계 22:17). 어떤 부인이 아이를 안고 험한 산길을 걸어갔다. 그 때 아이
는 벼랑에 있는 아름다운 꽃을 보고 그것을 꺾으려고 달려나가다가 비탈에 굴러 떨어져 머
리가 깨져서 죽었다.

이것을 생각하여 보라. 어미의 품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한 곳이다. 유혹하는 꽃은 그를 멸
망으로 인도하였다. 기도의 생활을 중지하는 자도 또한 이와 같다. 그는 땅 위의 짧은 향락
에 미혹하여 어미의 사랑보다 더한 나의 사랑과 보호를 잊어버리고 그를 위하여 내가 준비
한 영의 젖을 무시하고 내 손에서 빠져나가 멸망한다.

8. 아이는 어미의 젖을 빨지 않고는 먹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와 같이 나의 품에 안겨있는
나의 자녀들도 구함이 없이는 그들의 영혼의 영양소가 되는 영적 젖을 받지 못한다. 아이는
젖 먹는 것을 배우지 않고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이 영으로 다시 난 자는 영적 본능에 의
하여 그들의 영의 어미인 나에게서 영원한 생명의 젖을 얻기 위하여 어떻게 기도하여야 할
지 그 받을 길을 알게 된다. 세상의 철학이나 지식으로 배우는 것은 아니다.

9. 나는 인간성 속에 기갈을 주었다(시 42:1).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잘못하면 제가 신인 듯
생각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음의 기갈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을 찾고(시 42:1),
그 조물주에 의하여 나날이 지지(支持)되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이 사람은 인간의 결함과 필요를 깨닫게 됨으로 인하여 그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는 데서(요 15:5) 얻는 행복과 희열을 영구히 맛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절
1. 기도하는 것은 나와 대화하는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그래서 나와 교제하여 나의 안에 있
으므로 인하여 나와 같게 변하는 것이다. 어떤 벌레는 푸른 풀이나 푸른 잎을 먹고 자람으
로 그 빛깔이 푸르게 된다. 또 북극이나 남극의 눈 가운데 있는 곰은 그 빛깔이 눈과 같이
희게 된다. 벵갈(인도에 있는 땅 이름)에 있는 범은 그가 살고 있는 숲의 풀잎 모양으로 무
늬가 나 있다. 그와 같이 기도로써 나와 교제하고 사는 자는 성도나 천사들같이 나의 성품
의 분량을 가지며 나의 형상을 모방하여 나와 같게 된다.

2. 한 번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기 위하여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나는 내
영광의 일부를 보이고 모든 성도중의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에게 나타났을 때 그들의 마음이
끌리어 그 곳에 거처할 장막 셋을 지으려고 하였다(마 17:15). 그러니 만약 오래 바라던 천
국에 들어가서 무수한 성도들과 함께 완전한 나의 영광의 몸을 받아 가지고 잃지 않고 변치
않는 나라에 들어가는 자의 행복은 과연 얼마나 놀라울 것이겠느냐?(요 16:24, 약 1:17). 기
도의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와 함께 있으며 나의 성도들이 저와 함께 영구히 있
을 것이다(마 26:20).

3. 들짐승이나 번개나 바람이나 빛과 기타 자연의 힘을 지배하여 이것을 사용하는 것은 큰
일이 아니다. 세상과 사탄과 자기와 그 속의 욕심을 정복하는 힘을 얻는 것은 참으로 큰 일
이요 또 필요한 일이다. 나는 기도의 생활을 보내는 자에게만 적을 정복하는 힘을 준다(눅
10:17-20). 그러므로 그들은 지상에 있을 때부터 나와 함께 천국생활을 하는 것이다(엡 2:6).
그래서 그들은 높고 사탄은 낮아서 그들에게 미치지 못한다. 그들은 나와 함께 영원히 살고
안전하여 두려움에 떠는 일이 없다.

비록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힘을 획득하여도 공간의 범위를 넘어서 여행할 수는 없다. 그
러나 사람과 자기를 제어하는 기도의 사람은 자유로 영원한 천국에 살 수 있다.

4. 마치 꿀벌이 꽃의 빛깔과 향기를 손상하지 않고 단 즙을 모아 이것으로 꿀을 만드는 것
같이 기도의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로부터 그것을 손상치 않고 행복과 편의를 모을
수 있다. 벌이 각처에서 각색 꽃의 꿀을 모아 벌집에 저축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사람은
피조물의 모든 부분에서 아름다운 사상과 감상을 모은다. 그 창조자와 교통하는 데서 심중
에 진리의 꿀을 모은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속적 평화 중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꿀 같은 기쁨을 맛볼 수 있다.

5. 지금은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마음의 그릇에 성령의 기름을 받아서 이것을 저축할
때이다(마 25:1-13). 그렇지 않으면 미련한 처녀와 같이 슬픔과 실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
또 너희들은 참 안식을 위하여 만나를 모으지 않으면 안되겠다. 그렇지 아니하면 슬픔과 화
밖에 얻을 것이 없다(출 16:15-27).

"그러므로 너희들이 겨울에 도망하지 않도록 위하여 기도하라."

이것은 큰 환난의 날, 혹은 최종의 날(복수) 혹은 "안식일"에 하는 바 영원의 안식일 천년기
의 치세(治世)다. 그래서 이와 같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마 24:20).

기후에 따라 식물의 자라는 습관과 꽃 모양 빛깔이 다른 것과 같이 나와 교통을 계속하는
자는 영적 습관, 용모, 거동에서 낡은 사람을 벗고 나의 영광과 썩지 않는 모양으로 동화하
여 간다. 간음한 여자를 형벌 하려고 데리고 온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죄에는 무관심하였다.
각자의 죄 깊은 상태를 내가 손으로 땅 위에 썼을 때 그들은 부끄러워 한 사람, 두 사람 다
물러가고 다만 여자 한 사람만 남았다. 내 손가락은 또 내 종들의 마음속의 비밀한 죄도 지
적한다. 나의 손닿음을 인하여 회개하는 자는 내가 이것을 고쳐 주리라. 그래서 아이들이 아
버지의 손을 잡고 함께 가는 것 같이 나의 손은 내 자녀들을 인도하여 이 세상에서 하늘 위
의 본향으로 인도한다(요 14:2-3).

6. 때때로 사람들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한다. 그러나 내 안에 있지 않는다. 그들은
내 이름을 입과 혀로만 부르고 마음과 생활 가운데 가지지 않는 까닭이다. 그것이 그들의
기도를 받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내 안에 있고 내가 그들의 안에 있으면
원하는 바는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다 얻을 것이다(요 15:7). 이는 그들이 성령의 인도 중
에서 기도하는 까닭이다. 성령은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며 또는 그 자신과 사
람들에게 대한 최선의 길을 아시기 때문이다.

악한 아이가 아버지의 이름을 가지고 와서 이러한 은전을 달라고 청구하니 지배인은 그의
악한 습관과 행동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네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에게 구하지 말라. 먼저 가서 아버지의 모범을 본 받음으로 그의
존귀한 가치를 다만 입술로만 말하지 말고 너의 생활로써 나타내라. 그 때에 너의 소원은
이룰 것이다."

7. 입술로 나를 예배하며 찬미하는 자와 진심으로 하는 자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참 예배자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그 사람의 영안이 열려 진리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되 다만 입술로 예배하는 자는 간혹 다른 사람을 위하여 간혹 기도하되 다
만 참 예배자가 소경 되도록 기도하는 자이다. 그래서 참 예배의 기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좇는 고로 상달되어 과거의 위선자도 그 영안이 열려서 참 신자 되고 참 종이 되며 신
실하고 영원한 형제가 되어 마음에 희열이 충만하게 된다.

8. 기도는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은 놀랄만한 일은 이 세상
의 유한 된 지혜로 보면 법칙과 도리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과학적인
사람들은 모든 사물에 법칙과 질서를 정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법칙에 붙들리지 않고 법
칙을 지배하시는 주재인 것을 깨닫지 못한다. 위대한 법칙의 부여자의 뜻은 알기 힘들다. 하
나님의 영원한 의지와 목적은 만물의 축복과 번영에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이 일은 영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고전 2:14). 모든
기적 중에 제일 큰 것은 인간이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적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다.

한대 지방에서는 물위에 물 다리를 놓는 것이 보통이다. 그 표면이 얼어서 자유롭게 또 안
전하게 통행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열대지방에만 사는 사람은 물 위로 걸어다닌다면 곧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거슬린다고 생각한다. 그와 같이 거듭나서 기도 중에 그 영적 생애를
보내는 자와 세상의 물질생활에만 몰두하여 영적 생활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사는
자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9. 기도로써 영적 생애의 축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고자 하는 자는 의심없이 순종하여야 된
다. 한편 손 마른 자가 나에게 왔을 때 나는 그에게 손을 펴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그는 곧
믿고 순종하였다. 그 때 그의 손은 다른 손같이 완전하게 되었다(마 12:10-13).

그러나 그가 즉시 순종하는 대신에 이렇게 반론하였다고 가정해 보라.

"어떻게 내가 손을 펼 수가 있습니까? 만약 손을 펼 수 있다면 왜 당신을 찾아 왔겠습니까?
먼저 내 손을 고쳐 주시오. 그러면 나는 손을 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같은 말은 그럴 듯 하지만 그러나 그의 손은 펴지지 못하고 말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믿고 순종치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그 마르고 약한 손을 기도 중에 나에게 펴지 않으면
안 된다. 그에게 영적 생명을 주는 것은 나의 할 일이다. 그리고 그의 필요에 응하여 만족을
얻을 것이다.

출처 : 모세 지팡이
글쓴이 : 모세지팡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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