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의 편지
이사야 43장 1~7절
43장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
이런 제목을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성경을 흔히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말 속에도
그 말 속에 그 사람의 인격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사상이 다 말 속에 있다.
그 말 속에 그 사람의 사랑과 감정과
그 사람의 의지와 그 사람의 뜻과 계획이
전부 말 속에 있다.
그러니까 대화를 해보면 상대방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34~35절에 주님이 직접 말씀하시면서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그동안에 내 인생에 살아온 인격과 내가 쌓아놓은 그대로
그게 다 말로 나온다는 것이다.
선한 사람은 선한 말이 나오고 악한 사람은
악을 쌓았기 때문에 그 말에서 악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어서 36절, 37절에 보면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이 모든 우리의 말이 그게 우리의 인격이고,
우리의 생각이고, 우리의 사랑이고 감정이고,
우리의 의지고 이 말 속에 다 들어있는 거기 때문에
그 말로 심판 날에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생의 말도 그 속에 모든 것이 포함돼 있는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이
영으로 계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뜻을 알려주시고,
하나님 자신이 누구인가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그분의 생각을 알려주시고,
그분의 계획을 알려주시고,
그분의 사랑과 미움과 이 모든 하나님에 대한 것을
전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표현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보면서
성경이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다 하는 것이다.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그 안에 하와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그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지난주에 배웠다.
하나님이 장차 그리스도로 오시는 것이다.
아담이 오실 자의 표상인데 하나님이 홀로 계셔도
영광 받으시는 분이지만 배필인 교회를 만들고
구원받는 성도들을 만드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 교회와 모든 성도를 향해서
하나님이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너희에 대한 계획이 이렇고,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고 하는 모든 것을
전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있다.
그런 의미를 가지고 볼 때
‘성경이 사랑의 편지다’ 하는 사실인 것이다.
또 한 가지 그분은 영을 가지고 계시고
우리는 육체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인 존재로 변화되어서
영으로 계신 하나님을 남편으로 만나는 그 자리까지
그 모든 만나는 과정과 방법들을 전부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이 성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분 앞에 나갈 수가 있고
우리가 어떻게 되면 구성이 완성이 되고
어떻게 하면 그분의 사랑을 알 수가 있고
그래서 이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인 우리에게 그분의 사랑을 고백한 내용이고
또 우리가 어떻게 그곳에 가는지 그걸 알려주신 내용이
성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사야 40~43장은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와
그분의 의도를 잘 살필 수 있는 그런 말씀이다.
이사야 40장 본문 앞에서 2절부터 말씀을 보면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났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민족 성민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때 바벨론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 이스라엘을 쳤지만
그래도 여전히 너희를 내가 사랑하고
너희는 내 것이 되고
그래도 여전히 너희들을 위로하기 원하고
그래서 이사야 40장에서부터 43장까지
하나님의 사랑의 말을 하고 있고
위로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때에 따라 매를 맞고, 때에 따라 징계를 당하고
때에 따라 시련을 겪고 연단을 받지만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편지가
이사야 40~43장까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의 고백을
여러분이 들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사랑의 고백을 하시는 구나’
그래서 거기에 위로받고 우리도 그 사랑을 고백하면서
그 사랑 안에서 그분을 만나는 그때까지
말씀을 중심으로 찾아가는 은혜의 역사가
우리에게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첫 번째는
1절 말씀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여기에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인데
그분이 야곱을 창조하시고 이스라엘을 조성하셨다
그렇게 말씀 하셨다.
창조나 조성이나 이제 같은 말이다.
창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도 창조이다.
하나님이 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생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더 나가서 있는 것을 가지고
또 다른 걸 만들어내는 것
그것도 창조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조성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부천에는 공원 조성을 많이 하는 도시인데
부천에 공원이 얼마나 많은가?
“여기다 공원을 조성하겠다.”
그러면 거기에 있는 땅에다가 그걸 개관하고
그곳에 공원을 만들고 그곳에 있는 나무를 갖다 심으면서
그것을 꾸미는 것이다.
그것을 조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야곱이라고 하는 인생이 있지만
이미 있는 그것을 새롭게 변해서
이스라엘로 만들면서 새롭게 꾸미는 거
그것도 조성이고 그것도 창조다 이 말이다.
없는 가운데서 있게 만드는 것도 창조지만
이사야의 말씀은 있는 것을 가지고 변화시켜서
새롭게 꾸미는 것이다.
이걸 조성이라고 하고
우리가 이것을 창조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구속하시고 왜 부르시고
우리를 왜 새롭게 조성하려고 하느냐?
너는 내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우리를 변화시켜주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앉히기 위해서
우리를 새롭게 조성해 주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일찍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셔서
시내산에서 처음으로 율법을 위해서 말씀을 주시는
첫 언약을 할 때 주님이 출애굽기 19장 5절, 6절에
모세에게 말씀을 하셨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하나님이 첫 언약이라고 하는 율법을 주시기 전에
먼저 모세를 통해서 알아보라는 것이다.
네 백성이 말씀을 지킬 거냐?
너희가 말씀을 잘 지키고 언약을 지키면
내 소유가 되고 너희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멘으로 하여금
우리가 다 그 말씀을 지키겠습니다.
언약을 했기 때문에
그것도 피로 언약을 했기 때문에 언약서를 쓰고
하나님은 언약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그 구약의 역사를 보자.
그 모든 왕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
계속해서 우상을 섬기고
그러니까 끝내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이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고 첫 언약이 깨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새로운 언약을
당신의 피로 언약을 하시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말씀을 주시면서
이제는 새로운 새 언약 안에 들어오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내 것이고 내 소유다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주었던 약속이다.
언약을 지키는 너희가 내 소유고 내 백성이고
너희가 제사장 나라고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것을 지키지 못하니까
이방인인 우리를 부르셔서
이제는 예수 믿는 우리가 새 언약으로 들어와서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고
그 가운데 제사장들이 나타나게 돼 있단 말이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너희는 내 것이다’
하나님의 소유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새롭게 야곱을 이스라엘 만드는
것처럼 우리를 새롭게 조성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사도행전 11장 26절 말씀에 보면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면서 복음이 예루살렘을 지나서
이제 사마리아 땅 끝까지 전해지는데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 사건으로 다 흩어지면서
안디옥까지 복음이 전해졌다.
그래서 그 안디옥에 바나바를 파송하고
그 바나바가 사울, 곧 바울을 데려다가 거기서 1년간
목회를 하면서 성령이 충만하고 은혜가 충만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그러니까 그 지역의 안디옥의 모든 사람들이
“저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것이다”
“저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다”
이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것이다
그 것을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언어는
‘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다’
‘예수님의 것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이다’
이런 말을 처음으로 듣게 됐다는 것이다.
그것이 크리스천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머잖아 주님이 오시면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분이지만
부활하여 그리스도 메시아가 되셨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메시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시는 것이다.
그 메시아 나라에 우리가 들어갈 터인데
그 들어가는 자들이 누구인가?
크리스천이 돼야 되는 것이다.
너희가 내 것이다.
내 안에 우리가 죽고 우리 안에 새로운 인격의 사람이
예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돼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마지막 때 우리가 이런 원리를 알아야 된다.
이사야 40장 위로의 말씀 가운데 10절 말씀에 보면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장차 오실 것인데
그리스도, 메시아, 재림하시는 예수님으로 오시는데
그분이 와서 다스릴 것이고 이제는 잘한 자에게
상급을 주고 잘못한 자에겐 보응이 뒤따라서
하나님 나라가 나타날 것이다.
분명히 다시 오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저들이 그리스도의 것이다
저들이 정말 크리스천이다
이런 말을 듣는 그런 인생이 돼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욕을 해가면서 이 세상에
기독교가 빛을 드러내지 못하는 그런 때를 살아가는데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안디옥교회 성도들처럼
“저들이야말로 크리스천이다” 이런 말을 들어야 된다.
왜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하면서
왜 우리가 그런 말을 듣지 못하는가?
예수님다운 인격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기독교 안에 속한 모든 자들이 성령의 역사로
안디옥 교회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고
성령과 권능의 역사가 풍성하여서
“저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것이다”
“우리야말로 크리스천이다”
이 소리를 들어야 되는데
예수님의 향기가 없는 것이다.
오백만, 육백만, 천만 명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그리스도인 같은 그런 모습이 없기 때문에
그런 욕을 먹고 사는 이 마지막 때
교회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향기를 찾아보기 어렵고
예수님의 아름다운 인격을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그런데 감사한 건 무엇인가?
그렇게 연약하고 그렇게 부족하여도
여전히 사랑하시는 것은
너희가 내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하나님의 소유로 삼았기 때문에
어찌하든지 약속대로 천국에 갖다 앉혀야 되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을 조성하시면서 새로 꾸미고
평안을 주려고 이런저런 환경을 주면서
때에 따라 매를 주기도 하고 징계를 주기도 하지만
또 사랑의 품으로 안아주면서
여전히 그분의 소유이기 때문에
우리를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를 끝까지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이사야 41장 위로의 말씀 가운데 8절, 9절에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고 하나님이 택한 자녀니까
싫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아무리 자식이 잘못해서
애증의 관계가 있지만 그 자식을 버릴 수가 없고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게
부모의 심정이 아니겠는가?
똑같은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무리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듣지 못하고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지 못하고, 여전히 부족하고
죄 가운데 살아가도 그래도 택하여 버렸기 때문에
싫어버릴 수가 없고, 여전히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내가 너를 기뻐한다고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내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내 것이기 때문에
심지어 43장 4절에는 그렇게 표현하고 계신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우리는 심지어 이렇게 연약하고 부족한 인생인데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고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긴다고 너를 사랑한다고
사람들의 생명을 대신하여서라도
너를 바꿀 수가 없다고 말이다.
이렇게 귀한 존재로 우리를 여기면서 그렇게 사랑을
계속 주시는 것이 그분의 택하시고 구속하시고
우리를 내 것이라고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란다.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도 나도 주님을 그렇게 사랑한다고
그 사랑을 고백하시기 바란다.
두 번째는
2절 말씀이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는데
물 가운데 불 가운데 어떤 환경이든지
지켜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과 불은 하나님의 심판의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2장 5~10절
5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10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소돔 고모라를 하나님이 멸하시고
노아의 때 물로 심판하여 멸하셨는데
6절 하반 절에 보면
후세에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그랬다.
그러니까 노아의 홍수는 물로 심판하는 샘플, 본이 된 거고
소돔 고모라는 불로 심판하는 샘플이 됐다는 것이다.
이게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받게 되는 심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구원을 믿는 경건한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물심판을 뛰어넘어야 되고 불심판을 뛰어넘어야 된다.
한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를 향해서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또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예수님 그분은 너희에게 성령 세례를 줄 건데
그것을 불세례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물세례도 받고 불세례도 받고
그래야 성령 세례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건데
그 물과 불은 물심판과 불심판이라는 것이다.
그럼 물로 심판받는 건 언제인가?
홍해를 건너는 게 물로 심판받는 것이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0장에 보면
물로 심판한 그걸 세례를 본이라고 모형이라고
거울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아무리 출애굽을 했어도 첫 번째 연단을 마치고
물세례를 받아야 물심판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연단 가운데 가정불화가 일어나고
병이 걸리고 귀신이 들리고 수많은 역사로
악령들을 우리에게 붙이지만 그 가운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시겠다 그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지막 불세례, 성령세례는 요단강을 건너가야
끝이 나는 건데 그건 우리에게
세 번째 연단을 말하는 것이다.
그게 불같은 연단이다. 그게 불세례이다.
세 번째 연단도 마찬가지다.
환경은 여전히 가정이 파괴되고 경제가 어렵고
몸에는 욥과 같이 악창도 나고 자녀들이 죽기도 하고
그런 수많은 인생의 불행을 겪는 그 불세례를 받기 위한
그 과정 불심판을 면제받아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환경 가운데도 하나님이 지켜주시겠다는 것이다.
첫 번째 연단 과정도 지켜주고
세 번째 끝의 과정도 지켜줘서
물과 불이라고 하는 어떤 환경이 와도 그걸 뛰어넘고
결국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만들어 주시겠다
그 약속을 하시는 것이다.
이사야 41장 위로의 말씀 가운데 10절 말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3절에서 또 말씀하신다.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그 하나님이 그분의 왼손으로는 오른손을 붙들어서
위로의 품으로 안아주시고 일하는 능력의 오른손으로
환경가운데서 도와줄 거라고
그러니까 두려워 말라고 굳세게 해주겠다고
왜?
하나님이 우리를 내 것으로 삼으시고
이제 너는 내 것이라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우리를 굳세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이고 의로운 능력에 일하는 손으로
붙들어 주시는 것이다.
이걸 우리가 믿음으로 믿고 이 광야를 지나가면서
어떤 환경에든지 굴하지 않고 그분을 의지하며
그분 앞에 우리가 나가는 것이다.
우리 환경 가운데 물 가운데 불 가운데 어떤 환경이 와도
그분이 지키시는 것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란다.
43장 본문 가운데도 5절에 또 말씀하신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실제 대환란 때 이스라엘 민족을
그렇게 부르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그 속에 이방인인 우리도 휴거 되지 못하면
함께 들어가서 그렇게 환란을 지날 터인데
그때도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고
약속을 해주시고 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이, 우리가 어떤 환경이
온다 할지라도 그분의 의도를 잘 깨달으면서
그분이 내 것이라고 이렇게 삼아줬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고, 그분이 그걸 감당하여 조성하여
새롭게 변화시켜 주려고 우리에게 환경을 주지만,
그걸 지키고 감당할 만큼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싸워 이겨나가는 것이다.
그걸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새 힘을 주신다고 위로의 말씀 가운데 말씀하셨는데,
40장 27~31절
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신명기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킬 때,
독수리가 어린 새끼를 등에 업는 것처럼
등에 업고 높은 공중에 올라가서
그 어린 새끼를 그냥 땅으로 떨어뜨린다.
그럼 어린 독수리가 갓 날개가 나와서 살아보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치겠는가?
땅에 떨어질 만하면 그 어미 독수리가 그걸 받아내고
또다시 공중에 올라와서 뚝 떨어뜨리고
몇 번을 반복하는 가운데 어린 독수리는
본능적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다가 날개 짓을 하면서
이제는 커 가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그렇게 인도했다고
세 번 영적 싸움이 있으니까 아마 세 번 떨어뜨렸겠다.
그럼 우리는 어린 독수리 새끼처럼 살려고
하나님이 어미처럼 우리를 공중에서 높이 떨어뜨렸는데
우리에게 다 가진 환경이 다 하나님이 떨어지신 것이다.
떨어지면 죽는 것이다.
그러니까 날개 짓을 해야 되는데
그 날개 짓을 한다는 그것이 매번 새 힘을 주어야
독수리가 날개 짓을 하는 것이다.
한 번 날개 짓하고 가만히 있으면
또 떨어지는 것이다.
계속해서 날개 짓을 해야 독수리는 계속해서
날 수가 있는데 계속 날개 짓을 할 수 있도록
새 힘을 주신다 이 말이다.
여러분이 이 아침에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으시기 바란다.
그 어린 새끼를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고
날개가 돋쳐서 날아가게 하는 게 목적인 것이다.
사자도 마찬가지다.
동물 중에 사자는 자기 새끼를 어떻게 하는가?
절벽에서 떨어뜨린다.
살아올라오는 새끼만 사자의 왕이 되고
맹수의 왕이 되는 것이다.
독수리도 마찬가지이다.
독수리가 공중의 왕인데 그 어린 새끼를
그렇게 키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종종 우리는 하나님이 공중에서 뚝 떨어뜨린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가?
살아보려고 기도의 날개 짓을 하는 것이고
살아보려고 말씀의 날개 짓을 하는 것이고
살아보려고 영적으로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살아보려고 우리가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그렇게 안하면 죽는 것이다.
절벽에 떨어지면 죽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의 원통한 사정을
내가 왜 알지 못하겠느냐?
하나님이 그 원통한 사정을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의 원통한 사정을 하나님은 아시는 것이다.
왜 나의 사정을 알지 못하고 나를 왜 이렇게 두시느냐?
절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는 그분이
왜 그 사정을 모르겠는가?
땅 끝까지 창조하신 그분이
다 그 사정을 아시는 것이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그 분이
그분은 피곤치도 아니하고 곤비치도 아니하고
명철이 한이 없는 그분이신데
왜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못 주시고
왜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지 못하겠는가?
소년이라도 피곤하고 곤비하고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자빠지지만 여호와를 앙망하지 못하니까
새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여러분 앙망하는 게 무엇인가?
그분이 나의 창조주고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고
그분이 나의 도우미라면 그분을 바라보면서
그분이 나를 어떻게 도우실 것인가?
나에게 무슨 좋은 줄 것을 줄 것인가?
그분을 바라보면서 기대하는 것이다.
그것을 앙망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분을 앙망하지 못하니까
새 힘을 얻지 못하고 떨어져 내려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그분을 앙망하면서
계속 말씀과 기도의 몸부림을 치면
어떤 환경에서 새 힘을 줘서
결국 목적은 무엇인가?
날개를 달아 날아가라는 것이다.
그 날개가 완성이 되면 출고되는 것이다.
마지막 위로의 말씀 가운데 42장 23절 말씀 보겠다.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장래사를 삼가 듣겠느냐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우리는 계속해서 장례사에
귀를 기울여야 되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셔서
우리를 그분 앞에 앉히고 그분의 배필로 삼았다면
그분 앞에 서야 되는데
이 장례사가 어떻게 될 것인가
당연히 귀를 기울여야 되지 않겠는가?
특별히 마지막 시대는 더욱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아간다.
주님이 너희는 내 것이라고 이렇게 사랑으로 고백했다고
우리는 위로받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오라 하는 그곳으로 가서
그 천국의 백성이 되고 그 완성이 이루어져야 되는데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장례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이 하실 일을 날마다 보아야 된다.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되는 것이다.
특별히 이 시대에는 말이다.
얼마나 악령들이 난무하고 속이고 거짓
이런 게 얼마나 많은가?
이사야 41장 21~24절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지금 하는 말씀이다.
21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22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23 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 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24 과연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니며 너희 일은 허망하며
너희를 택한 자는 가증하니라
이게 우상이다.
우상이 장례사를 어떻게 알고 후래사를 어떻게 알고
그 우상이 그걸 일으킬 힘이 어디 있겠는가?
거짓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책망하시는 내용인 것이다.
26절 말씀이다.
누가 처음부터 이 일을 우리에게 고하여 알게 하였느뇨
누가 이전부터 우리에게 고하여 이가 옳다고 말하게 하였느뇨
능히 고하는 자도 없고 보이는 자도 없고
너희 말을 듣는 자도 없도다
처음부터 이 일을 구한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었다는 것이다.
어느 우상이 감히 장례사를 말하겠는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 장례사를 말하시는 분이다.
42장 9절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시대의 시대마다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인데
새 일을 행할 때마다 먼저 고한다는 것이다.
먼저 알게 하신다는 것이다.
몇 번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결코 알리지 않고 행하심이 없다고
아모스에도 말씀하시고 새 일을 행할 때마다
하나님이 그 일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42장 20절
네가 많은 것을 볼찌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찌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많은 것을 보여주어도 거기에 유념치 않기 때문에
내가 보려고 하는 것만 사람들이 보는 것이다.
많은 걸 들어도 듣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새 일을 행할 때마다 알려주시고 계속해서
해주시는데도 우리 인생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43장 10절 말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12절 말씀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리를 다 증인으로 삼으라고 주님은 다 나가서
땅까지 증인이 되라고 하신다.
그 증인은 있는 걸 그대로 보고
깨달은 사실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부터 되어진 일을 보고하는데
마지막 때도 장례사를 알려주고 하나님이 깨달게 하신
그 하나님의 비전과 이상을 본 그대로 전하는 증인이다.
43장 18~20절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새 일을 행하는 게 무슨 일인가?
이스라엘을 불러 모아서 이 광야와 사막 같은
그 이스라엘 땅에 물이 흐르게 하되 영적인 것도 똑같이
하나님을 떠났던 그 백성의 마음이 사막과 같은
광야 같은데 거기에 물을 공급하면서 그 택한 자를
다시 불러 모으겠다고 하는 대환란의 역사를
또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1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환란 때
이렇게 생수의 강과 같은 그 광야와 사막의 강을 내서
하나님이 그 백성을 택한 자로 그걸 마시게 할 것인데
우리도 그때 환란 가운데서 하나님의 그 강물에 물을
마시게 될 것이다.
오늘 숙제를 하나 드리겠다.
집에 가셔서 이사야 40장~43장을
꼭 한번 읽으시기 바란다.
하루 세 끼 식사하면 성경도 석장씩은 읽어야 된다.
오늘 양식이 이사야 40장 거기서 43장까지
이걸 내 영혼의 양식으로 삼아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으로 고백하시고
이렇게 위로하시고 끝까지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구나.
그 말씀에 위로를 받고 우리도 힘을 얻으면서
그분을 의지하며 독수리 날개 치면서 올라가는 것처럼
어떤 환경 가운데도 우리는 계속해서 갈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 새 일을 행하시는 주님을 믿으시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 가운데서
다시 한 번 그분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갈 수 있는
택한 자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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