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모닝콜
에베소서 5장 8~13절
모닝콜 서비스라고 하는 그런 말이 있다.
사전에 호텔 따위에서 지정한 시간에 전화로 손님을
깨워주는 서비스 그렇게 말하고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핸드폰을 통해서
알람 설정을 할 수도 있고 이렇게 하지만
전화로 그 시간 깨워주는 것을 모닝콜,
모닝콜 서비스다 이렇게 말한다.
이런 모닝콜 서비스가 실생활에 많이 확대되고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을 권장하기 위해서
독서 모닝콜이라고 하는 것을 운영한다고 한다.
‘책을 봐야 할 시간이다’ 하고 각 개인에게
전화를 울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 책을 읽을 시간이구나!’ 하고
책을 읽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 모닝콜이다 그런 제도가 있고
전라도 어디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오토 수면장을 만들어 놨다고 한다.
나무가 많아서 공기 좋은 그런 야외에 수면장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계속 자면 안 되니까
모닝콜을 서비스 해주셔서 시간에 일어나서
다시 여행하도록 그게 고속도로에서도
그것을 운영한다고 한다.
지난 5월 31일 날 오전 6시 40분경에
서울 인근에는 1분간 사이렌이 울렸다.
북한에서 미사일을 발사해 사이렌을 울리면서
대피 방송을 하게 됐는데 실제는 아무런 위협이 없는
그런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런데 어떤 분이 비아냥거리기를
6시 40분에 사이렌이 울려서
이게 대국민 모닝콜 서비스냐
그러면서 잠을 설쳤다고 비아냥거린 그런 기사도 봤다.
오늘 ‘내 인생의 모닝콜’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하는데
첫 번째는
왜 나의 인생에 모닝콜이 필요할까 하는 것이다.
내 인생에 왜 모닝콜이 필요할까?
이 모닝콜로 잠을 깨우는 서비스 해주는 것처럼
우리가 다 영적인 모닝콜이 필요한 것은
영적으로 잠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인 것이다.
14절에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여기 14절에도 잠자는 자를 죽은 자다
이런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게 성경 전체에 나타난 사상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죽은 나사로를 향해서
나사로가 잠들고 있다 잠자고 있다 깨우러 가자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도
예수님은 잠들었다고 그렇게 표현하셨다.
다니엘서 12장 1~2절에 보면
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이스라엘 민족도 구약 백성인데 그들도
대군 미가엘 천사장이 일어나는 그때 큰 환란이 올 걸
예고했는데 그 환란 때에 그 이스라엘 백성들도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계속해서 2절 말씀에 보면
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이 구약의 이스라엘 영혼들이 예수님이라고 하는
심판주가 오시면 자다가 깨어나서
그러니까 구약의 영혼들이 다 죽은 자들이지만
성경은 자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이 깨어나서
심판주인 예수님이 오시면 이 땅에서도 이스라엘 민족이
돌아와서 회개하고 예수님 믿는 것처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 이런 큰 환란이라고 하는
영계의 심판대에서 자다가 깨어서
영생을 얻을 자가 있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5장 말씀에 보면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랬다.
예수님을 부활하는 첫 열매로 만드셨는데
그 예수님이 죽은 자, 곧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신약의 영혼들도 죽으면 곧 자는 것인데
예수님이 그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어서
부활을 이루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인생은 이렇게 죽는 것을 전부 잠자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데 그럼 왜 그걸 잠자는 자들이라고
표현했을까? 심판주인 예수님이 오시면
그때 깨어나면 영적인 변화가 그때 일어난다는 것이다.
영적인 변화가 없는 것을 성경 전체는 잠자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곧 영적으로 죽은 것이다 그 말이다.
우리가 이 시대에 현재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아직
죽은 사람이 아니지만 현재 살아 있어도
나의 영혼의 상태에 변화가 없다 그것을 우리는
잠자는 거라고 하는 것이다.
내 영혼에 변화가 없다 그것을 죽은 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죽어 있고 영적으로 잠들어 있기 때문에
깨어나야 할 영적인 모닝콜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잠자는 자들을 깨워주는 것이 바로 모닝콜이 아니겠는가?
잠자는 자들을 깨워주는 게 알람이지 않겠는가?
그것처럼 나에게 잠들고 있고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에
영혼상태 변화가 없는 그것을 깨워주시기 위해서
영적인 모닝콜이 우리에게 필요하더라 하는 사실인 것이다.
구약의 영혼들도 죽으면 영적인 상태 변화가 없다가
예수님이 오시면 깨어나서 그때 영혼의 변화가 오면서
영원히 구원을 받는 자도 있고 영생을 얻지 못하고
영원히 멸망 받는 자도 있는 그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 신약의 영혼들도 심판주인 예수님이 오시면
자다가 깨어나서 그때 심판대에서 구원을 받는 사람도 있고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영적인 변화가 없는
상태를 성경은 잠자는 것이다, 죽은 자다 이렇게 말하는데
에베소에 교회를 향하여서 말씀하시는 내용이
바로 우리의 영혼의 모닝콜이 필요한 것은
잠자는 자들이기 때문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깨우시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이 영적인 변화가 없는 그런 사람이라면
우리에게도 모닝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계시록 2장에 보면 에베소교회를 향해서
주님은 책망을 하신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말씀하시고
에베소에 잘하는 일도 많아서 칭찬도 많이 받았지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그것 때문에
많은 책망을 하고 계신다.
그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무엇인가?
영적으로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앉은뱅이가 됐다는 것이다.
처음 주님을 만나서 열렬히 주님을 사랑하고
목숨을 바칠 것처럼 신학교도 가고
이런저런 서약도 하고 서원도 하고
그러면서 주님을 따랐는데
어느 순간에 영적인 변화가 없고 앉은뱅이와 같이
신앙의 변화가 없는 그런 상태에 이르면
그것이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게 바로 영적으로 잠자는 것이고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이다 그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혼의 모닝콜이 필요하더라는
사실인 것이다.
아침에 우리 각자를 돌아보시면서
나에게도 영적인 모닝콜이 필요하구나!
이렇게 생각이 되신다면
나의 영혼이 현재적으로 잠들고 있고
내 영혼이 죽어 있더라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두 번째
그러면 이 모닝콜을 듣고 깨어나는 것,
깨어나는 것이 빛으로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인 것이다.
8절 말씀에 말씀하고 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예수님이라고 하는 빛이 우리의 심령에 들어오기 전까지
우리는 다 어둠에 살고 있던 인생이다.
창세기 1장 2절에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기 전에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가득했다 그랬다.
똑같은 것이다.
우리의 마음의 심령의 땅이 빛이 오기 전에
혼돈하고 무질서하다는 것이다.
뒤죽박죽되어 있다는 것이다.
공허하다고 하는 것은 그 안에 만족할 만한
모든 조건이 없다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 믿고 아직도 뭔가 만족하는
영적인 상태가 아니고 아직도 진리에 대해서 무질서하고
아직도 흑암 가운데 있다면 예수 믿어도 여전히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한 그런 어둠들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고
그래서 우리가 모닝콜이 필요한 건데
예수님을 믿을 때 빛이 우리에게 왔다.
그래서 8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님이라고 하는 빛이 딱 들어왔다.
그럼 그 예수님의 빛을 따라서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고
빛의 자녀가 돼야 마땅할 터인데 우리가 빛의 자녀들답게
행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세상 사람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빛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이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신 언어, 행실의
그 모든 삶이 빛인 것이다.
본래 하나님이 빛인데 그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인데 그 하나님이 빛이면
예수님도 빛인데 그 예수님의 언어, 행실, 그분의 말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관계된 모든 것을
우리는 빛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건 예수님이 겸손하고 온유하니 내게 와서 배우라.
그러면 우리가 온유하고 겸손한 삶이 빛인 것이다.
상대적으로 교만한 거, 상대적으로 온유하지 못하고
혈기 부리고 원망 불평하는 것들 이게 다 어둠인 것이다.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물로
죽으셨는데 그 예수님의 희생,
그 십자가로 나가기 위한 예수님의 결단,
이런 것들이 전부 우리는 빛이라고
그렇게 말씀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전에는 어둠이다가 빛의 자녀가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다시 어둠에 있다면 그게 죄 가운데 있는 것이고
영적으로 나태한 것이고 원망 불평하는 것이고
이러면서 어둠에 빠져 있기 때문에 죽은 자들이요,
잠자는 자들이요, 깨어서 일어나야 할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본인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10절에는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그런데 이 열매 없는 어둠의 일은
주님이 기뻐하실 일이 없는 것이다.
주님이 빛이신데 어둠의 일을 기뻐하시겠는가?
그러니까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
그게 바로 어둠에 잡힌 것이다.
그게 영적으로 자는 것이다.
그것이 영적으로 오늘 죽은 것이다.
하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가 있다.
그리고 11절에는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열매 없는 어둠의 일, 그 어둠의 일은
열매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 나의 삶에도 성령과 말씀의 열매가 없다면
영적으로 죽은 자요 영적으로 잠자는 자인 것이다.
9절 말씀에 말씀하고 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나의 삶에 착함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성경 기준에
착한 것들, 의로운 것들, 진실한 이런 것들이
열매가 없으면 우리가 어둠에 있는 것이고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잡혀 있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 이하에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 믿는 우리가 지금 마음으로 진정으로
원하는 건 무엇인가?
빛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성령의 소유이고 내 속에 있는 성령이 원하시는 것인데
반면에 나의 옛 사람인 그 육체라고 하는 그 육체의 소욕은
성령의 속을 거스르면서 서로 성령의 소욕과 대적을 하며
내속에서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따라가면
그 순간에 깨어 있는 것이고
그것이 영적으로 살아있는 것인데
그 순간에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면
그게 영적으로 죽은 것이고
그 순간에 영적으로 잠든 것이다 그 말이다.
그래서 이 육체의 일이 19절 말씀에 보면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 분쟁하는 것, 시기하는 것, 불내는 것,
당 짓는 것, 불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다
이게 다 어둠의 일이다.
음행하는 것, 더러운 것, 토색하는 것, 우상 숭배하는 것,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내는 것, 당 짓는 것,
불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하게 사는 것,
여기에 관계된 모든 것들이
전부 육체일이고 어둠이요,
그것이 영적으로 죽은 것이요,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일에 빠져있다면
우리는 영적인 모닝콜이 필요한 것이고
다시 빛으로 나가서 빛의 열매를 맺으면서 이렇게 나갈 때
우리는 영원히 깨어나는 것이고
영원히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다.
로마서 13장 11~14절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장 11절이 바로 그 유명한 어거스틴 성자가
이단에 빠져서 영적으로 잠들어 있고 영적으로 죽어 있는
그때의 그늘 어거스틴을 깨웠던 말씀이라는 것이다.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 있고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그때에 빚 가운데로 나오게 되는 것이 깨어나는 것이고
어둠의 일 열매 이런 것을 버리고 빛의 열매를 맺는
삶으로 돌이키는 것이 깨어나는 것인데
인생은 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자다가 깰 때가 있는 것이고
인류 전체도 자다가 깨어나는 주님 오시는 그때가
있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빛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다시 한 번
모닝콜을 듣고 깨어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에게 영적인 모닝콜의 실제적인 상태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무엇이 우리의 영혼을 깨워서 우리의 영혼을
다시 한 번 새롭게 하는 우리의 영적인 모닝콜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본문 가운데 5장 13절 말씀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영적인 모닝콜은 하나님이 우리를 책망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책망을 받게 되면 그것이
영적인 모닝콜이 되어서 우리를 깨워주시는 것이다.
아이들도 잘못하면 부모님이 어떻게 하는가?
채찍을 들고 회초리를 들고 책망을 하면서
때리기도 하면서 정신을 차리게 한다.
아이들이 그냥 놔두지 못한다.
나쁜 길로 가는데 그 영혼을 위해서
하나님도 종종 우리를 책망하시는 그것이
영적으로 모닝콜을 울려주는 거와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시아 7교회를 향하여 주님 말씀하신다.
그 아시아 7교회는 인류 역사에 되어지는
시대적인 교회의 모습이고 우리 인류 전체에 나타난
교회를 향한 주님의 모습인데 교회마다 책망을 하신다.
그 책망 받는 내용이 바로 우리의 영혼의 모닝콜을
울려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5~13절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사랑하는 자이기 때문에 징계하시고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에 우리를 채찍질 한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사생아고
참 아들이 아니면 징계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를 징계도 하고 채찍질을 하시는 것이다.
전에도 한번 간증했지만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어느 학생 하나가 왔다.
고아이고 고아로 살았다. 학교를 제대로 못 갔다.
국민학교를 못 다녔기 때문에 한글을 깨우치지 못해서
이렇게 살아가는 인생인데 예수 믿고 보니까
성경이 너무너무 읽고 싶어갖고 말이다.
하나님 나 한글 좀 깨우쳐 달라고 말이다.
그래서 한글이 정말 깨우쳐졌다.
얼마나 좋겠는가?
예수 믿고 한글을 알지 못해 성경을 보지 못했는데
우리는 한글을 아무리 알아도 성경을 안 보지만 말이다.
그 사람은 성경을 보려고 그렇게 기도해서
한글이 열려 성경을 보았다.
그러니까 얼마나 좋은가?
한 달에 일독씩을 했다.
일 년이면 십이 독을 하는 것이다.
성경을 얼마나 많이 보았겠는가?
어느 날 히브리서 12장 말씀을 보면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이 말씀을 읽고 저에게 달려온 것이다.
목사님 저는 사생아인 것 같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 같다.
왜 저에게는 징계가 없습니까?
왜 저에게는 꾸지람이 없습니까?
징계를 받고 꾸지람 때문에 그걸 받아 고민돼서
온 것이 아니고 그게 없다고 고민돼서
나는 사생아가 아닌가? 이것 때문에
그래서 그의 삶과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니까
엄청난 고난 가운데 있는데 고아로 태어나서
부모도 없고 일생 고아원에서 살면서
그렇게 한글도 모르면서 그런 불행한 삶을 살면서
너무나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현재 예수 믿고 연단 받고 징계 받는 그것이
하나도 고생으로 느껴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생아 같다고 징계도 없고 꾸지람도 없다고
채찍도 없다고 그때 사실은 엄청난 연단 가운데
있었는데도 그것을 잘 이기며 그것을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는
그래서 권면을 잘 말씀드려서 문제를 해결해드린
그런 간증거리가 있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다시
11절에 있는 말씀대로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하려고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세워서 곧은 길을 만들어서
절고 어그러지지 않는 길로 가지 않도록
그렇게 고쳐주려고 말이다.
어그러지는 길로 가면 어떻게 되는가?
다리를 절면서 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걸음을 못하고 영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고은 길로 가는 그것이 없기 때문에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여 옳은 길로 가라고
그래서 징계하고 채찍질을 하고 꾸지람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모닝콜로 우리를 깨우시는 거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제 모닝콜은 종종 우리의 영적인 성장 단계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마다 우리에게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처음 사랑이 잃어버린 사람처럼
영적으로 변화가 없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깨우치려면
다음 성장 단계로 가야 되기 때문에
그 성장 단계 단계마다 매우 중요한 전환점에
우리를 깨우시는 그런 작업을 많이 한다.
그러니까 일생을 통하여 많은 모닝콜을
우리가 체험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성장해야 되니까
그런데 영적인 상태의 변화가 없는 사람에게는
모닝콜이 안 나타날 수밖에 없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적인 모닝콜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줄 때가 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구나!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지옥 가겠구나!
이렇게 살다가는 멸망 받겠구나!
이렇게 살다가는 어둠의 자식이 되겠구나! 하면서
하나님이 큰 영적인 깨달음을 주게 되면
그게 하나님의 은혜 받는 것이고
그때 그것이 내 인생의 모닝콜이 되어지는 것이다.
또 하나는 종종 큰 은사를 허락하시기도 한다.
그래서 은사를 받고 큰 깨달음을 얻고 은혜를 체험하면서
다시 한 번 결단하여 앞으로 어떤 환란 고통이 와도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영적인 힘을 주시면서
우리에게 다시 새롭게 하시는 것이다.
그게 하나님의 모닝콜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여러 가지 환경에서 어렵기 때문에 영원히 잠들어버리고
깨어나지 못하고, 영적으로 죽고,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죄인 줄 모르고 이런 부당한 영혼들을 향해서
하나님을 자꾸만 깨우시는 것이다.
징계도 하고, 채찍기도 하고, 꾸지람도 하고,
또 마음속에 깨달음도 줘보시고, 은혜도 베풀어주시고
은사도 주면서 어찌하든지 좀 그걸 깨워보려고 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시도를
하시는 것이다.
모닝콜이 없다고 하면 종종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아침에 중요한 회의가 있는데 알람이 울리지 않고
알람이 꺼져 있어 그 시간에 그걸 놓치면 얼마나 낭패인가
직장에서 지각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해고당할 수밖에 없다.
약속을 못 지키게 되는 것인가?
모닝콜이 없고 알람이 없다면
내가 신용 불량이 될 수밖에 없고
또 우리가 중요한 여정 가운데 있다면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다.
여러분 생각해 보자.
많은 돈을 통해서 비행기를 예약해 놨는데 비행기를
제 시간에 못하면 비행기를 놓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일정도 망가지고 돈도 손해가 많고 어떻게 되겠는가?
모닝콜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모닝콜 서비스가 중요한 것이고
알람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하나님이 내 인생에 모닝콜로 다가오시지 않고
내 인생에 모닝콜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는가?
영적으로 낭패를 당하고 영적으로 실패를 당하고
매우 어려운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고
더 심하면 아무리 기다려도 변화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데려갈 수도 있는 것이다.
살 의미가 없다.
영적으로 변화가 없는데 뭐 하려고 사는가?
징계하고 채찍하고 꾸지람을 해도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 내 던져 버리신다.
그래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영계에 가서 심판대에 가서
남은 연단 받고 겨우 구원을 받겠지만
상급이 없는 그런 불쌍한 구원을 받고 만다.
끝내는 데려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본문 가운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15~21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이것이 모닝콜에 이어진 말씀이다.
어찌하든지 일어나서 어떻게 행해야 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갖고 빚 가운데로 나가서
그렇게 살면 지혜 있는 자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이고,
이 때가 악한 이 세상을 살면서 세월을 아끼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가 되면 주의 뜻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렇게 살아가고 만다는 것이다.
허송세월 하는 인생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세월을 아껴야 된다.
시간을 아껴야 된다.
내게 준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다가오는 하나님이 꾸지람하고 책망하고
채찍하는 그걸 곱게 받아서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때 깨어 일어나서 다시 한 번 새롭게 되어서
세월을 아껴가며 주의 뜻을 분별하며 술 취하지 말고,
오히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노래하면서
범사의 아버지께 감사하면서 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 사랑하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려고
이런 환경을 주시고 깨우쳐주시는 거니까
모닝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닝콜이 우리에게 나타나기를 소망하며
기도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그것이 비록 책망이라도, 그것이 징계라도,
그것이 채찍이고 꾸지람이라도 그걸 달게 받고,
또 하나님이 깨달음을 주셨다면 은혜와 은사를 주시고,
새롭게 하신다면 세월을 아껴가면서 주의 뜻을 분별하며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오히려 빚 가운데로 나가서
이렇게 살아가면 빛의 열매를 맺으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 아침에 영적인 모닝콜을 사모하면서 다시 한 번 깨어나
빛 가운데로 나가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남은 일생의 삶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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